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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과 비견되는 크기의 사슴. 살아온 세월을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영물이자, 칠마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강자인 수마(獸魔) 녹소평.
그녀가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 공간의 밀도가 달라진다.
탐마가 데굴 눈을 굴렸다. 그를 보며 혀를 찬 검마가 말했다.
“뭐 하는 짓이지, 수마?”
[미물아. 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았느냐.]
“신녀의 명을 듣지 못했나? 만마종주의 싹을 찾았으니 포획하고자 할 뿐이다.”
우르릉-!
하늘이 울렸다. 사슴의 웃음소리였다. 녹소평은 그 거대한 눈을 굴려 신녀를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신녀가 만마종주의 위에 섰느냐?]
“…단지 모시려 할 뿐입니다.”
[마라께서 그리 말씀하시던?]
“한낱 인간이 어찌 그분의 뜻을 알겠습니까. 그분께서 만마종주의 싹을 원한다 하시니, 저는 따를 뿐입니다.”
한순간에 분위기가 묘해졌다. 서준은 숨을 가다듬으며 녹소평을 바라보았다.
‘분위기는 저렇게 잡는 거구나?’
이제 보니 자신이 지금까지 잡던 분위기는 그냥 중2병 걸린 고수의 꼬장이었다.
저 거대한 사슴을 보라. 말투만 조금 바꿨을 뿐인데 얼마 전 보았던 녹소평과는 완전히 다른 압박감을 뿜어내고 있지 않은가.
서준은 감탄하며 슬쩍 퇴로를 살폈다.
‘지금 튀는 게 낫겠지?’
아직 칠마 둘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신녀는 제대로 나서지도 않은 상황. 녹소평이 자신을 얼마나 도와줄지 모르는 이상 후다닥 발을 빼는 게 최선이다.
퉁-!
서준은 가능한 한 조용히 혼원보를 펼쳤다. 빛살처럼 나아간 신형이 마인들의 포위망을 파고든다.
검마가 즉시 반응했다.
“어딜…!”
그의 검이 움직인다. 동시에 녹소평이 한 발짝 내디뎠다.
쿠우우우웅────────!!
거대한 발굽이 검마가 있던 자리를 찍어 눌렀다. 급히 몸을 피한 검마가 눈을 번뜩였다.
“그래, 오늘 서열 정리나 한 번 해보자꾸나!”
찌이잉-! 검마의 검에 검붉은 강기가 짙게 뭉쳐든다. 그의 검에 패도적인 기세가 깃들고, 이내 태산을 가를 기세로 휘둘러졌다.
쩌어어억────────
검로를 따라 공간이 갈라진다. 녹소평은 간단히 대응했다.
화악-! 앞다리를 작게 만들어 검을 피하고, 앞으로 기우는 기세 그대로 뿔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거대한 뿔이 공간을 가르자 일대에 폭풍이 몰아친다. 검마가 폭풍을 타고 뛰어올랐다. 그가 즉시 다음 일격을 내지르려던 때,
투우웅──────!!
다시 앞다리를 본래의 크기로 되돌린 녹소평이 땅을 짓밟고 돌진했다.
태산만 한 사슴의 돌진이다. 몸집이 크다 하여 둔하지도 않다. 오히려 거대한 만큼 그 보폭이 터무니없이 크다.
터어어엉────────!!
검을 들어 막아낸 검마의 신형이 하늘 너머로 쏘아져 날아갔다. 커흡…! 거대한 충격에 검마의 입술 사이로 핏줄기가 새어나왔다.
눈치를 보던 탐마는 주변 풍경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말로만 들었는데, 진짜 장난 없구만.’
수마가 가볍게 날뛴 것만으로 일대의 풍경이 뒤바뀌었다. 산 두어 개가 날아갔고, 지면에는 발자국 모양대로 거대한 협곡이 생겼다.
‘맛있으려나….’
수마를 보며 침을 삼키던 그때, 입술을 꽉 깨물던 신녀가 소리쳤다.
“수마는 무시하고 만마종주의 싹을 쫓으세요!”
그녀는 아예 직접 움직였다. 신녀가 손짓하자 일대의 마기가 움직이며 저 멀리 도망치는 서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흡…!”
