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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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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의 장로이자, 신검금가의 전승자. 최근 들어 가장 유명한 무인 중 하나인 진기재천 이서준.

황보서린은 그의 방문 소식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소가주의 짓인가.

황보혜지를 놓아줄 때가 되었다던 그의 말.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었으나, 상대가 남궁의 소가주인 만큼 별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아무리 황보서린이 황보세가의 직계라지만 남궁세가의 소가주에 비하면 끗발이 딸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녀의 딸인 황보혜지는 방에서 두문불출하며 부상을 회복하고 있는 상황.

홀로 남궁의 소가주와 진기재천을 맞이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황보세가의 장로 황보준을 원군 삼았다.

그 황보준은 이 상황이 아주 불편했다.

가시방석조차 그의 피부를 뚫지 못하나, 황보서린의 날선 기세는 황보준을 안절부절 못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내 손님들이 들어섰다.

남궁명과 이서준.

황보준은 서준의 얼굴을 보자마자 탄식했다.

“아.”

이거 큰일났다.

할 말 못 할 말 구분 따위 하지 않는 저 괴물놈이 과연 이번에는 무슨 망언을 지껄일까.

그로 인해 열받은 황보서린의 눈치를 볼 자신의 미래는 또 얼마나 암울할까.

“빌어먹을.”

“뭐?”

“아, 아무것도 아니다.”

서준이 당당하게 접객실에 들어서 포권했다.

“남궁의 장로 이서준이오.”

그래도 예의는 갖춰주는구나. 황보준이 화색을 띠며 마주 예를 갖췄다.

“어서 오시오, 소가주. 그리고 진기재천. 본 세가에는 무슨 일로 방문하셨소?”

서준이 그를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예의를 갖추는 황보준은 쭉쭉빵빵 금춘봉만큼이나 이질감이 드는 무언가였다.

“…우리 소가주와 황보세가의 여식이 썩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알 거요.”

서준이 황보서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남의 가정사에 그리 깊게 끼어들고 싶지는 않으나…, 아무래도 무에 대해서는 내가 그대들보다 잘 알지 않겠소?”

황보서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녀가 슬쩍 황보준을 곁눈질했으나, 황보준은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저놈이 황보준 자신보다 무에 대해 잘 아는 건 맞았다.

“헌데 내 들은 이야기도 있고─ 무엇보다도 직접 본 것이 있어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겠더군.”

“고견을 내려주신다면 경청하겠습니다.”

황보서린의 대답에 서준이 만족스레 웃었다.

“그대는 혹 모친이 없소?”

“…예?”

“궁금해 묻는 거요.”

“계십니다만….”

“근데 왜 그러는 거요?”

서준이 멀뚱히 황보서린을 바라보았다. 황보서린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남궁세가는 무례한 게 가풍이기라도 한 것인가…?

대뜸 모친의 여부를 묻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내 그대가 딸에게 하는 말을 들었소. 사력을 다해 대련을 마친 딸을 걱정하지는 못할 망정, 패배를 책망하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본디 무인이란 패배를 수치로 알아야 하는 이들입니다. 패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지만, 전장에서는 한 순간의 패배가 곧 목숨과 직결되지요.”

“그래서 용봉지회가 전장이오?”

“훈련은 실전처럼. 아시는 바가 아닙니까.”

“아니, 전장에 서보긴 했소? 나는 서봤소만.”

“그건….”

황보서린이 머뭇대자 서준이 쯧 혀를 찼다.

“그대도 모친이 있다면 알 것 아니오. 자식이 모친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 어렵소? 아니면 혹 모친에게 맞고 자라기라도 한 거요?”

접객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황보준의 눈이 미친듯이 떨렸다.

저 미친 새끼. 저놈에게 그럴듯한 말을 기대한 자신이 머저리였다.

슬쩍 황보서린의 눈치를 살피니 그녀는 솟구치는 분노를 어떻게든 참아보려 하는 눈치였다. 꽉 쥔 주먹 탓에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얇은 핏줄기가 흘러내릴 정도다.

