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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은 아직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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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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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격에 쓰러지긴 했으나, 그건 제 몸 상태가 만전도 아닐뿐더러, 불의의 일격에 맞아 그리 됐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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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약하거나 상대가 압도적이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은 아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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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게 그는 백은사자가 자랑하는 ‘백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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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드래건의 백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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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대를 대표하는 기사가 자신이란 뜻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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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그는 제 패배를 부정하였으며, 다시 싸운다면 결과가 달라지리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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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상대가 강한 것은 부정할 수는 없으나, 내가 검만 뽑았다면 결과는 달랐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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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뽑은 자신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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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자기 확신으로 무장한 아렌이었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확신은 그에게도 가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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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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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지, 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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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은 제 앞에 펼쳐진 아수라장을 목도하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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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 베이커 경? 리먼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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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와 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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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자까진 아니지만, 기사다운 무력을 갖춘 이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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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그런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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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토록 볼품없이 당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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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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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저들이 불의의 기습을 당하였으면 모를까, 불한당은 정면에서 놈들을 향해 맹수마냥 크게 소리쳤고 두 기사는 몸이 굳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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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무형의 기운이 두 기사를 덮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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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건 시작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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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델린 경. 테메른 경, 토바로스 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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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사단이 자랑하는 맹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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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모두 눈을 뒤집은 채 무참하게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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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뽑고 달려든 그들이었건만, 어린 아기가 어른에게 재롱을 부리다 가볍게 던져진 것마냥 모두가 나가떨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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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조차 저들을 제압하려면 고전을 면치 못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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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저들을 제압한 것보다 더욱 경이적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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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맨날 트롤이라고 부르니까 지가 진짜 트롤인 줄 아나? 저놈 왜 저렇게 성장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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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검을 겨뤘을 때와 격이 다르군요. 저도 노력했다고 노력했는데, 이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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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네가 부족한 게 아니라, 단순히 저놈이 비상식적으로 성장한 것뿐이야, …그래도, 기사를 ‘백 명 이상 제압’하는 건 아무래도 성장이란 개념으로 정의해도 되나 싶지만, 그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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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부상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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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저 괴물은 무려 백 명을 가뿐히 넘는 백은사자를 손쉽게 쓰러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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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저런 괴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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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일지언정, 상처나 부상조차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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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이 아렌의 안색을 더욱 창백하게 만들었고, 기어이 저 괴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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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덤빌 놈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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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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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나 보군. 그럼 승자의 권한으로 말하지. 앞으로 날 귀찮게 굴지 마. 난 정치놀음도 싫고, 너희와는 더더욱 얽히기 싫은 놈이니까. 그런데도 내 경고를 무시하고 덤벼든다면, 그땐 봐주는 것도 없다는 걸 알아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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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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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은 무려 1기사단과 2기사단을 상대로 경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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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왕당파와 귀족파의 무력을 상징하는 그들을 상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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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 누구도 저 경고를 감히 무시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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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가 보인 무력은 그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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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 오러 유저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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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 유저를 연상케 하기 충분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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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은 떨리는 동공을 감추지 못하였고, 그중 자존심이 유독 강해 보이는 기사 한 명이 분을 참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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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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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하는 건 좋은데, 협박도 실력이 있어야 하는 거지. 실력도 없는 주제에 하는 협박은 개가 짖는 것보다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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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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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하면 실력을 키워. 참고로 말하건대, 너희 지금 실력은 적혈수리 한 명조차 못 당해낼 거다. 못해도 열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야 좋은 승부가 되지 않을까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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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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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도 아니고 적혈수리와 백은사자를 비교하며, 그들보다 한참 부족하다 평가하는 그의 발언에 기사들의 얼굴은 붉어질 대로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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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이토록 무참히 졌어도 그들은 백은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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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최고의 기사단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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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이 아닐 수 없고, 발끈하는 게 당연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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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잖아, 불만이면 덤비라고. 다만, 이제 ‘봐주는 건 끝났다’는 건 알아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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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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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한 경고가 울려 퍼졌고, 그들은 모골이 송연하다는 것이 뭔지 경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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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뿜는 기세가 그들을 완전히 압도하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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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사자의 완전한 패배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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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왕실 감옥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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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끌려온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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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허약하기 그지없는 병사들이 상관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벌벌 떨며 다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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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 일단 가, 같이 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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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는 꼴이 안쓰러워 와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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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끌려왔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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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이랑 침대 준비 안 하면 이 감옥 무너트릴 거니까 알아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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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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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님 저기 쓰러진 것들, 마저 두들겨 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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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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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철창 안에 있으나, 그 누구도 이한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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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히긴 갇혔으나, 깨끗한 물로 몸도 씻을 수 있고. 원한다면 병사들이 필요한 걸 챙겨주니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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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만 여기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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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하! 