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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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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어 서준은 조용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의 신형이 한 걸음마다 흐려진다.

일 보에 안개가 낀 듯 뿌예지고, 다시 일 보에 어둠에 녹아들었으며, 마지막 일 보에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그동안 간간이 연습해온 잠영술이었다.

암중밀검 예화의 잠영술에 영감을 얻은 것으로, 스스로의 내공을 이용해 주변 환경과 동화되는 방식이다.

그렇게 시각과 후각, 기감에서 벗어나고, 발소리 따위의 기척은 지겹도록 본 혈오문의 살수들을 따라해 지워낸다.

이름 짓기를 월하무영(月下無影).

서준은 그림자 하나 없이 혈오문의 정문을 훌쩍 뛰어넘었다.

경계를 서는 이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평소와 같이 약간의 안일함을 곁들인 채 주변을 경계할 뿐이다.

서준은 그들을 지나쳐 혈오문 내부를 여유롭게 걷다가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희미한 피냄새가 진동을 한다. 건물 자체에 배인 냄새다.

작게 혀를 찬 서준이 기감을 펼쳤다.

은밀한 기파가 혈오문을 샅샅이 훑어 서준의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낸다.

신경써야 할 것은 혈오문주뿐.

초절정쯤 되는 기세를 찾으니 혈오문 내부 중앙 즈음의 건물에서 하나의 기척이 느껴진다.

‘응?

그리고 또 하나.

정문의 반대편쯤 되는 외곽에서도 초절정 수준의 기세가 느껴진다.

‘초절정은 문주 하나라 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서준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때마침 보이는 세 명의 무인들.

삼인일조로 순찰이라도 도는 듯 느릿한 걸음걸이로 서준의 곁을 스친다.

서준은 곧바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바로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줄도 모르는 무인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순찰을 계속했다.

적절한 시기를 가늠하고 있자니 구석진 곳에 모퉁이가 보인다. 주변에 사람의 기척 역시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을 앞서 모퉁이 너머를 살피니 조건이 썩 괜찮다.

서준은 그곳에서 무인들을 기다렸다.

꽤나 군기가 잘 잡힌 듯 무인들은 말 한 마디 없이 걸어와 모퉁이를 돌았다.

그 순간, 서준이 빠르게 손을 뻗었다.

왼손은 검지와 중지를 편 채 검강을 휘감아 두 명의 목을 베고, 오른손은 활짝 펼친 채 한 놈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흡…!”

얼굴을 붙잡힌 사내의 눈이 부릅 뜨인다.

나머지 둘은 목이 베여 시체가 된 상황.

서준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흡성대법을 펼쳤다.

“크붑…!”

기막을 펼쳐 새어나가는 소리를 막고, 사내의 선천지기를 어지럽힌 뒤 마기를 쏟아부었다.

곧 멍하니 눈이 풀린 사내의 몸이 축 늘어졌다.

서준이 물었다.

“지금 초절정 고수 둘이 있던데, 누구지?”

“문…, 주….”

“또.”

“나차…, 찰...., 검….”

나차찰검?

몇 번 더 물은 끝에 나찰검이라는 별호를 알아낼 수 있었다.

혈오문주가 초청한 외부의 고수라는 것까지 알아내니 사내가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조리 피를 쏟아내며 절명했다.

‘심문용으로 썩 좋은 방식은 아니네.

긴 대답을 듣기도 힘들 뿐더러 숨이 붙어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

서준은 혀를 차며 시체들을 한데 모았다.

흡성대법으로 아직 남아있는 진기들을 모조리 뽑아낸 뒤, 그것으로 강기를 일으켜 흔적을 전부 태워없앴다.

‘혈오문주에 나찰검이라.

둘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까?

직접 보기 전에는 모른다. 기세로 봐서는 둘 다 초절정 초기에서 중기 언저리 같지만, 그걸로 무력을 판단할 수는 없다.

또한 이곳이 사흑련의 영역임을 잊으면 안 된다. 소란이 길어지면 곤란하다.

물러나느냐 강행하느냐.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하나 재끼고 시작하면 큰 문제 없을 것 같긴 하네.

결정과 동시에 땅을 박찼다.

지붕 위에 내려선 뒤 다시 도약. 몇 번을 반복한 후, 유독 높은 건물의 벽면 위를 똑바로 걸어 내부의 기척을 자세히 살폈다.

