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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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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호란 무인의 행적을 방증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다.

멸사천군이라는 별호 역시 그 행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멸사(滅邪). 사를 멸하다.

어느 정도 무림에 발을 담근 이라면 그 별호에서 물씬 풍겨오는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이의 혼례에 사흑련 소속의 북해빙궁주가 참석하면 일이 상당히 재밌어진다.

이서준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백설향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도 있는 것.

‘알 게 뭐냐.

다만 백설향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누가 뭐라 하건 그게 알 바인가?

애시당초 사파의 화경이라는 놈들은 남에게 별 관심이 없다.

자신에게 득이 되거나 해가 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남이 뭘 하건 제 수련에나 집중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놈들이 아니라면 백설향이 신경 써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본디 정치질이란 그따위 협잡질로 무언가를 얻어낼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이들의 것.

화경이란 놈들이 느닷없이 편을 갈라먹고 누구 하나를 괴롭히는 게 아닌 이상(전문 용어로 따돌림이라 한다. 백설향은 친구가 없는 거지 따돌림을 당하진 않았다.) 정치질 따위는 백설향의 알 바가 전혀 아닌 것이다!

“그러면 가겠다! 음. 내 친우의 혼례에 참석하지 않을 수는 없지!”

그렇게 두 명의 화경이 약속을 잡았다.

그로 인해 생길 문제? 그런 건 둘 중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백설향은 친구랑 놀 수 있어서 일부러 무시했고, 이서준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무림이었다….

서준은 백설향에게 짧은 이별을 고하고 빙궁을 떠났다.

‘살다 보니까 이런 일이 다 있네.

그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잔뜩 벌어졌던 빙궁행이었다.

그야 자신이 느닷없이 정체를 까고 북해빙궁주와 친구를 먹게 될 줄을 어떻게 예상하겠는가? 그게 됐으면 돗자리를 깔았지.

서준은 이런 일이 일어난 가장 큰 이유로 백설향의 유감스러움을 꼽았다.

‘종종 신경 좀 써줘야겠다.

오랜 세월 동안 별 문제 없이 빙궁을 운영해 온 것은 알지만, 백설향이라는 인간의 실체를 알게 되자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너는 일단 소궁주 신분인 데다, 그 능력을 증명하기까지 했으니 빙궁에 오고 싶다면 언제든지 와도 된다! 기별을 해주면 좋지만 아니더라도 전혀 상관 없느니라!

이게 무려 첫 친구가 생겨 들뜬 열 살배기 꼬맹이가 아니라 그 북해빙궁주의 인사다.

듣자하니 세 번의 부탁 자체가 뭔가의 통과 의례 같은 것이었다나?

마물 토벌로써 무력을 증명하고, 진법의 수정을 돕는 것으로 그 지력과 통솔력을 증명하고, 궁주만이 만질 수 있는 빙정은….

그건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냥 백설향이 했다는 모양이다.

진짜 걔 어떡하지. 너무 걱정되는데.

‘다음에 갔는데 망해있는 건 아니겠지?

쩝, 서준이 입맛을 다셨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서준은 우선 당장 중요한 일에 집중했다.

“오호.”

빙궁을 떠나 얼마간을 이동한 서준의 눈앞에는 나름 번듯한 건물 하나가 있었다. 백윤이 살던 곳이다.

백윤의 거처는 무식할 정도로 깊은 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중원에 빼곡한 산들이며 그 산들의 복잡함을 생각해봤을 때 자력으로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위치였다.

애시당초 중원의 산이란 마경 그 자체.

은거고수들이 득실거리는 깊은 산 속에는 어지간하면 발을 들이지 않는 편이 낫다.

물론 서준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분명 이쯤에….”

그는 건물 안에 들어서 백윤이 설명했던 대로 우측에 있는 방의 서랍을 뒤적였다.

“찾았다.”

사람의 머리통만 한 수정구. 그것을 빤히 들여다보던 서준은 그 안으로 조심스레 내공을 흘려넣었다.

백윤을 이리저리 만져주며 베껴낸 그의 내공과 꼭 닮은 성질의 내공이었다.

