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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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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든 것은 의문이었다.

녹소평은 서준을 오늘 처음 봤다. 서준의 능력이 어떠한지 알 방법이 없다는 소리다.

물론 극마의 경지에 오른 만큼 기감을 통해 대략적인 정보쯤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느닷없이 청화목이 있는 곳으로 데려올 만큼의 정보가 있을 턱이 없다.

그런 탓에 서준은 청화목을 어찌 하는 대신 녹소평을 빤히 쳐다봤다.

“그래서, 내게 뭘 바라기에 이곳에 데려온 거지?”

“당신이 청화목이 관심이 있으신 것 같길래 데려온 거죠?”

“나름 신물이라 하지 않았나?”

“전에는 그랬죠. 지금에 와서는 그냥 조금 커다란 나무일 뿐이랍니다.”

서준이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자 녹소평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녹소평의 녹빛 눈이 서준을 꿰뚫었다.

“그냥 신기해서요. 왠지 모를 묘한 느낌이 들어요. 친숙함이라고 해야 할지…. 이유 모를 동질감 같은 게 느껴지네요.”

동질감? 서준의 머릿속에 두 단어가 떠올랐다.

내단과 만마종주의 싹.

그 외에는 녹소평이 자신에게 동질감을 느낄 이유가 없다.

서준이 녹소평을 빤히 바라보는 사이, 짧은 걸음으로 청화목에 다가간 녹요가 나무 표면을 콩콩 두드렸다.

“이상한 소리가 난다요?”

녹소평이 고개를 기울였다.

“이상한 소리라니?”

“찡찡대는 소리다요? 나무가 괴로워하고 있다요.”

녹요가 청화목에 귀를 가져다대더니 양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얹은 채 눈가를 찌푸렸다.

“으음…?”

그러다 일순, 두둑-! 녹요의 머리에 자그마한 나뭇가지가 돋았다. 그녀의 자그마한 뿔 옆자리다.

한순간에 뿔이 두 쌍이 되어버린 녹요가 입을 쩍 벌렸다.

“녹요가 사슴사슴이 되어버렸다요…?”

“이건…?”

녹소평이 청화목을 올려다보았다. 온화하던 그녀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건방지기 짝이 없네요. 감히 제 눈앞에서 이따위 수작질을….”

“무슨 일이지?”

서준의 질문에 녹소평이 답했다.

“청화목은 자아가 있어요. 아무래도 저 풀떼기가 녹요를 선택해 신통을 넘겨준 것 같은데….”

“신통을? 그러면 좋은 일 아닌가?”

“아뇨. 청화목과 녹요 사이에 연결이 생긴 거예요. 이대로 청화목이 썩어 문드러지기라도 한다면 녹요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진 않겠죠.”

우우우──────────

마치 고래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섬뜩한 진동이 공간을 울렸다. 녹소평의 전신에서 일어난 마기의 영향이다.

“기분이 나쁘네요.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제 눈앞에서 감히.”

크게 일어난 그녀의 기운이 불길처럼 타오른다. 막대한 장작을 불사르며 몸집을 불리는 거대한 화염과 같이, 거무스름한 마기가 산보다 거대한 사슴의 형상을 이루었다.

“잠깐. 이대로 청화목을 부수면 녹요는?”

“오히려 지금이 적기예요. 연결이 더 강해지기 전에 청화목을 부수면 녹요도 며칠 앓다 말겠죠.”

녹소평의 화려한 뿔 사이에 마기가 뭉쳤다. 주먹만 한 크기의 구체다.

하지만 그것은 태산과 비견되는 양의 마기가 뭉친 힘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과장 하나 없이 산 서너 개 정도는 거뜬하게 날려버릴 수 있을 터.

콰아아아아────────!!

그 터무니없는 기운이 청화목을 향해 쏘아졌다. 찰나의 시간. 서준은 고민했다.

‘막아야 되나?

손익을 따지려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이곳에는 자신이 지켜야할 이들이 없다. 마음 가는 대로 하면 그만.

콰앙-!