지금은 자신이 나서야 한다.

저 미친놈이 한마디를 더 했다가는 큰일이 나게 생겼다.

“잠깐…! 아니, 잠시만. 자네 말이 너무 심하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같은 십육명문의 일원끼리 그런 말…….”

“아니, 좀 닥쳐봐. 나 진지하니까.”

“지금 싸우자는 것밖에 더 되나?”

“해보든가.”

“아니…!”

황보준은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한 발 뒤에 물러서 있는 남궁의 소가주에게 열렬한 시선을 보냈으나, 그는 당황한 눈치면서도 서준을 믿는 것 같았다.

믿을 놈을 믿어야지.

서준이 말했다.

“하…, 답답해서 못 하겠네. 저기요. 생각을 해보라니까요? 사람을 그렇게 몰아붙여서 뭐가 되는데요.”

어떻게든 분노를 꾹 눌러참은 황보서린이 답했다.

“제 아이의 교육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아니, 그쪽 절정 따리잖아요. 무에 대해서 뭐 아는 게 있나? 그렇게 억압해서는 초절정 문턱도 못 밟는다니까?”

서준은 서준대로 답답했다.

남의 집이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키든, 사실 끼어들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그도 알았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저대로 두면 예비 제수씨가 주화입마에 들어 피를 토하고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리는 서준을 보며, 황보서린이 간신히 언성을 높이지 않고 물었다.

“그러면…, 장로께서는 혜아(慧兒)를 그대로 방치해두라는 말씀이십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그저 패배자로 기억되게끔?”

“남이야 뭘 어쩌든.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은데.”

“어이가 없어서….”

황보서린이 기가 막힌 듯 헛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서준이 말했다.

“됐고, 제안 하나 할게요.”

사실 이게 본론이다. 앞서 한 말들은 반쯤 분풀이에 가깝긴 했다.

황보서린이 황보혜지에게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화가 뻗치는 걸 어쩌라는 말인가?

“어차피 용봉지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하남에 있을 거잖아요.”

“…….”

“황보혜지, 내가 맡아서 가르칠 테니 알고 있어요.”

제안이라 했지만 사실상 통보다. 황보서린이 말없이 서준을 노려보았다.

서준은 그녀를 비웃으며 황보준에게 눈짓했다. 알아서 눈치 챙기라고.

“…서린아, 한 번 그리 해보자꾸나. 저놈이 망언을 일삼긴 해도 실력 자체는 진짜다. 혜아에게는 기연일 수도 있는 게야.”

“…외숙의 뜻대로 하시지요.”

황보서린은 그 말만을 남긴 채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황보준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친놈.”

“뭐.”

“계속 그렇게 아무 말이나 해대다가는 언젠가 큰일 한 번 날 거다.”

“나는 기련문주한테도 아무 말이나 했는데.”

“…미친놈.”

서준은 오히려 황보준을 나무랐다.

“너는 인마, 조카손녀가 그러고 있는데 어떻게 해볼 생각도 안 하냐?”

“내 조카손녀지만, 조카의 딸이기도 하다. 자식 교육은 부모가 맡는 게 맞지.”

“병신. 됐다 그냥. 따라오기나 해.”

황보준이 눈을 둥그렇게 떴으나, 서준은 그에게 별다른 말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남궁명의 곁을 지나치며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가자고, 아우. 결국 이건 제수씨가 해결해야 할 일이니까.”

일행은 황보혜지의 거처로 향했다.

꽉 닫힌 문 너머로 황보혜지의 가느다란 기척이 느껴진다.

서준은 문을 두드리는 대신 남궁명에게 눈짓했다. 남궁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황보 소저, 저 남궁명입니다.”

“…남궁 소협?”

갈라진 목소리가 돌아왔다. 목 놓아 울기라도 한 듯 잔뜩 쉰 목소리다.

망설이던 남궁명이 물었다.