찰칵-!

[Welcome, 사용자 인증을 해제합니다.]

내공으로 잠금 해제에 성공한 서준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어이가 없네, 진짜.”

수정구의 위로 여러 개의 디스플레이가 떠올랐다. 누가 봐도 서역의 것이 분명한 물건임에도, 한자 패치가 되어 있는지 읽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나름 현대인이었던 것에 속하는 서준은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요령으로 잠시 수정구의 기능을 살폈다.

그 기능을 현대인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대충 이렇다.

통화

단체 통화

영상 통화

문자

이런저런 설정

게임

카메라

녹음

달력

기타 등등….

조금 너무 어이가 없었던 까닭에 서준은 자연스럽게 수정구 내에 존재하는 게임을 실행시켰다.

뿅뿅-

유저가 조종할 수 있는 전투기가 포탄을 쏴대고, 그에 맞서는 외계 생명체들 역시 온갖 공격을 가하며 전투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아, 이거 그거네.

갤러그였던가. 좀 최신 게임으로 치면 드래곤 플라이트?

그쪽 게임 장르를 뭐라고 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대충 슈팅 게임이라고들 불렀던 것 같은데.

다만 수정구 속 게임은 서준의 기억 속 게임들보다 훨씬 진보된 듯한 화질과 퀄리티를 자랑했다.

조작은 간단하지만 엄청 재밌다는 소리다.

일단 강제적으로 도파민 디톡스 중이던 서준에게는 이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이거 진짜 금춘봉 볼 만지기의 백 분의 일 정도는 재밌다.

그렇게 서준은 멍하니 게임을 이어갔다.

  • Clear!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이틀이 지나 있었다.

서준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기록창을 살폈다.

1st - 99458

2nd - 99342

46 - 85421

참고로 46등이 백윤의 기록이다. 1등부터 45등까지 자신의 기록으로 줄 세우기를 성공한 서준이 픽 웃었다.

“게임도 개못하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럴 때가 아니다.

몇 년만에 마주친 게임이라는 마약에 홀딱 빠졌던(마약 중독은 화경의 정신력에 흠집도 못 낸다) 서준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서역에는 이런 물건까지 있단 말이지.

도대체 멸신회 놈들도 쓰는 걸 왜 무림맹에서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초절정쯤 되면 딱히 기술로 인한 불편함을 느낄 건 없다지만, 통신 시간이 단축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건 서준보다도 똑똑한 양반들이 더욱 잘 알 것이었다.

띡- 띠링-

일단은 의문을 뒤로한 서준은 수정구를 조작해 연락처를 열었다. 그리고는 몇 없는 연락처 중 ‘검광(劍狂)’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별호 같지만 저게 이름이다. 정확히는 자기가 그냥 검광이라 칭하고 다녀서 그게 이름이 됐단다.

서준은 백윤에게 놈에 대해 들었던 얘기를 되새겼다.

“검광은 멸신회를 세웠던 최초의 일원들 중 한 명이다. 600년 전부터 화경이었던 노괴라는 소리지.”

“검광? 검에 미친 놈이라는 말인가?”

“그래. 화경쯤 되면 무언가에 집착하기 마련이지만, 놈은 유독 그것이 심하다.”

멸신회는 신에 대한 공포로부터 생겨난 조직이다. 허나 멸신회의 모두가 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검광 역시 그러했다.

“놈이 멸신회에 몸을 담은 이유는 공포 따위가 아니다. 정사마에 얽매이지 않는 별개의 세력. 즉 정사마의 검법을 두루 익힐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지.”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해봐도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정사마의 검법을 두루 익힌다? 익힐 수야 있겠지만 어떻게 그 무공들을 구한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서준은 그 답을 눈치챘다.

“…그 씨발 새끼, 금가를 멸문한 것도 황운신검 때문이었나?”

“그래. 검광은 본디 종남파 소속의 무인이었다고 들었다.”

종남의 유명한 검법으로는 천하삼십육검이 있지만, 그보다 윗줄에 놓이는 무공으로 태을무형검(太乙無形劍)이라는 검법이 있다.

