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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던 백작은 골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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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이유는 수십 가지도 넘지만, 그중 그의 머리를 당장 아프게 하는 요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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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건 단단히 따져야 해요! 어떻게 우리 애를 건드렸는데 그자가 퇴출되지 않는 거냐고요! 기사단에 단단히 따져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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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아들을 너무 오냐오냐 키운 아내가 바락바락 소릴 지르며 기사를 벌하라고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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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한 후작가의 여식으로 자라, 정치란 걸 모르는지 바보 같은 소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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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에 따진다는 게, 아니 백은사자와 싸운다는 게 정녕 무슨 의민지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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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결혼을 했었는데, 돌아가신 어머님이 말릴 때 들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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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아내의 칭얼거림 정도는 어느 정도 넘겨들으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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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풀어주면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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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보다 앞선 심각한 문제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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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에 지장은 없을 것입니다. 기사란 인종은 생명력이 워낙 강한 이들이니 말입니다. 다만, 회복하려면 1년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트롤의 신선한, 순도 80% 생혈(生血)이 있으면 단축될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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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직전인 기사단장을 이어 영지 기사단을 이끌어줘야 할 부기사단장의 회복세가 느리다는 것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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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렛 가는 기사의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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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을 노리는 자유기사와 용병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대결을 신청하는 게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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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받아주는 게 그들의 긍지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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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하필 중요한 영지의 기사 중 하나가 저렇게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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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영지의 챔피언 소리 듣는 기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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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으로선 속이 얹힌 느낌이 드는 게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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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의 생혈이라니, 그걸 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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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80%인 트롤의 생혈이 있다면 회복이 빨라진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구하기 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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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숲속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 트롤이며, 설사 사냥에 성공한다고 한들 죽는 즉시 피가 응고되거나 탁해지는 것으로 인해 30% 순도도 잘 건졌다는 소리가 나오는 트롤의 생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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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순도 생혈을 구하고 싶다면 오러 유저라도 대동해야 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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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구하기 불가능하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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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프구나,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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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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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 원하신다면 당장이라도 놈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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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제가 직접 나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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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까지 대체 왜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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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를 수호해야 할 기사단과 후계를 이어야 할 장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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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에 분개하여 언제라도 칼을 뽑을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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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보며 백작은 아찔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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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생각이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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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나 정치에 대해 모르는 아내는 그렇다 치자, 한데 이놈들은 훗날 가문을, 아니 더 나아가 팬드래건을 수호해야 할 놈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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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당초 폴렛 가가 왕당파란 사실도 잊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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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백은사자를 건드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면, 이놈들의 목을 지금 당장이라도 베어야 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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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은 가문을 말아먹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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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잘못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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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튼과의 3년 전쟁이 끝나고 한동안 가문의 일에 관여하지 않은 게 이토록 큰 잘못으로 돌아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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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이토록 한심한 것들밖에 없다니, 자신이 자식들과 가문을 잘못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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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엄히 다스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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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면 이들도 이토록 나대진 않았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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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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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의 고민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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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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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깊어 보입니다,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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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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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하긴 가문을 다스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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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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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아무런 대답도 안 해주십니까? 이 늙은이가 그토록 보기 싫었습니까? 무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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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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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던 백작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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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떠한 응대도 하지 못하며 그대로 손발이 덜덜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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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저기 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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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달을 등진 채 음영이 짙은 그림자에서 슬며시 걸어오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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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론 인자하기 짝이 없는 노 집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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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로던은 결코 속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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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부드러운 목소리에 속지 않을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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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인자한 얼굴에도 속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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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노인’이 일으킨 참사(慘事)를 절대 잊을 수 없는데, 어찌 속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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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던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감히’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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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버트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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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백작께서 저 같은 노인을 기억해주고,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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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공! 우,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 우리 가문은 결코 왕가를 거스를 생각이 없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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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절규하듯 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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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도 없는 변명은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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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로 로던은 그가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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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왕국의 단 셋밖에 없는 오러 유저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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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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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가 가진 무력은 강대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토록 두려워하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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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진정으로 두려운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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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심문을 하러 온 것은 아니니 안심하십시오. 