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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혹시…. 실례지만 교미는 어떻게 하나? 크기 차이가 말이 안 되는데.”
잠시 침묵하던 사슴이 작게 웃었다. 참고로 사슴 기준 작은 웃음소리다.
우르릉-!
서준은 고막을 울리는 웃음소리에 귀를 틀어막았다. 순간 고막이 터지는 줄 알았다.
[통성명도 하기 전에 그런 것이 궁금하신가요?]
“솔직히 누구나 궁금할 거다.”
다시 한 번 작게(사슴 기준) 웃은 사슴이 번쩍 눈을 빛냈다.
‘엇. 좆됐나?’
솔직히 화내도 할 말이 없긴 했다. 어느 정도 사회성이 생긴 서준은 이제 무례를 알았다.
이내 사슴의 몸에서 거대한 마기가 일었다. 태산만 한 몸뚱어리에서 이는 마기다. 그 터무니없는 양은 아무리 서준이라 해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거대화 같은 거나 연구해볼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화아악-! 눈부신 빛이 일었다. 서준은 눈을 부릅 뜬 채 그 빛을 꿰뚫어보았다.
빛이 걷힌 자리. 그곳에는 평범한 크기의 사슴 한 마리가 고고한 자태로 서있었다.
[크기야 이런 식으로 조절하면 되지요.]
“변이 계열의 마공이로군.”
[그렇답니다.]
사슴이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슴도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서준은 그녀를 유심히 살폈다.
‘혹시 이게 본모습일까 했는데.’
보아하니 아까의 그 거대한 모습이 본모습인 듯싶다. 오히려 지금이 모종의 수단으로 몸의 크기를 줄인 형태였다.
하지만 이렇게 되니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당연하지만 사슴 간의 교미에 대해 흥미가 생긴 건 아니다.
“아까 녹요의 아비라는 자를 보았지.”
[예. 참한 수컷이지요. 뿔도 우람하니 괜찮고.]
혹시 저거 성희롱인가? 고민하던 서준이 물었다.
“아비도 사슴, 어미도 사슴. 그런데 어찌 녹요는 사슴 뿔이 달린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가?”
[제가 사슴이 아닌 까닭이지요.]
그녀의 말에 녹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마는 왕 큰 사슴이다요?”
[녹요야, 너도 진실을 알 때가 되었구나.]
느닷없이 출생의 비밀이 튀어나오자 녹요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설마 녹요는 사슴이 아니다요?”
[아니, 사슴이 맞단다.]
“휴. 깜짝 놀랐다요.”
[하지만 사슴이 아니기도 하지.]
녹요가 입을 쩍 벌렸다.
사슴은 작게 웃더니 다시 한 번 마기를 일으켰다. 사슴의 몸이 옅은 빛에 감싸이며 그 모습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변화를 마친 사슴은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대신 녹요와 같이 머리에 커다란 뿔이 달렸다.
서준은 슬쩍 녹요의 반응을 살폈다. 녹요가 멀뚱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하냐요?”
안 놀라나? 엄마가 사실 사슴이 아니었는데?
“우리 엄마는 원래 가끔 저 모습도 한다요?”
뭐지? 서준과 녹요가 의아한 눈으로 녹요의 모친을 바라보자 그녀가 키득키득 웃었다.
“귀엽죠? 요즘 저는 녹요 놀리는 맛으로 산답니다.”
서준은 깨달았다. 역시 극마. 아주 정신이 멀쩡하지는 않은 듯하다. 출생의 비밀을 한낱 농담거리로 소비하다니.
“이제 왜 녹요가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났는지 아시겠죠?”
…전혀 모르겠는데.
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 그 모습은 둔갑한 모습이 아닌가.”
“둔갑과는 달라요. 저는 영성을 깨닫고 영물이 된 뒤로 사슴의 모습과 인간의 모습을 모두 갖게 되었으니까요. 둘 모두 본모습인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렇다면….”
“네. 이 모습으로 녹요를 배었기에 녹요가 날 때부터 저런 모습을 취한 것이랍니다.”
여기까지 알고 싶은 건 아니었다. 서준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녹요의 모친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식들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녹요의 형제자매들 중에는 저렇게 녹인의 모습을 취한 아이도 있고, 사슴의 모습을 취한 아이도 있답니다. 물론 나이가 차면 어느 쪽이든 오갈 수 있기야 하지만 보통 태어날 때의 모습이 가장 편한 것 같더라고요.”
