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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501 lines
12 KiB
Markdown

[제목: 큰일 났음]
작성자: 귀염뽀짝성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찍은 짤)
(근처 나무에 쭈그려 앉은 짤)
목적지에 도착했음
근데 여기 아드리안이 아님
아드리에 시골 마을임
나 돈 없음...
마차 못 탐
배도 고파서 걸을 힘도 없음
눈물 날 것 같음
아무나 날 도와줌...
[추천12] [비추천10]
- 아오 또 어그로글이네
- 짤녀분 성함이?
ㄴ 작성자) 나임. 애초에 나라고 하는데 왜 안 믿음?
ㄴ ㅋㅋ 개솔 ㄴ
“아니, 이쯤되니까 헷갈리네.”
갤러리의 초신성, 호감고닉 뽀짝성녀.
닉네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투를 쓰며, 꾸준히 근황을 게시한다.
그런데 짤 디테일이나 매번 달라지는 각도가 사칭은 아닌 것 같았다.
“아드리에는 또 어딘데.”
찾아보니까 아드리안하곤 전혀 관련 없는 땅끝마을이었다.
워낙에 오지인 탓에 전쟁마저 피해간 그런 곳.
- 주딱*) (참치캔 2개, 물300ml 1병, 100경단을 배송했습니다!)
그래서 불쌍해서 적선했다.
진짜 구걸글이면 뭐 어때?
“참치캔 두 개 받으려고 저기 간 거면 줘야지.”
아드리에, 존재하는 마을인지도 몰랐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칼같이 돌아왔다.
ㄴ 뽀짝성녀) 주딱 나를 또 봐줬음!
ㄴ 뽀짝성녀) 주딱 좋음
ㄴ 주딱*) 이상한데 새지 말고 잘 가라
ㄴ 뽀짝성녀) 꼭 그렇게 함
“짤도 도용은 아니던데.”
은은한 연금발에 바다색 눈동자.
저런 예쁜 외모를 가지고 왜 저러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열심히 사시잖아.”
마치 성녀 키우기 게임을 하는 것만 같았다.
조금만 도와줘도 고맙다고 하는 게, 혜자 리엑션 방송을 보는 거 같기도 하고.
- 아오 줄 존나 기네 ㅅㅂ [1]
- 아니 나이 안 되면 좀 양심적으로 나가라 [5]
- 인맥 이용 새치기 4명 박제합니다 [51]
그럴 동안 주카데미 입학 지원자들도 꾸준히 차고 있었다.
“근데 예상외로 사람이 너무 많은데?”
남녀노소할 것 없이 길게 줄이 이어졌다.
놀라운 건, 아이보다 어른이 더 많았다.
당연히 주카데미 입학 때문은 아니었다.
- 합격만 하면... 인생 역전이다
- 인생 졸업 나도 한 번만 해보자
- 제발제발 진짜 딱 한 번만 빛 보자
주카데미에서 일하기 위해서.
당장은 직원보단 수습 형태로 한 달 업무 후 직원으로 채용할 생각이었다.
월급도 적었다.
최저 시급보다 조금 더 받는 기준, 기숙사, 식사 제공이 전부인데
- 갤러리 직원? 관료 비켜! 기사 비켜!
ㄴ 식사 제공 ← 여기서 끝남 ㅇㅇ
ㄴ 주딱 이새끼는 최저라는 개념을 모름 ㅋㅋ
ㄴ ??: 바닥 밑에는 지하가 있다니까요?
너도 나도 하려는 탓에 줄이 길어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내 몫이었다.
[‘아카데미 입학/고용’ 말머리에 등록된 게시물 5921건이 존재합니다.]
줄이 계속 늘어나는 것을 방지해, 미리 쳐낼 사람은 내 선에서 쳐내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분명 고아만 받겠다고 공지한 학생 입학 신청란에 들어온...
[주카데미 입학: ㅎㅎ]
작성자: zl존폭풍법사
(엄지를 들어올린 셀카 짤)
저도 학생으로 입학하고 싶은데
ㄱㄴ?
켈리어튼 마탑주 같은 경우였다.
일단 찌르고 보자는 생각에 넣는 갤럼들.
줄이 길어지게 만드는 주요 범인들이기도 했다.
- 주딱*) ㄷㅈ?
ㄴ zl존폭풍법사) 아니 왜요
ㄴ 주딱*) 고아만 신청하라고. 그리고 님이 왜 학생으로 신청을 넣음?
호감 고닉 zl존폭풍법사.
가벼운 언행과 달리 어찌 되었든 마탑을 지어 올린 뛰어난 마법사였다.
