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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은 넷 씩이나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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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사내들에게 한 명만 남으라 명하자 그들이 일제히 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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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맞고 날아갔던 놈이자, 가장 먼저 서준에게 말을 걸었던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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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동료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으나, 코앞에 서준이 있는 이상 뭐라 말을 하기도 애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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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굴복하고 만 사내가 희게 질린 낯으로 포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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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초백이라 합니다,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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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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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초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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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길을 안내하면 되겠고. 다른 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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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시선이 스칠 때마다 사내들이 움찔 움찔 몸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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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한숨을 내쉰 서준이 손을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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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꺼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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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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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꺼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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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들은 동료애 따위 없는지 순식간에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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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르 떨리는 초백의 눈동자가 그의 심정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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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서준이 알 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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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혈오문까지 거리가 어떻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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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공으로 나흘이면 도착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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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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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방향을 얼마나 잘못 잡았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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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을 내쉰 서준이 턱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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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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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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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몽골은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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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접한 정파의 영역만 해도 감숙, 녕하, 섬서, 산서, 하북이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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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만큼 당연히 최전선에 속했고, 무인들의 수 역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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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무인들은 툭 하면 시비를 걸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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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게 마음에 안 들어서, 허리춤의 검이 마음에 안 들어서, 걸음걸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눈빛이 마음에 안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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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애새끼마냥 마음에 안 드는 것 천지인 무인들이 심심하면 시비를 걸어왔고, 서준은 떼부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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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다들 돈이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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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낭인 놈들인지라 아마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면 주머니가 꽤 두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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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 셋을 두들겨 팬 서준이 돈주머니를 초백에게 던져주자, 그가 환하게 웃으며 돈주머니를 품에 챙겨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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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줄 필요는 없지만 이제 슬슬 돈 때문에 몸이 무거워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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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도 아까워 적당히 챙겨주니 사람 눈빛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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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싹싹해졌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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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혈오문에 대한 소문이 어떻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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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혹시 손님으로 가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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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뭐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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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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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던 초백이 슬쩍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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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화끈하고, 어떻게 보면 악질인 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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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가 좋은 건 아니니까 그냥 솔직하게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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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옙! 사람들을 무식하게 갈아대는 미친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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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아댄다. 저건 아마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짜 물리적인 의미로 갈아댄다는 뜻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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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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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특이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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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대부분의 문파들은 정도라는 게 있습니다. 양민들을 싹 다 갈아버리면 저희가 불편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원념 때문에 귀찮은 일이 생기기도 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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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 협객 이서준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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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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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북해빙궁도 해마다 제령 의식을 치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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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대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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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리에서 지속적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면 쌓인 원념이 기를 품어 악령이 되고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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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위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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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는 아닙니다. 가끔 큰놈들은 꽤 위협적이라고는 하지만, 보통은 나타나더라도 절정 수준의 고수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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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내공으로 귀신도 퇴치할 수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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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서준이 딱히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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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심심하면 초백을 갈구며 사흑련의 영역을 가로지르길 대략 나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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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몽골에서도 까마귀는 검고, 사람은 살아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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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역시 정파의 영역과 분위기가 조금 다를지언정 큰 차이는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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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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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다 사람 사는 곳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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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놈들은 잘 살고, 못 사는 놈들은 못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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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나 당연한 이치였고, 다만 이곳에서는 그 격차가 조금 더 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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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오문의 영역에 도착하자 초백이 저 멀리 보이는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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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혈오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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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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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손을 내젓자 초백이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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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무강하십쇼, 백 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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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착하게 좀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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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옙! 협객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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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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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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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백이 다시 한 번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멀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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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길 한복판에 선 채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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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제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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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지는 세 가지 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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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잠영술로 잠입해서 문주를 암살하고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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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혼원보로 날아들어서 건물 몇 개 날리고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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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시간을 좀 써서 혼원일월공 하나 크게 터뜨리고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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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이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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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조무래기들이 아니라 혈오문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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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파악한 바로는 혈오문의 초절정 고수는 혈오문주 하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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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그놈 하나 잡으면 혈오문을 무너뜨리는 건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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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을 하려면 아무래도 밤이 나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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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도시 구경이나 할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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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휑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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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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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척으로 보아하니 건물 안에는 사람이 꽤 있는 것 같은데, 바깥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가끔 한두 명 정도 보이는 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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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백에게 듣자하니 혈오문이 사람들을 무턱대고 갈아대기 시작한 지 반 년 정도 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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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 탓에 사람들이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 같은데, 뭘 하려고 그렇게 사람들을 갈아대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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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라도 올리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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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게 없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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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도시 관광을 마친 서준이 적당한 골목에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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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림에 발을 들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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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뒷골목 살던 시절 춘봉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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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림의 은원이라는 건 도저히 다시는 풀어낼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꼬여버린 실타래와 같아. 