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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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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는 항상 속이 답답했다.

음식을 제대로 먹기도 힘들었으며, 누울 때면 구역감이 몸을 타고 올라왔다.

“어쩔 수 없는 거야.”

넬의 사제들이 말했다.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그 이유로 몇 번이고 교육과 체벌을 받아야만 했다.

레아는 그때를 회상하며 중얼거렸다.

“올바른 성녀가 되기 위해...”

평생을 받쳐 신을 모실 것.

몸도 마음도.

그것만이 레아의 증상을 호전시킬 방법이었다.

그리고 레아는 그 말을 언제나 철썩같이.

“웃기고 있어요.”

안 믿었다.

애초에 넬이 멸망한 지가 언젠데?

그녀는 열 살에 성녀로 발탁되어 반평생을 성녀로서 살아왔지만.

가스라이팅에 넘어가진 않았다.

“내가 머리까지 멍청할까봐요?”

소화불량이 원인이란 걸 알았다.

어렸을 때 제대로 먹지 못한 게 원인이겠지.

문제는 힘이 없었다.

강자가 뭐든지 주무르는 법.

그래서 얌전히 고개를 숙여 지냈다.

“주딱, 주딱님.”

강자를 누르는 더 큰 존재.

넬라 같은 가짜 신이 아닌, 진짜 신, 주딱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귀염뽀짝성녀: 주딱은 내 거임

귀염뽀짝성녀: 내 마음 알아줘야 함

주딱*: ?

귀염뽀짝성녀: 뽀뽀 딱 댐

주딱*: ㄴㄴㄴ;

게다가 장난도 받아준다.

“이상적인 존재...”

레아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신이지만, 가장 이상적인 인간과 같은 존재.

그게 있다면 주딱과 같지 않을까?

그때였다.

“아...?”

소화제라 부르는 주딱의 신물을 복용한 지 10분즘 지났을 즘인가.

꽉 막혀 있던 속이 거짓말처럼 개운해지는 게 느껴졌다.

속이 가볍다.

“어, 어떻게?”

속이 가볍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눈에 띄게 빠르게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걸까?

사제들이 말하던 악마의 장난이란 헛소리를 믿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평생 괴롭히던 소화불량이, 이렇게 단번에 낫는다고?

“우웁?”

그때 몸 속에서 무언가 역류했다.

레아는 주춤거리며 탁자를 잡았다.

-꿈틀

무언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건 어찌 자력으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웨에엑!”

갑작스런 속쓰림에 당황하던 레아가 구토한 순간이었다.

-철퍽!

무언가 바닥에 떨어졌다.

사람 검지만한 크기의 검은 무언가.

“...어?”

레아는 놀란 토끼눈으로 한참을 그걸 응시했으니.

-꿈틀

“헤엑.”

-꿈틀꿈틀

“히에엑!”

그건 분명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온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난 레아는 그대로 다급하게 채팅을 쳤으니.

귀염뽀짝성녀: 주, 주딱주딱!!!

주딱*: ???

귀염뽀짝성녀: 도, 도와줌. 도와줌!

몸 속에서 진짜 무언가 튀어나왔다.

[흑마법 사념체]

악의를 가지고 만들어낸 사념 덩어리.

사람의 몸 속에서 마나를 빨아먹으며 기생한다.

소화불량의 부작용을 일으킨다.

자연적으로 찾아낼 수 없다.

뽀짝성녀에게 소화제를 준 지 10분 즘.

성녀가 흑마법을 토해냈다.

용용죽겠지: 흐음

용용죽겠지: 아무래도 누가 의도적으로 심어둔 듯 하구나

그래서 용용이에게 자문을 구했고.

해답은 간단했다.

“넬에서 누가 건 모양인데?”

일부러 레아에게 흑마법을 걸었다.

문제는 레아는 성녀였다는 것.

아무래도 누가 성녀를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 흑마법을 쓴 것 같았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사념체라 자연적으론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소화제 당신은 대체...”

현대 의학은 자연적인 건 아니었다.

무려 아득히 먼 미래의 의도된 의학 기술이 몸 속에 들어왔고.

덕분에 사념체가 발광하다 죽어버린 것.

뽀짝성녀의 머리 위에 갑자기 천사의 헤일로가 나타난 것도 그때문이었다.

