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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에서 자주 보던 애들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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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시 눈을 뜨며, 지연은 가장 먼저 눈에 띈 이들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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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과 마찬가지로 종편 드라마로 출연하던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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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지연을 알아보았는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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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가다 한두 번 마주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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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쪽에게는 내가 애나 마찬가지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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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나이를 생각하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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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 등장인물들의 나이는 십 대 후반, 이십 대 초반 정도로 설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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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작중에서도 씬이 격렬하거나, 수위가 높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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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감정선을 밀도 있게 다루는 게 중요하며, 그만큼 연기력이 받쳐줄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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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십 대의 연기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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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대의 연기력은 불안정하고, 이십 대도 미묘하긴 마찬가지지만 십 대보다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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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학교가 배경이 아닌 한, 관객들은 대체로 배역을 이십 대 이상으로 인식하는 것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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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희나 주서연처럼, 압도적인 무언가가 있지 않는 한, 십 대 배우에게 돌아가는 배역은 적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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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건 이번 오디션도 마찬가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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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과 동일한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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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이점이라기보다는 페널티에 가까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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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10번까지 들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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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의 순번은 거의 서른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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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끄트머리의 순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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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이 시간이 그저 지루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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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생각이 많아진 후에는 긴장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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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한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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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희, 그리고 서연과 했던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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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때 했던 것처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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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하게 뛰는 긴장감이 지연의 심장을 좀먹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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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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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의 눈에 들어오는 인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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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들 틈에서 묘하게 어색하게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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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와 선글라스, 거기에 마스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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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수상쩍기 그지없는 모습이지만, 그를 막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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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어, 오디션장의 스태프들은 반갑다는 듯, 인사하는 부류도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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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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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두리번두리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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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장의 대기 인원들을 살핀 후, 지연에게 잠시 멈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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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슬그머니 사라지는 꼴이, 마치 누군가를 연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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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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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있어도 이상한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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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관계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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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지연은 이내 신경을 끄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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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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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긴장은 풀린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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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숨어서 지켜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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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지연 자신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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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우스운 일이지만, 지연은 덕분에 불온하게 뛰던 심장이 가라앉은 걸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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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지연의 오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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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연은 딱히 이곳에 올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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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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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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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희에게 받은 그런 카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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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기회를 만들어 서연과 만남의 기회를 조금이라도 가질 생각인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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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뻔히 눈에 보여, 서연은 빤히 그 카톡을 바라보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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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친구 나랑 연기하는 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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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자기도 봐달라는 뉘앙스이긴 했으나, 확실히 오늘 지연의 상대 배역은 조서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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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만큼이나 특이한 행동 방식을 가진 조서희였지만, 연기만은 서연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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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부딪쳐 온 탓에 서연도 은근히 의식하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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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조서희의 연기는 굉장히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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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대단하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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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 시절에도 무척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던 조서희이지만, 나이를 먹은 후엔 거기에 감정을 보다 진하게 실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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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감정 모사와 어찌 보면 비슷한 면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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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희는 메소드라기 보단, 배운 것을 충실히 재현하는 타입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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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장면이 애정 씬이라 보는 것도 재밌을 거야. 그리고 너도 관계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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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조서희의 말에 서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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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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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그렇지. 당장 지연의 연습 때 도와준 게 서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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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는 별 생각 없었지만, 막상 조서희와 이지연이 애정씬을 한다고 하니 참 뭐라 형용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친구와 친구 호소인의 애정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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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지인이 출연한 영화는 보기 힘들다는 건가, 그런 느낌이 들면서도 확실히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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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걱정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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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이 조서희를 상대로 연기를 잘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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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서연은 답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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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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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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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오디션장 한구석에 숨어, 오디션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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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던 도중, 지연과 눈이 마주치긴 했지만, 설마 눈치채진 못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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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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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현재 오디션 중인 배우들의 연기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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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있는 이들은 아마 안쪽에서 어떤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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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살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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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으로는 서연에게 살랑살랑 대하는 조서희지만, 실상은 악역 영애에 가까운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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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오늘은 오디션장에 부채까지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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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번 조서희가 맡은 배역이 귀한 집의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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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그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악역 영애이기에, 그런 컨셉을 살리고자 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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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 감독은 처음부터 조서희를 캐스팅하려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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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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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자신이 차서아가 몸에 딱 맞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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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귀한 집의 영애라 할 수 있는 배역, '아마나비 미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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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일본인이며, 작중 배경이 일제 시대이기에 등장할 수 있는 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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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을 보면, 엔딩 이후엔 주인공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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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오디션은, 그 주인공인 '연선예'를 뽑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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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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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생각한 서연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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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일본인 역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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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서연이 맡게 되는 역은 카스가야마 