제가 은퇴한 지가 언제인데, 흘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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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직’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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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심문관 존 레이 알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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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아흔 개의 가문을 ‘멸문(滅門)’시킨 살인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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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로던은 여전히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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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늙은이가 십자가를 등 뒤에 매고 다니며, 얼마나 무수한 사람을 꼬챙이에 끼우고 다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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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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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나간 시간 속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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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과거의 얘기일 뿐. 이제 전 손을 다 씻었으니 백작께서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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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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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를 기억하는 원로들은 당신의 이름만 나와도 오줌을 지리고, 공포 때문에 머리에 피가 나도록 긁기 일쑤이요. 한데 과거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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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치기지요. 누구나 젊은 시절 열중하게 되는 분야가 있고, 이 늙은이가 열중했던 분야는 신의 가르침이었을 뿐입니다. 그 때는 제 삶의 전부였으니 말입니다. 뭐, 지금은 젊음을 모두 불태우고 뼈밖에 남지 않은 늙은이에 불과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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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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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웃으십시오, 백작. 이 타이밍엔 웃어야 하는 것입니다. 허허! 센스가 이렇게 없어서야 젊은이들이랑 어찌 어울리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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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는 그의 얼굴에 손을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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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이 백작의 얼굴에 손을 대는 행위가 감히 용납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으나, 이 늙은이 앞에서 차마 그런 말을 지껄일 위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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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알버트는 로던의 입 꼬리를 억지로 올려주는 것으로 미소를 만들어주었고, 로던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촉촉하게 젖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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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그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적셔갔고, 그는 추위에 떨듯 오들오들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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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의 입매가 억지스러운 반달을 그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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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좋은 미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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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는 만족스럽다며 점차 손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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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째서 찾아오신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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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은 공포에 떨면서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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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아야 저 늙은이가 다신 안 나타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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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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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정답이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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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흐뭇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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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주인다운 영리한 판단이 아닐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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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원래의 목적’을 바꾸기로 하며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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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별건 아니고. 이 노인이 주목하는 젊은이가 있는데, 그 젊은이가 최근 백작가와 얽힌 일이 있단 소식을 들었지 뭡니까. 그래서 이리 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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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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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 백작은 훌륭한 귀족입니다. 세상이 제 것인 줄 아는 귀족파의 바보들이나. 중립파의 정신병자들과 달리 시국을 잘 아는 왕당파의 일원이니. 그러니까, ‘부디’ 이 노인네가 십자가를 들지 않게 해주십시오. 어찌, 그렇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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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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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답변은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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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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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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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갑작스레 등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갑작스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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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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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던은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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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귀신에 홀린 듯했지만, 로던은 제 얼굴에 남아 있는 온기와 억지로 올라간 입 꼬리를 느끼며 자신이 본 것이 귀신이 아닌 현실임을 인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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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더욱이 그를 만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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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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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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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아직 마르지도 않은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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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피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알버트의 피도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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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따지자면 분명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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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타인들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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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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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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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노인은 자신에게 오기 전 이미 피를 묻히고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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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의 피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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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던은 이를 깨달으며 서서히 고개를 숙이며 어깨를 얕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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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가 먼저 숙이지 않았다면 그들이 어찌 됐을지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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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입에 담기도 무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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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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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다시금 말하는데 이 일은 당장 왕실에게 따져야,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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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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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여보? 다, 당신 왜 그래요?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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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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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당신 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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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은 울먹였고, 아내는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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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직하기 그지없는 그가 우는 모습은 결혼 생활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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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가 과연 어찌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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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니 가족 모두가 죽다 살아났음에 그가 얼마나 안도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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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에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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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백작은 울었고, 아내는 당황하며 서서히 그를 위로해주려 다가가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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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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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여섯이 넘는 신문사와 신문사를 후원한 상단 하나가 하루아침에 불길에 휩싸여 소각(燒却)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백작은 묵묵히 목검을 들고 제 아들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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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달밤에 벌어진, ‘사소한 사건’의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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