이미 너도 그곳에 한 발을 들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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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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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이미 얽힌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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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문, 왕씨가문, 하오문, 화산파, 남궁세가, 소림, 뭐 그 외에도 잔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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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쪽으로는 기련문, 혈오문, 북해빙궁…. 또 뭐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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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많았던 것 같다. 아마 곧 마교도 추가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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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꼬여버린 실타래라는 말이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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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아가는 게 원래 그렇다지만, 양민들과 달리 무림인들의 은원이라는 것은 보통 칼이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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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죽인 사람만 해도 벌써 수두룩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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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이어지면 그 숫자의 앞자리가 휙휙 바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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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제 와서 사람 목숨의 무거움에 대해 설파하기에는 늦은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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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수에 사람 수백을 죽이는 슈퍼 엘리트 살인 머신이 초절정 고수 이서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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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에, 서준은 딱히 혈오문주를 처단하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었다. 정의니 뭐니 하는 거창한 명분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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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이 죽는 건 그저 귀찮게 얼쩡거려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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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오문주 입장에서는 아쉽게 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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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마침 실험해볼 것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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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붕 떠버린 시간을 때울 겸 머리를 바쁘게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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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적절한 화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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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진법 중에서는 알아주는 소림의 백팔나한진을 견식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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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108명이 펼치는 진법을 홀로 사용할 수 있게끔 변형해야 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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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적당히 변형한 진법에 더해 스스로가 가진 내단이라는 특수성을 주술과 엮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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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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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나마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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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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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경들의 전유물인 그 권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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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는 서준의 머리 위로 태양이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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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으….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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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한 밤, 좁은 방 안에서 가느다란 호흡 소리가 새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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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던 사내의 눈이 번쩍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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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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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내쉬는 숨에 붉은 기운이 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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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신의 모공에서 빠져나온 노폐물들을 강기로 태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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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옷을 걸쳐입고 습관처럼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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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진화로 불을 붙이고 연기를 빨아들이니 뇌가 깨어나듯 정신이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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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방을 나서자 바깥에서 호법을 서던 수하들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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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문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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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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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혈오문주가 수하 중 하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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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재천 건은 어떻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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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수확이 없습니다. 여전히 활개를 치고 다니는 모양입니다. 며칠 전 하남에서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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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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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의 새로운 초절정 고수, 이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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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압박하면 한동안은 세가에 틀어박혀 있을 줄 알았더니, 조심성이 많은 놈은 아닌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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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게 하는군. 일단 두어라. 이 이상 해봤자 의미도 없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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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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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흑련에서 혈오문에 내린 하청이었지만, 자신이 성공적으로 경지를 올렸으니 이제 다른 일을 맡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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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흑련 측에서도 그리 판단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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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오문주는 전신에 넘치는 힘을 가늠하듯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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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초절정 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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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삼천삼백삼십삼 명을 갈아넣어 단약을 만들었지만, 재료의 질이 떨어지는 탓인지 그리 대단한 효과는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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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떻게든 하나의 벽을 넘었으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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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절정 중기부터는 강기의 형태를 비교적 자유로이 조율할 수 있는 바, 혈오문의 독문무공인 혈인강기(血燐罡氣)의 위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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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찰검은 어디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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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오문주의 질문에 수하가 즉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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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채에서 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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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별일은 없었다니 다행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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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자신이 폐관하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초청한 식객이었으나, 그가 나설 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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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한 돈과 영약이 아깝지만 별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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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없는 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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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너는 사흑련에 소식을 전하고, 나머지는 휴식을 취해라. 아마 곧 전장에 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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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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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들이 빠르게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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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오문주는 다 태운 곰방대의 담뱃잎을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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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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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텁텁하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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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찬 혈오문주는 곰방대를 품속에 넣고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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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채에 있을 나찰검을 만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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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절정 고수가 둘이나 있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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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나아진 기분으로 복도의 모퉁이를 도는 찰나, 섬뜩한 감각이 목을 간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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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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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 손에 강기를 깃들여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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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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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 째로 베였다. 잘린 손이 바닥에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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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오문주의 눈이 부릅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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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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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만 남은 손을 움켜쥔 혈오문주의 눈에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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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낯이 익다. 분명 초상화로 몇 번 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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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재천! 네놈이 어떻게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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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하남에 있었다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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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한 혈오문주를 바라보던 서준이 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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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막아? 감이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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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검에서 역천일월강기가 흩어지고, 대신 빙백신공의 강기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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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혈오문은 북해빙궁에 의해 멸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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