서준의 발밑에서 작은 폭발이 일었다. 약하게 펼친 혼원보다.

빛살처럼 이동한 서준의 신형이 청화목과 녹소평 사이를 가로막았다.

“무슨…!?”

녹소평이 크게 놀라 힘을 거두려 들었다. 하지만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쏘아낸 힘을 아주 거두는 것은 불가능했다.

섬세한 기술보다는 막대한 힘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녹소평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안 돼…!

녹소평의 동공이 확장됐다. 이대로 서준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녀의 입장이 아주 곤란해진다.

아무리 녹소평이라도 마라의 진노를 감당하기는 힘들다.

이건 초절정 수준에서 막아내기 불가능에 가까운 일격이다. 전투 상황이라면 피하거나 흘려내는 것은 가능하겠으나, 모습을 보아하니 아예 막아낼 생각인 것 같은데….

크게 다치는 정도라면 어떻게든 낫게 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여러 압박이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녹소평의 표정에 아연함이 깃드는 순간, 서준이 검을 뽑아들었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자신에게도 꽤 위협적인 일격이다. 맞는다고 크게 다치진 않겠지만, 거대한 압박감에 온몸이 저릿해진다.

그럴수록 서준의 입꼬리는 위로 치솟았다.

일신의 안위가 위협받을수록, 목숨이 위험할수록, 강한 적과 마주할수록, 그의 마음은 편안해진다.

무림에 떨어진 뒤 얻은 기이한 취향이었다. 흥분되어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다.

편안함과 흥분. 오래 부대낀 아내의 살내음이 이러할까?

서준은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검을 겨눴다.

천지인 중 인(人). 인은 곧 사람이요, 정기신에 대입한다면 기(氣)와 같다.

감각이 붕 떠오르며 드높은 곳에 다다른다. 기신경에 얕게 발을 담군 서준이 숨을 들이쉬었다.

‘신선이 걷는 길. 아니지. 신선으로 향하는 길?

태산과 같은 재앙 앞에서 한낱 인간은 티끌과 같아 무력하다. 그렇기에 인간은 더욱 높은 곳으로 향하고자 하는 열망을 버리지 못했다.

티끌만 한 몸집으로,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재앙에 맞서기 위해 검을 들고 수선의 길을 걷나니.

새하얗게 비운 머릿속. 환한 빛이 눈부시게 터져나온다.

서준은 가느다란 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검을 내찔렀다.

구불구불한 길을 깨부수며 곧게 나아간 검이 패도(覇道)를 그린다.

‘이것이 나의 길.

천마신검 제3초, 선인지로(仙人之路).

온몸이 저릿한 감각과 함께 뻗어나간 검이 길을 밝혔다.

화아아악─────────!!

“어머….”

녹소평이 마른침을 삼켰다. 먼 거리에서 뻗어진 검. 허나 녹소평은 코앞에서 멈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묘한 빛이 어른거리는 그녀의 눈이 서준의 모습을 담았다. 스러지는 녹소평의 일격을, 흡성대법의 묘리로 그 여파조차 흡수해냈다.

서준은 활짝 피어난 녹소평의 야릇한 미소를 마주하며 청화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건 내가 해결해주지. 대신.”

천서준의 시선이 녹소평을 강하게 압박했다.

“숨기고 있는 것들은 전부 솔직하게 털어놔야 할 것이야.”

서준이 청화목에 손을 얹자마자 느낀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마기였다.

청화목이 거름망의 역할을 하는 만큼 불순물 역시 상당한 양이 쌓여있었으나,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쌓인 마기의 양이 터무니없이 많다.

그 거대하던 녹소평의 마기보다도 몇 배는 많은 수준이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게 터지기라도 했다면….

아마 무언가 대책이 있긴 할 테지만, 만약 청화목 내부의 마기가 터져나왔다면 천산의 마기 농도에 유의미한 변화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가까이 살던 녹요는 무언가 영향을 받았어도 크게 받았겠지.

아무리 그녀의 모친이 극마의 영물이라고는 하나, 어릴 때부터 짙은 마기에 노출되어 좋을 건 없다.

