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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
아마 최근 가장 화제가 되는 연극일 것이다.
그 첫 공연날, 대학로를 활보하는 이들 중에 를 언급하지 않는 이를 보기 드물 정도였다.
“예능 봤어? 박정우랑 연화공주랑 나온 거.”
“봤지. 봤으니까 예매한 거잖아.”
남녀 커플이 그런 말을 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태양을 숨긴 달’은 10년 전, 큰 히트를 했던 드라마.
“근데 주서연이 누구야?”
“되게 예쁘다. 아직 고등학생이래.”
“어린 연화공주 역으로 나왔던 배우라던데?”
그것을 기억하는 젊은 층은 사실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으레 입소문이라는 게 그렇듯, 윗 세대가 시끄럽게 떠들면 관심을 가지는 법이다.
“와, 그럼 우연히 그 예능에서 박정우와 만난 거야?”
“원래 아역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욕먹었던 게 8화라더라. 그거 재연해서 지금 시끄러운 거고.”
“아하.”
서사.
배우의 이름을 알리는데 이만한 것이 없었다.
10년만에 복귀했다는 ‘천재 아역’.
화제의 배우, 박정우가 그녀에게 보인 반응.
그 모든 것이 한 곳에 어우러져, ‘주서연’이라는 이에 대한 궁금증을.
나아가 연극 ‘눈을 감고’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아직 주서연이라는 이름보단 ‘연화공주’네요.”
“음, 확실히 그렇군요.”
두 중년의 사내가 야외 카페에 앉아 그런 청년들의 대화를 들었다.
공연까지는 아직 2시간 남짓 남아있었으나, 이미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모인 상태였다.
“배우의 파급력이라, 이런 걸 체감한 건 정말 오랜만입니다.”
“단순한 관심으로 끝날지, 이걸 발판으로 삼아 날아오를지는 당사자에게 달린 거겠죠.”
.
본래 6퍼센트 남짓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예능.
하지만 ‘연화 고등학교’ 편을 기점으로 시청률은 단번 14퍼센트를 넘었다.
죽어가던 예능이 단번에 기사회생한 것이다.
그만큼 화제를 모았고, 유튜브에는 이미 ‘주서연’과 ‘태양을 숨긴 달’.
그리고 박정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상이 몇 개나 올라온 상태였다.
아마 이번 연극이 화제가 된 건, 그런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이 중에 진짜 연극을, 그리고 주서연을 보러 온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면 잘 모르겠다.
“배진환 감독님.”
가만히 상념에 잠겨있자, 함께 온 차동진 프로듀서가 말을 걸었다.
“그래도 감독님 덕에 저도 한번 볼 수 있겠네요.”
“애초에, 함께 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배진환, 그리고 차동진.
둘이 이번에 이 연극을 보러 온 것은 배우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GH 그룹에서 야심차게 준비 중인 어떤 영화.
그곳에서 가장 중요한 배역 중 하나를 찾는 중이었다.
이번 ‘눈을 감고’는 그에 대한 일환이었다.
“조도율 PD가 VIP 표를 줘서 살았죠. 아니었다면 입장조차 못했을 겁니다.”
배우나, 제작진에게 주어지는 소량의 표.
그것을 2장 받을 수 있었다.
배진환이나 차동진으로선 천만다행인 일.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서연, 말씀하시는 거죠?”
“예. 바로 ‘홍정희’역의 배우니까요.”
둘은 이번 이슈와 무관하게 이번 ‘눈을 감고’를 볼 생각이었다.
눈을 감고의 ‘홍정희’역.
그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를 보기 위해서.
그것이 서연이 된 건 우연이었다.
“젊고, 임펙트있는 악역 연기. 그것을 잘하는 배우는 드물죠.”
“그렇죠. 아직 마땅한 배우도 없었고.”
이미 연극을 몇 개나 보았다.
주로 비중있는 악역이 나오는 연극들.
드라마, 영화.
최근 본 영상매체 중 인상 깊은 악역 연기를 보인 배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디션이라도 해야 되나.