이놈 이거, 언제 한 번 크게 사고 칠 줄은 알았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사고를 치는구나, 크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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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조용히 좀 웃어요, 귀청 터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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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이토록 우스운데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크아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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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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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조용히 있긴 그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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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그가 웃을 때마다 몸이 진동하였기에 몸이 다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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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대형 스피커가 바로 코앞에서 직격하는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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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쓰는 사자후를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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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보고 다 괴물이래? 진짜 괴물이 여기 떡 하니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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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의 비해 작은 몸집의 중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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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가지와도 맞먹는 허약한 몸을 가졌을 게 분명한 백발의 중년인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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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한 걸 넘어 힘이 넘쳐났고, 눈빛에서 피어오르는 형형한 안광은 젊은 기사 못지않은 강렬한 생기와 기력이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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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0세가 넘었음에도 여전히 정정한 양반이 아닐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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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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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전설이자 대영웅, 혹은 팬드래건 최강이자 최고의 기사란 명성을 가진 기사가 바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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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 이렇게 강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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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서늘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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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유난스러울 정도로 큰 사건 사고를 겪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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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강제적으로라도 성장해야만 했고, 다행스럽게도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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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는 살아남으며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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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한계를 넘나드는 수련과 기적의 비약, 그리고 목숨을 건 투쟁 등을 통해 얻은 경험치가 드디어 그를 레벨 업 시킨 느낌이라고 보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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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한은 자신이 어느 정도 강해졌다고 자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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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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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도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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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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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기어이 식은땀을 비처럼 쏟으며 발타르와 자신의 격차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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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했기에 도리어 더 실감한 것이었고, 자신과 발타르란 남자의 힘 차이가 여실 없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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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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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상대가 나보다 백 바퀴 이상 앞서고 있던 거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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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조차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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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역시 겸손해야 하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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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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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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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에게서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싶은 아득함이 그를 덮쳤지만, 이한은 그럼에도 대항한다는 마음가짐을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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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조건 이 양반 따라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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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백 바퀴, 아니 천 바퀴 이상 앞서고 있을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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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격차를 줄이기 위해 더 열심히, 더 빠르게 뛰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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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다고 하여 포기하는 순간 그건 끝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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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긍정과 극한의 행복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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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처리 투수나, 팀을 말아먹었음에도 당당해야만 하는 축구감독마냥 극한의 멘탈 케어를 선보이는 이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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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금은 지더라도 나중에 이기면 된다는 마음가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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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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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혼자 뭐 저리 표정변화가 다양한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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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질리지 않는다며 방금 전과 다른 의미로 웃어대는 발타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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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 웃음에는 어딘지 제자나 자식의 성장을 바라보는 흐뭇함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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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르는 딱히 이한을 혼내거나 놀리기 위해 이 야밤에 기사단까지 온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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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 정도로 한가한 사람도 아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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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거 맞잖아? 일도 거의 안 하고 자기 애인들이랑 놀기만 하는 양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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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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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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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둥이가 고약한 것이 매가 필요한 모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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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다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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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기절하고 싶지는 않은지라 입을 다무는 이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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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흘, 너 때문에 궁전이 난리가 났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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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명이란 인원이 한 명한테 묵사발이 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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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명분상 3기사단의 단장인 발타르 또한 야밤에 불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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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괄괄 대며 난동을 부린 자를 처벌하라고 난리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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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기사단 수준이 얼마나 처참했으면 일개 평기사 한 명에게 다 패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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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발타르는 이한이 잘못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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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개인에게 백 명 이상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수치스러워하고 반성하는 게 옳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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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것들이지. 전쟁 때 이런 사달이 났는데도 잘잘못을 따질 건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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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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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심각한 사인이 많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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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왠지 이제 은퇴하여 유유자적 살 노인을 고생 시킨 느낌도 들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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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도 심했다는 자각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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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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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억울한 것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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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한도 이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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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시비를 건 선동자 몇몇만 가볍게 타이르고 끝낼 셈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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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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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놈! 우릴 모함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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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 우리가 왕자 전하를 이용했다고 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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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하의 무도한 자를 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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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 식으로 성을 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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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 제 발 저리는 꼴이었고, 도리어 목소리를 키우는 그들이었으며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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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들이 일을 키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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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을 쓰러트리니 다른 놈이 오고, 그놈을 쓰러트리니 갑자기 아군을 부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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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아군마저 쓰러트리니 점차 소리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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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 습격이다!