일전에 고전압 배터리를 맨손으로 잡고 깨달음을 얻어 대마법사에 다가서기도 했고.
근데 학생으로 입학 신청서를 내?
ㄴ zl존폭풍법사) 아니 저 고안데요
ㄴ zl존폭풍법사) 그리고 가면 마탑주님께서 강의해주시는 거 아닙니까?
“나?”
내가 왜.
나는 주카데미를 지을 생각도 없었다.
적당히 운영하다가 왕국에 넘겨주고 튈 생각인데 뭔 강의?
ㄴ zl존폭풍법사) 예를 들자면 고대 마법 서적 해석본이라던가...
ㄴ zl존폭풍법사) 대마법의 실행 원리와 마나 저장에 대한 방법을...
이상한 헛소리를 늘어놓는 지폭마를 보다가 머리가 번뜩였다.
“마법? 오히려 좋아.”
이곳에서 마법은 효율이 좋으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해와 재능도 필요하겠지만, 좋은 선생을 구하는 것도 일이니까.
괜히 돈 많은 자들의 학문이 아니다.
“그럼 내가 쉽게 만들면 되겠네.”
ㄴ 주딱*) 님아
ㄴ zl존폭풍법사) 예?
ㄴ 주딱*) 입학 시켜드림 ㅇㅇ
ㄴ zl존폭풍법사) 정말이십니까?
ㄴ zl존폭풍법사) 폭끼얏호우!!!!!
ㄴ 주딱*) 여기에다가 싸인하셈
ㄴ 주딱*) (계약서 한 장을 배송했습니다!)
계약서를 보내기가 무섭게 곧바로 사인, 아예 지장까지 찍은 계약서가 돌아왔다.
나는 계약서를 확인 후, 만족스레 미소를 지었다.
“선생 하나 잡았고.”
ㄴ zl존폭풍법사) 진짜 정말 감사합니다... 드디어 제 바램을 들어주시다니...
ㄴ zl존폭풍법사) 저 진짜 최선을, 아니 영혼을 다해 학습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전히 오해하고 있는 지폭마에게 간단한 답장을 보냈다.
- 주딱*) 나도 잘 부탁함 ㅎㅎ
ㄴ 주딱*) 계약서 사본 보낼테니, 월급이나 시간표 잘 확인하셈
ㄴ zl존폭풍법사) 예 정말... 예? 뭔 월급?
뒤늦게 지폭마가 눈치를 차렸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다시는 현대 계약서 사기를 무시하지 마라...”
용용이의 마나가 담긴 용 계약서.
절대 파기할 수 없었다.
- 띠링!
- 띠링띠링!
갤러리에서 알림이 시끄럽게 날아왔지만, 나는 간단히 무시했다.
이런 식으로 줄도 줄이고, 적당한 인재도 발굴해낼 수 있으니 여간 좋은 게 아닐까?
“자, 다음 노예를 잡으러 가볼까?”
멋 모르고 이력서를 넣은 글을 찾아보려고 다음 글을 눌렀을 때였다.
[주카데미/제목: 신청]
작성자: 4.444.404
(무뚝뚝한 표정으로 브이하고 있는 여자애 짤)
주딱
여기에 있었구나?
“어?”
옛 페니의 아이피로 신청글이 날아왔다.
예전 질투가 넘어올 때도 이 아이피를 사용했는데.
“또 다른 칠죄종이?”
설마 하는 마음에 갤러리를 들어간 순간이었다.
이미 주카데미 앞은 문제가 터져 있었으니.
[제목: 여기 다 왜 이럼?]
(바닥에 다 쓰러진 사람들 짤)
(기절한 경비원 앞에 서 있는 여자애 짤)
줄 10시간 정도 선 것 같은데, 갑자기 앞이 고요해짐
뭔가 싶어서 보니까 웬 여자애가 서 있는데?
뭐임? 나만 모르는 뭔가 있나?
[추천2911] [비추천5]
- 뭐냐 다 누워 있네
- 저 여자애 뭔가 이상한데, 제대로 짤 찍어서 글 올려보셈
ㄴ 작성자) ㅇㅇ 그러렬ㄹㄹㄹㄹㄹ
ㄴ ???
ㄴ 얘 갑자기 왜 이럼?
하품하는 여자애 주변으로 사람들이 저항없이 쓰러졌다.
죽은 것 같지만, 실상은 다들 잠에 빠지거나 나른한 표정으로 바닥을 볼 뿐이었다.
얼핏 보면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저게 문제였다.
[제목: 굳이 살아야 할까?]
굳이 아카데미를 가야 할까
어차피 평생 힘들고 고통스러운 인생, 죽으면 그만 아닐까?