서준이 눈치챈 순간 눈앞에 거대한 화염의 벽이 생겨났다. 평범한 불이 아니다. 묘한 기운이 깃들어있다.
하지만 그래 봐야 결국에는 마기로 발현된 무언가.
서준의 눈이 번쩍이자 그의 뿔이 진동하며 눈앞의 불꽃을 아예 흩어버렸다.
화악-!
걷힌 불꽃 너머로 달려드는 마인들이 보인다. 주변에서 끌어모았다는 말이 사실인지 그 수준이 그리 높지는 않다.
쩌억-
서준의 등 뒤에 핀 세 송이 꽃. 그것에 달린 무수한 입이 동시에 말했다.
만마종주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대부분의 마인들이 스스로 심장을 터뜨려 자살했다.
허나 남은 몇. 그들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서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경지 때문이 아니다.’
이미 서준의 명보다 먼저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어떠한 힘이 있다.
그들은 동일 경지의 다른 마인들보다 맹목적이었으며, 그 무예가 뛰어났다. 어쩌면 만귀군의 일부.
서준이 짐작한 순간 땅에서 무언가가 솟구쳐올랐다.
키에에엑────────!!
거대한 지네다. 그 무수한 다리에 각각 검을 한 자루씩 쥐고 있는데, 그 수가 무려 쉰을 넘었다.
‘50도류?’
솔직히 좀 멋있다. 허나 지네는 다른 마물들과 달리 서준의 명을 듣지 않았다.
서준이 혀를 차며 양팔을 활짝 벌렸다. 일대의 마기가 그의 지배하에 들어온다.
초절정을 넘어서며 그는 자연지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화경, 혹은 극마의 무인들에게는 부가적인 능력이겠지만, 서준에게는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도 위력적인 능력이다.
스스스────
허공에 생겨난 수십 자루의 기검. 서준이 양팔을 크게 휘젓자 수십의 검이 동시에 하나의 초식을 펼쳤다.
천마신검 제2초, 횡소천군(橫掃千軍).
쩌어어억────────!!
눈앞의 풍경에 수십의 선이 새겨졌다. 거대한 지네의 마디마디가 끊겨 체액을 흩뿌린다. 앞을 가로막던 수십의 마인 역시 토막이 되어 흩뿌려졌다.
“고──맙다!”
어느새 달려든 탐마가 품 안의 무언가를 끌어안듯 양팔을 확 당겼다.
탐신이종서지(貪神而終噬之).
신을 탐하여 끝내 먹어치운다. 그 불경한 이름과 같이 탐마의 무공은 섭식 계열의 마공이다.
그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으며,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삼는다.
으적────────!!
거대한 아가리가 물어뜯은 듯 허공에 이빨 자국이 생겨났다. 그것에 기검 절반 가량을 씹어먹힌 서준이 혀를 찼다.
“그래, 차라리 네가 낫지.”
저 칼잡이보다는 이놈이 약하다. 상성으로 봐도 상대할 만하고.
“어디 배가 터질 때까지 처먹어봐라.”
우드득-! 서준의 관자놀이에서 자라난 뿔이 한층 거대해졌다. 그는 일대의 마기를 모조리 통제하에 넣은 채, 명했다.
“쏟아져라.”
피피피핑-! 허공에 생겨나는 무수한 점. 그 하나하나가 전부 역천일월공이다. 서준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그것들이 일제히 탐마를 향해 쏟아져내렸다.
“흐하하…! 잔치로구나!”
탐마가 몸을 활짝 벌렸다. 쩌억-! 그의 전신에서 무수한 입이 돋아났다.
퍼버버벅-!
탐마의 몸에 무수한 구멍이 뚫렸다. 허나 그보다 많은 수의 역천일월공을 씹어삼켰다. 씹어삼킨 역천일월공을 소화시키자 탐마의 몸에 새살이 돋았다.
터엉-!
그리고 그 새살은 역천일월공을 튕겨냈다. 탐신이종서지의 공능으로 내성을 얻은 것이다.
‘어이가 없네.’
뭐 저딴 무공이 다 있단 말인가? 서준은 혀를 차며 역천일월공의 구성을 약간 바꾸었다.
퍼버벅-!
다시금 탐마의 몸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탐마는 약간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활짝 웃었다.
