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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의 장로이자, 신검금가의 전승자. 최근 들어 가장 유명한 무인 중 하나인 진기재천 이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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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서린은 그의 방문 소식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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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주의 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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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혜지를 놓아줄 때가 되었다던 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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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었으나, 상대가 남궁의 소가주인 만큼 별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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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황보서린이 황보세가의 직계라지만 남궁세가의 소가주에 비하면 끗발이 딸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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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딸인 황보혜지는 방에서 두문불출하며 부상을 회복하고 있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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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궁의 소가주와 진기재천을 맞이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황보세가의 장로 황보준을 원군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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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보준은 이 상황이 아주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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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방석조차 그의 피부를 뚫지 못하나, 황보서린의 날선 기세는 황보준을 안절부절 못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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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내 손님들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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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명과 이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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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준은 서준의 얼굴을 보자마자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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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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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큰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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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못 할 말 구분 따위 하지 않는 저 괴물놈이 과연 이번에는 무슨 망언을 지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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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인해 열받은 황보서린의 눈치를 볼 자신의 미래는 또 얼마나 암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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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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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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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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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당당하게 접객실에 들어서 포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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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의 장로 이서준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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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예의는 갖춰주는구나. 황보준이 화색을 띠며 마주 예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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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시오, 소가주. 그리고 진기재천. 본 세가에는 무슨 일로 방문하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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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그를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예의를 갖추는 황보준은 쭉쭉빵빵 금춘봉만큼이나 이질감이 드는 무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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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가주와 황보세가의 여식이 썩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알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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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황보서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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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가정사에 그리 깊게 끼어들고 싶지는 않으나…, 아무래도 무에 대해서는 내가 그대들보다 잘 알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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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서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녀가 슬쩍 황보준을 곁눈질했으나, 황보준은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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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놈이 황보준 자신보다 무에 대해 잘 아는 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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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내 들은 이야기도 있고─ 무엇보다도 직접 본 것이 있어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겠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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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견을 내려주신다면 경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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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서린의 대답에 서준이 만족스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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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혹 모친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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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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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 묻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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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십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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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그러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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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멀뚱히 황보서린을 바라보았다. 황보서린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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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는 무례한 게 가풍이기라도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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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뜸 모친의 여부를 묻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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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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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대가 딸에게 하는 말을 들었소. 사력을 다해 대련을 마친 딸을 걱정하지는 못할 망정, 패배를 책망하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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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무인이란 패배를 수치로 알아야 하는 이들입니다. 패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지만, 전장에서는 한 순간의 패배가 곧 목숨과 직결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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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용봉지회가 전장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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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은 실전처럼. 아시는 바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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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전장에 서보긴 했소? 나는 서봤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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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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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서린이 머뭇대자 서준이 쯧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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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도 모친이 있다면 알 것 아니오. 자식이 모친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 어렵소? 아니면 혹 모친에게 맞고 자라기라도 한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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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객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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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준의 눈이 미친듯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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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미친 새끼. 저놈에게 그럴듯한 말을 기대한 자신이 머저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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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황보서린의 눈치를 살피니 그녀는 솟구치는 분노를 어떻게든 참아보려 하는 눈치였다. 꽉 쥔 주먹 탓에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얇은 핏줄기가 흘러내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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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자신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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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미친놈이 한마디를 더 했다가는 큰일이 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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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아니, 잠시만. 자네 말이 너무 심하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같은 십육명문의 일원끼리 그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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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좀 닥쳐봐. 나 진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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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싸우자는 것밖에 더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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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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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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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준은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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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뒤에 물러서 있는 남궁의 소가주에게 열렬한 시선을 보냈으나, 그는 당황한 눈치면서도 서준을 믿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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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놈을 믿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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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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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답답해서 못 하겠네. 저기요. 생각을 해보라니까요? 사람을 그렇게 몰아붙여서 뭐가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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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분노를 꾹 눌러참은 황보서린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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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이의 교육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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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쪽 절정 따리잖아요. 무에 대해서 뭐 아는 게 있나? 그렇게 억압해서는 초절정 문턱도 못 밟는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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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서준대로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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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이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키든, 사실 끼어들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그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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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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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대로 두면 예비 제수씨가 주화입마에 들어 피를 토하고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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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리는 서준을 보며, 황보서린이 간신히 언성을 높이지 않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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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장로께서는 혜아(慧兒)를 그대로 방치해두라는 말씀이십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그저 패배자로 기억되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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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야 뭘 어쩌든.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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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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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서린이 기가 막힌 듯 헛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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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를 보며 서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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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고, 제안 하나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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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게 본론이다. 