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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육명문이라는 거대한 세력의 가주. 그런 이의 죽음은 어떤 식으로든 시대의 흐름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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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타의에 의한 죽음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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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만찬은 그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회합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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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어찌 되었든 중원에 퍼져있던 십육명문의 세력들이 남궁세가라는 한 연못에 모여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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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대부분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아주 드문 일. 애도의 여부와는 별개로 만찬장에서 정치판이 벌어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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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허도 선배도 오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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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런 흐름에서 한 걸음 물러나 만찬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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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인간이라는 종을 넘어선 화경이라는 경지에 다다랐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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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경이 신경써야 할 것은 같은 화경의 무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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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자리에서 서준이 신경써야 할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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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모인 것은 십육명문의 문주들이 아닌 십육명문의 장로들에 불과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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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들의 뒤에 화경의 무인이 있기야 하지만, 서준이 그런 것을 크게 신경쓰는 성격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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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점메추니 저메추니 하는 말 있잖아요. 그게 그냥 젊은이들이 쓰는 말이 아니라 좀, 그런 말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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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이거 큰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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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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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하루에 한 번은 그 말을 쓴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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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도진인이 당황한 낯으로 수염을 쓸어내렸다. 서준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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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말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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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비록 나이가 조금 있지만 마음만은 젊게 살고자 했네. 사실 그래야 무학에도 뭔가 발전이 있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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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듣고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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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장에는 십육명문의 거의 대부분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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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십육명문의 조문객 전원이 참석하게 되면 인원이 너무 많아지기에 대표로 몇 사람만이 참석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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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열여섯 세력 중 곤륜과 팽가를 제외한 열네 개의 세력이 참석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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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사람의 수가 적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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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래서, 황실은 왜 삼황자가 안 오고 그쪽이 온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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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말에 황제가 실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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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재밌어 보이잖나. 사람이 이만큼 모이면 뭔가 재밌는 일 하나 정도는 일어나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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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못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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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끌끌 혀를 차며 허공섭물로 저 멀리 있는 요리 하나를 집었다. 모두부(毛豆腐)다. 우리 춘봉이가 꽤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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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춘부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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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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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새침한 표정으로 허공에 떠있는 모두부를 제 젓가락을 이용해 집었다. 그리고는 서준을 뾰로통하니 째려보며 전음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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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리에서 뭐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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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모두부를 냉큼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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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긴 먹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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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삐죽 웃자 춘봉이 코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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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거 싫어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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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영 별로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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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황제가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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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은 안 먹나? 이거 맛있는데. 일부러 이것 때문에 가끔 안휘로 마실도 나오고 그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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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부를 한 입 가득 쑤셔넣은 황제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은 그냥 중지만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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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까칠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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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실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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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정이야 어찌 됐건, 만찬장의 두 화경이 나름 괜찮은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었기에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는 꽤나 화기애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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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위기에 용기를 얻었을까? 당가의 여인 하나가 살갑게 웃으며 서준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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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미인이 술시중을 들겠다는데 싫어할 사내는 없다. 여인의 미소에는 긴장과, 그보다 큰 자신감이 어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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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협, 실례가 안 된다면 혹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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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든 주전자를 들고 다가온 여인이 자연스레 서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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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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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그 직전에 몸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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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에게 닿으려던 손이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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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가 몸에 손 닿는 걸 안 좋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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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손을 허공섭물로 붙잡은 서준이 그녀를 묘한 눈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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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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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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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급히 물러났다. 그녀의 낯이 창백하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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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경의 호의를 사는 것은 좋으나, 자칫 잘못하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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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사고는 보통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주 바깥에 있는 바, 당가의 여식이라는 방패가 무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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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급히 자리로 돌아가려 하자 황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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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저 까칠한 친구는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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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신의 잔을 들어 단번에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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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잔이 비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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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조심스레 황제에게 향했다. 서준이 그 뒷모습을 가는 눈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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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내에서 뭐 고달픈 일이라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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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굳이 먼저 나서서 술을 따라주려 드는지 모르겠다. 당가의 여식이면 공주쯤 되는 위치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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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혀를 차며 옆자리의 남궁수아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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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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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럼 한 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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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술을 따라주니 남궁수아가 쿡쿡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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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매가 엄청 쳐다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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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대로 춘봉이 집요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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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부이도 한 잔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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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됐어. 술맛은 영 모르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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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은 고개를 저으며 주변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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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여인을 묘한 눈으로 보았을 때, 일순 분위기가 경직됐다. 대단하신 십육명문의 사람들이 화경인 오빠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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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건 딱히 알 바 아니지만 오빠의 반응이 영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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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여자 싫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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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치고는 아침마다 언니랑 껴안고 만지고 별 난리도 아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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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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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고민하던 때였다. 종남파의 장로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묘하게 경직된 표정을 지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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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사천군, 혹시 질문 하나 해도 괜찮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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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뭐, 괜찮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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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춘봉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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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장로의 표정. 