“그렇…, 군.”
여기서 더 깊은 대화를 나눴다가는 사슴과 인간 사이의 교미법 같은─ 전혀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주제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서준은 머리가 더 아파지기 전에 눈을 부릅 뜨고 녹요의 모친을 살폈다.
그녀의 명치 어림, 내단을 중심으로 강하게 이어진 하단전과 상단전(놀랍게도 뿔이 상단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이 느껴진다.
검신이 말하길 극마란 정기신을 마로 물들여 하나로 묶어내는 것.
의식하고 나니 과연 그녀의 체내 일체가 마기로 물들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그녀 자체가 인간이 아닌 까닭인지 서준 자신처럼 내단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꽤나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게 다라고?’
물론 그녀의 기세가 대단하긴 하다. 하지만 극마라는 경지의 위력 ─ 화경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되는 ─ 을 생각하면 너무 간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 역시 들었다.
저게 전부라면 서준은 옛저녁에 극마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냥 슥 한 번 해보면 될 것 같은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아니겠지.’
무언가 숨겨진 요소가 있으리라. 괜히 잘못 시도했다가 야생마인들처럼 2페이즈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은 조금 더 단서를 얻는 편이 좋을 터.
서준은 뻐근한 눈가를 주무르며 손을 내저었다.
“아무튼 그러면 나는 이만 가보지.”
녹요를 데려다줬으니 이제 다시 극마 탐구 시간이다. 하지만 사슴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불쑥 다가온 그녀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그나저나 당신. 천산에서 본 적이 없는 얼굴이네요.”
“이 넓은 천산의 마인을 전부 아는가?”
“그건 아니지만 이 정도 수준의 마인을 모르기는 힘들죠.”
그녀가 생긋 웃었다.
“제가 제 소개를 했던가요?”
“소개는 아직이지.”
“그런데 소개도 하기 전에 떠나려 하다니요.”
“가출했던 아이만 데려다 줄 생각이었다. 굳이 통성명까지 할 필요는 없지.”
“저는 녹소평이라 한답니다.”
“…그렇군.”
“마교의 칠마(七魔) 중 일인이기도 하지요.”
칠마라 함은 마교의 일곱 대마두를 뜻한다. 천마를 제외하고 가장 강한 일곱 명의 마인들.
녹소평의 녹빛 눈이 서준을 꿰뚫었다.
“요즘 교가 시끄러워요. 새로이 이름을 날리는 고수를 찾으려 애를 쓰고 있죠.”
“…그래서?”
녹소평이 묘한 표정으로 키득키득 웃었다.
“이름.”
“……?”
“저는 이름 알려드렸는데.”
“…천서준이다.”
“흐응…. 천서준.”
그녀의 입술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새빨간 혀가 느긋하게 아랫입술을 쓸었다.
“다시 소개할게요. 저는 수마(獸魔) 녹소평. 마교의 칠마이자, 녹야산(鹿野山)의 주인….”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교미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던데. 저는 당신의 씨앗에 관심이 많거든요.”
좆됐다! 서준이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녹요가 그런 서준을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새 아빠인 거다요?”
“아니다.”
“…아쉽다요.”
“…….”
서준이 진심으로 기겁하자 녹소평이 깔깔 웃었다.
“농담이에요. 저도 인간을 상대로 뭘 할 생각은 없답니다.”
녹소평은 웃음기를 머금은 채 속삭이듯 작게 말했다.
“그래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아마 당신께 관심을 가질 사람이 꽤 많을 것 같거든요. 특히 교에서.”
“칠마가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건가? 교의 일 같은데.”
“안 될 것 뭐 있나요? 제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감히 토를 달 사람은 없답니다.”
녹소평이 옅게 웃으며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가겠다는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죠. 차 한 잔 대접하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지만요.”
“그래, 그러면….”
우르릉────────!!
이번에는 또 뭐야? 서준이 황당한 표정으로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자, 그곳에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런데 이게 조금 많이 크다. 꽤 멀리 있는 것 같은데, 얼핏 보기에도 녹소평의 본모습과 크기가 비슷해 보인다.