“힘을 억누르던 사념체가 사라졌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힘을 해방시켜 성녀로 만든 것이 아닌.

원래 재능이 풀려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건 다른 문제였다.

[제목: 속보) 갤러리 성녀 나타남]

(맨발로 주둔지를 거닐고 있는 성녀 짤)

(성녀 머리 위에 떠 있는 헤일로 짤)

이왜진;

애들이랑 모닥불 앞에서 밥쳐먹다가 순간 다들 벙쪘는데

(무릎 하나를 꿇는 기사 짤)

기사들 무릎 꿇어서 일단 나도 넙죽 엎드리긴 한다 ㅇㅇ

주딱님 언제 성녀 지명한 거냐???

[추천7312] [비추천12]

  • 와 짤인데 눈이 부시네

  • 굉장히 신성하고 아름답네요

ㄴ 뭐가요

ㄴ ㅎㅎ

[제목: 진짜 주딱이 임명했나 본데?]

(헤일로가 주황빛으로 반짝이는 짤)

(헤일로 옆에 노란색 딱지가 붙어 있는 짤)

저거 주딱 마크잖아

진짜 갤러리 성녀였네

  • 성녀까지 있으면 이제 완전체 아님?

  • 용사에 성녀에 영물에 캬

  • 우리도 이제 균열에 반격가나!!!

  • 이제 음침한 짐꾼만 있으면 됨

ㄴ 뭣

“아니.”

갤러리 전체가 성녀임을 철썩같이 믿어버린 것.

하필이면 헤일로가 주딱 딱지 색이랑 똑같았으니까.

심지어 마크도 있었다.

천사 헤일로에 주딱 마크라니.

성스러운데 상스럽다.

심정은 복잡하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론 잘 됐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이젠 치료할 수 있겠지?”

다리안의 감염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저 머리 위에 떠 있는 헤일로.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었으니.

귀염뽀짝성녀: 주딱, 나만 믿음

주딱*: 오오

성녀, 레아는 당당하게 다리안이 있는 텐트로 들어갔다.

이미 갤러리에서 소문이 퍼졌기 때문일까.

“오오 성녀님...”

“주딱께서 직접 선택하셨다는 그...”

내가 임명한 성녀라는 오해 덕에, 성당 기사들이 막아서는 일은 없었다.

“이번엔 다를 거예요.”

자신감 가득 찬 목소리로, 레아는 다리안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한 손으로는 가슴팍에 모은 채, 눈을 천천히 감았으니.

곧 빛이 폭발하듯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오오!”

“이번에는 정말로...!”

주변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진짜 된다.

안 되면 저 반짝이는 빛에 대한 배신이다.

  • 화아악!

그리고 곧 빛이 폭발하듯 커졌다가, 곧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해치웠나?”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그때.

고요 속에서 레아가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응시했으니.

“실패했어요.”

[제목: 큰일났음]

작성자: 귀염뽀짝성녀

(당당한 성녀 정면 짤)

실패했음...

하지만 신물 있으면 해결 됨

주딱, 나 도와줌

[추천1909] [비추천2211]

  • ?????

  • 실패했어요(약 내놔)

  • 엄 댕청미있네요 ㅇㅇ;

실패했다.

그리곤 갤러리에 글을 올린 뒤, 냅다 기도하기 시작했다.

성녀가 실패했다.

“이상할 건 없지?”

생각해보면 그 다리안조차도 완쾌하지 못했다.

하물며 성녀라고 다를까?

그렇게 나온 결과는 하나였다.

“현대 의학의 힘을 빌리는 거지.”

항생제에다 축복을 빌어 먹인다면 가능하다는 것.

문제는 그 방식이었다.

그냥 달라고 하면 될 텐데,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다 몇분 쯤 지났을까.

  • 귀염뽀짝성녀) 힐끔

ㄴ ?

ㄴ ???

살짝 눈을 떠 바닥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없으면?

그럼 다시 두 손을 꼭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 지금 뭐하는 거임...?

  • 기도하는 것 같은데요

  • 아 ㅋㅋ 주딱 물건 내어놓을 때까지 기도할 거라고

그렇게 1분 즘 지났을까.

  • 귀염뽀짝성녀) (고개를 빼꼼 내미는 성녀 짤)

ㄴ ?

