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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에 선 서준을 보며 녹요가 입을 쩍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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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새아빠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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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서준의 머리에 돋은 뿔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두 쌍이 된 자신의 뿔을 살살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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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뿔이 네 개. 새아빠는 뿔이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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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하던 녹요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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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니 내가 새엄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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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녹요가 귀여운 듯 그녀를 훌쩍 안아든 녹소평이 뜨거운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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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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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 녹소평과 눈이 마주친 서준이 걸음을 옮겼다. 가볍게 옮긴 한 걸음에 공간이 접히며 서준이 녹소평의 코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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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역시나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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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만마종주의 싹이 맞았구나, 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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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날카로운 시선을 마주한 녹소평이 마른 입술을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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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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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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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보자마자 알았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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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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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평이 키득키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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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순수한 마기를 대놓고 드러내시니 모를 수가 있나요? 신녀조차 그런 순수한 마기는 가지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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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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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생각을 못 했다. 서준이 미간을 찌푸리자 녹소평이 대뜸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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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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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한 걸음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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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를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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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녀가 당신을 찾고 있어요. 신명이 내려왔거든요. 만마종주의 싹이 천산의 땅을 밟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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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했던 얘기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교에서 서준에게 관심을 가질 사람이 많다는 것과, 정확히 신녀를 지칭하며 신명까지 입에 담는 것은 전혀 얘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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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이지? 이건 배교 행위에 가까워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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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고 있는 것들을 전부 솔직하게 털어놓으라 하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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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참 고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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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헛웃음을 흘리자 녹소평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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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짐승도 은혜를 아는데, 영물인 제가 은혜를 몰라서야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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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한낱 짐승이기에 순수한 은혜를 아는 것이지. 머리가 트이면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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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제가 짐승이라 은혜를 안다고 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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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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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입을 다물자 녹소평이 커다란 눈을 가늘게 접어 눈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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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제가 인간을 상대로 뭘 할 생각은 없다 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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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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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니 딱히 인간은 아니신 것 같은데, 보답으로 저는 어떠세요? 저 나름 능력 있는 사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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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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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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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녹소평이 눈물 훔치는 시늉을 했다. 서준은 그녀에게서 한 발짝 더 물러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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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나를 붙잡아 놓았던 것은 내가 만마종주의 싹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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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정확히는 고민 중이었죠. 일단 녹요를 구해주신 은혜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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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평이 마교에 속한 이상 마라의 신명을 모른 체하는 것은 아무래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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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마종주의 싹을 찾으라는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신녀의 명이다. 신녀의 명쯤이야 녹소평에게 그리 대단한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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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신의 그 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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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평의 손가락이 서준의 가슴 어림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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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경지를 넘을 때 얼핏 알아차렸어요. 인간임에도 내단을 품고 있다고. 아마 제가 그것 때문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던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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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게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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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잖아요? 도대체 왜 이런 느낌이 드는가. 그래서 붙잡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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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평이 키득키득 웃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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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대성공. 제 혜안이 빛을 발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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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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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또한 실력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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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평의 반응에 눈썹을 들썩인 서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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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래서 이제 녹요는 괜찮은 거냐? 아직 청화목과의 연결은 남아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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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없어요. 오히려 청화목의 신통을 받아 더욱 건강하게 자라겠죠. 연결 역시 녹요가 자라면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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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됐다. 괜히 신경 쓰이던 것이 사라졌으니 마음 편히 떠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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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등을 돌리자 녹소평이 그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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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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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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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받기만 하는 건 제 성미에 안 맞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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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제 뿔 하나를 뚝 꺾었다. 서준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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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이 꺾이면 죽는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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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녹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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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평이 꺄르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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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맞는 말이지만, 다 자라게 되면 얘기가 달라요. 물론 다시 자라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사는 데 별 지장은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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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며 녹소평은 제 뿔을 서준에게 넘겨주었다. 서준은 손에 쥔 뿔을 가만히 쓸었다. 부들부들하고 조금 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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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건 그 거대한 사슴의 상단전 역할을 하는 뿔이다. 그 내부에 응축된 마기는 서준조차 섬뜩함을 느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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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왜 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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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여 마시면 몸에 좋아요. 특히 여인이 섭취하게 되면 피부와 자궁에 좋답니다. 물론 영약으로서도 중원 제일을 자부할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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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은 몰라도 춘봉이랑 수아 누나 주면 되겠다. 안에 깃든 마기를 순수한 기로 치환한다면 대환단도 따위로 만들 수준의 영약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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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고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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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요. 별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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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짐 속에 녹소평의 뿔을 넣어둔 뒤 녹요의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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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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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거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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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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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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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요가 짧은 팔을 휘적휘적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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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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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평 역시 녹요를 따라하듯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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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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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픽 웃으며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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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면 한 번쯤 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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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야산을 나선 서준은 며칠간 경공을 펼치며 느긋하게 이동했다. 화마경을 이루며 돋아난 뿔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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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화를 하던 시절에는 몰랐는데, 화마경에 이르고 나니 뿔을 몸 속으로 집어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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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자를 필요가 없게 되어 아주 만족스럽다. 