뱀도 뱀독에 중독되지 않는가. 그와 비슷한 이치다.

우리 싹싹한 마기에게 조금 폭력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은 서준조차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녹요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꼬맹이다. 심지어 조금 꼴받기까지 한다.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줄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소싯적 금춘봉을 떠올리게 하는 만큼 괜히 신경이 쓰였다.

“쯧.”

서준은 혀를 차며 청화목 내부의 마기에 집중했다.

싹싹한 마기는 과연, 서준이 의지를 세우자 그의 뜻을 받들고자 귀를 쫑긋 세운 채 집중했다.

방해가 될 만한 것은 청화목의 의지 정도. 허나 청화목 역시 스스로의 정화를 원하는 듯 순순히 서준의 의지를 받아들였다.

‘음양반전과 크게 다를 건 없다.

마기를 순수한 상태의 기로 환원시키면 그만이다. 오히려 아예 반대되는 성질로 반전시키는 음양반전보다 간단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문제는 그 양.

서준은 손을 얹은 곳을 시작으로 천천히 청화목의 마기를 순수한 상태의 기로 치환해나갔다.

스아아아아──────────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마기가 정화되기 시작한다.

터무니없는 양의 마기지만, 서준의 기에 대한 재능은 그것을 가능케 했다.

‘이대로면 반나절 정도 걸리려나.

서준이 집중하던 그때였다.

콰르륵-! 거대한 마기가 서준의 몸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서준과 연결된 청화목의 막대한 마기. 그것이 서준의 몸을 중계기 삼아 순수한 기로 치환되고, 그 과정에서 그의 몸을 마기로 물들이는 것이다.

‘이건….

의도한 바는 아니다. 하지만 해가 되는 상황 역시 아니다.

서준은 잠자코 쏟아져들어오는 마기의 물결을 받아들이며 청화목의 정화를 이어갔다.

우두둑-!

마기에 물든 몸이 마로 화한다. 내단이 깨어지지 않았음에도 그의 머리에서 뿔이 돋았다.

옆구리에서 팔이 돋아나지는 않았다. 여섯 쌍의 팔은 정기신의 불균형으로 인해 생겨난 것. 균형을 이루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팔이 돋아날 이유가 없다.

서준은 눈을 떴다. 그는 스스로의 모습을 아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 관조했다.

빠르게 정화되며 푸름을 되찾는 청화목과, 그에 대비되듯 마에 물들어가는 자신.

깨닫는 순간 체내에서 꿈틀대던 역천계의 마공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

환희가 차오른다. 단순히 운기 방향만을 뒤바꾸었던 혼원신공의 본질이 뒤틀린다.

역천을 뿌리 삼아 거꾸로 자라난 나무는 굳건한 기둥이 되었고, 땅을 떠받치는 무수한 가지들이 꽃을 피워내며 탁하게 물든다.

스윽-

청화목에서 손을 떼었다. 반나절이 걸리리라 예상했던 청화목의 정화가 한순간에 끝났다.

전능감에 영혼이 환희한다. 그는 넘쳐나는 마기를 추스르며 드높이 걸린 하늘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깨달음이 언어의 모습을 취해 입밖으로 터져나온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군림(三界皆苦 我當君臨).”

이 세상에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 삼계가 고통 속에 있으니 내가 마땅히 그 위에 군림하리라.

토해낸 진언에 하늘이 진동한다. 만마종주의 뜻을 받든 천산의 마기가 하늘을 물들이고, 그 위에 선 서준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온 마(魔)가 내 발밑에 있구나.”

극마에는 닿지 못했다. 아니, 구태여 발을 들이지 않았다.

정기신을 마로 물들여 합칠 이유를 찾지 못한 까닭이다.

대신하여 스스로의 존재 자체로 마를 이루었으니, 이를 화마경(化魔境)이라 이름 붙였다.

또한 서준은 경지를 이루며 자연스레 형태를 취한 마공에 새로운 이름을 건넸다.

그 이름이 비로소 천마신공(天魔神功)이라.

만마종주의 싹이 꽃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