유이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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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서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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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대사……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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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한 가지 난관에 봉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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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일본어 들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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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서연이 여태 얼마나 많은 버튜버를……이 아니라 아무튼 애니메이션도 있고, 게임도 접할 기회가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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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와 말하는 건 별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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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발음이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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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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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관련으로 일본에서도 한번 만나길 기대하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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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제대로 배우긴 배워야 할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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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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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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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시간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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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도와 달라고 청할 사람도 한 명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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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은 지연의 오디션이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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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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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안색으로 이야기하는 조서희의 말에, 방금 오디션을 한 배우가 초췌해진 안색으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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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히 기가 세 보이던 여배우들도 많았지만, 조서희가 부채 한 번 휘두르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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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으로 쓰인 장면은, 미치코가 연선예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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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연심을 품었으나 아직 그것을 자각하기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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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연선예는 아직, 그런 감정이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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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귀한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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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연선예가 미치코의 하녀로 들어가게 된 건, 그녀의 목숨을 노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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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도했던 것과 달리 마음은 미치코에게 조금씩 향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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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야 하는 대상이기에 외면하나, 아름다운 미치코에게 끌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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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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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그녀에게 느끼는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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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연선예가 미치코에게 향하는 감정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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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찍으려는 씬은, 대사가 어렵지는 않지만 그만큼 감정선이 중요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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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오디션으로 가장 적합한 장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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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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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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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여배우가 조서희의 부채에 목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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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푹 떨구며 물러난 여배우는 방금 자신의 연기가 얼마나 처참했는지 아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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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도 절고, 몸짓도 여러모로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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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비단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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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배우 중, 오늘 오디션에 온 이들은 대체로 비슷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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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있는 배우들조차 흔들리는데, 신인이 괜찮을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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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나도 분류하자면 신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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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달아 작품에 출연했지만, 사실 서연도 신인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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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연도가 아역 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엄청나게 빠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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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거의 끝나가네요. 30번까지 들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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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한 조서희와 달리, 백민 감독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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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야 살가웠지만, 그의 앞에 있는 종이는 여러모로 빼곡히 뭔가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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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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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에 부른 번호는 30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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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지연의 순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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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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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희는 들어오는 여배우들을 보며, 고요한 시선으로 그들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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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경력이 있는 이가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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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신인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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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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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끼어있는 이지연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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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지연은 배역과 맞으면서도, 맞지 않는 그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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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인상이 강한 탓에, 비교적 순한 이미지라는 설정의 '연선예'이라는 배역과는 동떨어지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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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톤도 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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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대로면 위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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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안 하면 떨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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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연습 때, 조서희는 이지연을 상당히 도와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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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도 봐주었지만, 이번 오디션에 대해선 특별히 언질을 준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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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무언가 알려줬다면, 그건 다른 배우들에게 큰 실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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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희는 '연선예'라는 배역에 대한 조언보단, 이지연 개인의 연기에 대한 피드백을 위주로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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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서연과 친한 친구이니, 되도록 나쁜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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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못하면 떨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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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제발 잘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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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희는 지금 어둠 속에서 숨어있는 서연의 시선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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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멀리 갈 것도 없이, 숨어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게 서연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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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왜 변장하고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귀여우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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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바로 시작할 거예요. 대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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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외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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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바로 시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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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롭게 대사를 전부 외웠다고 이야기하는 26번 지원자의 말에 조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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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과 5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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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대본을 들고 하는 게 좋았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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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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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룩해져서 돌아가는 지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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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대사가 씹히는 부분이 있었기에, 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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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촬영에서도 원테이크로 끝나는 경우는 없기에, 대사가 틀린 건 그럴 수 있지만 다른 부분도 너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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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대사라도' 틀리지 않았어야 봐줄 만한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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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조서희가 내린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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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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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지연의 순서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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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자신의 앞에 서는 건, 그래도 다른 지원자보다 나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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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원래부터 자신에게 큰 압박을 느끼지 않는 부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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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시작할게요. 대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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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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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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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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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이 대사를 전부 암기했다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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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대본 자체가 사전에 주어진 만큼, 암기하는 쪽이 훨씬 많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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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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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희는 백민 감독에게 시선을 보낸 후, 다시 지연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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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손에 든 부채를 촥, 펼치며 입가를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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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어지는 눈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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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처럼 붉은 눈동자는 아니지만 그 시선에는 분명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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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적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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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디를 떼는 것도 힘들 만큼 조서희가 주는 압박감은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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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때 보던 조서희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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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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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최근 안색이 좋지 않으세요. 