“혹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뇨…. 돌아가주세요….”

남궁명이 서준을 바라보았다. 어찌 할지 묻는 듯한 눈빛이다.

서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으음…. 여자 방에 막 들어가는 건 좀….”

“놀랍군. 네게 그런 상식이 있었다니.”

한숨을 푹 내쉰 황보준이 손을 내저었다.

“내가 잠시 들어갔다 오마. 기다리고 있어라.”

황보준은 조카손녀의 방에 멋대로 쳐들어갔다.

슬쩍 귀를 기울여 보니 황보혜지를 달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사이가 썩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런 놈이 왜 황보혜지가 저 꼴이 될 때까지 내버려뒀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 황보혜지가 방에서 나왔다.

급하게 단장을 마친 듯 그녀의 행색 자체는 말끔했으나, 정작 두 눈이 퉁퉁 부어 상당히 안쓰럽다.

게다가 남궁수아와 대련을 치르며 입은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은 상태. 찢어진 입가의 상처를 보니 속이 미어진다.

‘춘봉이 생각나네….

황보혜지 위로 춘봉의 모습이 겹치니 기분이 아주 복잡하다.

심지어 혈색도 좋지 않고, 눈밑이 거뭇거뭇한 것이 심마에 든 듯하다.

딸이 저러고 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그러고 싶을까?

세상 사람의 생각이 모두 다르다지만, 서준은 구태여 모든 이들에게 공감하고픈 생각 따위 없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다.

서준은 황보혜지를 보며 고민했다.

애 상태가 저래서야 당장 뭐라고 설교를 해봤자 악영향밖에 없을 터.

“일단─ 명아, 둘이서 얘기 좀 나누고 있어봐.”

높은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신을 섬기는 이들도 높은 경지에 닿고는 하지 않던가. 남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경지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다만, 스스로의 뜻을 뚜렷이 알 필요가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마교로 예를 들 수 있다.

그들은 마라 파순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 아닌 이들도 있겠으나, 마선에 대해 광적인 신앙을 가진 이들도 꽤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초절정이니 화경이니 하는 높은 경지에 다다랐는가.

황보혜지와 그들의 차이를 알 필요가 있다.

서준이 봤을 때 마교도들은 신앙을 의심하지 않는다. 들은 얘기로만 판단해도 그렇다. 그들은 마라 파순의 뜻에 따라 목숨조차 아무렇지 않게 버린다.

어찌 보자면 그 역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굳건한 것이다.

신앙이란 곧 믿음. 마라 파순을 믿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그렇다.

그러면 황보혜지는?

모친의 뜻을 따르고자 하나, 그저 그뿐이다. 모친의 뜻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아닌 것을 아니라 얘기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히며 묵묵히 감내한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황보준의 질문에 서준이 답했다.

“황보혜지 스스로 뜻을 세워야 된다고. 모친 뜻에 따를 거면 아예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 생각하기에 틀린 건 틀리다 할 줄 알아야지.”

그러지 않고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안 있어 주화입마와 하이파이브 한 번 시원하게 갈기고 황천을 건널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결론만 말하자면, 열심히 굴리겠다는 거지.”

“뭐?”

“생존본능이 튀어나올 때까지 구르다보면 자기 뜻도 알게 되지 않을까?”

부디 황보혜지가 스스로의 내면과 완만한 합의를 보길 바란다. 그러면 황보혜지도 깨닫겠지. 아, 엄마 말이 전부가 아니구나? 하고서.

그때서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거다. 무인으로서든, 성인으로서든.

황보서린 그 여자는 황보혜지가 알아서 잘 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후피집(후회 피폐 집착)이나 진득하니 한 작품 찍으면 된다.

그때 옆에서 툭툭 건드리면 썩 재밌는 반응이 나오리라.

‘언제나 스스로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괴로운 법이니까.

─만약 눈앞에 결과를 들이대도 모른다면?

그때는 좀 맞아야지. 그건 진짜 때려도 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