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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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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수련이라 해야 할지, 주술로 농락을 당했다 해야 할지.

춘봉과 남궁수아가 서준에게 시달리기 시작한 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 사이에 16강이 끝났다.

8강에 진출한 후기지수들의 명단은 아래와 같다.

금희

남궁수아

황보혜지

제갈휘

혜운

운백

양소홍

태벽

대부분 아는 얼굴들이다.

생소한 이름의 태벽은 종남파의 후기지수로, 서준이 보기에 실력이 썩 괜찮았다. 용봉지회에서 8강까지 진출했으니 당연한 소리긴 하지만….

서준이 야밤에 소란을 피운 이후로 하남은 조용했다.

다만 별다른 사건이 없었을 뿐, 이미 벌어진 일들이 많았기에 하남에 모인 각 문파의 장로들은 꽤나 바쁜 시간을 보냈다.

우선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장군 암살 사건.

무엇 하나 뚜렷한 성과 없이 미제로 남은 사건이었으며, 장로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준 사건이기도 했다.

다음으로 마교.

곤륜파에서 전해진 소식에 의하자면 마교의 움직임이 한층 더 활발해졌다는 모양이다.

아예 중원까지 쳐들어올 요량인지 그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데, 십육명문의 장로들은 새로운 소식이 들어올 때마다 골머리를 앓았다.

남은 자잘한 일들 중 그나마 중요한 일을 하나 꼽자면, 용봉들의 별호를 정하는 일이었다.

8강의 진출자들이 확정됐고, 그들에게 내릴 별호를 정해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성의가 없어도 문제, 너무 거창해도 문제. 이런저런 의견들이 오가다 결국에는 결승이 끝나고 나서야 별호를 정하는 것이 통상 용봉지회의 진행이 되겠다.

물론 서준은 해당사항이 없었다.

회의를 재끼고 춘봉과 남궁수아의 수련을 돕거나, 스스로의 무공을 정비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진짜 조금 남은 것 같은데.

화경. 혹은 극마. 그것도 아니라면 또 다른 미지의 경지.

초절정 너머를 바라보는 서준은 요즘 고민이 많았다.

그가 생각하는 화경은 상단전이 완전히 활성화되어 신(神)이 비대해진 경지를 의미한다.

신이 비대해진 만큼 육신만으로 채울 수 없는 정(精)과 기(氣)를 세상에서 찾는 것이다.

그것이 곧 영역이다.

비대해진 신이 자신 주변의 세상을 정과 기로 삼아 외부의 자신으로 삼는 셈이다.

달리 말하자면 초절정에서 이룬 정기신의 균형을 의도적으로 비틀어, 신의 비대를 이룸으로써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것.

그것이 조화경(造化境), 즉 화경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현경이라는 경지 역시 얼추 감이 잡힌다.

상단전이 완전히 열리며 신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화경. 그곳에서 더욱 나아가 기와 정을 신에 완전히 편입시킨다면?

완전한 신(神)이 되는 것이다.

그 경지가 완숙에 다다르면 우화등선의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닐까….

서준은 추측했다.

‘그러면 여기서 뭘 더 해야 될까.

초절정은 기에 신을 깃들이는 경지다. 중단전이 완전히 활성화되는 경지이며, 또 정기신의 균형을 이루는 경지이다.

중단전이 관할하는 것은 기(氣).

기는 중앙에 위치해 정과 신을 매개한다.

하단전, 즉 정에서 임맥을 타고 오른 기운이 신에 다다르고, 상단전이 관할하는 신의 기운이 독맥을 타고 내려와 정을 보한다.

그 오고 가는 기운을 조율하는 것이 중단전, 곧 기다.

그리 생각한다면 기를 수련하는 무공이야 말로 곧 정과 신을 잇는 비법이요, 정을 위로 이끌어 신으로 향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음이니.

그것이 곧 수선(修仙)이다.

물론 이는 서준의 생각에 불과했다. 드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길은 여럿이다. 그 중 하나가 이런 방식을 취하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었다.

“흠.”

결국 떠오르는 방법은 상단전을 완전히 활성화시키거나, 끝없이 기를 수련해 정을 위로 끌어올리는 것 정도인데….

어쩌면 극마라는 경지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면 다른 방법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괜히 극마와 화경을 구분하는 것이 아닐 터.

‘결론은 그냥 열심히 수련이나 하면 된다는 거구만.

별 소득 없는 고민을 끝마친 서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주술이나 더 파볼까?”

가만히 앉아 쉬면서 서준을 구경하던 춘봉이 답했다.

“갑자기 왜?”

“주술은 굳이 따지면 상단전이랑 연관이 깊지 않나?”

“그렇지?”

“이거 잘 파면 화경으로 가는 단서가 될지도?”

“그런…, 가?”

절정 따리 춘봉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 맹한 표정이 귀엽다.

씩 웃은 서준이 냅다 달려들어 그녀를 높이 치켜들었다.

“플라잉 춘봉…!”

“…에휴.”

평온한 하루가 지나갔다.

남궁명은 종종 황보세가의 별장으로 향해 황보혜지와 만남을 가졌다.

지난 번의 발언 이후 사이가 조금 어색해지긴 했으나, 황보혜지는 남궁명의 방문을 거절하지 않았다.

“황보 소저, 내일 누님과의 대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8강부터는 대진표를 미리 공지한다.

남궁명의 말에 황보혜지가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됐네요.”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남궁 소협께서는….”

머뭇대던 황보혜지가 말을 이었다.

“…누가 이길 거라 생각하시나요?”

곤란한 질문이다. 황보혜지도 알았다.

하지만 남궁 소협도 자신을 그토록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이런 질문쯤이야 괜찮으리라 여겼다.

