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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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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할 구석도 없는 완패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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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저씨, 겁나 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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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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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은 헛웃음을 내며 침대에 누운 그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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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만신창이 몰골이 되어 침대에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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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휘감은 붕대를 걷어내고 얼마나 경악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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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너덜해진 살을 얼마나 꿰매었는지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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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꿰매는 건 자신이 했다. ‘봉합’ 스킬이 큰 도움이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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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한다고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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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은 마취도 없이 살을 꿰맨 교관님이 아닐까요? 관우도 안 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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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양반처럼 뼈까지 긁어내면 모르겠는데, 난 그 정도는 아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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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전체적으로 보면 교관님이 더 심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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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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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은 마취제를 쓰고 싶었으나, 저 양반은 [독 내성] 특성 탓인지 마취제가 잘 안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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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마취제 대부분은 독성분이 있기 때문이었고, 어쩔 수 없이 마취 없이 생살을 꿰매는 과감한 수단을 감행해야만 했던 데릭으로선 손이 다 떨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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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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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아프단 소리 한 번 안 하시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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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간 가까운 수술 동안 그는 참아낼 뿐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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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신, 아니 강한 분이야,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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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으로선 새삼 이 사람이 말도 안 되게 강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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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무력으로 강하단 사람이란 뜻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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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육체도 강하지만, 정신적으로도 엄청나게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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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생살을 꿰매면서도 비명조차 안 지른 것 때문에 강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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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제 제자를, …타인에 불과한 소녀를 위해 이토록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단 점이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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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자신이라면 이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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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미래의 일이 마음에 안 들어서 쳐들어간 게 아니라, 레비란 소녀가 상처 받지 않을 [가능성]을 만들고 온 거야. …이런 식으로 답을 낼 수도 있는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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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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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건 정답이 아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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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후작가와 싸워 소녀의 행복을 이끌어낸다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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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미친 개발진이라고 한들, 이토록 터무니없는 이스터 에그를 집어넣진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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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귀왕전을 한 번 더 하지, 트리스탄이랑 싸우는 건 진짜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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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혈수리 개개인의 레벨은 5에서 6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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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부단장 같은 경우는 그와 동등한 Lv.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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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들이 백 명이 모였을 경우 그 레벨은 Lv.8에 맞먹거나 그 이상의 저력을 내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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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추가적으로 후작의 경우는 아예 단독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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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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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9는 아니지만, 그 직전 단계에 도달한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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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Lv.9를 제외하곤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강자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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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그런 이를 상대로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거대한 업적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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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과 싸워 승리하고, Lv.9에 맞먹는 괴물에게서 살아남고…. 이 정도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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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8의 영웅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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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은 그가 이 세계관에서 진정으로 강자의 반열에 들어갔음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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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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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나이에 저 레벨이 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험난한 삶을 살았는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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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강하다고 해서, 기연이 있다고 해서 닿을 수 있는 레벨이 아님을 알기에 데릭은 감동마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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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얼마나 노력했을지 상상하니 가슴마저 벅차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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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만 쓸 수 있으면 당장 그의 능력치를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데릭이었고, 그런 데릭이 나름 고양됨을 느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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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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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과 비교하자면 초췌하기 이를 데 없어진 소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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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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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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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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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은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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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게 소녀는 몰랐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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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자신이 문제의 장본인임에도 무력하게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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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그 무력함이 무색하다는 듯, 소녀의 대변인이 돼주어 후작가와 맞서고 온 스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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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의 격정을 느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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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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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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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눈물을 쏟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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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걱정, 혹은 속상함과 미안함, 그리고 자기혐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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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감정이 교차하며 제대로 말조차 내지 못하는 레비였고, 그런 소녀를 향해 교관은 다정한 시선을 던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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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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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사부님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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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건 나중에 울고 시녀님 좀 도와서 밥 좀 가지고 와라. 하루 종일 누워만 있으려니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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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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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교관이 이렇게 노력했는데, 밥 주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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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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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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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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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신파극을 찍기엔 그의 감성은 너무 메마른 게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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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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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소문도 안 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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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뜬소문조차 안 퍼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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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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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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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라와 레비가 만든 10인분을 훌쩍 넘는 소고기 스튜와 빵, 그리고 화덕에서 구워진 닭 세 마리를 먹어치운 후, 소심이 녀석이 전해준 정보를 들으며 이한은 눈을 끔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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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후작가를 습격했다는 소식이 왕도에 전혀 퍼지지 않았다는 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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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날뛰었는데, 아무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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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입으로 이런 말하기 부끄럽지만, 자신은 진짜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날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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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후작의 저택이 인적 드문 숲속이었다고 해도,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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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철저하게 통제하였다면 가능하죠. 