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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 달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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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새의 발굽이 땅에 닿을 때마다 나는 소리가 조용한 숲길을 나지막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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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지막한 발걸음과 달리 노새가 이끄는 수레는 저항 없이 자갈과 나무뿌리가 가득한 길을 헤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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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잔뜩 실은 수레를 이끌고 20km 거리를 쉼 없이 걸었음에도 지치지 않고 걷는 노새를 보고 있자면, 왜 옛 상인들이 노새를 애용했는지 알만한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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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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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 여기서 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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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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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새에게 물을 먹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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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은 식사도 빠르게 끝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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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을 이끄는 험상궂은 사내들의 외침에 맞춰 노새 또한 걸음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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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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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윽, 주, 죽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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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물을…! 제, 제발 물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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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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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놀랍게도 적막하기 이를 데 없던 숲길에는 사람들의 비명이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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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짐승에게나 착용시킬 입마개를 사람들에게 착용시킨지라 소리가 단절되었을 뿐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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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러한 미세한 중얼거림이 거슬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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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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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억, 퍼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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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상궂은 사내, 아니 호송병 중 한 사람이 괘씸하다는 표정과 함께 앓는 소리를 낸 이들을 몽둥이로 두들겨 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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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둥이가 얼마나 큰지, 잘못 때렸다간 사람이 반신불수가 되는 것도 이상할 게 없을 테지만, 호송병은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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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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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죽으라고 이 범죄자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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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힘껏 놈들을 난타하길 망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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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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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사,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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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두들겨 맞는 이들이 아무런 힘도 없는 불쌍한 이들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고통을 호소하는 젊은 청년이나 가냘픈 노인은 하나같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인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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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경우엔 열두 차례가 넘는 사기로 열 가구 이상의 가정을 파탄 낸 자였으며, 노인의 경우엔 강간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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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저보다 한참 어린 아이를 건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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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들을 불쌍하게 여겨선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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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에겐 인권이란 게 없으며, 저들이 누군가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면, 그들은 온몸에서 피를 쏟아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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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드래건의 건국왕이신, 위대한 기사왕이 내뱉은 절대적인 규율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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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는 나이와 성별, 신분을 가리지 않고 자기가 숨 쉬는 것조차 아까운 범죄자임을 알려줘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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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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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신입. 그것들은 죽건 말건 상관없는데, 저쪽은 패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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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입니까? 그래봤자 범죄자에 불과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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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상관한테 되묻는 것부터가 폐급 기질 다분하네. 아, 이 경우엔 열정 넘치는 폐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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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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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할 짓을 왜…. 하아, 됐다. 그보다 우리 열정 넘치는 신입 궁금증을 풀어주자면, 저쪽에 있는 인간들은 ‘땅굴’로 갈 녀석들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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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 땅굴이라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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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이란 단어에 일순 호송병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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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로 가는 자는 대부분 저런 숨 쉬는 것도 아까운 쓰레기와 달리, 약간 불합리하게 끌려가는 이들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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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하지 마라. 저것들도 다 전쟁 때 우리 병사들을 죽인 병사이거나 기사인 녀석들도 있으니까. …썩을 귀족한테 봉기를 일으킨 농부도 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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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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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 하다 보면 다양한 군상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러니 너무 감정적으로 일하지 마. 빨리 지치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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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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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신입은 신입인지, 아직은 감정조절이 미숙한 게 겉으로도 확연히 보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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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으로 보이는 이는 그럴 줄 알았다며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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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본인 또한 신입 때 저런 적이 있었다며 추억을 회상하더니, 잠시 땅굴로 갈 죄인들에게 시선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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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처럼 여러 감정을 느껴 쳐다본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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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번 호송 대상 중 기사도 있고, 귀족가 도련님도 있을 거라더니, 저것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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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거물이 끼어있을 거란 정보를 들었기에 시선을 준 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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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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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저 두 명은 몸 한 번 살벌한데? 완전 인간 흉기가 다름없구먼. 기사들은 다 저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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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들은 대부분 바지만 입은 채 웃통은 까져 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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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날붙이를 숨기지 않을까 하는 미연의 방지라 보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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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그런지 시선이 절로 갔는데, 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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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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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숨이 덜컥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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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미친…, 저, 저게 어떻게 사람 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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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본 두 명의 흉악한 상체마저 가냘프게 착각하게 하는 어느 남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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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성은 앞서 본 두 기사의 살벌한 육체를 뛰어넘는 야성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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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 아니 저게 근육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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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을 촘촘히 엮어낸 육체가 있다면 저러하지 않을까 싶었으며, 근육만 보아도 절대 이길 수 없으리란 확신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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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여기 있는 전원이 모두 덤벼들어도 감당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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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괴물이 다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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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만으로도 경이적이고, 아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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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얌전히 끌려와서 다행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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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가족이나 지인이 인질로 잡혀 있거나, 그도 아니면 무슨 사연이 있어 저리 얌전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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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아니라면 저만한 이가 순순히 끌려올 리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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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가 됐든 다행인 일이야, 후우…. 응? 