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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호란 무인의 행적을 방증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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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사천군이라는 별호 역시 그 행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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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사(滅邪). 사를 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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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무림에 발을 담근 이라면 그 별호에서 물씬 풍겨오는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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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이의 혼례에 사흑련 소속의 북해빙궁주가 참석하면 일이 상당히 재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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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준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백설향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도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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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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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백설향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누가 뭐라 하건 그게 알 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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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당초 사파의 화경이라는 놈들은 남에게 별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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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득이 되거나 해가 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남이 뭘 하건 제 수련에나 집중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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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놈들이 아니라면 백설향이 신경 써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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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정치질이란 그따위 협잡질로 무언가를 얻어낼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이들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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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경이란 놈들이 느닷없이 편을 갈라먹고 누구 하나를 괴롭히는 게 아닌 이상(전문 용어로 따돌림이라 한다. 백설향은 친구가 없는 거지 따돌림을 당하진 않았다.) 정치질 따위는 백설향의 알 바가 전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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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가겠다! 음. 내 친우의 혼례에 참석하지 않을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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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명의 화경이 약속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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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인해 생길 문제? 그런 건 둘 중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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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향은 친구랑 놀 수 있어서 일부러 무시했고, 이서준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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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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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백설향에게 짧은 이별을 고하고 빙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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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까 이런 일이 다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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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잔뜩 벌어졌던 빙궁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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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자신이 느닷없이 정체를 까고 북해빙궁주와 친구를 먹게 될 줄을 어떻게 예상하겠는가? 그게 됐으면 돗자리를 깔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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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이런 일이 일어난 가장 큰 이유로 백설향의 유감스러움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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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신경 좀 써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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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안 별 문제 없이 빙궁을 운영해 온 것은 알지만, 백설향이라는 인간의 실체를 알게 되자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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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일단 소궁주 신분인 데다, 그 능력을 증명하기까지 했으니 빙궁에 오고 싶다면 언제든지 와도 된다! 기별을 해주면 좋지만 아니더라도 전혀 상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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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려 첫 친구가 생겨 들뜬 열 살배기 꼬맹이가 아니라 그 북해빙궁주의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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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하니 세 번의 부탁 자체가 뭔가의 통과 의례 같은 것이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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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물 토벌로써 무력을 증명하고, 진법의 수정을 돕는 것으로 그 지력과 통솔력을 증명하고, 궁주만이 만질 수 있는 빙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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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냥 백설향이 했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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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걔 어떡하지. 너무 걱정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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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갔는데 망해있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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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서준이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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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건 그거고. 서준은 우선 당장 중요한 일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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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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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궁을 떠나 얼마간을 이동한 서준의 눈앞에는 나름 번듯한 건물 하나가 있었다. 백윤이 살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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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의 거처는 무식할 정도로 깊은 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중원에 빼곡한 산들이며 그 산들의 복잡함을 생각해봤을 때 자력으로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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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당초 중원의 산이란 마경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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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고수들이 득실거리는 깊은 산 속에는 어지간하면 발을 들이지 않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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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서준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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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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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건물 안에 들어서 백윤이 설명했던 대로 우측에 있는 방의 서랍을 뒤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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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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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머리통만 한 수정구. 그것을 빤히 들여다보던 서준은 그 안으로 조심스레 내공을 흘려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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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을 이리저리 만져주며 베껴낸 그의 내공과 꼭 닮은 성질의 내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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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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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사용자 인증을 해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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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공으로 잠금 해제에 성공한 서준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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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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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구의 위로 여러 개의 디스플레이가 떠올랐다. 누가 봐도 서역의 것이 분명한 물건임에도, 한자 패치가 되어 있는지 읽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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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현대인이었던 것에 속하는 서준은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요령으로 잠시 수정구의 기능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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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능을 현대인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대충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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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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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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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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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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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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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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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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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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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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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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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너무 어이가 없었던 까닭에 서준은 자연스럽게 수정구 내에 존재하는 게임을 실행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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뿅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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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가 조종할 수 있는 전투기가 포탄을 쏴대고, 그에 맞서는 외계 생명체들 역시 온갖 공격을 가하며 전투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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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그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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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그였던가. 