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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勁), 제자들은 [머슬 아츠]란 이름으로 더 자주 부르는 이 기법은 무협에서 보았던 외공에서 본떠 만든 그의 독자적인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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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기능을 극한으로 뽑아내어 사용하는 심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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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한 힘과 속도, 튼튼한 내구력 등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이었으며, 덕분에 재능이 다소 부족한 사람이라 해도 누구나 쉽게 익힐 만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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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투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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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까다로운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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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는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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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 내부에서 폭발 비스름한 것을 강제로 일으켜, 폭발적인 힘과 속도를 내뿜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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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능력이 순식간에 5~10배가량 상승폭을 그리는 것이니, 위력적이다 못해 가공할 만한 기술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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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투기법을 익히는 데 있어 필요한 센스와 재능은 특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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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켜 강제적으로 신체 능력을 전반적으로 올리는 기술이란 것만 들어도 얼마나 미친 기술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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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가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폭발의 힘을 응용할 천재적인 운용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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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로 따지면 F1레이서 급 판단 능력이 필요하다 보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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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한은 투기법을 익힌 기사를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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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만 해도 내가기공을 익힌 무림인들이 대부분 최강자 소릴 듣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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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다 이유가 있음을 환생하고 깨닫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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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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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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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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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만 알고 있었지, 투기법이 왕국과 제국마저 인정하는 가장 위대한 기법임을 그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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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진정한 투기법’을 몰랐던 모양이고, 그런 주제에 좀 안다고 자부하며 나대고 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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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깨달으며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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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입을 열었다간 어제 먹었던 것까지 다 게워낼 것 같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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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프트럭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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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 방패를 든 채 그를 들이박는 열세 명의 기사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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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러(Buck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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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부크리예 등으로 불리는 둥근 방패는 공격을 막는 용도보단 공격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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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장점 못지 않게 단점도 많아 웬만한 기사들은 잘 쓰지 않는데, 적혈수리 대부분은 버클러를 사용했으며, 이러한 방패가 그를 향해 다가올 때마다 덤프트럭 못지 않은 충돌이 연신 그를 난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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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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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을 일으키듯 다리를 박차며 전신으로 들이박는 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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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열세 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였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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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이 공명현상을 일으키며 아지랑이를 일으켰고, 이한은 그런 그들을 향해 똑같이 한 손 방패를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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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 않게도 똑같은 버클러를 착용한 그와 기사들이었고, 이한은 전신에 경을 둘러 금강을 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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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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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불괴의 경지에 다다르잔 의미에서 붙인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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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이한은 온몸에 갑옷을 두른 것과 마찬가지였으며, 그로 인해 사각지대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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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곧 방패이자 갑옷이며, 공격 수단이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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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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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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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일어나는 폭발과 같은 충격을 그는 견뎌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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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허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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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흐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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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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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견뎌내지 못한 기사들은 쓰러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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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단번에 떨쳐나간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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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번이 넘는 추돌 끝에 가까스로 저들을 떨쳐 낸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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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 진짜 죽자고 덤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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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떨쳐 내었다고 해도 그가 아무런 희생 없이 이겼다는 뜻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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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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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가 진탕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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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남다른 단단함과 회복력으로도 미처 해소하지 못하는 충격이 쌓이고 또 쌓인 것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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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 조금만 더 부딪쳤으면 그의 금강이 먼저 깨졌을 것이라며 아찔함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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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기와 체력 싸움이었기에 그가 이긴 것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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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고 싶은 유혹을 참으며 곧장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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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여덟 명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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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장 합이 좋아서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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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말고 한꺼번에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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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그래서 우리의 힘이 부족한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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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그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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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게 맞지. 괜히 백 명이나 몰려다니면 힘만 분산되는 법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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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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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아니 정확히는 창을 잘 쓰는 놈이 당한 이후부터 그들은 다 같이 달려들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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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 혹은 두 명씩 다가오며 그에게 덤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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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게 자신을 무시하거나 저들이 오만해서 저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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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또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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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거슬리고, 더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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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명을 상대할 땐 차라리 난전이란 느낌이 들었고, 도리어 상대하기가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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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훈련을 열심히 했다 한들, 진정으로 백 명이 한 사람처럼 움직일 순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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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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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 일곱 명, 다섯 명 단위로 오는 놈들은 하나같이 합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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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명이 한꺼번에 공격하는 것보다 효율적이고도 위협적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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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놈들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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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가장 위협적인 상대는 방금 전 열세 명이 방패 기사들과 그 전에 쓰러트린 두 명의 검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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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이 맞은 기사가, 아니 달인들이 힘을 합친다는 건 야구로 따지면 투수와 포수의 궁합이 환상적인 것을 넘어 노히트 노런이나 퍼펙트게임을 해낼 정도의 기량을 선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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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렇게 합이 맞춰진 이들끼리 그에게 덤비는 것이 심적으로 더 지쳤으며, 힘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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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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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정으로 기사와, 아니 기사단과 결투를 한다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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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가 진정한 시련이란 생각과 함께 이한은 묻은 먼지와 피 섞인 침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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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드는 의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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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한을 상대로 너무 고상하지 않냐? 뭐 이리 전력을 다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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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지금 우리 중 그대를 단순히 괴한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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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한 맞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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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온 경과 그런 대화를 나눴는데, 우리가 그대를 한낱 괴한이라 경시할 리 없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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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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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진심으로 의문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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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제온은 또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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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런 자신의 반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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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고 행동했다, 라…. 