그런 마음이 들면서도, GH 그룹의 요청처럼 이름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라는 말도 있었다.
“확실히 예능에서 보여준 주서연 배우의 연기는 확실히 좋았습니다만.”
“그것과 악역 연기는 다르니 말이야.”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말은 유명하다.
연화공주와 홍정희는 너무나 다른 배역.
과연, 그 역할을 잘할지는 알 수 없는 일.
“슬슬 들어가죠. 입장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 예.”
줄을 서는 사람들을 보며, 둘도 천천히 일어섰다.
큰 기대는 품지 않으며.
“모두 준비됐죠?”
심청석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배우들을 보며 말했다.
너무 일이 커졌다.
그만큼 관도 커졌고, 기대감도 몇 배는 커진 게 느껴졌다.
는 본래부터 인지도가 있던 연극이지만, 결국 로맨스 코미디.
당연히 ‘대작’과는 거리가 있었다.
“괘, 괜찮을까요?”
그런 말을 꺼낸 건, 송민서 역의 이혜진이었다.
본래는 그녀는 어디까지나 3회차를 담당할 예정이었으나, 순서가 바뀌고 말았다.
눈을 감고의 첫 공연인 1회차.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럼 뭐, 안 괜찮으면 어떡할 건데요?”
심청석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배우가 여기서 할 말인가 싶었으니까.
보통은 적당히 달래줄 만도 하건만 심청석은 그런 게 없었다.
“계속 연습했잖습니까. 준비도 열심히 했고, 자신감을 가져요.”
“네, 네.”
조금 기가 죽은 이혜진의 반응에 심청석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연습 때부터 그러더니.’
송민서 역의 순서를 바꿨어야 했나.
그런 고민이 들 정도였다.
반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네.’
고요히 눈을 감은 서연이 보였다.
연습 때는 정말 훌륭했으나, 실전은 어떨지 모른다.
서연은 아직 고등학생.
심적으로 부담감에 취약할 나이였으니까.
‘하지만.’
를 떠올렸다.
그때 그녀를 바라보던 학생의 수는 이보다 많았다.
심지어, TV로, 유튜브로 방영되었을 정도.
그러니 괜찮다.
심청석은 서연을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오랜만에 연기할 맛이 있는 상대.
차라리 송민서 역이 그녀였다면 어땠을까 할 정도로.
‘그럼 망했겠지.’
서연 때문이 아니라, 홍정희 역을 이혜진이 맡아야 했을 테니까.
그녀는 악역 연기에 재능이 없다.
심청석은 그건 확신할 수 있었다.
“갑시다.”
조금은 불안한 가운데, 극의 막이 올랐다.
「저기요!」
날카로운 배성학의 외침이 울린다.
짜증이 진득하게 섞인 목소리.
성큼성큼 다가가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여성의 팔을 잡아챈다.
「몇 번이나 불렀는데 왜 대답이 없어요! 물건 떨어뜨리셨다니까요!」
그런 배성학의 말에 무구한 얼굴로 바라보는 여성.
「저 귀가 안 들려요.」
여성의 말에 배성학은 크게 당황한 눈이었다.
설마 귀가 안 들릴 줄은 몰랐다는 모습.
그렇게, 배성학과 송민서의 첫 만남이 시작된다.
인기 아이돌과 귀머거리 여성.
도저히 얽힐 일이 없는 둘의 관계가 연결되며, 흘러가는 극의 스토리.
아이돌인 배성학의 노래를 듣고 싶은 송민서와.
그녀에게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배성학의 감정선이 관객을 자극한다.
‘연극은 처음인데 꽤 괜찮네?’
‘저 배우, 누구지? 되게 잘 생겼다.’
관객석의 반응도 좋았다.
하지만 모두가 좋은 건 아니었다.
‘배성학 역에 비해, 여주인공의 존재감이 약해.’
‘단순히 배역 문제는 아니야. 이건…… 미스군.’
지식이 좀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여길 것이다.
배진환 감독도 그중 하나였다.
첫 공연은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
어설프고, 실수도 있는 편.