대충 어지간한 산보다 크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 나무가 검은 기운에 이글이글 타오르며 불길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지금까지 저걸 못 봤다고?’
녹소평의 존재감에 가려진 탓이었을까? 서준이 가만히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고 있자 녹소평이 슬쩍 다가왔다.
“청화목(淸化木)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청화목? 맑다[淸]는 말과는 영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본디 거름망은 오래 쓰면 탁해지기 마련이죠. 이제 수명이 다한 것이랍니다.”
“그렇군.”
마기를 정화해주는 나무라도 되는 모양이다. 확실히 어린아이나 사슴들에게 마기가 그리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겠지.
대충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떠나려는 찰나, 녹소평이 흑흑 우는 시늉을 했다.
“청화목이 무너지면 우리 귀여운 녹요는 결국 마기에 물들게 되겠죠. 사회의 때에 찌든 어른이 되고 마는 거예요.”
“하아…. 새로 하나 심으면 되지 않나.”
“저런 나무가 어디 흔하겠어요? 저 청화목도 제가 어릴 때부터 봐온 아주 오래된 나무랍니다.”
녹소평은 이제 아주 주저앉아 손에 얼굴을 묻었다. 흑흑 새어나오는 작위적인 울음소리가 가관이다.
“우리 불쌍한 녹요. 새아빠에게 버림 받고 마기에까지 물든 녹요는 아주 엇나가서 불량한 아이가 되고 말겠죠.”
“누구 멋대로 새아빠라는 거냐. 헛소리 말고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해라.”
“어머. 그래도 녹요 얘기는 조금 먹히는 모양이네요. 혹시 녹요가 취향이신가요?”
“단단히 미쳤군.”
“어머. 불쌍한 우리 녹요. 새아빠는 우리 녹요가 싫다는구나.”
“충격이다요.”
녹요가 쩌억 하품하며 대꾸했다.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서준이 묘한 표정으로 녹소평을 쳐다봤다.
“그래서, 정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삐죽 입꼬리를 올린 녹소평의 뿔이 우웅 작게 울렸다. 동시에 일대의 마기가 요동치며 땅 속에서 새카맣게 물든 식물의 줄기가 자라났다.
“타세요. 모셔다 드릴게요.”
도대체 뭐가 하고 싶은 것인지 궁금해서라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식물의 줄기는 땅을 헤엄치듯 나아갔다. 꽤나 신기한 모습이다.
‘이건 주술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데.’
서준이 줄기를 만지작대자 가까이 다가온 녹소평이 키득키득 웃었다.
“신기한가요? 제가 영물이 될 적에 얻은 능력이랍니다.”
“신통(神通) 같은 건가?”
“그런 셈이죠.”
어느새 청화목 근처에 도착했다. 가까이 오니 알 수 있었다. 이 근방에 결계가 쳐져 있다.
아무래도 마기가 부풀어오르며 결계가 잠시 풀어진 모양이다.
보아하니 결계 자체는 반 시진 안에 자동으로 수복될 것 같은데…. 청화목의 꼴을 봐서는 하루에 몇 번씩은 그렇게 발작을 일으킬 것 같았다. 결계가 큰 의미가 없다는 소리다.
“이 결계는 왜 쳐놓은 거지?”
“청화목은 나름 신물(神物)이랍니다? 잡스러운 것이 달라붙지 않게끔 쳐놓은 결계예요.”
그렇다면 자신은 왜 굳이 데려왔단 말인가. 뭔가 속셈이 있나?
눈가를 찌푸린 서준은 잠자코 청화목을 올려다보았다.
청화목을 설명하며 거름망을 예시로 들었던가? 과연, 청화목은 마기와 온갖 불순물에 찌들어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녹소평이 쓴웃음을 머금은 채 청화목을 쓰다듬었다.
“청화목이 다시 제 기능을 하려면 마기를 모조리 빼내지 않으면 안 돼요. 심지어 그 뒤에는 빠르게 순수한 기를 채워넣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주변의 마기를 빨아들여 빈공간이 마로 가득 차 마목(魔木)이 되고 말 거예요.”
“굳이 그럴 필요 있는가? 마기를 순수한 기로 치환하면 그만일 텐데.”
“그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겠죠. 하지만 천하의 그 누가 그런 일이 가능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