“좋구나!”
그때, 그림자가 자라났다. 땅을 뒤덮은 녹소평의 그림자가 솟구치며 식물의 형상을 취했다.
근데 우리 신록(神鹿)은 스케일이 조금 다르다. 무슨 세계수 같은 거대한 식물 수십 줄기가 자라더니, 탐마를 휘감아 그대로 땅 속에 처박았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흙먼지가 일었다. 서준은 그 충격에 이는 바람을 타고 드높이 떠올랐다.
그리고 녹소평, 그 거대한 사슴의 머리가 세로로 쩍 갈라졌다.
“어…?”
서준의 눈이 부릅 뜨였다. 검마의 검이 기어코 녹소평을 베어낸 것이다.
사슴의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막대한 양의 피가 솟구친다.
그 시뻘건 피는 하늘 높이 치솟더니, 이내 중력에 이끌려 땅으로 떨어졌다.
쏴아아아아────────
천산에 붉은 비가 내린다.
“이, 씨발.”
서준의 전신에서 흉흉한 기운이 솟구쳤다. 그가 당장 달려들려던 찰나, 녹소평의 웃음소리가 하늘을 떨쳐울렸다.
[우후후후…!]
쯔즉-! 머리의 단면에서 자그마한 사슴의 머리가 고개를 쳐든다.
사슴은 붉은 폭우 속에서 하나 남은 뿔을 찬란히 빛냈다.
[미물 주제에 나쁘지 않은 솜씨구나.]
쫘아악-! 신록의 단면에서 무수한 촉수가 솟구친다. 그 촉수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건물보다 크다. 그런 촉수가 수천.
티끌보다도 작은 검마에게 거대한 폭력이 떨어져내렸다.
꽈과과과광────────!!!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서준은 그냥 박수나 쳤다. 짝짝-, 메마른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어메이징 천산.’
이러니 정파나 사파 친구들이 마교라면 학을 떼며 싫어하지. 무슨 괴수 대전이 따로 없다.
‘어라?’
생각해보니 자신도 저런 건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긴, 만마종주씩이나 돼서 저거 하나 못 하는 게 이상하긴 하지. 어찌 보면 저것도 그냥 하나의 개성이다.
오픈 마인드로 관대하게 받아들인 서준은 발밑에서 혼원보를 터뜨렸다.
일단 천산을 벗어나는 게 최우선이다.
[저는 천산을 벗어나지 못해요.]
녹소평의 전음이 서준에게 닿았다.
[여기서 더 돕다가는 아무리 저라도 너무 위험할 수도 있고요.]
[괜찮다. 이미 충분하고도 넘칠 만한 도움을 받았어.]
녹소평이 키득키득 웃었다.
[녹요가 전해달라네요.]
[음?]
[우리 엄마 왕 세다요~.]
서준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콰앙-! 땅 속에 처박힌 탐마가 기어코 그림자 식물들을 모조리 먹어치우며 뛰쳐나왔다.
검마와 신녀 역시 녹소평을 상대하는 것을 그만두고 서준의 뒤를 쫓고 있었다.
[더 길게 얘기는 못 하겠군.]
[네. 다음에 봐요.]
[그러지.]
서준은 전력으로 혼원보를 터뜨리며 전음을 보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요!]
그의 등 뒤로 녹소평의 웃음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우리 마교 친구들은 끈질기기가 춘봉이 쇠고집보다도 더했다.
우리 춘봉이는 오빠가 열여섯 번 정도 말하면 그래도 말은 들어주는데, 이 친구들은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멈춰라!”
검마의 참격이 날아든다. 서준은 허공을 밟아 급히 피해내며 생각했다.
‘사흑련 친구들도 얘네 보면 좋아하겠지?’
머릿속에 대충 지도를 그려본 서준은 방향을 잡았다. 마침 친분이 있는 사흑련의 세력이 하나 있지 않은가.
‘북해빙궁주 얼굴이나 한 번 봐야겠다.’
뒤를 힐끗 돌아본 서준은 신녀가 쏘아낸 불꽃을 황급히 피하며 웃었다.
“하하…! 어디까지 따라올 수 있나 보자꾸나!”
새로 사귄 친구들을 북해빙궁주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