하! 더욱 기사의 투지를 건드리는구려! 좋소, 서로의 명예를 걸고 붙어 봅시다,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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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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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가에서 열화를 토해내듯 열정을 뿜어내는 기사였고, 이한은 이것들이 단체라도 약이라도 먹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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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다 쓰러트리다 보면 결론이 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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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가 해야 할 일은 변함이 없기에 이한은 부러진 도끼와 갑옷을 던져 버리며 묵묵히 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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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60명만 더 이기면 된다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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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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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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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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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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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콰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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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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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의 정예병들은 감히 저 대결에 끼어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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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한이 습격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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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기사단을 엄호하며 저 괴한을 물리쳐야 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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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머리로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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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도 끼어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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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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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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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가가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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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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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끼어드는 순간 말 그대로 태풍에 휘말리듯 찢어발겨질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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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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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이 자신들처럼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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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사람이 저리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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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에게 중력의 작용 같은 것이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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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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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병사의 중얼거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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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기사들의 결투를 보는 게 처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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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나름 트리스탄에서 오래 일한 병사들이니까, 가끔 대련을 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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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지금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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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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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땅을 디딜 때마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땅이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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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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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휘둘러지고, 몸이 충돌할 때마다 벼락이 치는 소리가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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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저게 인간끼리 부딪치면 생기는 소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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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어느 음유시인이 읊어 준 ‘영웅 설화’의 내용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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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의 움직임은 바람과 같으며, 기사의 검격은 벼락이 내려치는 것과 같으니, 하여 그들은 일기당천의 초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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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애들 코 묻은 돈이나 뺏자고 아무렇게나 읊어대는 동화의 내용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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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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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기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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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이란 진정으로 바람이 되기도 하고, 벼락이 되기도 하는 초인이 맞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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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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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지, 진짜 초인들이었다면 저렇지 않지. 이미 후작가는 초토화되고도 남았을 거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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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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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오해를 정정해주는 노기사가 있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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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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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곁에 다가온 그들의 주인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군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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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됐네. 이런 상황에서까지 예의를 안 차려도 되네. 그저 홀로 구경하려고 있으니 청승맞아 여기까지 온 것이니, 보던 거나 계속 같이 보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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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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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구나, 좋아. 아무렴, 그래…! 이것이 결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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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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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례까지 와야 할 텐데, 이거 참! 애도 아니고, 초조해서 미칠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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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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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은 서늘한 공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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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모시는 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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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미아 각하의 눈이 붉게 충혈 된 것이, 마치 배고픔을 호소하는 맹수가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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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허기짐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그는 감동을 먹은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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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법을 잊었던 독수리가 자신에게 날개가 있음을 기억해내고, 창공을 훨훨 날아다닐 준비를 끝낸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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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냥 이것이 착각이 아니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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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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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에 잡힌 활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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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화살을 쏘고 싶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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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미아 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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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안달이 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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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기사들이 패배하는 것조차 흥겨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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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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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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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듯, 그의 순서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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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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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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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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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반 토막이 난 검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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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명 정도를 쓰러트렸을 때부터 불길한 소리가 나더라니, 기꺼이 내구성이 다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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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을 익히고 난 이후로, 검이 쪼개진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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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한은 별 미련을 갖지 않은 채, 검을 던져 버리곤 품 안에 손을 넣어 손도끼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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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독수리의 카를 드 메츠다. 서열은, 적당히 이십 위라고 해 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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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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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도 대체 몇 번이나 한 것인지 이제는 잘 기억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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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기사들은 제 이름을 대었고, 이한도 관성적으로 이름을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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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름을 다 기억하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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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은 기억하는데, 도중 드문드문 의식이 꺼질 뻔한 적이 있어 까먹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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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름이나 대화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도 상대방이 무슨 기술을 쓰고, 무슨 병기를 썼는지 기억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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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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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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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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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을 파고드는 검과 손도끼가 빛살이 되어 부딪쳤고, 상대방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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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그 틈을 놓치지 않으며 곧장 놈의 품에 파고들어 박차기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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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신탄영의 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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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가 피할 틈도 없는 일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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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아무리 그래도 투구를 쓴 상대에게 박치기를 가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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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한 미련한 짓도 없었고, 본인의 두개골이 깨지는 게 아닐까 싶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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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두개골이 무슨 강철로 만들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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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투구, 아무래도 낡은 것 같은데 새 걸로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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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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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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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건 투구였고, 이긴 건 이한의 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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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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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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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랑 헤딩을 하면 안 된다는 배움을 얻으며 그는 정신이 확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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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 의식이 꺼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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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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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마에서 피가 흐른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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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 그보다 넌 몇 번째냐? 