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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어 서준은 조용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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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신형이 한 걸음마다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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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보에 안개가 낀 듯 뿌예지고, 다시 일 보에 어둠에 녹아들었으며, 마지막 일 보에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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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간간이 연습해온 잠영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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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중밀검 예화의 잠영술에 영감을 얻은 것으로, 스스로의 내공을 이용해 주변 환경과 동화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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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각과 후각, 기감에서 벗어나고, 발소리 따위의 기척은 지겹도록 본 혈오문의 살수들을 따라해 지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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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짓기를 월하무영(月下無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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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림자 하나 없이 혈오문의 정문을 훌쩍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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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서는 이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평소와 같이 약간의 안일함을 곁들인 채 주변을 경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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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들을 지나쳐 혈오문 내부를 여유롭게 걷다가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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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피냄새가 진동을 한다. 건물 자체에 배인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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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혀를 찬 서준이 기감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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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기파가 혈오문을 샅샅이 훑어 서준의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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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써야 할 것은 혈오문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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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절정쯤 되는 기세를 찾으니 혈오문 내부 중앙 즈음의 건물에서 하나의 기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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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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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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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의 반대편쯤 되는 외곽에서도 초절정 수준의 기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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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절정은 문주 하나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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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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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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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보이는 세 명의 무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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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일조로 순찰이라도 도는 듯 느릿한 걸음걸이로 서준의 곁을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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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곧바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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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줄도 모르는 무인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순찰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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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시기를 가늠하고 있자니 구석진 곳에 모퉁이가 보인다. 주변에 사람의 기척 역시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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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앞서 모퉁이 너머를 살피니 조건이 썩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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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곳에서 무인들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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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군기가 잘 잡힌 듯 무인들은 말 한 마디 없이 걸어와 모퉁이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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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서준이 빠르게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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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은 검지와 중지를 편 채 검강을 휘감아 두 명의 목을 베고, 오른손은 활짝 펼친 채 한 놈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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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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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붙잡힌 사내의 눈이 부릅 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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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둘은 목이 베여 시체가 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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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흡성대법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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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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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을 펼쳐 새어나가는 소리를 막고, 사내의 선천지기를 어지럽힌 뒤 마기를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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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멍하니 눈이 풀린 사내의 몸이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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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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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초절정 고수 둘이 있던데,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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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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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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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차…, 찰....,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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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차찰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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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더 물은 끝에 나찰검이라는 별호를 알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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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오문주가 초청한 외부의 고수라는 것까지 알아내니 사내가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조리 피를 쏟아내며 절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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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용으로 썩 좋은 방식은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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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대답을 듣기도 힘들 뿐더러 숨이 붙어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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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혀를 차며 시체들을 한데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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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성대법으로 아직 남아있는 진기들을 모조리 뽑아낸 뒤, 그것으로 강기를 일으켜 흔적을 전부 태워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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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오문주에 나찰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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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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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보기 전에는 모른다. 기세로 봐서는 둘 다 초절정 초기에서 중기 언저리 같지만, 그걸로 무력을 판단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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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곳이 사흑련의 영역임을 잊으면 안 된다. 소란이 길어지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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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나느냐 강행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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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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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재끼고 시작하면 큰 문제 없을 것 같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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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과 동시에 땅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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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 내려선 뒤 다시 도약. 몇 번을 반복한 후, 유독 높은 건물의 벽면 위를 똑바로 걸어 내부의 기척을 자세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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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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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벽면을 걸어 빙 돌다가 사람이 없는 곳에서 강기로 벽을 잘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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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에 들어선 뒤 다시 벽 조각을 잘 끼우면 잠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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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혈오문주의 기척이 느껴지던 곳으로 돌아가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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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수하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니 곧 수하들이 명을 받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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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옮기는 혈오문주. 그 뒤에서 걷던 서준이 허리춤의 검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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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하게 내공을 움직여 검집 안의 검에 역천일월강기를 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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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는 곳은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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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천천히 들이쉰 뒤 멈추고, 검 손잡이를 꽉 움켜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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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발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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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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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도 좋게 반응한 혈오문주가 손에 수강을 깃들여 마주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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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판이다. 피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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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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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일월강기가 혈오문주의 손을 지나친다. 손의 윗부분이 그대로 잘렸다. 엄지만 남은 손에서 피가 터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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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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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경악으로 일그러지는 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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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흩어진 역천일월강기를 털어내며 빙백신공의 내공으로 검강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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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재천! 네놈이 어떻게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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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왔다고 말하면 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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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픽 웃어넘기며 검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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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막아? 감이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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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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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오문주가 급히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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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을 향해서가 아닌, 벽면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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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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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부숴 건물 밖으로 탈출한 혈오문주가 품에서 곰방대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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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으로 떨어지며 곰방대를 입에 물고, 연기를 마신 뒤 뱉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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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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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입과 코에서 붉은 연기가 폭발하듯 퍼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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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쫓던 서준의 몸이 연기에 감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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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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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강기를 두르고 있어서 잘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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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무시한 서준이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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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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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적을 따라 공간이 얼어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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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오문주는 급히 손을 휘둘러 검격을 쳐내고, 몸을 뒤집어 땅에 착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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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게 얼어붙은 손을 털어낸 그가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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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백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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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재천이 어떻게 빙백신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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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전제가 잘못됐다. 저놈은 진기재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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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흑련이 왜 나를…! 