다만 엄청난 권력자여야 하고, 상당히 능력이 뛰어나야 할 텐데, …교관님, 혹시 아시는 분 중 공작이라도 있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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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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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은 알지만, 아마 그 공작이 나서진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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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님, 확실하게 날뛰게 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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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정보의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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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하려면 마법사를 비롯한 무수한 행정관의 도움이 필요할 터였고, 이런 일이 가능한 사람은 자신이 아는 한 은발 머리의 왕녀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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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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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되려면 이 정도 능력은 있어야 하는구나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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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 않으세요? 잘만 하면 트리스탄을 이겼다는 명성을 얻을 수도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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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뜬금 또 뭔 헛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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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냥, 기사들은 그런 명예를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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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이 녀석은 진정 알려지지 않은 게 아까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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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아, 공적치랑 명성치 얻으면 새로운 특성 얻을 수 있을 텐데’ 중얼거렸고, 혼자 속삭인다고 속삭인 걸 테지만, 이한은 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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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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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가질 것도 아니고, 타인이 가질 물건을 가지고 너무 아까워한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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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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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짓 명성 필요 없다. 결국 난 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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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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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 돌아왔기 때문에 너는 내가 이겼다고 여기는 것 같지만, 난 실질적으로 진 거야. 오로지 후작과 기사단의 자비로 난 살아남은 것뿐이다. 그러니 괜한 생각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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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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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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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과, 백 명의 기사들을 이긴 것도 상대가 자신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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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 또한 그를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지만, 살려서 보내준 것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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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그는 승리했다는 느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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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얻어맞고 온 느낌이 들면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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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도 이긴 건, 이건 거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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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결과만 중시하면 그렇지. 하지만 난 과정도 좋아해서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영…. 별 느낌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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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님은, 생각한 것보다 더 고지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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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 되면 그래,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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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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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이는 의미심장하게 그를 보았고, 이놈이 건방진 생각을 한다며 이한이 타박하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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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그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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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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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이렇게까지 하셨어요? 제, 제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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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다시 묻는 거냐? 좀 넘어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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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럴 수 없잖아요! 어떻게 그래요! 이렇게 다치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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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제 울먹이는 듯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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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는 자신 때문에 그가 이토록 다친 것이 속상한지 여전히 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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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먹이는 레비의 동공은 어느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고, 이한은 그런 레비를 묵묵히 바라보며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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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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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필요하시면 부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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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없지 않은지, 그가 부르자마자 녀석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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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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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둘만이 남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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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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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흐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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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상함이 가득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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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침묵 속에서 이한은 그저 조용히 소녀가 진정하길 기다려주고 싶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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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처해서 불행으로 걸어가려는 제자를 지켜주는 게 잘못된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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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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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물어봐야 할 것 같다는 느낌과 함께 이한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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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먹이던 소녀가 굳으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고, 이한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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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소녀의 시선을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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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레비 폴트란 생도는 똑똑하고 강인한 소녀다. 아무렴, 넌 불칸에서 그 힘든 훈련조차 버텨냈으며, 주문쟁이들이 펼쳐내는 마법에서도 도망가지 않았다. 그뿐이냐, 넌 놀의 대군 앞에서도 당당히 병력을 지휘하며 승리의 공헌한 일등공신이다. 너의 용맹함은 검술학부 80명 전원이 알고 있고, 내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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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갑자기 무슨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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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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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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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호통 어린 말 자르기에 소녀의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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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만큼은 되물음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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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똑똑한 애가, 용맹한 애가 왜 자꾸 바보처럼 구는 걸까? 왜 자꾸만 바보 같은 선택지를 고르는 걸까, 난 이게 너무 이해가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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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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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효녀라서? 가문을 위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 넌 ‘착한 애’니까. 분명 효심 때문에 도망가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희 부모를 이해할 수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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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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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소녀는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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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깨달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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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한이 ‘무언가’를 눈치챘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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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트 가문, 네 말대로라면 그 가문은 이미 망해버린 가문이다. 하지만 망한 이유는 기사 가문으로서 당당히 재기하려다 실패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 말이다. 비록 여자이긴 하지만, 마침내 기사의 재능을 타고난 널 버리는 게 과연 이치에 맞는 걸까? …그건, 너무 이상하지 않냐는,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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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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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네가 기사가 된다면 가문의 비원은 이루어지고, 폴트란 이름도 다시 부활할 텐데, 너희 부모란 작자는 왜 그러지 않는 걸까?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는 머저리라 그런 걸까? 아니면 네가 여자라서 무시를 하는 걸까? 흠, 나 같으면 너같이 ‘맹목적’으로 노력하는 애를 절대 그렇게 버리지 않았을 텐데, 아무리 봐도 이해가 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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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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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까, 뭐가 너를 그렇게 맹목적으로 따르게 만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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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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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동안 주어진 힌트들을 연결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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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인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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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폴트를 상징하는 근원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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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영애이면서도 검술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며, 형용할 수 없는 독기로 무장한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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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듯한 모양새였고. 