왜 혼자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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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을 맞추고 싶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는 합을 맞출 동료가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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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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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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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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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주위로 시선을 돌리라 조언을 따르고 나서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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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을 제외한 채, 다른 이들은 쓰러져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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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혈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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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전설을 가진 기사단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으며, 이한만이 홀로 서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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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하한다. 넌 실질적으로 적혈수리 전부를 꺾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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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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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우리가 완전 패배하는 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막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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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도 중요하지만, 그 결투만큼이나 승리도 중요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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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그가 투기를 내뿜으며 심상치 않은 ‘검울림’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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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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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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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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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을 뽑는 순간 자연스럽게 검명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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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놈의 검울림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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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은 앞서 상대한 녀석들 중 첫 손가락 안에 들 녀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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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일 드 트리스탄이다. 과분하게도 적혈수리 기사단의 부단장 직을 맡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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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리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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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계다. 하나 미리 변명을 하자면, 핏줄의 힘으로 부단장이 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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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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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아. 딱 봐도 지금까지 상대했던 녀석들 중 가장 세 보이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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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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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노력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정말 오랜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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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일은 지금 이 순간, 단순히 방계란 이유로 느꼈던 자격지심을 모두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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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선 기사는 단순히 그를 방계로 보지 않고, 오로지 쓰러트려야 할 맞수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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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보답 받는 것만 같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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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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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할 때 싸웠어야 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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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멀쩡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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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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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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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대로 이한의 몰골은 처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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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아홉 명의 독수리들은 쓰러질지언정 결코 그냥 쓰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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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는 자상을 입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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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이는 그의 턱을 때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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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이는 동료를 위해 그의 움직임을 막았고, 기어이 칼침마저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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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한의 몰골은 혈인(血人)과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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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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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베일은 자신의 차례가 마지막인 것이 굴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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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가장 먼저 나섰어야 했거늘, 다른 이들이 그를 계속 뒤로 미뤄대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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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장이라며? 그럼 직위로 밀고 나가지 그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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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장이라도 나보다 다들 선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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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 그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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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보다 짬이 더 우위였던 군대를 겪은 그는 베일을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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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수긍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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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고, 칼이나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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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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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쉬게 하려고 대화를 걸었건만, 베일은 미간을 찌푸리려는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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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무시하는 건 아니고, 지금 쉬면 더는 못 움직일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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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상처를 입었을지언정 사자는 사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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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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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의 검이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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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검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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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명에도 경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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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의 후배인 요르드나 회귀자 녀석이 보인 검명과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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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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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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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검기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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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명 자체가 가진 힘을 마치 실로 뽑아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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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마치 이한의 검화(劍花)처럼 검이 가진 기운만을 운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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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劍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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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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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뿜어낸 실 가닥은 바위를 가르는 절삭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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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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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력은 더욱 멋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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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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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대화는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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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의 검사가 덮쳐왔고, 이한은 곧장 대응하듯 몸을 허공에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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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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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승부수를 띄우기 위한 이한의 한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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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이미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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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미 한 번 보인 기술을 예측하지 못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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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의 금강이 사각이란 게 없듯이, 베일의 검사 또한 사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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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트리스탄의 올빼미]라 불린 이유는, 그의 공격에는 범위란 게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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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조차 그가 자유롭게 뛰어놀 무대에 불과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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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칼날이 매섭게 용솟음치며 공중으로 뛰어오른 이한을 끈질기게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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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먹잇감을 낚아채는, 말 그대로 매마저도 사냥하여 먹어 치우는 올빼미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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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한은 