‘찾았다.

그대로 벽면을 걸어 빙 돌다가 사람이 없는 곳에서 강기로 벽을 잘라냈다.

건물 안에 들어선 뒤 다시 벽 조각을 잘 끼우면 잠입 끝.

이후 혈오문주의 기척이 느껴지던 곳으로 돌아가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놈이 수하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니 곧 수하들이 명을 받고 사라진다.

걸음을 옮기는 혈오문주. 그 뒤에서 걷던 서준이 허리춤의 검에 손을 올렸다.

세심하게 내공을 움직여 검집 안의 검에 역천일월강기를 두른다.

노리는 곳은 목.

숨을 천천히 들이쉰 뒤 멈추고, 검 손잡이를 꽉 움켜쥔다.

동시에 발검.

“흡…!”

재주도 좋게 반응한 혈오문주가 손에 수강을 깃들여 마주 휘두른다.

오판이다. 피했어야지.

서억-

역천일월강기가 혈오문주의 손을 지나친다. 손의 윗부분이 그대로 잘렸다. 엄지만 남은 손에서 피가 터져나온다.

“너는…!”

고통과 경악으로 일그러지는 낯.

서준이 흩어진 역천일월강기를 털어내며 빙백신공의 내공으로 검강을 일으켰다.

“진기재천! 네놈이 어떻게 여기에!”

날아왔다고 말하면 믿을까?

그냥 픽 웃어넘기며 검을 겨눴다.

“이걸 막아? 감이 좋네.”

“노옴…!”

혈오문주가 급히 몸을 날렸다.

서준을 향해서가 아닌, 벽면을 향해서.

콰앙-!

벽을 부숴 건물 밖으로 탈출한 혈오문주가 품에서 곰방대를 꺼내들었다.

땅으로 떨어지며 곰방대를 입에 물고, 연기를 마신 뒤 뱉어낸다.

푸확-!

그의 입과 코에서 붉은 연기가 폭발하듯 퍼져나온다.

그를 쫓던 서준의 몸이 연기에 감싸였다.

‘독?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어서 잘은 모르겠다.

그냥 무시한 서준이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쩌저적-!

궤적을 따라 공간이 얼어붙는다.

혈오문주는 급히 손을 휘둘러 검격을 쳐내고, 몸을 뒤집어 땅에 착지했다.

옅게 얼어붙은 손을 털어낸 그가 이를 악물었다.

“빙백신공…?”

진기재천이 어떻게 빙백신공을?

아니, 전제가 잘못됐다. 저놈은 진기재천이 아니다.

“사흑련이 왜 나를…! 아니, 네놈의 독단인가? 아니, 아니지…. 빙궁의 뜻?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원하는 게 무어란 말이냐!”

병신인가? 고민하던 서준이 답했다.

“대의를 위해 죽어라.”

“대의? 알아듣게 말을…!”

그냥 아무 말이나 한 거다.

서준이 손으로 땅을 짚었다.

빙계(氷界).

쩌저저적──────────!!!

그의 손을 중심으로 주변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과거 녹림 토벌 당시 빙궁의 무인이 썼던 기술이다.

빙계를 알아본 혈오문주가 크게 분노했다.

“놈…! 후회하게 될 것이다…!”

혈오문의 문도들이 모여든다.

서준은 픽 웃으며 연계되는 초식을 펼쳤다.

빙정(氷晶).

서준의 손아귀 위로 새하얀 눈꽃 결정이 떠오른다. 이어서 주술.

오행(五行), 수(水), 확산(擴散).

무공과 주술이 연계되며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나간다.

서준이 그대로 손을 움켜쥐었다.

콰직-!

손아귀 안의 결정이 부서진다.

화아아악-!

그와 동시에 터무니없는 양의 음한지기가 몰아치며 세상을 순백으로 덧칠한다.

가까이 다가온 혈오문의 문도들은 모조리 얼어 죽었고, 거리가 있어 목숨을 건진 이들은 굳어가는 몸에 비명을 질렀다.

얼어붙은 땅에서 자라나는 108개의 얼음 기둥들.

서준은 그 새하얀 세상에서 무심하게 주변을 훑었다.

혈오문주가 하얀 숨을 내쉬며 눈을 번뜩였다.

“걸렸구나…!”

이해하지 못한 서준이 눈가를 찌푸릴 때,

주륵-

서준의 입가에서 한 줄기 선혈이 흘렀다.

