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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혈수리 기사단의 부단장인 베일은 트리스탄 가문의 방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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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렇다고 하여 핏줄의 힘을 통해 부단장이 된 낙하산이란 뜻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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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어 방계이기에 더욱 노력한 그였고, 제 힘만으로 부단장의 직위까지 거머쥐기 위해 얼마나 혹독한 시간을 보냈는지 후작마저 인정하는 바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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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혈수리의 부단장이란 함은, 감히 핏줄이나 뒷배만으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닌, 오로지 개인이 가진 강함과 명예만이 전부인 자리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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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뜻에서 베일은 제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며, 세간에선 그를 ‘트리스탄의 붉은 올빼미’라 부르며 한 세대, 아니 시대를 대표하는 기사가 되리라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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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를 포함하여 일곱이나 되는 대표자들이 있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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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하드의 흉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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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오넬의 흑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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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드래건의 백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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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그린의 백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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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의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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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드레드의 투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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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베인의 야생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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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매기는 것을 좋아하는 세인들이 이르길, 현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기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칠인이라 하였으나, 베일은 저게 다 헛소리에 불과하단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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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저 중 백사자와 백조, 야생마 등을 만나봤던 베일로선 실망만이 가득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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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얼굴 마담에 불과한 오만한 머저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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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베일의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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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그가 인정하거나 더욱 뛰어나다 인정하는 이들이 있다면 흉랑과 흑사자 정도였으며, 저들은 분명 시대를 대표할 재능임이 분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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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만났을 당시 압도적인 기량과 재능으로만 표현할 수 없는 ‘힘’은 다른 여타의 기사들로선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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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럼에도 베일은 꺾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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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저 둘에 비해 뒤떨어지지만, 그의 재능도 충분히 저들과 비견될 것이며 언젠가 닿을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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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재능보다 대단한 것은 그의 꺾이지 않는 정신력과 자신감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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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그런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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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야 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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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 경악을 넘어 압도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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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투기망을 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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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망(鬪氣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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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명 이상의 기사가 모였을 때만 사용 가능한 투기력의 그물과 같은 것으로 명문 기사단만이 보유한 비전의 기예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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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옥죄고, 억압하며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힘을 발산하여 기어이 사냥감의 숨통을 끊어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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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 자체만으로도 웬만한 마물은 숨도 못 쉬다가 즉사시킬 기예가 아닐 수 없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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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투기망을 백 명의 인원이 펼쳤을 경우 이론적으로 수천의 병사조차 압박하는 그물이 된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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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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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망이 깨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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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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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열을 흩트리지 마라! 창을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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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역량으로 투기망을 깨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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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이 저려오는 충격이 기사단을 덮었으나, 이도 한순간의 혼란에 불과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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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혈의 수리들은 당혹감을 감추며 필사적으로 창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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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투기망이 깨졌을지언정 아직 그들이 압도하고 있는 것은 맞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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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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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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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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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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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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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만 대체 몇 번을 놀라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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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은 멍하니 하늘을, 아니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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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를 제외한 인간은 과연 하늘을 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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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현자가 내뱉은 말이었고, 여러 심오한 철학이 깃든 문장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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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감히 대자연의 이치를 거슬러선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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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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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지 않고, 걸으면 되는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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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은 자신이 발언하고도 바보 같은 중얼거림을 알지만, 지금만큼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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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악! 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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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허공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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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광경 앞에서 베일은 처음으로 경외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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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에 대한 도전을 시도하여,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해낸 위대한 광경을 목도한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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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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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은 후작을 제외한 다른 누군가에게 이러한 경외감을 느꼈다는 사실에 수치심과 아연실색함을 동시에 느끼며 칼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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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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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런 상황만 아니었으면 진지하게 대화라도 해보고 싶은 사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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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랑과 흑사자에서 느낀 경이적인 재능이 아닌, 발상의 전환과 신선함이 잔뜩 느껴지는 괴한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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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을 얻고 싶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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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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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할 말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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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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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의 칼이 허공을 걷는 사내를 향해 휘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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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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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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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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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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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향해 다가오는 도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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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는 창과 단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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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 생각나는 것은 도산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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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죽이기 위해 쏟아지는 살벌한 날붙이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떠오르는 상황적 예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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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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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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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죽어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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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박차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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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4미터와 5미터 부근을 자유롭게 옮겨 다니며 상대가 거리와 공간을 가늠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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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공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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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곡한 사람의 장애물을 단숨에 뛰어올라 저 멀리 가고 있으니, 거리와 장애물에 대한 제약이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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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세상의 얽매임을 떨쳐내며 한없이 자유로운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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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건 이토록 위대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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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래는 유지하지 못할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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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소비가 엄청나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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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검법 정도는 아니지만, 허공답보 또한 만만치 않게 체력 소비가 큰 기술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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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힘을 발산하는 게 아니라, 힘을 넓게 분사하여 적절한 발판을 만드는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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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요령으로 허공을 걷는 것처럼 보이지, 실제론 발판을 시시각각 만들어 재빨리 박차는 것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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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오래는 펼쳐내지 못할 기술임은 분명했으니, 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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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박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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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순간 몸을 거꾸로 돌며 허공을 