아무렴. 그날 어머니와 자신 사이에 머물던 숨막힌 침묵을 생각한다면 이쯤이야 크게 곤란한 질문도 아니었다.

“솔직한 대답을 원하십니까?”

“네.”

“저는 누님이 이길 확률이 더 높다 생각합니다.”

“…역시 그렇죠?”

황보혜지는 분명 뛰어나다. 십육명문의 후기지수들 사이에서도 평균 이상은 된다.

하지만 남궁명은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수위를 다투는 실력자였다. 그리고 그런 남궁명을 이긴 것이 남궁수아다.

단순히 계산한다면 황보혜지가 남궁수아를 이길 확률은 높지 않았다.

“어머니께는 무어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황보혜지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남궁명은 그런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이미 패배 이후의 상황을 그리고 있었다.

남궁명이 작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황보 소저.”

“네, 네…?”

“물론 누님이 이길 확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저는 황보 소저를 응원합니다.”

“누님을 응원하셔야 하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제가 그것을 바라는데.”

누님이 듣는다면 섭섭해하시겠지만, 분명 이해해주리라 믿었다.

남궁명은 붙잡은 황보혜지의 손을 조금 더 꽉 움켜쥐었다. 그와 눈을 마주친 황보혜지의 눈망울이 파르르 떨렸다.

“허나 이기든 지든, 기껏해야 용봉지회 아닙니까. 너무 승패에 연연할 필요 없습니다. 서두른다고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소저께서 지금까지 노력해온 것들이 허사가 되지도 않습니다.”

남궁명이 환하게 웃었다.

“그저 대련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런다면 분명, 소저께서도 무언가 답을 찾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용봉지회의 8강.

용봉의 별호를 하사받을 8명의 후기지수들이 치르는 대련.

어찌 보자면 용봉지회의 진정한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만큼, 8강에는 나름의 상징성이 있었다.

그런 까닭에, 또 새로운 용봉들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무림의 선배가 연무장 위에 섰다.

이번 용봉지회를 개최한 소림의 장로 명각.

“미흡한 실력이나마 후배들이 빈승의 발자취를 보고 얻어가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소.”

그는 짧은 한마디 이후 몇 번의 주먹질과 몇 번의 발차기를 선보였다.

화려한 강기의 폭발도 없었고, 현란한 동작 사이로 번뜩이는 무언가도 없었다.

“뭔가…, 대단한 거겠지?”

“소림의 장로니 그렇지 않겠소? 잘 모르겠지만….”

명각의 수수한 무공 시연에 관중들의 반응은 영 시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가 펼쳐낸 무공의 진가를 알아본 이들은 달랐다.

서준 역시 오싹한 전율에 소름이 돋은 팔을 문질렀다.

‘저런 게 되네….

분명 평범한 주먹질과 발차기다. 허나 그 동작과 완벽히 일치하는 내공의 흐름, 또 저 간단한 동작에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보이지 않는 빈틈은 명각의 실력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그저 그뿐이지 않느냐고?

서준은 느꼈다. 저 자는 결코 패진광의 아래가 아니다.

패진광처럼 대단한 힘은 없으나, 극한으로 연마한 몇 번의 동작에는 그만한 섬뜩함이 있었다.

더이상 덜어낼 것이 없을 때까지 덜어낸 무공의 극한.

무공을 곧잘 베껴내는 서준으로서도 저건 따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공의 고절함이니, 수준 높은 무리(武理)니, 그런 것들과 전혀 연관이 없는 까닭이다.

저건 광기의 결정체다.

단순한 노력으로 닿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모든 재능과 시간과 노력과 악에 받친 집념을 때려박아 깎아낸 걸작이다.

‘소림의 명각이라….

명각이 연무장에서 내려간 뒤에도 서준의 눈은 연무장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대단하네.

어찌 보자면 자신과 완전히 대척점에 선 무인이 아닌가.

재능으로 순식간에 올라온 자신과, 광기 어린 집념으로 무공을 깎아내 올라온 명각.

만약 명각과 싸우게 된다면 편법으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저토록 덜어낸 무공의 파해는 불가능에 가까울 터.

진정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상대가 아닌가?

“영감님도 저런 거 할 수 있어요?”

패진광에게 묻자 그가 콧방귀를 뀌었다.

“되겠냐? 난 답답해서 저런 거 못 한다.”

“하긴.”

“흠. 그 반응은 상당히 기분 나쁜데?”

그런 묘한 분위기 속, 황보혜지가 연무장에 올랐다.

그녀는 연무장에 오르기 전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렸다.

8강에 오른 것으로 만족하면 안 돼. 또 저번처럼 뒷전으로 밀려나고 싶은 건 아니지?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지만, 세상은 언제나 승자만을 기억한다는 것을 기억하렴.

몸에 힘이 빠진다. 황보혜지는 처지려는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응원 한 마디가 듣고 싶었을 뿐인데….

정작 어머니께 바란 응원은 남궁 소협이 해주었다.

그의 곧은 시선을 기억한다. 자신을 믿어주던, 또 결과보다는 최선을 다하라 하던.

어머니와 남궁 소협, 둘의 상반되는 말에 그녀는 이도저도 못 하고 풍랑에 휩쓸렸다.

“반가워요.”

남궁수아의 목소리에 황보혜지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네, 네….”

“명이한테 얘기 들었어요.”

“그런가요…?”

“네. 아주 참한 아가씨가 하나 있다고.”

남궁수아가 쿡쿡 웃었다.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다.

누나에게 남동생의 연애사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흥미거리였다.

황보혜지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그녀에게 남궁수아가 말했다.

“그래도 지지 않을 거니까, 서로 힘내봐요.”

“…네에.”

황보혜지가 어색하게 웃었다.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