ㄴ ㅋㅋㅋㅋ 뭐 이리 당당함

ㄴ 얼탱이 없어서 귀엽네 ㅋㅋ

뽀짝 성녀는 다시 힐끔 눈을 떴다.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자, 다시금 눈을 감았으니.

“지금 기도하는 건가?”

숭배밈은 금지인데.

심지어 모두가 보는 념글에서 숭배라니.

나는 이를 말해줄까 하다가, 치료부터 우선 마치기로 했다.

[항생제 1알] - 1p

[물품을 안전히 배송했습니다!]

  • 톡.

기도하던 뽀짝성녀의 정수리에 항생제가 톡 떨어졌으니.

뽀짝성녀의 표정이 세상 밝아졌다.

그리곤 곧 항생제에다 축복을 걸기 시작했다.

“으으... 됐어요.”

축복을 거는 게 쉬운 일은 아닌지, 조금 피로해진 채로 약을 완성했다.

그렇게 다리안의 입 속에 넣은 그때였다.

[갤주 다리안]

[상태메세지]

1분 전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다리안의 완쾌 알림이 떴다.

“아니, 이게 된다고.”

항생제 한 알 붙었다고 이게 되다니.

얼떨떨해하던 그순간, 시야에서 뽀짝성녀가 일순간 사라졌으니.

“하아... 하아...”

기력을 다한 뽀짝성녀가 탈진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아.”

아니었다.

레아, 본인만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탈진해서 쓰러진 기억이 났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온 힘을 끌어다 쓴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너무 무리했네요...”

속이 풀렸다고 바로 그렇게 힘을 쓰다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무모했다.

그렇지만 레아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주딱에게 도움이 되었으니까, 그걸로 만족했다.

“주딱님...”

주딱과 잠깐 지내보면서 성향을 깨달았다.

주딱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실패하거나 실수해도 관대했다.

[못하면 마는 거지. 억지로 하지 마셈.]

주딱의 채팅이 아직까지도 떠올랐다.

“못해도 괜찮다니...”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레아는 마치 안식처를 찾은 기분이었다.

그래서일까?

뒤늦은 장난기가 찾아온 듯, 주딱만 보면 어리광을 피우고 싶어졌다.

“나는 주딱님이랑 가까운 사이니까요.”

주딱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관심은 받고 싶다.

평생 친구가 없었던 레아는 그 감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흐흐.”

단지 자각없는 음산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주딱*: 님 깨어남?

그때, 불현듯 주딱이 나타났다.

레아는 후다닥 몸을 일으켜 채팅을 쳤다.

귀염뽀짝성녀: 나 잘했음?

주딱*: ㅇㅇ 덕분에 잘 해결됐네 ㄱㅅㄱㅅ

온몸으로 사력을 다해 다리안을 치료했다.

그렇게 돌아온 건 고작 잘했다는 한마디였지만.

‘날 칭찬해줬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주딱에게 대가없는 노동은 없다는 걸.

  • 우르르

그때 레아의 머리 위로 무언가 우르르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으읍?”

레아는 당황하며 손을 마구 내저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무언가 떨어졌으니.

무심코 손에 잡힌 건 부드럽고 폭신한...

“옷?”

옷이었다. 그것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옷들이.

주딱*: 일단 잡히는대로 사봤는데

주딱*: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걸치셈

귀염뽀짝성녀: 나 주는 거임?

주딱*: ㅇㅇ 이제 그 넝마도 그만 버리고

“넝마...”

레아는 자신의 성녀복을 내려다봤다.

넬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옷이었지만...

“맞아, 이딴 옷 필요 없어요.”

주딱이 준 옷이 천 배는 예쁘게 느껴졌다.

레아는 그 자리에서 곧장 옷을 갈아입었다.

하지만 두근거림은 가라앉지 않았으니.

레아는 이 기쁨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냅다 사진을 찍었다.

“갤러리에 자랑할래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주딱과 얼마나 친한지 볼 수 있도록 올려야지.

레아는 잔뜩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은 채, 게시물을 올렸다.

[제목: 주딱이 옷 줌]

그리고 갤러리를 껐다.

적당히 몇 명만 보고 부러워하면 되니까.

  • ㅁㅊ 옷 존나 예쁘네

  • 어디서 삼?

레아는 설마 그 글이 개념글 최상단에 올라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