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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와 사파의 구조는 굳이 따지자면 봉건제와 비슷하다. 각 지역을 지배하는 문파가 있고, 그들 중 세력이 가장 강대한 몇몇을 십육명문이니 칠사흑문 따위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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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는 조금 다르다. 마교의 경우 전제군주제와 비슷하다. 모든 마인의 위에 마라가 있으며, 마라의 대행인 천마가 천산을 다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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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에 마교와의 전쟁은 필연적으로 총력전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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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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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나 사파의 경우 그 형태가 각 문파들의 연합에 가까운 만큼 수비해야 할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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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만을 지키겠답시고 어디 북해빙궁쯤 되는 곳을 뚝 떼어주기라도 했다가는 연합이 그대로 흩어져버리는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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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마교는 다르다. 그들은 천마전만 지키면 된다. 다른 지역들이야 부서지건 말건 알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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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전력이 천마전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그곳을 뚫으려면 당연히 그를 상대하는 집단에서도 상응하는 전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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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경이란 화경은 죄다 박박 긁어모아서 쳐들어가야 한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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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마교가 느닷없이 마라를 하계에 강림시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지만 않으면 그럴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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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마교의 전력 대부분(당연히 천마는 제외하고)을 차지하는 것이 칠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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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에서 가장 강한 일곱 명의 대마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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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 전체를 줄 세워본 것은 아닌지라 정확한 서열은 아니지만, 그게 아예 근거 없는 명칭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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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은둔하고 있는 마인들을 제외하면 대충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들은 맞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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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준은 이번에 무려 그들 중 절반을 봤다. 신녀까지 포함하면 네 명.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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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이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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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이런 말 하기 조금 그렇지만…. 정말 용케도 살아돌아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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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은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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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 새끼가 정신이 나가가지고…! 도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너 목숨이 한 서너 개쯤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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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죽어봐서 모르겠눈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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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끼야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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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쥐어뜯은 춘봉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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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번 죽어보면 알겠네! 목숨이 몇 갠가 좀 세보자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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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랏 이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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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다다! 춘봉 러쉬에 얻어맞고 있자니 남궁진천이 서준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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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 남궁진천의 눈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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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대단한 성취를 이룬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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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보여드린다는 걸 깜빡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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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하는 춘봉을 품에 끌어안아 가둔 서준이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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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봐라, 금춘봉. 이게 미래천마 천서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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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신공을 운용하는 것과 동시에 의식이 아득해진다. 드높이 치솟은 영혼이 세계를 인식하고, 전능감에 가까운 감각이 전신에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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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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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숨을 내쉬자 가주전 내부가 조용해졌다. 품에 안긴 춘봉이 히끅-! 딸꾹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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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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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겉모습이 크게 바뀐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관자놀이에 커다란 뿔이 한 쌍 자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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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기운이, 묘한 압력이 일대를 짓누른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몸이 위축되는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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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은 떨리는 손을 뻗었다. 서준의 눈이 그 손을 따라갔다. 마침내 춘봉의 손이 목적지에 닿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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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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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몸이 움찔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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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서준의 뿔을 세심하게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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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와아…. 이거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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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을 콩콩 두드려보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뽀득뽀득 문질러보기도 하고, 혀로 핥아 한 번 맛을 보고는 으음? 묘한 소리를 내다가, 마침내는 앙- 하고 뿔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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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야야야…! 잠깐…! 이, 이거 뭔가 이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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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믐…. 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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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뿔에도 감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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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뭔가 뭔가 이상하다. 느낌이 막…! 아무튼 상당히 거시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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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뿔 이거 되게 튼튼한데 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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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 아니라 뿔로 강철도 뚫을 수 있다. 싸울 때 몇 번 뿔로 검을 막아내기도 했는데, 그때는 딱히 통증 같은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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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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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모 모으디(나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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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아악…! 씹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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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평소와 관계가 역전된 듯한 기분이다. 서준이 제 머리의 뿔을 소중하게 감싸 쥔 채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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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남궁진천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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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단한 성취를 이뤘군…. 아직 사위도 스스로의 몸이나 능력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는 듯싶은데….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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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맞아요. 이제 막 오른 경지라서 조금 연구를 해봐야 될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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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본래 경지가 높아질수록 몸을 움직이는 수련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고찰이 중요한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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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도 앉아서 명상 같은 거라도 하는 게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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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잠시 침음을 흘리며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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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위가 알아서 하는 편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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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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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성장이 막힌 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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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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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냥 알아서 하게…. 