특히 더이상 땜빵이 날 일이 없다는 점이 아주아주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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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뿔이 있던 자리를 매만지며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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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녀가 내가 온 걸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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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마종주의 싹. 이름만 들어도 마교와 관련이 있겠구나 하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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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번역하면 모든 마의 위에 서는 자라는 뜻 아닌가. 자신이 신녀라도 찾으려 들 것 같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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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까 어이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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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서 봤던 그 여인. 아마도 그년이 자신을 무림으로 보낸 것으로 추측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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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섬서 언저리에 떨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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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마종주 같은, 뭔가 있어 보이는 칭호까지 붙은 레어 캐릭터면 보통 자기 집 앞마당에 떨구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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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년이 정파 사람은 아닐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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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 사람이면 재미는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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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치면 그 머리통을 여섯 번쯤 깨주리라. 그래도 안 죽으면 몇 번 더 부숴보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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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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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잠시 제자리에 멈춰선 채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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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돌아가는 게 안전하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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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에서 자신을 찾는다지 않나. 자칫 잘못하면 극마 여럿에게 쫓기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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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아예 천마가 찾아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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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어느 정도의 위험을 즐긴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살에 취미를 붙인 적은 없었다. 솔직히 천마는 좀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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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읍…. 돌아가는 게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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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아쉽다. 모처럼 멀리 나왔는데 별걸 하지도 않고 돌아가려니 뭔가 손해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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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천산을 떠나려는 걸 알아챘을까? 때마침 호객꾼 한 명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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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두두-! 투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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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탄 사내였다. 말을 탄 무림인은 처음 보는 까닭에 서준이 그를 빤히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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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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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사람의 내공이 이어져있다. 그 덕분에 말의 속도가 비상식적으로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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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다가온 사내가 서준의 앞에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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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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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륵-! 말이 투레질을 하며 서준을 빤히 바라보았다. 서준 역시 말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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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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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뱉은 침을 피해낸 서준이 황당한 표정으로 말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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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르장머리가 없는 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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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이 조금 야성미가 넘치는 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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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 말 이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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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 반려라 할 수 있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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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라고? 서준은 입술을 꽉 오므렸다. 덕분에 말박이냐고 묻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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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그런 서준을 이상하게 쳐다보다 말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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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 끈에 묶어둔 도를 풀러 품에 안은 사내가 서준을 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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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자전괴마라는 놈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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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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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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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페도 새끼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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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도(覇道)? 패도라는 말이 어울리는 친구는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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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묘한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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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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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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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참 안 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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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때가 됐으니 간 거지. 퍽 오래 살았으니 누굴 원망할 일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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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윽-, 사내가 도를 허리춤에 묶었다. 그는 왼손으로 죽립을 들어올려 날카로운 눈을 드러내더니, 이내 왼발을 살짝 뒤로 빼며 기수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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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친구 된 입장으로서 원수 정도는 갚아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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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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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상대가 안 된다. 저 친구는 모르겠지만 자신은 이미 화마경에 올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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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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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가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그 역시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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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읽히지 않는 상대의 경지. 아마 초절정의 극에 다다랐을 듯싶은데, 그렇다면 자신이 극마에 오르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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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있었다. 스스로의 재능을 믿었다. 이 싸움에서, 자신은 극마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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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가 도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손에 착 감겨오는 것이 오늘은 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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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유도객 환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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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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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칵-, 환치성이 도를 엄지로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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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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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 모래바람이 불었다. 동시에 환치성의 도가 모습을 드러내며 빛살을 갈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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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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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 이른 쾌도(快刀). 한 발짝 뒤로 물러난 서준의 목에 옅은 바람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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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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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달려들었다. 아니, 그러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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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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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치성이 도를 다시금 도집에 넣었다. 달려들려던 서준은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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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뭔 헛짓거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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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굳이 뽑았던 도를 다시 집어넣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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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 시의 마찰력을 운동에너지로 전환한다는, 희대의 사이비 물리법칙을 발견하지 않는 이상 그저 겉멋에 지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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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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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천산이구나? 역리(逆理)란 곧 이치를 거스르는 것. 마찰력을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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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건 맞는데, 원래 역리라는 게 좀 그렇다. ‘아무튼 내 말이 맞는데?’ 하는 무공이라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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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군. 그러면 이건 어쩔 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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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양손으로 역천일월공을 쏘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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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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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치성의 도가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냈다. 번쩍-! 역천일월공과 맞부딪힌 환치성의 신형이 뒤로 주욱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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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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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픽 웃으며 다시 한 번 양손에 각각 역천일월공을 장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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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거리에서 때리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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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니가 와’ 전법이라고도 한다. 거리 조절만 잘 해주면 상대가 좋아 죽으려 드는 웰메이드 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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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대로 조금 놀아주면 2페이즈든 극마든 뭐라도 튀어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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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눈앞에서 극마에 오르는 걸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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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극마에 발을 들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허나 눈앞에서 보여준다면 얘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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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화마경에 오르긴 했지만, 화마경은 상당히 특이한 경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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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경지. 직업이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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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회에 경지 컬렉터나 한 번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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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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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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