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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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습격을 외치는 놈들이었으며,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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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사단까지 와서 가세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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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를 모르는 것들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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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 저리는 것을 넘어, 남의 도움까지 원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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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야말로 기사단의 수치였고, 부끄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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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 무엇보다 수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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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비겁하게 덤비고도 전부가 다 패배한 주제에, 내게 도움마저 요청하다니…. 이거야 원. 기사단이 아니라 용병대도 이러진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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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늙어빠진 힘없는(?) 노인에게 도움마저 요청하는 비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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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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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기엔 어떻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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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기사단 수준? 아니면 떼로 덤비고도 나한테 진 거 말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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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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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확실히 허접하던데? 개인의 실력이야 뭐 기사들 ‘평균’에 턱걸이하는 수준인 놈들도 많더라. 어떤 놈은 수련도 안 한 건지 성장이 멈춘 놈도 있던데, 아마 그런 놈들은 얼마 안 가서 자멸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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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에 임하며 검술학부에게 강조했던 외적인 단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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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내공만 단련하고 외공은 등한시하다 보니 몸이 유리나 다름없는 것들이 백은사자에는 넘쳐난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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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금이야 젊음과 재능, 투기법 등으로 버티고 있겠으나, 나이가 들어 몸이 노쇠 한다면 그때부턴 젊음이고 재능이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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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법이 일으키는 폭발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멸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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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상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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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이야, 최근 기사단 하나랑 싸울 일이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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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다. 빨간 병아리 놈들을 깨버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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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비밀인데,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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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 방법이 있지, 어쨌든, 하고자 하는 말이 무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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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냥 이거야. 기사단이란 건 분명 기사단 개개인의 실력도 중요하겠지만. 기사들끼리의 협력과 신뢰도 중요하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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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혈수리와의 결투를 이겨내긴 했으나, 이한은 그때 정말 간담이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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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의 합격진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았으며, 명문 기사단이 가진 저력이 무엇인지를 맞아가며 깨우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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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선지 여전히 그날을 생각하면 온몸이 욱신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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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삐끗했다면, 아니 기사단이 조금만 더 비겁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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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와 결투 같은 모든 걸 제외하고 겨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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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이한을 죽이는 데 전심전력을 기울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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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면 어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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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결론을 내는 건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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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죽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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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로 기사단은, 아니 트리스탄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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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반대로 백은사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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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따로 놀더군. 거기다 오히려 서로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서 제압하기 더 쉬운 것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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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있음에도 적에게만 집중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신경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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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가 자기의 등에 칼을 꽂을까 싶어 두려워하는 게 보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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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백은사자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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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가 아니라 정적으로 본다는 것이었으며, 이런 기사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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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만 먹으면 더 빨리 제압하는 것도 가능했어. 나한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그렇게 따로 놀고 있는데…. 솔직히 그게 기분 나빠서 더 패기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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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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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내가 봤을 때 이런 건 기사단이 아니야. 기사단이라고 하고 싶으면 좀 더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게 맞지. 그러니 난 오늘 기사단과 싸운 게 아니야. 계속 1대1로 싸웠고, 허접한 놈들을 차례차례로 격파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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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할수록 도리어 약해지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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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은 사실상 백은사자는 기사단이 아니란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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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과 같은 역사를 지닌 기사단에 대한 촌철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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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을 비롯한 수뇌부가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수치스러운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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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 수뇌부의 비공식적 ‘정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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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거니!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시야가 넓어졌구나. 예전이었다면 그런 것도 몰랐을 녀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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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는 건 그만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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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르는 이한의 혹평을 들으면서도 기뻐했고, 이한은 떨떠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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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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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녀석이 드디어 기사단이 무엇인지를 이해한 것이 기뻐서 그런다. 아무리 기사도와 기사단이 뭔지를 가르쳐주어도 한 귀로 흘러들었거늘, 이제야 뭘 좀 아는구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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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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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네 녀석도 복직해도 되겠어. 기사단으로 돌아오는 즉시 내 자리를 물려주도록 하마,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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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이 역사적인 굴욕을 겪었지만,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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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젊은 기사의 시야가 넓어졌음에 보탬이 되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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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 전체가 굴욕을 겪었어도 이한의 성장을 확인했으니 기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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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발타르는 이제 교관 일을 정리하고 그가 복직하길 바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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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한 지금이야말로 복직의 적기이며 단장이 될 기회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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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발타르는 기대감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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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복직 안 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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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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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안타깝게도 발타르의 기대감을 철저하게 배반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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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은 했으나, 예의는 더 없어졌음을 증명하듯 그는 건방지게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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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단장도 안 할 거고. 그 귀찮은 걸 내가 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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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로운 자리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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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다른 애나 줘. 필요한 애들 많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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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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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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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버르장머리가 더 없어진 것 같다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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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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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안 맞긴 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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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과 발타르의 시선이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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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누구도 먼저 시선을 피하지 않았으며 사나운 기세를 머금는 그들은, 당연한 수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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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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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하게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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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철창 스무 개가 반파된 이후에야 두 사내의, 아니 괴수들의 격돌은 멈추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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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두 괴수가 싸운 이유가 단지 복직하기 싫은 기사와 일을 짬 때리려는 기사 간의 사소한 다툼이란 사실을 끝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은 당연한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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