[추천3] [비추천12]
- 갑자기 이게 뭔 소리임?
- 그럼 채팅도 굳이 왜 침?
ㄴ ㄹㅇ ㅋㅋ 그럼 숨은 굳이 왜 쉼?
ㄴ 작성자) 그렇네
ㄴ 어?
목표가 사라진다.
그 다음으론 본능조차 사라졌다.
눈앞에 위험이 닥쳐도 남일처럼 방관하게 되는 것이다.
“나태.”
그렇게 머릿속에 떠오른 칠죄종은 나태.
저 여자애가 나태였다.
죽지 않던 질투의 불사 능력처럼, 나태는 주변 모든 걸 나태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일단 격리해야 하는데...”
[제목: ]
[추천0] [비추천0]
- 뭐임?
나태와 눈이 마주치는 모두가 나태해졌다.
글을 올리는 것조차 귀찮아질 정도로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다행히 갤러리 너머로 보는 건 적용이 안되는 모양인데.”
나태를 막아설 사람은 없었다.
나태는 누구의 제한도 받지 않은 채, 느릿느릿 주카데미로 들어섰다.
하지만 완전히 들어서진 못했다.
“귀찮은 건가?”
주카데미 정원을 가로지르는 것도 귀찮아져서 그대로 잔디밭에 누웠으니까.
[제목: 주딱]
작성자: 4.444.404
할 말 있어
위협하려는거아
ㄴ아ㄴㄴㄲ
한번 만ㄴ만ㄴ준ㅇ
뭐라는지 알 수 없는 글 또한 올라왔다.
일단 제압의 필요성이 있었다.
“총, 수류탄?”
아니다, 그런 것보다 확실한 게 필요했다.
다행인 건 나태는 남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었다.
나태 스스로도 잡아먹힌 것 같았다.
“그럼 쉬울지도 모르겠네.”
나는 미리 생각해둔 것들을 상점에서 구매하기 시작했다.
*
움직이기 싫다.
딱히 무언가를 먹고 싶지도 않았다.
목표도 없었다.
생각하기도 싫었다.
.
.
“아.”
그렇게 때때로 생각을 멈추면 수십, 수백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럴때마다 바깥은 더, 그리고 처음 보는 것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관심 없어...”
물론 그녀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잠만 자면 된다.
비록 땅이 울퉁불퉁하고 공기가 차가워 수면에 좋은 공간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움직이기 싫어...”
그녀는 나태였으니까.
하지만 이젠 그것도 옛날이었다.
바깥이 새로운 세상을 집어삼키지 못한 그때부터, 모든 게 어그러졌으니까.
-꾸드득!
침공에 실패한 균열들이 생성되고 삭제되기를 반복했다.
“끼에엑!”
마수들이 역으로 털리면서, 바깥에서 새로운 마수들이 태어나며 울부짖는다.
“어이, 이제 좀 일어나지!”
“왜...”
“잠 좀 그만 쳐 자고 밖에 좀 나가라고!”
세상을 집어삼키지 못해 분노한 분노가 허구한날 찾아와 발가락으로 쿡쿡 잠을 방해했으니.
“잘 곳... 잘 곳이 필요해...”
이대론 안 된다.
바깥에선 나태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주딱...”
얼핏 듣게 된, 침공의 실패 원인.
그렇다면 주딱에게 붙어버리자.
“신기한 능력도 있다는데...”
잘하면 잠도 더 잘 재워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무작정 바깥에서 도망쳐 나왔다.
도시까지 잘 찾아왔다.
이제 말만 하면 된다.
나는 적이 아니고 침공 따위 관심없다고.
“귀찮아...”
문제는 귀찮았다.
주딱을 설득하는 과정이 너무 귀찮을 것 같았다.
결국, 수십 세기만에 끌어낸 나태의 의지는 주카데미 잔디밭에서 꺾여버렸으니.
“흐에엥...”
힘빠지는 소리를 내며 졸던 그때였다.
- 펑!
하늘에서 무언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곧 나태의 얼굴 위로 직격했으니.
“우픕!”
미치도록 푹신했다.
“이건...?”
네모나고 구름 같은 쿠션.
잘은 모르겠지만, 잡아야 한다.
나태가 본능적으로 그 무언가를 몸으로 끌어 안았다.
하지만 하늘에서 물건은 끊임없이 떨어졌으니.
-펄럭, 펄럭.
이번에는 몸을 덮을만한 천들이었다.
“흐에엥.”
가히 폭력적힌 편안함.
나태는 그만 저항도 못한 채, 그대로 잠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