그런 검사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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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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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허공을 박차며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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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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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를 향해 돌진하는 행위는 자살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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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를 포기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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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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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은 이한을 이미 인정했기에 그가 승리를 포기하여 자포자기하듯 돌진하는 것이 아님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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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수단이 있기에 저토록 전력으로 돌진하는 것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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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알기에 베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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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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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계략이 있을지언정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검의 그물을 펼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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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붙이길 [하늘의 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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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고 하늘이고 벗어날 방도가 없는 칼날의 그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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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라지망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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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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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뭐 이런 놈이 다 나오는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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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진짜 자칫 잘못하면 전신이 난도질당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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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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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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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난도질을 당하건 말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이 온몸을 회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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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펼쳐낸 것이 천라지망이라면, 자신이 펼쳐낼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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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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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의 전설, 신선들의 고향 곤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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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곤륜의 후예들이 구름 사이로 노니는 용의 움직임을 보고 만들었다는 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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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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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는 그의 재해석이 들어간 운룡대팔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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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에선 이를 신법으로 분류했다면, 이한의 운룡대팔식은 공중에서 떨어지며 생기는 회전력과 돌파력을 한없이 폭증시킨 수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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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그가 썼던 관일창을 온몸으로 재현하는 것이었고, 기어이 그의 운룡대팔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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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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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그물이건 뭐건 찢어발기는 위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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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야, 원. 그런 건 대체 어디에서 배우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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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은 제 기술이 깨지는 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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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깨진 것에 대한 허망함보다 저런 기술은 대체 어디에서 배우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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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 낭만과 협객이 가득한 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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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협객은 또 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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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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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은 뒤로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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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새도 없이 이한의 무릎이 정확히 그의 배 정중앙을 타격하며 그대로 쓰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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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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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후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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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거칠게 숨을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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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방심할 틈도 없는 강자를 꺾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그리고 운이 좋았음을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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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기술이라 먹힌 거지, 그런 게 아니었으면 내가 도리어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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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럽게 운룡팔대식을 연습한 시간이 보답 받았음을 느끼는 순간이었고, 이한은 이 순간 실존하는지도 알 수 없는 곤륜파에게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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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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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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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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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닐세. 더할 나위 없이 보람차고도, 흥분되는 시간이었네. 대체 내 차례는 언제일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거야,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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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당신 부하들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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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만족했을 게야. 아무렴, 이만한 결투를 경험할 일이 어디 있을까? 패배하긴 했지만, 돈으로도 매길 수 없는 값진 시간이 아닐 수 없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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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원래 대귀족이란 양반들은 다 괴짜밖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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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이나 공작이나, 그리고 왕녀나…, 하나 같이 생각의 발상이나 가치관이 특이한 인간들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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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권력자일수록 괴짜밖에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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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웃음을 짓는 그였으나, 후작은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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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흥분한 기색을 엿보이며 활을 들 따름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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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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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활이 바닥을 찍으며 파열음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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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이 대체 얼마나 무거울지 가늠이 안 가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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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당겨지기나 할까 의심이 되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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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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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은 몸소 시범을 보여주듯 활시위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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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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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화살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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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그가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 와류가 형성되었고, 바람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아니 탄환이 그를 노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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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즉발의 순간, 여전히 웃는 낯인 후작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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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조금 전 보고 받아 안 것이지만, 미리 사과하지. 조금 변명을 하자면 자네 제자에게 매파를 보낸 건 본의가 아니었네. 수하 녀석들이 멋대로 일을 벌였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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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그다지 책망할 일도 아니고. 도리어 내가 이런 짓을 하는 건 선을 넘는 짓인 것도 알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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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왜 이렇게까지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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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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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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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를 데리고 가는 건 막지 않을 테지만, 만만하게 보지 말란 걸 보여주는 거지. 걔 뒤에도 만만치 않은 뒷배가 있단 걸 알려주고 싶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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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위해서 이렇게까지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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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귀족에게 너무 보잘 것 없는 이유라 실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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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실망할 리가 있나. 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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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할 정도로 멋진 이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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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은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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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했던 선왕의 시대가 끝나고 지루하기만 했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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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를 넘기고, 기력이 떨어지며 하루하루 늙어만 가던 노기사의 삶에 이토록 가슴 뛰는 자극을 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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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서 눈물마저 날 정도인데, 단순히 제 제자가 아무런 값어치가 없는 아이가 아님을 알려주기 위해 이렇게까지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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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조차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아이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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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를 위해서라, 요즘 젊은 기사들이 본받아야 할 자세가 아니겠는가, 반할 것 같군, 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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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하지, 곱상한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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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가 예의가 없구먼, 어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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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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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은 유쾌하게 웃으며 활시위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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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이, 트리스탄이 너를 인정한다는 메시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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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하기 그지없는 방식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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