좀 최신 게임으로 치면 드래곤 플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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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 게임 장르를 뭐라고 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대충 슈팅 게임이라고들 불렀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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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수정구 속 게임은 서준의 기억 속 게임들보다 훨씬 진보된 듯한 화질과 퀄리티를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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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은 간단하지만 엄청 재밌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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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강제적으로 도파민 디톡스 중이던 서준에게는 이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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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진짜 금춘봉 볼 만지기의 백 분의 일 정도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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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서준은 멍하니 게임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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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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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이틀이 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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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기록창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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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 99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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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d - 99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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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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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 8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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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46등이 백윤의 기록이다. 1등부터 45등까지 자신의 기록으로 줄 세우기를 성공한 서준이 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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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도 개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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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럴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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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만에 마주친 게임이라는 마약에 홀딱 빠졌던(마약 중독은 화경의 정신력에 흠집도 못 낸다) 서준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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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에는 이런 물건까지 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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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멸신회 놈들도 쓰는 걸 왜 무림맹에서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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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초절정쯤 되면 딱히 기술로 인한 불편함을 느낄 건 없다지만, 통신 시간이 단축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건 서준보다도 똑똑한 양반들이 더욱 잘 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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띡-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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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의문을 뒤로한 서준은 수정구를 조작해 연락처를 열었다. 그리고는 몇 없는 연락처 중 ‘검광(劍狂)’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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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호 같지만 저게 이름이다. 정확히는 자기가 그냥 검광이라 칭하고 다녀서 그게 이름이 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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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백윤에게 놈에 대해 들었던 얘기를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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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광은 멸신회를 세웠던 최초의 일원들 중 한 명이다. 600년 전부터 화경이었던 노괴라는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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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광? 검에 미친 놈이라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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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화경쯤 되면 무언가에 집착하기 마련이지만, 놈은 유독 그것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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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신회는 신에 대한 공포로부터 생겨난 조직이다. 허나 멸신회의 모두가 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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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광 역시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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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멸신회에 몸을 담은 이유는 공포 따위가 아니다. 정사마에 얽매이지 않는 별개의 세력. 즉 정사마의 검법을 두루 익힐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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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해봐도 말이 안 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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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마의 검법을 두루 익힌다? 익힐 수야 있겠지만 어떻게 그 무공들을 구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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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서준은 그 답을 눈치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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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씨발 새끼, 금가를 멸문한 것도 황운신검 때문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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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검광은 본디 종남파 소속의 무인이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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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의 유명한 검법으로는 천하삼십육검이 있지만, 그보다 윗줄에 놓이는 무공으로 태을무형검(太乙無形劍)이라는 검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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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검[無形劍]이 아닌, 일정한 형(形)이 없다 하여 무형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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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무형검은 오직 그 이치만을 따르는 형식 없는 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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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가로막힌 검광은 문득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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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초승유초(無招勝有招). 그것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초식을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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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는 멸신회에 몸을 담은 뒤 중원의 검법들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 다시 한 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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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초식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것을 넘어선 검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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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에는 수많은 검법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로 평가받는 검법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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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창시한 검법. 황운신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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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운신검의 초식을 깨닫고, 그로 말미암아 태을무형검을 발전시킨다면 진정 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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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광은 그러한 일념 아래 검신이 등선한 금가를 멸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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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은 괴물이다. 놈의 눈에 띈 이상 나 역시 그에 협력하는 수밖에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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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백윤이 검광에게 머리채가 잡혀 끌려간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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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은 금가의 황운신공과 청운신공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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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이 같은 무공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의 차이에 따라 구분지어둔 것이 그 두 무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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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은 어쩌면 그것에서 눈앞의 벽을 깨부술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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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더해 검광이 제안했다. 자신의 일을 돕는다면 소수마공(素手魔功)을 넘겨주겠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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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마공? 그게 왜 그놈 손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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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마교의 소수마후를 베고 손에 넣었다는 모양이다. 어찌 되었건 극음의 무공이니 빙백신공의 대성에 도움이 되리라 여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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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백윤은 소수마공을 손에 넣지 못했다. 황운신공이니 청운신공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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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를 습격했을 당시 초절정과 화경의 경계에 있던 신검금가주와 몇몇 장로들이 예상 외의 실력으로 검광과 백윤을 막아섰고, 금가는 무공의 비급들을 파기할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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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 후계자, 신혈의 보유자이자 신검의 맥을 이은 금희 역시 도주에 성공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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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신혈을 제거한다는 명분이 있기에 멸신회 차원에서도 지원을 받아냈지만…, 일은 실패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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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광은 눈앞에서 신에 다다를 단서를 놓쳐버렸다. 최소한 본인은 그리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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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운신검을 얻지 못한 검광은 미쳐날뛰었고, 제아무리 백윤이라 한들 그런 검광에게 소수마공을 내놓으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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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들은 서준은 검광을 끌어낼 계책을 하나 생각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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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그토록 원한다던 황운신검? 비록 대성하진 못했지만 일단 전부 알고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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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구가 있으니 놈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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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본모습으로 도발해도 당장 뛰어올 것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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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확률을 약간이라도 높이기 위해 백윤의 모습과 목소리 역시 베껴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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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루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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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백윤의 모습을 한 채 놈에게 영상 통화를 걸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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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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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영상 통화라니. 서준은 신호 연결음을 들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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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월도 수정구를 하나 가지고 있다 하니, 그걸 챙겨서 남궁세가에 가져가면 자신이 밖을 싸돌아다닐 때도 매일마다 춘봉이나 수아 누나와 통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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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루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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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은 도대체 왜 이런 기술을 받아들일 생각조차 않고 전서구나 날려대고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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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루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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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진지하게 무림에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사이, 신호 연결음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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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 뚜- 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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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전화를 받았다는 게 아니고, 그냥 연결이 끊겼다는 소리다. 아무래도 연결 시간이 초과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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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새끼 왜 전화를 안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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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받을 때까지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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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친 이서준의 전화 테러가 검광의 수정구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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