조금 쉬시는 게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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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지연, - 선예의 목소리와 함께 연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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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거리는 시계, 그곳에서 조용히 부채를 펼친 채 선예를 바라보던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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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코는 고요히 선예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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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선은 마치 상대를 잡아먹을 것처럼, 그 내부를 헤집듯이 선예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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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 감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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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예는 그 감정을 조금이지만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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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심히 고개를 돌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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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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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시 아래로 내려간 부채로 드러나는 입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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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린 미소가 선예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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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예야, 숄을 가져오렴, 오늘도 경매를 열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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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은 아주 귀한 보물을 보는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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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득하며, 경매장에서 다른 이들이 자신을 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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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코는 그녀의 하녀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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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본인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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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가장 어여쁜 모습으로 있어야 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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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로 살며시 선예의 어깨를 누르며, 미치코는 그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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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떤 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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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어여쁘게 꾸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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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바라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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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도가 드러나는 미치코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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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선예는 당황하며 눈을 피했고, 잠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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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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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희는 그런 지연에게서 옅게 느껴지는 감정선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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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보다 진했던 것 같은데, 다소 색이 빠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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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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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선예에겐 어울리는 색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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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연하며, 다른 강한 색이 손쉽게 섞여 들어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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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서연이 알려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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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화장부터 하셔야죠, 아씨. 숄부터 찾으시면 아니 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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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숙이며 그리 이야기하는 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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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미치코의 접근을 거부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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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소리는 평온하며,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천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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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색이 달라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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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연기의 톤이 달라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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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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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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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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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듯, 이지연의 인상은 상당히 강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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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연선예라는 캐릭터와는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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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색채가 옅어지며 그 연기의 방향성도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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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코를 바라보는 시선, 그 손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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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미소는 마치 어머니가 딸에게 보내는 것 같은 다정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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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모성애 뒤에 감춰진 근본적인 감정은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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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에서 나오는 모성애가, 미치코를 막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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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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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느낌이 달라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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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선예가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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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희는 계속되는 지연의 연기를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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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쏘아붙이듯 이야기하는 미치코의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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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치코의 머리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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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차분히 다듬으며 여러 가지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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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소리는 아주 단아했고, 평소 지연의 인상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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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많은 진상들을 상대해 본 것처럼 숙련된 이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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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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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의 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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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색깔은 이지연, 그리고 선예가 아닌 다른 이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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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딘가에 기반을 둔 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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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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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희는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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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예의 얼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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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이지연이 어떤 부분에서 이 연기를 따왔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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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알자, 조서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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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코는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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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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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는, 어떤 귀한 보석보다도 아름다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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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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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리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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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한층 미치코의 입매가 비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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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의 뒤에 감춰진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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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진실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이 하녀가 자신을 가여워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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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미치코에겐 너무나 간절하면서도, 자존심을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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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진심이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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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미치코의 부채가, 선예의 어깨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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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골을 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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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턱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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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닿을 만큼 바짝 얼굴이 다가가며, 그 입술에 자신의 부채를 꾹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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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전, 자신의 입술을 눌렀던 그 부채의 끝을, 선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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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짓말을 제일 싫어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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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사를 마지막으로, 씬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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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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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본 심사위원들은 내심 놀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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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 감독에 이르러선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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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에서 그 연기를 지켜보던 서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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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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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뭐야, 하는 얼굴로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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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별로 애정 씬 진하지 않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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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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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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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게, 지금 지연이 펼치는 연기의 근본은, 서연이 그토록 애정하는 것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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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서연은 부들부들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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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서연의 시선을 느낀 조서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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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저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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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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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자신이 생각하기에 지연의 오디션은 무척 성공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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