내가 봤을 때 사위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면 알아서 성장할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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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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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자꾸 달려드는 춘봉을 품에 꽉 끌어안아 제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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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보다 장인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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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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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이기어검 한 번 보여주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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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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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칠마랑 싸우면서 느낀 건데, 제가 이기어검을 조금만 더 잘 썼어도 훨씬 편해졌을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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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기어검이 다수를 상대할 때 유용한 면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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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인데…. 혹시 조금 배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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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묻자 남궁진천이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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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네…. 내 주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이기어검인 만큼, 자네에게도 알려줄 수 있는 것이 많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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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 안긴 채 가만히 얘기를 듣던 춘봉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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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하는 김에 나 그것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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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그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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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시혈만천 때 그거. 팔 막 여러 개 달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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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화? 그걸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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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는 물음에 춘봉이 오히려 서준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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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니. 간지 뒤지잖아! 개멋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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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의 눈이 은하수를 품은 듯 반짝인다. 서준의 표정이 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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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춘봉이, 취향이 좀 이상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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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니,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 솔직히 다들 멋있다고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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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남궁진천을 바라보았다.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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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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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확실히 범상치 않은 취향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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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이 슬쩍 서준에게서 몇 걸음 멀어졌다. 의외로 남궁진천은 징그러운 것을 질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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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상처받은 서준이 제 팔을 가지고 노는 춘봉을 번쩍 안아들어 목마 태웠다. 춘봉이 꺄르륵 웃으며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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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팔이 여섯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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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너 좋으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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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여섯 팔로 춘봉과 놀아주며 이기어검을 펼쳐 마검을 뽑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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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전을 벗어나 남궁세가와 조금 떨어진 곳에 펼쳐진 널따란 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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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과 남궁진천은 그중 살짝 솟아있는 언덕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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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이기어검에 맞서 남궁진천 역시 이기어검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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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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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검이 검명을 흘린다. 남궁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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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가 쑥쑥 자라는 것 같아 뿌듯하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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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장모님이요? 이거 오랜만에 뵙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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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이 쓰게 웃었다. 얼굴의 거죽만 움직인 듯한, 이질적인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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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제 시간이 별로 남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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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굴-, 서준의 눈이 굴렀다. 그는 몇 번 입을 뻐끔대다 그냥 꾹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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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이 이번에야말로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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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신경 쓰지 말게….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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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장인어른? 제가 그, 만마종주의 싹이라고…. 뭐냐. 그…, 역천의 대표주자 같은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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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의 검에 정말로 장모님이 깃들어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자신이 무언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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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남궁진천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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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러지 말게…. 하늘이야 어찌 됐건 아내에게 못 할 짓이야…. 너무 내 욕심만 부렸다가는 그녀가 실망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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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바란다면 이미 남궁진천이 스스로 해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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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품은 남궁세가의 검이 되려 그 하늘을 향한다면, 고고한 하늘을 찢어발겨 떨어뜨리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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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정파다운 검을 다루는 남궁이지만, 그 방향이 조금만 틀어져도 역천을 이루는 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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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서준 역시 천마신공의 많은 부분을 남궁세가의 무공에서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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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눈을 감고 있던 남궁진천이 이내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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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네, 사위…. 혹시 다른 날에 계속해도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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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당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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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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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게 웃은 남궁진천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화마경에 오른 지금에 와서도 쉬이 좇을 수 없는 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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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데굴 눈을 굴렸다. 얼떨결에 춘봉과 단둘이 남았다. 무거운 분위기가 어깨를 짓누른다. 