그래서 첫 공연을 피하는 관객도 제법 있는 편이다.
‘흐음.’
배진환이 시큰둥한 얼굴로 연극을 관람하던 그때.
「아! 홍정희 씨군요.」
배성학의 연기톤이 달라졌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공연마다 매번 찾아오시죠? 낯이 익어요.」
특별할 것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느낌이 전혀 달랐다.
본래부터 좋았던 배성학의 연기가 날이 바짝 선 것처럼 매서워졌다.
감정이.
그 동작과 제스처가.
「아, 안녕하세요. 호, 홍정희라고 해요.」
그 연기를 받은 건 몸을 움츠리는 소심한 여성.
그녀의 등장과 함께 극의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홍정희.
이 의 메인 악역.
‘주서연.’
배진환은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연화공주와는 전혀 달라.’
옆에 앉은 차동진과 시선을 마주친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이번 연극은 오직, 그녀를 보기 위해 온 자리였으니까.
과연 기대만큼 해줄지.
아니면 기대에 못 미칠지.
그런 가운데, 3막이 시작되었다.
홍정희의 비중이 가장 큰 3막이.
“애정? 아, 그거 지금도 신경 쓰고 있었어?”
극의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서연은 심청석에게 물었다.
“네, 아무래도 이제 부족한 연기를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요.”
“흠, 그럴만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애정이라. 확실히 홍정희는 배성학에게 애정을 품었다.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 건 단점. 그렇게 여기는 거겠지?”
“네.”
이건 꽤 큰 문제였다.
여태 서연이 해온 홍정희의 감정선과는 달라질 수 있었으니까.
배역을 몰입하는데 방해가 되거나,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욕심이 너무 많아. 너는.”
“네?”
“이건, 팁인데.”
그는 검지를 피며 말했다.
“가끔은 연기에 속임수도 필요한 법이야.”
“속임수라면?”
“애정, 뭐 필요하긴 해. 홍정희가 날뛰는 건 결국 배성학을 위해서니까.”
하지만.
“하지만 홍정희가 극에서 맡은 역할은 뭐지? 악역이잖아.”
애정이 드러나면 좋다.
하지만 구분해야 한다.
극에서 홍정희의 역할.
애정을 드러내는 건 좋지만, 없어도 전혀 상관없다.
적어도 심청석의 생각은 그렇다.
“작자의 생각과, 해석하는 사람의 생각은 꼭 일치하지 않지.”
“…….”
“너도 무슨 말인지 알 텐데?”
단지 피하고 있을 뿐.
“완벽함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걸.”
심청석과 나누었던 대화.
서연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3막의 시작.
수많은 관객이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나는 홍정희.’
숨을 내쉰다.
움츠렸던 몸에 힘을 빼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만든다.
표지우의 감정을 모사하여 해석한 홍정희를.
지금 이 순간, 서연은 완벽히 홍정희와 하나가 된다.
악역.
그래, 이번에 자신이 왜 이 배역을 맡았는가.
‘홍정희가 가진, 열등감. 음습함. 그리고 집착.’
그것을 강조한다.
속임수.
심청석의 말처럼, 그것을 극한으로 나타낸다면 관객은 결국 그 이유를 찾는다.
홍정희가 저런 행동을 하는 이유.
애정을 연기하지 않아도, 모든 행동이 애정 때문이라 착각할 수 있도록.
「흐.」
서연의, 홍정희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순간, 관객석이 얼어붙었다.
무언가, 달랐다.
어깨를 들썩이며 낮은 웃음을 흘리는 홍정희.
고개를 들자, 어두운 조명 아래 보이는 하얀 얼굴이 있었다.
주서연.
연화공주.
그런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섬뜩한 분위기.
절대 동일 인물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거짓말.」
홍정희의 독백이 시작된 순간.
배진환은 순간 몸을 벌떡 일으킬 뻔 했다.
‘이거…….’
그동안 그가 찾던 배우.
그의 영화를 빛나게 해줄 악역.
어쩌면 그 당사자를 지금 찾은 건지도 몰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