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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든 것은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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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평은 서준을 오늘 처음 봤다. 서준의 능력이 어떠한지 알 방법이 없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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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극마의 경지에 오른 만큼 기감을 통해 대략적인 정보쯤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느닷없이 청화목이 있는 곳으로 데려올 만큼의 정보가 있을 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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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탓에 서준은 청화목을 어찌 하는 대신 녹소평을 빤히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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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게 뭘 바라기에 이곳에 데려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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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청화목이 관심이 있으신 것 같길래 데려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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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신물이라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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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그랬죠. 지금에 와서는 그냥 조금 커다란 나무일 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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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자 녹소평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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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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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평의 녹빛 눈이 서준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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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신기해서요. 왠지 모를 묘한 느낌이 들어요. 친숙함이라고 해야 할지…. 이유 모를 동질감 같은 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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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질감? 서준의 머릿속에 두 단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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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단과 만마종주의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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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는 녹소평이 자신에게 동질감을 느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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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녹소평을 빤히 바라보는 사이, 짧은 걸음으로 청화목에 다가간 녹요가 나무 표면을 콩콩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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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리가 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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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평이 고개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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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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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찡대는 소리다요? 나무가 괴로워하고 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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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요가 청화목에 귀를 가져다대더니 양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얹은 채 눈가를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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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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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일순, 두둑-! 녹요의 머리에 자그마한 나뭇가지가 돋았다. 그녀의 자그마한 뿔 옆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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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뿔이 두 쌍이 되어버린 녹요가 입을 쩍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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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요가 사슴사슴이 되어버렸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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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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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평이 청화목을 올려다보았다. 온화하던 그녀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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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지기 짝이 없네요. 감히 제 눈앞에서 이따위 수작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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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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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질문에 녹소평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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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목은 자아가 있어요. 아무래도 저 풀떼기가 녹요를 선택해 신통을 넘겨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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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을? 그러면 좋은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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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청화목과 녹요 사이에 연결이 생긴 거예요. 이대로 청화목이 썩어 문드러지기라도 한다면 녹요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진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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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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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고래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섬뜩한 진동이 공간을 울렸다. 녹소평의 전신에서 일어난 마기의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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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나쁘네요.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제 눈앞에서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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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일어난 그녀의 기운이 불길처럼 타오른다. 막대한 장작을 불사르며 몸집을 불리는 거대한 화염과 같이, 거무스름한 마기가 산보다 거대한 사슴의 형상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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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이대로 청화목을 부수면 녹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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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지금이 적기예요. 연결이 더 강해지기 전에 청화목을 부수면 녹요도 며칠 앓다 말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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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평의 화려한 뿔 사이에 마기가 뭉쳤다. 주먹만 한 크기의 구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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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은 태산과 비견되는 양의 마기가 뭉친 힘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과장 하나 없이 산 서너 개 정도는 거뜬하게 날려버릴 수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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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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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터무니없는 기운이 청화목을 향해 쏘아졌다. 찰나의 시간. 서준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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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아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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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익을 따지려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이곳에는 자신이 지켜야할 이들이 없다. 마음 가는 대로 하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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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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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발밑에서 작은 폭발이 일었다. 약하게 펼친 혼원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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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살처럼 이동한 서준의 신형이 청화목과 녹소평 사이를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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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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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평이 크게 놀라 힘을 거두려 들었다. 하지만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쏘아낸 힘을 아주 거두는 것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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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기술보다는 막대한 힘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녹소평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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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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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평의 동공이 확장됐다. 이대로 서준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녀의 입장이 아주 곤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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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녹소평이라도 마라의 진노를 감당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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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초절정 수준에서 막아내기 불가능에 가까운 일격이다. 전투 상황이라면 피하거나 흘려내는 것은 가능하겠으나, 모습을 보아하니 아예 막아낼 생각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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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다치는 정도라면 어떻게든 낫게 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여러 압박이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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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평의 표정에 아연함이 깃드는 순간, 서준이 검을 뽑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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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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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도 꽤 위협적인 일격이다. 맞는다고 크게 다치진 않겠지만, 거대한 압박감에 온몸이 저릿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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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서준의 입꼬리는 위로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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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의 안위가 위협받을수록, 목숨이 위험할수록, 강한 적과 마주할수록, 그의 마음은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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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 떨어진 뒤 얻은 기이한 취향이었다. 흥분되어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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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과 흥분. 오래 부대낀 아내의 살내음이 이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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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검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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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중 인(人). 인은 곧 사람이요, 정기신에 대입한다면 기(氣)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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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이 붕 떠오르며 드높은 곳에 다다른다. 기신경에 얕게 발을 담군 서준이 숨을 들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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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걷는 길. 아니지. 신선으로 향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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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과 같은 재앙 앞에서 한낱 인간은 티끌과 같아 무력하다. 