팔을 가지고 놀던 춘봉 역시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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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어렵게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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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뜌, 뜌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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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땨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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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과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 둘은 다시금 남궁세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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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돌아가서 쉬든가 할 생각이었다. 생각해보니 이제 막 남궁세가에 도착한 것 아닌가? 좀 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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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을 목마 태운 채 경공을 펼치던 서준은 새어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눌러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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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장인어른께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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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에 가장 가까운 사내의 뒷모습은 생각했던 것만큼 커다랗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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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돌리기 위해 고심하던 서준은 나름 적절한 화제를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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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건 어떻게 됐어? 폐관한다고 했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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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뭐…. 나쁘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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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좋지도 않은 듯한 반응이다. 손을 잡고 쫄랑쫄랑 따라오는 춘봉을 빤히 바라보자 그녀가 슬쩍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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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조금 막혔는데…. 네가 오는 것 같길래? 그냥 나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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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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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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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때. 천천히 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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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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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를 보던 춘봉이 히히 웃었다. 그래도 신경이 쓰이긴 했는지 방에 도착하자마자 수련을 조금 하겠다며 검을 들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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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부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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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쥔 손을 번쩍 치켜든 춘봉의 뒷모습이 멀어져간다. 서준은 픽 웃으며 방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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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누나는 어디 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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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평소 같았으면 슬쩍 나타나 웃으며 반겨주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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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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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니 방바닥에 웬 종이가 하나 놓여있다. 아니, 편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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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싶어 펼쳐보니 감탄이 나올 만큼 정갈한 글씨체로 짧은 글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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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잠시 편운정(編雲亭)으로 와줄 수 있겠냐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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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운정이라 함은 남궁세가 내부에 있는 여러 정자 중 하나로, 꽤 큼지막한 연못까지 딸려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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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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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없이 편지를 품에 넣은 서준은 편운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적당히 경공을 펼치며 이동하니 편운정까지는 금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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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남궁세가에 도착한 게 그리 이른 시간이 아니었던지라 어느새 해가 져 은은한 어둠이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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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주변에 핀 새하얀 수국들을 감상하며 도착한 편운정. 그 지붕 아래 남궁수아가 등을 돌린 채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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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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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부름에 반응한 듯 그녀의 고개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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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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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활짝 핀 미소와 함께 남궁수아가 몸을 돌렸다. 그런데 차림새가 평소와 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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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계열의 옷인 건 같지만, 요대나 귀걸이, 목걸이까지 더해진 차림이 상당히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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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모양도 바뀌어서 평소 하지 않던 비녀를 꽂았는데, 전체적으로 화려한 차림임에도 남궁수아의 고요한 분위기 탓인지 정숙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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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순간 대답도 잊고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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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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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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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미혼 여성이 저런 화려한 비녀를 하는 건 무슨 행사가 있을 때 정도 아닌가? 무슨 일이라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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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굳은 채 입을 다물고 있자 남궁수아가 묘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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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이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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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빈약한 어휘력으로는 뭐라 표현하기 힘들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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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칭찬을 해본 적이 거의 없어 말문이 막혔지만, 서준은 일단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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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네. 누가 꽃인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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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수아가 쿡쿡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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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은 도대체 어디서 배워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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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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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해도 좀 모자라 보이는 대답이었는데 좋아해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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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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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잠깐 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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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정자 안에 들어서자 남궁수아가 기다란 끈에 매달린 종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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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종소리와 함께 기의 파동이 너울너울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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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신호였는지 곧 남궁세가의 하녀들이 편운정에 간단한 술상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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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앞에 다소곳하게 앉은 남궁수아가 웃음기가 걷히지 않은 낯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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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갑작스럽긴 한데…. 뭐 하나 물어봐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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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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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약혼식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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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 서준의 머리가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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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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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걸 들은 기억은 없는데…? 설마 자신이 약혼식을 까먹을 정도로 병신이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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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처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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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진짜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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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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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용-! 삐용-! 머릿속 좆됨 경보가 아주 우렁차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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