근데 분명 기사급은 네 명이라고 했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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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송을 책임지는 지위다 보니, ‘땅굴’로 갈 인원 총 48명 중 4명이 기사란 얘길 들은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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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세 사람을 제외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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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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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사란 인종을 몸으로만 판단하면 안 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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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미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그의 입장에선 썩 기사 같은 인물이 보이지 않았고, 뒤통수를 긁적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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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 들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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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송병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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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네 사람이 맞았으며, 그들 중 백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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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지저분한 회색머리칼로 머리를 물들인 들개를 닮은 듯한 도련님 또한 기사가 맞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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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기사, 아렌 드 팬드래건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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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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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중이었고, 그는 원망스러운 눈길로 놈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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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전, 그를 이 지옥으로 끌고 온 괴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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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무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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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예쁘게 떠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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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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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뽑아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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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은 앞만 보고 있거늘, 왜 그리 무서운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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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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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도 다물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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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의 소심한 반항은 손쉽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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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권력보다 무서운 건 가까이 있는 주먹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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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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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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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도 날뛰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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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거리며 떨어지는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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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벽돌이었을 것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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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만큼은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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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반성해야지. 왕실의 재산을 이토록 파손시켜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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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가 부딪치며 만들어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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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 스무 개 정도가 완전히 박살 나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면 믿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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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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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꼴이 가관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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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싸움은 대등하지 않고 일방적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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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한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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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든 피멍을 비롯하여, 타박상이 가득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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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았다면 오르막길에서 굴러 떨어진 게 아닐까 오해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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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한은 차라리 진짜 오르막길에서 구른 게 덜 다쳤을 것이라며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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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맞아서 이럽니다. 오늘 그 양반 날 잡았는지 그냥 날뛰던데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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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돌했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이한은 발타르에게 두들겨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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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두들겨 맞았다는 표현도 곱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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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압니까? 이 철창이랑 벽돌들, 그 양반이 나 제압한 다음 내 다리 잡더니 마구잡이로 휘둘러서 무너진 겁니다. 사람을 무슨 인형처럼 흔드는데, …이야, 죽는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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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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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그렇게까지 했는데 안 죽는 네 몸뚱이가 더 신기한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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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뜻을 표정으로 전하는 아이시스였지만, 안타깝게도 이한은 이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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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그래서 이거 물어내라고 왔습니까? 나 돈 없어요. 차라리 그 양반한테 청구해요. 그 양반이 다 무너트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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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여전히 무너진 감옥에 머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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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를 막을 쇠창살조차 없었으나, 병사들이 챙겨준 침대가 푹신한 건지 아늑하기까지 하여 편히 머무는 것이었고, 빠져나가봤자 귀찮은 것들밖에 없음을 알기에 일부러 갇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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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감옥마저 아늑하게 여기는 놈에게 돈을 요구하고 싶으면 번지수 잘못 찾은 거라 말하고 싶은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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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르 경에게 돈을 청구한다면 이 나라의 모든 기사들이 여를 적으로 삼을 텐데, 그런 신박한 자살방법은 떠올리고 싶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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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양반이 그 정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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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아마 발타르 경을 옆집 아저씨처럼 가볍게 여기는 이는 여의 의동생뿐일 거다. 그가 괜히 대영웅이라 불리는 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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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노는 모습만 봐서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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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젊을 때 ‘불멸의 업적’을 세웠으니까. 아마 그가 이 왕국에 살아 있는 한, 모든 기사가 그를 동경하겠지. 그가 이루어낸 업적을 동화처럼 들으며 자라난 이들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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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시스의 잔잔한 목소리에는 아무런 고저도 없었고, 감정이란 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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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발타르란 인물을 왕국의 후계자조차 존중하는 듯한 숭고하기 짝이 없는 어투가 아닐 수 없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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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이랑 아저씨랑 사이가 별로였었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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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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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상대를 비꼬고 있는 거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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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고저 없는 목소리에서 짜증 어린 불쾌감이 서려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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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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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들은 건 없지만, 대충 기사단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대략 25년 전쯤 그녀가 발타르 경에게 자신을 지지해 달라 ‘부탁’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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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왕세녀나 왕녀는커녕, ‘공주’라 불리던 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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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 양반이 어떤 양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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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스물일 때도 불멸의 전설을 쌓은 양반이며, 오로지 선왕만을 따르기로 결정한 충직의 기사로 유명했던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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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결말은 뻔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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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찮게 하지 마십시오, 공주님. 소꿉놀이는 혼자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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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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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한은 저게 사실이란 것에 머리카락을 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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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저씨라면 분명히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렇게 말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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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철창이든 백은사자의 일이든 신경 쓰지 말거라. 