그렇기에 인간은 더욱 높은 곳으로 향하고자 하는 열망을 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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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만 한 몸집으로,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재앙에 맞서기 위해 검을 들고 수선의 길을 걷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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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얗게 비운 머릿속. 환한 빛이 눈부시게 터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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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가느다란 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검을 내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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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한 길을 깨부수며 곧게 나아간 검이 패도(覇道)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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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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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신검 제3초, 선인지로(仙人之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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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저릿한 감각과 함께 뻗어나간 검이 길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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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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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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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평이 마른침을 삼켰다. 먼 거리에서 뻗어진 검. 허나 녹소평은 코앞에서 멈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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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빛이 어른거리는 그녀의 눈이 서준의 모습을 담았다. 스러지는 녹소평의 일격을, 흡성대법의 묘리로 그 여파조차 흡수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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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활짝 피어난 녹소평의 야릇한 미소를 마주하며 청화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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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해결해주지.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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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서준의 시선이 녹소평을 강하게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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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고 있는 것들은 전부 솔직하게 털어놔야 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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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청화목에 손을 얹자마자 느낀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마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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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목이 거름망의 역할을 하는 만큼 불순물 역시 상당한 양이 쌓여있었으나,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쌓인 마기의 양이 터무니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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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대하던 녹소평의 마기보다도 몇 배는 많은 수준이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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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터지기라도 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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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무언가 대책이 있긴 할 테지만, 만약 청화목 내부의 마기가 터져나왔다면 천산의 마기 농도에 유의미한 변화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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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가까이 살던 녹요는 무언가 영향을 받았어도 크게 받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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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녀의 모친이 극마의 영물이라고는 하나, 어릴 때부터 짙은 마기에 노출되어 좋을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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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도 뱀독에 중독되지 않는가. 그와 비슷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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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싹싹한 마기에게 조금 폭력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은 서준조차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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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녹요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꼬맹이다. 심지어 조금 꼴받기까지 한다.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줄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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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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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모르게 소싯적 금춘봉을 떠올리게 하는 만큼 괜히 신경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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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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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혀를 차며 청화목 내부의 마기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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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싹한 마기는 과연, 서준이 의지를 세우자 그의 뜻을 받들고자 귀를 쫑긋 세운 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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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가 될 만한 것은 청화목의 의지 정도. 허나 청화목 역시 스스로의 정화를 원하는 듯 순순히 서준의 의지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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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반전과 크게 다를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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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기를 순수한 상태의 기로 환원시키면 그만이다. 오히려 아예 반대되는 성질로 반전시키는 음양반전보다 간단하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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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 문제는 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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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손을 얹은 곳을 시작으로 천천히 청화목의 마기를 순수한 상태의 기로 치환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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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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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마기가 정화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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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는 양의 마기지만, 서준의 기에 대한 재능은 그것을 가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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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면 반나절 정도 걸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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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집중하던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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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르륵-! 거대한 마기가 서준의 몸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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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과 연결된 청화목의 막대한 마기. 그것이 서준의 몸을 중계기 삼아 순수한 기로 치환되고, 그 과정에서 그의 몸을 마기로 물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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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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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바는 아니다. 하지만 해가 되는 상황 역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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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잠자코 쏟아져들어오는 마기의 물결을 받아들이며 청화목의 정화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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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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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기에 물든 몸이 마로 화한다. 내단이 깨어지지 않았음에도 그의 머리에서 뿔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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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에서 팔이 돋아나지는 않았다. 여섯 쌍의 팔은 정기신의 불균형으로 인해 생겨난 것. 균형을 이루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팔이 돋아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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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눈을 떴다. 그는 스스로의 모습을 아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 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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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정화되며 푸름을 되찾는 청화목과, 그에 대비되듯 마에 물들어가는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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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는 순간 체내에서 꿈틀대던 역천계의 마공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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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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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가 차오른다. 단순히 운기 방향만을 뒤바꾸었던 혼원신공의 본질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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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을 뿌리 삼아 거꾸로 자라난 나무는 굳건한 기둥이 되었고, 땅을 떠받치는 무수한 가지들이 꽃을 피워내며 탁하게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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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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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목에서 손을 떼었다. 반나절이 걸리리라 예상했던 청화목의 정화가 한순간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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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감에 영혼이 환희한다. 그는 넘쳐나는 마기를 추스르며 드높이 걸린 하늘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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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 언어의 모습을 취해 입밖으로 터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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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군림(三界皆苦 我當君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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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 삼계가 고통 속에 있으니 내가 마땅히 그 위에 군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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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해낸 진언에 하늘이 진동한다. 만마종주의 뜻을 받든 천산의 마기가 하늘을 물들이고, 그 위에 선 서준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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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魔)가 내 발밑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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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마에는 닿지 못했다. 아니, 구태여 발을 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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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신을 마로 물들여 합칠 이유를 찾지 못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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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하여 스스로의 존재 자체로 마를 이루었으니, 이를 화마경(化魔境)이라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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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서준은 경지를 이루며 자연스레 형태를 취한 마공에 새로운 이름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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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이 비로소 천마신공(天魔神功)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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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마종주의 싹이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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