아니, 네놈의 독단인가? 아니, 아니지…. 빙궁의 뜻?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원하는 게 무어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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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인가? 고민하던 서준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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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를 위해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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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알아듣게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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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무 말이나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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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손으로 땅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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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계(氷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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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저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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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을 중심으로 주변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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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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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녹림 토벌 당시 빙궁의 무인이 썼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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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계를 알아본 혈오문주가 크게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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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후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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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오문의 문도들이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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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픽 웃으며 연계되는 초식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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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정(氷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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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손아귀 위로 새하얀 눈꽃 결정이 떠오른다. 이어서 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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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五行), 수(水), 확산(擴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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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과 주술이 연계되며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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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그대로 손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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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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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귀 안의 결정이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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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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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에 터무니없는 양의 음한지기가 몰아치며 세상을 순백으로 덧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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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온 혈오문의 문도들은 모조리 얼어 죽었고, 거리가 있어 목숨을 건진 이들은 굳어가는 몸에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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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땅에서 자라나는 108개의 얼음 기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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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 새하얀 세상에서 무심하게 주변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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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오문주가 하얀 숨을 내쉬며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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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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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지 못한 서준이 눈가를 찌푸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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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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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입가에서 한 줄기 선혈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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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염만인혼(血染萬人魂)이다! 중독된 이상 쉬이 독을 몰아낼 수는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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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됐다고?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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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따위는 호신강기를 뚫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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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강기는 단순히 갑옷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전신을 감싼 호신강기는 외부의 모든 것을 걸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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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은 물론이요, 열기, 냉기, 빛, 악취 할 것 없이 시전자가 허락하지 않은 모든 것을 차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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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호신강기를 두르면 물 속에서도 호흡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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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걸러지고 공기만이 호신강기를 통과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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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따져봐야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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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과 관련된 부분은 원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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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내는 것이 무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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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호신강기의 방어가 뚫린 것 역시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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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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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피를 토해내자 혈오문주가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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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처지가 바뀌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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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오문의 문도들이 주위를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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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칠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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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나찰검 역시 이변을 알아차리고 빠르게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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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새하얗게 얼어붙은 풍경을 바라보다 혈오문주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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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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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긴. 침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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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서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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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로울 일은 없다. 이미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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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오문주가 고개를 푹 숙인 서준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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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놈을 붙잡아 일의 전말을 좀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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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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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찰검이 성큼성큼 걸어 서준의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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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는 필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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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대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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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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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찰검이 검을 뽑아들었다.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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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물든 눈동자. 새카만 핏줄들이 피부 위로 불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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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지켜보던 혈오문주가 눈가를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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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염만인혼에 저런 증상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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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서준이 한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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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팔빙마주진(百八氷魔柱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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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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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솟은 108개의 얼음 기둥들이 새카맣게 물들며 일대를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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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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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찰검이 검을 휘두르려던 자세 그대로 굳어졌다. 터무니없는 무게가 몸을 찍어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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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라면 모르겠으나,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냉기가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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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절정 고수인 나찰검조차 딱딱하게 굳어가는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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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금방이라도 꿇릴 것 같은 무릎을 간신히 붙잡은 채, 핏발 선 눈으로 서준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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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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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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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새카맣게 물든 침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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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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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축된 독기에 희게 얼어붙은 바닥이 녹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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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강기에 이런 약점이 있는 줄은 또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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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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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쯧쯧 혀를 차며 곧장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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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찰검이 뻣뻣한 몸을 움직여 가까스로 막아섰으나, 이미 서준에게 시간을 너무 많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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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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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일월강기를 두른 손이 나찰검의 검과 함께 복부를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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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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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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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흡성대법을 발휘해 놈의 진기를 모조리 빼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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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진기는 흩어내고, 후천진기를 받아들여 다친 육신을 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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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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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초절정쯤 되니 진기의 질이 다르다. 몸이 가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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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말라비틀어진 나찰검의 시체를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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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정리부터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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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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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입이 벌어진다. 턱이 빠진 것처럼 크게 벌어진 입에서 황금빛의 구체가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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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괴한 광경에 혈오문주의 눈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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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입을 통해 꺼낸 내단을 108개의 얼음 기둥들과 동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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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높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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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의 경지에 손을 뻗어 긁어모은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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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들과 내단이 공명하며 일대를 하나의 영역으로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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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영역(類似領域) 팔한지옥(八寒地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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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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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냉기가 인세에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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