천하의 발타르 경께서 알아서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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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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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좁다 생각하지 말거라, 20년이 지나건, 50년이 지나건, 그날의 굴욕은 절대 잊을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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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뚱맞게 무슨 얘기하는지 모르겠고, 그보다 책임 안 져도 된다는 말 정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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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남 싸움에 끼어들 생각이 전혀 없었고, 자신의 일이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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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시스는 잠시 얄밉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았지만 뻔뻔하게 나가는 그였고, 그녀는 얄밉다는 듯 찌푸려진 미간을 매만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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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아는 것들이라면 네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한 사람에게 기사단이 패배한 것도 수치스러운데, 자신들이 감당을 못 하여 지원군마저 불렀으며. 옹졸한 이유로 병사들마저 움직였지. 저들은 이미 명분으로도, 힘으로도 모든 것이 완패한 것이다. 도리어 저런데도 본인들의 과실과 패배를 깨우치지 못한다면, 그때는…. 살려둘 가치가 없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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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번 살벌하게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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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 섞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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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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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도, 그렇다고 강인함조차 없는 기사단이 과연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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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 그냥 사람 자체가 살벌하네, 누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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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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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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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아니 내가 의뢰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던 거 기억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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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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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지금부터 시작했으면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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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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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줄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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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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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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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금 말만 의뢰지, ‘부탁’을 하고 있는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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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거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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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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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집사님에게 차를 얻어 마신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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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집사님이 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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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님은 주로 본인을 ‘여(余)’라 자칭하실 때가 많습니다. 허나, 이는 단순히 자신을 높이기 위해 그리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다. 이한 경의 말을 빌리자면, 일종의 멘탈 관리법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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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요? 누님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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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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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적으로 오만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무슨 멘탈 관리법이 필요한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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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자마자 ‘유아독존’을 외쳤을 것 같은 사람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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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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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한 것보다 마음이 심약하십니다, 공주님은. 하지만 같은 편이 있을 때만큼은 편안해지시죠. 그래선지 가끔 이한 경 앞에선 ‘나’라는 표현을 많이 쓰더군요. 그게, 참…. 저는 보기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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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급 불편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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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의, 아니 집사의 탈을 쓴 초인의 설명이었고, 이한은 그 얘기를 강제적으로 뇌 속 메모리에 저장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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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사람 말은 이상하게 기억에 잘 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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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한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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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낮추면서까지 하는 말이 명령이 아니라 부탁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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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 양반, 난 이런 신뢰와 존중이 부담스러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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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그만큼 이한 경이 공주님에게 소중한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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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자동적으로 재생되는 집사의 목소리에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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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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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애 일만 제대로 해결해주면 의뢰든 뭐든 다 들어줄 생각이었으니까 걱정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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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제자에게 참 지극정성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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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의뢰 그거 나 혼자서만 해야 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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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음, 실력 있고 믿음이 가는 인재가 있다면 더욱 수월은 하겠지. 데려가고 싶은 이들이라도 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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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둘 있습니다. 실력도 있고 믿음도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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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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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충 누군 줄 알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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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아는 게 너무 많아…. 아, 맞다. 한 명 더 데려갈 놈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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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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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시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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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모르는 이한의 지인이 또 있었냔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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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지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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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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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정신 교육 좀 시키고 싶은 놈이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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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그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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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이라면 악연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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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이한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신분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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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소리가 아닐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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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최고 권력 중 한 명에게 허락이 나온 이상, 그가 데려가지 못할 이들은 없는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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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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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엑, 헤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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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빨리 좀 걸어라. 노새도 저렇게 잘 걷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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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난 노새가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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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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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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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일관한 새끼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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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건방지지만, 그래도 건방짐을 줄이려 노력하는 자세가 참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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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만 있어도 재밌는 건방짐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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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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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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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는 웃을 일이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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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새의 발걸음이 이끄는 종착지가 보였고, 이한은 서서히 웃음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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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십자군이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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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장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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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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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가 무협 읽고 로판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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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혈교 짝퉁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는 조직명에 어이가 없을 따름인 무협지 애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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