“혈염만인혼(血染萬人魂)이다! 중독된 이상 쉬이 독을 몰아낼 수는 없을 거다.”

중독됐다고? 언제?

독 따위는 호신강기를 뚫어낼 수 없다.

호신강기는 단순히 갑옷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전신을 감싼 호신강기는 외부의 모든 것을 걸러낸다.

독은 물론이요, 열기, 냉기, 빛, 악취 할 것 없이 시전자가 허락하지 않은 모든 것을 차단한다.

그래서 호신강기를 두르면 물 속에서도 호흡이 가능하다.

물은 걸러지고 공기만이 호신강기를 통과하기에.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따져봐야 의미가 없다.

심상과 관련된 부분은 원래 그렇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내는 것이 무공이다.

하지만 그 호신강기의 방어가 뚫린 것 역시 사실.

“쿨럭…!”

서준이 피를 토해내자 혈오문주가 작게 웃었다.

“이제 처지가 바뀌었구나.”

혈오문의 문도들이 주위를 에워쌌다.

도망칠 길은 없다.

더욱이 나찰검 역시 이변을 알아차리고 빠르게 도착했다.

그가 새하얗게 얼어붙은 풍경을 바라보다 혈오문주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긴. 침입자다.”

“내가 나서야 하나?”

“수고로울 일은 없다. 이미 끝났어.”

혈오문주가 고개를 푹 숙인 서준을 가리켰다.

“우선 저놈을 붙잡아 일의 전말을 좀 알아봐야겠다.”

“흐음. 그래?”

나찰검이 성큼성큼 걸어 서준의 앞에 섰다.

“사지는 필요 없겠지?”

“뜻대로 해라.”

“그러지.”

나찰검이 검을 뽑아들었다.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붉게 물든 눈동자. 새카만 핏줄들이 피부 위로 불거졌다.

뒤에서 지켜보던 혈오문주가 눈가를 찌푸렸다.

‘혈염만인혼에 저런 증상은 없는데.

그때, 서준이 한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백팔빙마주진(百八氷魔柱陣).

우우웅──────────

주변에 솟은 108개의 얼음 기둥들이 새카맣게 물들며 일대를 짓누른다.

“헙…!”

나찰검이 검을 휘두르려던 자세 그대로 굳어졌다. 터무니없는 무게가 몸을 찍어누른다.

그뿐이라면 모르겠으나,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냉기가 퍼져나간다.

초절정 고수인 나찰검조차 딱딱하게 굳어가는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꿇릴 것 같은 무릎을 간신히 붙잡은 채, 핏발 선 눈으로 서준을 노려보았다.

“무슨, 짓을…!”

“퉤…!”

서준이 새카맣게 물든 침을 뱉어냈다.

치이익-!

응축된 독기에 희게 얼어붙은 바닥이 녹아든다.

“호신강기에 이런 약점이 있는 줄은 또 몰랐네.”

경험 부족이다.

서준이 쯧쯧 혀를 차며 곧장 손을 뻗었다.

나찰검이 뻣뻣한 몸을 움직여 가까스로 막아섰으나, 이미 서준에게 시간을 너무 많이 줬다.

콰악-!

역천일월강기를 두른 손이 나찰검의 검과 함께 복부를 관통했다.

“어, 어떻….”

“쉿.”

그대로 흡성대법을 발휘해 놈의 진기를 모조리 빼앗는다.

선천진기는 흩어내고, 후천진기를 받아들여 다친 육신을 보한다.

“후우….”

과연 초절정쯤 되니 진기의 질이 다르다. 몸이 가뿐하다.

서준은 말라비틀어진 나찰검의 시체를 내던졌다.

“일단…, 정리부터 할까.”

쩌억-

서준의 입이 벌어진다. 턱이 빠진 것처럼 크게 벌어진 입에서 황금빛의 구체가 튀어나온다.

그 기괴한 광경에 혈오문주의 눈이 떨렸다.

서준은 입을 통해 꺼낸 내단을 108개의 얼음 기둥들과 동조시켰다.

아득히 높은 곳.

저 너머의 경지에 손을 뻗어 긁어모은 편린.

기둥들과 내단이 공명하며 일대를 하나의 영역으로 물들인다.

유사영역(類似領域) 팔한지옥(八寒地獄).

쩌저적──────────

지옥의 냉기가 인세에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