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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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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첫 촬영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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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눈앞에 있는 커다란 돼지 머리를 보며, 아연실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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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서연 씨. 순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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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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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다른 배우 몇 명과 함께, 돼지 머리에 큰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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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영화나 드라마 촬영 전, 고사를 지내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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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가 잘 되길 기원하는, 그런 일종의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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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태숨달에 출연했을 적에는 경험해본 적 없었기에 서연은 내심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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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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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돼지 머리의 모습에 서연은 뭐라 형용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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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에서 보았던 크리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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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는, 겁이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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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자신이 단 한 번도 멘탈이 약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난생 처음 느낀 공포란 굉장히 충격이 커서 이래저래 마음에 남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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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회복되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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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아, 컨디션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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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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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하 매니저의 말에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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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타인이 보기에 서연은 표정 변화 없이 태연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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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머리에 식겁했어도, 약간 눈동자가 흔들린 게 전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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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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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하는 그런 서연을 빤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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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배우라는 족속은 뭔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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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것이 특별한 배우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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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그녀가 맡았던 황민화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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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선 서연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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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러운 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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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압도하는 존재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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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섣불리 앞에서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고 짓눌릴 수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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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경우에는 어떠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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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이 길어질 수 있으니, 벤에서 쉬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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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맞은 외모와 달리, 굉장히 다정한 성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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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화와는 정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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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반대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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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화는 이미지부터 딱히 친절한 이미지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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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도 비슷할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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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하는 서연을 처음 봤을 때 얼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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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 변화가 적고, 감정을 느끼기 어려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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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인형 같은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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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황민화가 그러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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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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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의 아우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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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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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타이틀이 절대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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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에겐 황민화의 고급스런 아우라와는 다른 존재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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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빼앗는, 그런 압도적인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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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것이 배우가 지녀야 할 가장 큰 자질인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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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연기를 하면 그 분위기가 순식간에 휙휙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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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화를 처음 가까이서 보았을 때의 놀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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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연에겐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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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전에 황민화도 함부로 못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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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오른 배우들이 으레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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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화는 눈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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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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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지 못할 사람을 귀신같이 구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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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에, 서연은 분명 합격점이었던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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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저 다정한 언니인 척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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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이면을 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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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여기서 보고 있을게. 매니저가 가긴 어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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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상관없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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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만 열심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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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하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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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첫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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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개봉 날짜는 황민화 주연 영화와 날짜가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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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 그룹이 에서 칼을 갈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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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또한 거대 그룹의 자본이 들어간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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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오히려 자본만 보면 그쪽이 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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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은 해외자본까지 들어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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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이름값은 쪽이 우위였으나, 배우들만 봐도 유토피아 쪽이 탑급 배우가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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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체급이 절대 작은 건 아니나, 는 그보다도 위인 초대형 블록버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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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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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하는 몸을 푸는 서연을 보며,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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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황민화를 밟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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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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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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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촬영은 우연히 살인범이 도망치는 것을 본, 임승철 형사가 차서아를 쫓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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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장면은 씬 넘버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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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서 차서아와 형사들이 마주친 이후, 밤에 순찰 중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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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인 차서아와는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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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대로 찍는 스타일이 아니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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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넘버 30이라는 말에, 서연은 몸 상태를 체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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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촬영부터 달리기가 될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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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감독마다 촬영하는 스타일은 다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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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의 공정태 감독은 장면을 순서대로 찍는 스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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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 배진환은 그날 컨디션에 따라 적절한 장면을 찍는 스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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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되도록 힘든 장면을 먼저 찍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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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오늘 같은 경우에는 후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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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씨는 괜찮아요? 정말 대역 안 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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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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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여배우는 몸을 쓰는 장면은 대역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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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액션 연기만이 아니라, 장면 자체를 예쁘게 찍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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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런 속도감 중요한 추격씬은 더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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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차서아는 후드나 우비와 같이, 정체를 숨기기 쉬운 복장을 자주 입었기에 대역을 쓰기도 편한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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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알겠어요. 