앞서 한 말들은 반쯤 분풀이에 가깝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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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서린이 황보혜지에게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화가 뻗치는 걸 어쩌라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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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용봉지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하남에 있을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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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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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혜지, 내가 맡아서 가르칠 테니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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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이라 했지만 사실상 통보다. 황보서린이 말없이 서준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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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녀를 비웃으며 황보준에게 눈짓했다. 알아서 눈치 챙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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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린아, 한 번 그리 해보자꾸나. 저놈이 망언을 일삼긴 해도 실력 자체는 진짜다. 혜아에게는 기연일 수도 있는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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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숙의 뜻대로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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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서린은 그 말만을 남긴 채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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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준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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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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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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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그렇게 아무 말이나 해대다가는 언젠가 큰일 한 번 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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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련문주한테도 아무 말이나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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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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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오히려 황보준을 나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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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인마, 조카손녀가 그러고 있는데 어떻게 해볼 생각도 안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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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카손녀지만, 조카의 딸이기도 하다. 자식 교육은 부모가 맡는 게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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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 됐다 그냥. 따라오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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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준이 눈을 둥그렇게 떴으나, 서준은 그에게 별다른 말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남궁명의 곁을 지나치며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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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고, 아우. 결국 이건 제수씨가 해결해야 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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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황보혜지의 거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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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닫힌 문 너머로 황보혜지의 가느다란 기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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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문을 두드리는 대신 남궁명에게 눈짓했다. 남궁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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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 소저, 저 남궁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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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 소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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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목소리가 돌아왔다. 목 놓아 울기라도 한 듯 잔뜩 쉰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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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던 남궁명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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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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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돌아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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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명이 서준을 바라보았다. 어찌 할지 묻는 듯한 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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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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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여자 방에 막 들어가는 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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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군. 네게 그런 상식이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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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을 푹 내쉰 황보준이 손을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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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시 들어갔다 오마. 기다리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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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준은 조카손녀의 방에 멋대로 쳐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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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귀를 기울여 보니 황보혜지를 달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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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사이가 썩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런 놈이 왜 황보혜지가 저 꼴이 될 때까지 내버려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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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 황보혜지가 방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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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단장을 마친 듯 그녀의 행색 자체는 말끔했으나, 정작 두 눈이 퉁퉁 부어 상당히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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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남궁수아와 대련을 치르며 입은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은 상태. 찢어진 입가의 상처를 보니 속이 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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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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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혜지 위로 춘봉의 모습이 겹치니 기분이 아주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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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혈색도 좋지 않고, 눈밑이 거뭇거뭇한 것이 심마에 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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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저러고 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그러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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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의 생각이 모두 다르다지만, 서준은 구태여 모든 이들에게 공감하고픈 생각 따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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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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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황보혜지를 보며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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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상태가 저래서야 당장 뭐라고 설교를 해봤자 악영향밖에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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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명아, 둘이서 얘기 좀 나누고 있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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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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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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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섬기는 이들도 높은 경지에 닿고는 하지 않던가. 남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경지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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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스스로의 뜻을 뚜렷이 알 필요가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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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로 예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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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마라 파순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 아닌 이들도 있겠으나, 마선에 대해 광적인 신앙을 가진 이들도 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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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초절정이니 화경이니 하는 높은 경지에 다다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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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혜지와 그들의 차이를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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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봤을 때 마교도들은 신앙을 의심하지 않는다. 들은 얘기로만 판단해도 그렇다. 그들은 마라 파순의 뜻에 따라 목숨조차 아무렇지 않게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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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자면 그 역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굳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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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곧 믿음. 마라 파순을 믿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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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황보혜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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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의 뜻을 따르고자 하나, 그저 그뿐이다. 모친의 뜻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아닌 것을 아니라 얘기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히며 묵묵히 감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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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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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준의 질문에 서준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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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혜지 스스로 뜻을 세워야 된다고. 모친 뜻에 따를 거면 아예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 생각하기에 틀린 건 틀리다 할 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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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않고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안 있어 주화입마와 하이파이브 한 번 시원하게 갈기고 황천을 건널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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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결론만 말하자면, 열심히 굴리겠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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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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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본능이 튀어나올 때까지 구르다보면 자기 뜻도 알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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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황보혜지가 스스로의 내면과 완만한 합의를 보길 바란다. 그러면 황보혜지도 깨닫겠지. 아, 엄마 말이 전부가 아니구나?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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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서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거다. 무인으로서든, 성인으로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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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서린 그 여자는 황보혜지가 알아서 잘 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후피집(후회 피폐 집착)이나 진득하니 한 작품 찍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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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옆에서 툭툭 건드리면 썩 재밌는 반응이 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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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스스로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괴로운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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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눈앞에 결과를 들이대도 모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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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좀 맞아야지. 그건 진짜 때려도 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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