무어가 소녀를 저토록 발버둥치게 했을지를 이한은 고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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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리 널 몰아붙이고 있는 걸까, 그리고 넌 왜 바보처럼 어떠한 반항도 없이 부모의 말을…, 아니, ‘명령’을 따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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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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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원한다면 뒷얘기는 꺼내지 않으마. 그냥, 이런 의심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두도록 하마. 꼰대의 잔소리라고 생각하고 그냥 너도 털어버려라, 아니면, 기분이라도 풀 겸 따귀라도 한 대 때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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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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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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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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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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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고요. 사부님의 예상. 그거, 다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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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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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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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량하기까지 한 미소를 머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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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은 역시…. 생긴 거랑 다르게 눈치가 좋으시네…,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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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는 것도 어려운지, 눈물을 멈추지 않는 소녀였고, 이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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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긴 거랑 관계는 없다. 그저, 부모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가 없기에 생각했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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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 군요. 당연한, 도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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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말하지 않아도 좋다. 딱히 추궁하려고 물은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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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다 추궁하셨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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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궁이 아니라, 면담이다, 면담. 원래 제자의 속사정도 어느 정도 알아둬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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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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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는 우는 것과 달리 해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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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숨겨왔던, 아니 드러내는 것조차 절망스러웠던 ‘진실’을 가볍게 들춰낸 주제에, 그저 평소처럼 자신을 대하는 그가 고맙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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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헤, 드디어 들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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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도감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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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숨겨야 하는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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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키는 순간 비난을 피할 수가 없다고 여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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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데 들키니 이토록 속이 시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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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 소녀는, 아니 이제 당당히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 성숙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가 제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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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맞아요, 사부님 생각하신 대로, 저는요….”
|
||
|
||
─부모가 없어요.
|
||
|
||
…서서히 입에 담았다.
|
||
|
||
* * *
|
||
|
||
화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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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엉망이 된 불법 도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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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화마가 번지는 도박장을 지키는 번견들은 모두 쓰러진 지 오래요, 도박에 미친 이들은 모조리 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기절하여 밖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바.
|
||
|
||
한데 그런 도박장에서 유일하게 정신을 유지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
||
|
||
아니, 일부러 정신을 놓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 타당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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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콰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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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으으, 대, 대체 왜 이러는 거요!”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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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나, 나한테 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기에 이러는 거란 말이요!”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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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답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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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 열지 마, 냄새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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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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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머리의 사내는 멱살이 잡혀 그대로 들어 올려졌다.
|
||
|
||
단순히 멱살을 잡혔을 뿐인데,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남성을 덮쳤고, 그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였다.
|
||
|
||
허나 멱살을 잡아 올린 흑발머리의 청년은 조금의 동정도 보이지 않으며 마냥 사내를 압박했다.
|
||
|
||
조금의 배려도 해줄 가치를 찾지 못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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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이놀 폴트, 지금부터 내가 하는 물음에 똑바로 답해야 할 거다. 입을 열지 못하겠다면 고개라도 끄덕여라, 고개도 끄덕일 수 없다면 눈이라도 깜빡여라, 한데 만약 조금이라도 답변이 늦거나 거짓말을 한다면, 너를…. 아니 네 가문 전체를 기필코 이 세상에서 없애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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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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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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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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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놀 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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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트 가의 당대 가주라 할 수 있는 사내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미치도록 머리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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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볼품없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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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동점심이라도 생길 법한 모습이 아닐 수 없지만, 흑발머리의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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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에겐 가증스럽고도 놀보다 끔찍한 생물로 보이게 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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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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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냉정함을 유지하던 그가 이토록 화를 드러내는 경우도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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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에라도 이 끔찍한 자의 숨통을 끊어놓고 싶은 욕망을 가까스로 참으며 로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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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놀 폴트, 올해 43세이며. 평민 출신 아내와 슬하에는 딸이 두 명 있다. 내 말이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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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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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맞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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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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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놀 폴트는 머리를 미치도록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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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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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아내와 딸이 있는 것이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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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던데, 딸은 두 명이 아니라 ‘한 명’이던데? 왜 거짓을 내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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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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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아니라 하나이지 않나? 그리고 말이다. 설사 딸이 두 명이 맞더라도, 왜 한 사람에게 ‘복종의 각인’마저 새기며 그런 잔인한 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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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끄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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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死藏)된 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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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고대의 비술로 전해지며, 주독(呪毒)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방식으론 절대 해주할 수 없는, 현대에 이르러 가축이나 마물에게나 할 법한 ‘절대복종의 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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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사람에게 새기는 것은 국법으로도 금지되어 있으며,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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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지금 로엔은 국법의 지엄함을 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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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논하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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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깟 쓰레기가! 네깟 것이 뭔데 감히 한 사람의 인생을 농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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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딴 쓰레기 때문에 인생이 농락당하고 끝내 서글픈 인생만 살았던 동료에 대한 안쓰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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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은 오로지 그것만으로도 분노하였고, 그의 감정에 반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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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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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자’가 포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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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인을 분노케 한 죄인을 갈가리 찢어발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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