힘들면 언제든 바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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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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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은 달리기라고 해도,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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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서아가 일으킨 네 번째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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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추격해온 임승철 형사는, 막 현장에서 빠져나오던 차서아와 맞닥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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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첫 촬영부터 빡센 거 찍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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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처음이 빡세야, 뒤로 갈수록 쉬워진다 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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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를 쓰는 스태프가 있는지 그런 말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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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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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환 감독의 스타일을 잘 아는 스태프는 서연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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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위 말하는 완벽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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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장면, 생각하는 그림이 있었기에 되도록 그에 맞춰 장면이 나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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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탓에 몸을 쓰는 장면이 들어가면 처음엔 제가 하겠다고 나섰던 배우들도 점차 제풀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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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쓰는 연기는 어설프면, 없느니만 못한 장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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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달리지도 못하는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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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배진환이 납득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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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심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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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에겐 학교가 있어, 반가운 촬영 시간대였지만 다른 촬영진에겐 죽을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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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잘못하면 날밤 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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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연기력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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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대역한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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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마음이 들었지만, 배우가 하고 싶다 하니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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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트 챙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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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장면을 표시하는 슬레이트를 연출 막내가 손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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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촬영이 시작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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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감독이 스텐바이를 외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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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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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대로 준비가 됐음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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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환 감독의 시선이, 촬영장인 골목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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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씬에 출연하는 배우는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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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서아 역의 주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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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임승철 형사 역의 김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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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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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환 감독은 두 배우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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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라고 긴장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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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번 GH 그룹은 전권을 말 그대로 전부 감독에게 쥐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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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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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도 좋고, 비싼 배우가 아닌 배진환이 선택한 배우들로 멤버를 짤 수 있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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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헌은 연기파 배우였지만, 주연 경험은 많지 않은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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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대부분 악역이었고, 사극에서도 장군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 그런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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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배진환은 그의 연기력이 그게 전부가 아니리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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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텐과 잠재력이 충분히 있는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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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살리는 게 자신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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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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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는 아역이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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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배우의 캐스팅을 자유롭게 풀어둔 제작진에서 말이 나왔던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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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커리어가 단 두 개뿐인 배우에게 너무 막중한 역을 맡긴 게 아니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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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력이 인정되었다 해도, 높으신 분들은 숫자로 말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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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친 드라마도 단 3회 출연한 게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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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대 히트했지만, 그 정도로는 높으신 분들은 코웃음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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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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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는지, 높으신 분들이 보는 건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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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도 가 가져다준 파급력이 있었기에 넘어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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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공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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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하나 찍지 않은 서연은 그들에겐 긁지 않은 복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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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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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좋지만, 복권이란 당첨되는 경우가 적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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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나면 좋지만, 결국 꽝일 확률이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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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눈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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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보았던 홍정희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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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본 리딩에서 보았던 서연의 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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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번뜩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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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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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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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추격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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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을 뭣보다 강렬하게 나타내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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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비치는 심야 속에서 촬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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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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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옆에 어지럽게 놓여있던 쓰레기 더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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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살인사건을 쫓던 임승철 형사는 다급하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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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야. 대체, 어디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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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낡은 핸드폰을 내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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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가 들어왔던 시간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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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경찰서로 걸려 온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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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집에 들어온 것 같다는 겁에 질린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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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소 조차 전부 내뱉지 못하고 비명이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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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동료를 깨울 틈도 없이 임승철은 홀로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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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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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피해자가 전화로 말한 주소는 이 근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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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로 49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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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늘어선 주택가 사이를 누비며, 임승철은 무작정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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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신고가 들어오고 10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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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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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애써 머리를 흔들어 내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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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번이 되었을지 몰랐을 골목을 돌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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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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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우비를 쓴 이와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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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음에도 우비를 쓴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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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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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을 알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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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어둠을 삼키는 것 같은, 그런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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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철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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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우비를 적신, 붉은 핏물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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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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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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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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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울리는 노호성과 함께 임승철이 범인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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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뛰어넘으며, 달려드는 그의 모습에 범인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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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흉기는 처리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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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덩치차이가 컸기에, 범인은 싸우는 것보다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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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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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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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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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차게 달려가던 임승철 형사, 가 아니라 김대헌의 발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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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저렇게 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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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발이 저렇게 빠르니까 여태 못잡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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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이 들 정도의 달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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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컷컷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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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급히 배진환 감독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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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골목으로 쌩하고 사라져버린 서연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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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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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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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조금만 천천히 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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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이니 빠르게 도망치는 게 맞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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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것도 어느 정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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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씨 육상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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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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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부정했지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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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을 안 맡긴 이유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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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들은 저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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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번에는 합을 맞춰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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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짝, 박수를 치며 배진환이 큰 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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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작된 재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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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있었던 충격적인 달리기에 모두가 긴장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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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장면 잘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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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죠. 진짜 딱딱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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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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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호평 속에서 촬영이 마무리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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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밤을 새는 일도 없이, 순식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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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상징하는 첫 추격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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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공적인 시작에 배진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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