저거 그거다. 이 자리의 무언가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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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나 터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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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으나, 말리려던 춘봉은 그냥 에휴 한숨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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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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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꼭 맞아봐야 현실을 깨닫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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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의 장문인이 눈앞의 칼까지 막아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스스로의 배분을 믿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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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이해하고자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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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세상에 사람은 많다. 당연히 이해하기 힘든 사람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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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은 그냥 이게 세상의 이치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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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의 장로로 있던 조충이 그대의 손에 죽었다는데, 그 전말을 들을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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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또 꽤나 흉흉한 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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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를 죽이다니? 자신도 모르는 일이다. 춘봉이 슬쩍 곁눈질로 서준의 표정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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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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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이던 서준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그의 눈이 종남의 장로를 보았다. 차가운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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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버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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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룡점정으로 서준의 눈썹이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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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노. 아니, 중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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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꼴깍 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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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림맹의 장로이기 전에 종남의 장로였소. 내게 일의 전말을 들을 자격 정도는 있다고 생각하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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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하지 못할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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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말에는 어투라는 것이 있다. 같은 말을 해도 어투에 따라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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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은 저 장로의 어투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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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까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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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조심스레 제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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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하게 머리를 치든 학은 일찍 죽기 마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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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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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병신이 지껄인 말인데, 거기까지는 못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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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듣지 못한 듯 종남의 장로가 일순 당황했으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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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런 말을 했다고 한들 일 처리가 너무 성급했소. 최소한 종남에 어느 정도 양해를 구했어야 도리에 맞지 않소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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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깍, 춘봉이 침을 삼켰다. 종남의 장로가 끝내 자살을 선언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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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자 오히려 저 장로의 사고방식이 조금 궁금해진다. 사실 힘을 숨기고 있는 화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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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굴 눈을 굴리던 춘봉이 슬쩍 서준의 표정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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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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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의 눈썹이 들썩였다. 서준의 반응이 생각보다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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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극대노하여 당장 장로의 목을 뽑아버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화가 덜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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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가주님이 등선하셨다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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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도 남궁수아가 꾸었던 꿈을 들었다. 그래서 며칠간 오빠의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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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라면 팔 하나? 아니면 정수리가 조금 오목해지는 선에서 끝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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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서준의 행동을 기다릴 때, 누군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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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이거 걸작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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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였다. 그는 얼굴이 벌겋게 물들 때까지 웃음을 터뜨리더니, 옆에 있던 당가의 여식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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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떻게 생각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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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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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손이 여인의 턱을 움켜잡았다. 여인의 낯이 희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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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주제도 모르는 놈이 날뛰는 걸 봐라. 도대체 뭘 믿는 걸까. 종남의 장문인? 제 알량한 배분? 그도 아니면 머릿속이 꽃밭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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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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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너도 그리 생각하는구나. 네가 원한다면 그리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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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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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손을 놓았다. 다리가 풀린 여인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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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실실 웃으며 종남의 장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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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당… 뭐였더라? 아무튼 이 아이가 네 죽음을 원한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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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동시에 허공에 끔찍한 열기가 한데 뭉쳤다. 극에 이른 천일양제극화신공이 허공에 작은 태양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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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의 장로가 반응하는 것보다 빠르게 태양이 그의 머리를 향해 내리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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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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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의 장로가 의자째 뒤로 넘어갔다. 그의 눈이 거세게 떨렸다. 코앞에서 흩어지는 태양의 열기. 그것을 막아낸 것은 구체의 형태를 취한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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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의 장로는 숨을 몰아쉬며 서준을 보았다. 방금 그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정말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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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게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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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손을 휘둘렀다. 뻐억-! 공간을 격한 손짓에 머리를 얻어맞은 장로가 자리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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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를 향해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황제를 빤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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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뭐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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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될 것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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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실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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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를 모르면 치워야지. 나는 오히려 궁금한데. 저걸 왜 살려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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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이려 들길래. 갑자기 아니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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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참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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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반쯤 흘러내린 용포를 적당히 걸친 채 휘적휘적 서준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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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이 왜 멋대로 지껄일 수 있는지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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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황금빛 눈동자가 가늘어진 눈 사이로 요사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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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리거든. 우습게 본기라. 제 눈을 가린 벽이 얼마다 큰지 모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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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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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포를 무시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대신 나서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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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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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재밌어 보여서 나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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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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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알아봤나? 근데 빈말은 아이다. 저런 걸 가만히 두면 안 되는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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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버려두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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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알아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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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실실 웃었다. 서준도 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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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일단 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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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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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허리를 젖혀 피한 황제가 크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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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그것도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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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손이 용의 발톱처럼 구부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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