흔히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검[無形劍]이 아닌, 일정한 형(形)이 없다 하여 무형검이다.

태을무형검은 오직 그 이치만을 따르는 형식 없는 검법.

벽에 가로막힌 검광은 문득 떠올렸다.

‘무초승유초(無招勝有招). 그것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초식을 알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그는 멸신회에 몸을 담은 뒤 중원의 검법들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제는 초식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것을 넘어선 검법이 필요하다.

중원에는 수많은 검법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로 평가받는 검법이 하나 있다.

신이 창시한 검법. 황운신검이다.

황운신검의 초식을 깨닫고, 그로 말미암아 태을무형검을 발전시킨다면 진정 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검광은 그러한 일념 아래 검신이 등선한 금가를 멸문시켰다.

“놈은 괴물이다. 놈의 눈에 띈 이상 나 역시 그에 협력하는 수밖에 없었지.”

물론 백윤이 검광에게 머리채가 잡혀 끌려간 것은 아니다.

백윤은 금가의 황운신공과 청운신공에 주목했다.

본질이 같은 무공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의 차이에 따라 구분지어둔 것이 그 두 무공이다.

백윤은 어쩌면 그것에서 눈앞의 벽을 깨부술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다.

그에 더해 검광이 제안했다. 자신의 일을 돕는다면 소수마공(素手魔功)을 넘겨주겠다 한 것이다.

“소수마공? 그게 왜 그놈 손에 있지?”

“과거 마교의 소수마후를 베고 손에 넣었다는 모양이다. 어찌 되었건 극음의 무공이니 빙백신공의 대성에 도움이 되리라 여겼지.”

하지만 백윤은 소수마공을 손에 넣지 못했다. 황운신공이니 청운신공 역시 그렇다.

금가를 습격했을 당시 초절정과 화경의 경계에 있던 신검금가주와 몇몇 장로들이 예상 외의 실력으로 검광과 백윤을 막아섰고, 금가는 무공의 비급들을 파기할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그 후계자, 신혈의 보유자이자 신검의 맥을 이은 금희 역시 도주에 성공했으니.

“일단 신혈을 제거한다는 명분이 있기에 멸신회 차원에서도 지원을 받아냈지만…, 일은 실패로 돌아갔다.”

검광은 눈앞에서 신에 다다를 단서를 놓쳐버렸다. 최소한 본인은 그리 생각했다.

황운신검을 얻지 못한 검광은 미쳐날뛰었고, 제아무리 백윤이라 한들 그런 검광에게 소수마공을 내놓으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거기까지 들은 서준은 검광을 끌어낼 계책을 하나 생각해낼 수 있었다.

놈이 그토록 원한다던 황운신검? 비록 대성하진 못했지만 일단 전부 알고는 있다.

수정구가 있으니 놈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그냥 본모습으로 도발해도 당장 뛰어올 것 같긴 하지만….

서준은 확률을 약간이라도 높이기 위해 백윤의 모습과 목소리 역시 베껴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뚜루루루-

서준이 백윤의 모습을 한 채 놈에게 영상 통화를 걸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어이가 없네 진짜.

무림에서 영상 통화라니. 서준은 신호 연결음을 들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능월도 수정구를 하나 가지고 있다 하니, 그걸 챙겨서 남궁세가에 가져가면 자신이 밖을 싸돌아다닐 때도 매일마다 춘봉이나 수아 누나와 통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뚜루루루-

무림맹은 도대체 왜 이런 기술을 받아들일 생각조차 않고 전서구나 날려대고 있는 건지.

뚜루루루-

서준이 진지하게 무림에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사이, 신호 연결음이 끊겼다.

뚜- 뚜- 뚜-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는 게 아니고, 그냥 연결이 끊겼다는 소리다. 아무래도 연결 시간이 초과된 듯했다.

“이 개-새끼 왜 전화를 안 받아.”

그렇다면 받을 때까지 건다.

빡친 이서준의 전화 테러가 검광의 수정구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