강하게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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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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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원하는 건 상대가 미처 대항조차 못 할 가속도와 주먹을 움켜쥐며 힘을 밀집시킬 찰나의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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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령은 방금 전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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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답보와 마찬가지로 힘을 넓게 분사하는 원리이며, 허공답보와 다른 점은 오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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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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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의 수단이 아니라 공격의 수단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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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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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보신권의 위력 범위를 한없이 넓게 펼쳐내며 이한은 주먹을 뻗었고, 그 주먹은 땅에 닿지 않았음에도 놀라운 현상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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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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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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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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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이 압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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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 백보신권의 영향 아래에 있던 스무 명가량의 인원이 몸의 통제권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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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와 머리를 단번에 짓누르는 듯한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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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어느 무협 영화에 나왔던 ‘여래의 손바닥’이 주먹으로 펼쳐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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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위력은 한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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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다. 이건 그저 힘을 강하게 분산시킨 타격에 불과했고, 힘을 한 점에 집중시키지도 않았기에 파괴력은 포기한 수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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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지금의 주먹질은 기사들의 움직임을 2초 정도 멈춰 세우는 잡기에 불과한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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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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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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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2초는 그가 날뛰는 데 충분한 시간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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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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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에는 검을, 왼손에는 도끼를 든 그가 사정없이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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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없는 난도질에 가까운 휘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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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과연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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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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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난도질을 막아낼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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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하고 그의 검과 도끼를 맞은 이들이 멀리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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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갑옷과 방패에 맞았음에도 거대한 워 해머에 몸이 치인 듯한 강렬한 충격과 함께 날아간 것이고, 날아간 이들은 몸속 내부가 진탕되는 괴로움과 함께 몸이 축 늘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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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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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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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려는 이들도 있었으나, 충격을 쉽게 해소할 수 없었고, 단숨에 다섯 이상의 전력이 무력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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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오오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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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기사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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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보신권의 충격을 빠르게 해소한 이들은 검과 창을 거침없이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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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상치 않은 칼놀림과 창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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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칼놀림은 뱀과 같은 휘어짐을 보였으며, 어느 창술은 드릴을 연상케 하는 돌파력을 선보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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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노력을 빼먹지 않으며, 손이 터져라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 절정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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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그런 강자들의 기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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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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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힘껏 포효하며 맞상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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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릿저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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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향해 일격을 날리던 기사들은 온몸이 저릿해지며 잠시간 몸이 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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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선보인 경이적인 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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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에에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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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후의 기백을 담아 이한은 일격을 휘둘렀고, 그의 일격은 빛살을 일으키며 저를 덮쳐오는 검과 창 등과 전력으로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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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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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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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기사들이 동시에 내지른 일격과 이한의 칼과 도끼가 부딪치며 생기는 거대한 동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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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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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심전력을 담은 힘과 기술, 그리고 의지가 맞부딪치며 땅이 들썩거렸고, 기어이 안개와 같은 흙먼지가 자욱하게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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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멀리서 이를 보던 병사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는 이들이 속출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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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물러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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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에 의해 앞이 보이지 않게 되자, 서로가 서로를 공격할까 싶어 뒤로 물러서는 기사단이었고, 소강사태가 이뤄지듯 침묵 어린 정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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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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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빠르게 흙먼지가 거치고 드러나는 건 이한과 부딪쳤던 여섯 기사들의 모습이었으며, 적혈 수리들은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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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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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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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는 여섯 기사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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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이들 중엔 기사단 내에서도 세 번째를 다투는 제온도 있어 그들에게 한층 더 큰 충격을 자아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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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토록 쉽게 당할 이들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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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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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휘청이며 쓰러지는 제온과 기사들이었고, 그나마 무릎을 굽혔을 뿐인 제온만이 유일하게 힘을 풀지 않으며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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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이상하게도 제온의 표정에는 굴욕감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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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보이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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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피하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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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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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무수한 의구심이 들어간 물음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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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의 실력을 몸소 접하며 제온은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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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냥 힘이 강할 뿐 아니라 날렵하기까지 했으며, 그들과 직접 부딪칠 필요 없이 회피하며 각개격파를 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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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도 그는 끝내 그들 여섯의 일격을 전신으로 맞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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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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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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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까지 입은 어리석음을 보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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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 선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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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또한 그들의 내지른 공격의 충격을 모두 흘려내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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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온은 지금만큼은 이한이 습격자이자 후작을 모욕한 이로 생각하지 않으며, 오로지 기사로서 물음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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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토록 미련하게 행동한 것이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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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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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걸 묻고 있군. 난 ‘싸우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사내가 싸우자고 했는데, 서로의 공격을 피해선 안 되겠지. 전력으로…, 호랑이나 사자처럼 정면에서 맞받아쳐야 의미가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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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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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처럼 왜 당연한 것을 물어보냐며 도리어 타박하듯 말하는 이한이었고, 제온은 격통조차 잊으며 어이를 상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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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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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그래, 그렇군! 그게 싸움이지. 그것이 기사의 결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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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처럼 용맹하게.’ ‘늑대처럼 영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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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처럼 저돌적이게.’ ‘독수리처럼 집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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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처럼 명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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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결투를 정의하는 무수한 문구였고, 기사의 전투는 저러 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산 제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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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저러한 정의를 지키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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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에 있어서 감히 비겁한 행위도 마다하지 않던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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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조차 없이, 눈을 찌푸리게 하며 암살자의 수단조차 아끼지 않는 이들이 수두룩한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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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눈앞에 그 문구를 충실히 지키는 사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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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명예와 늑대의 영리함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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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용맹하며 저돌적이고, 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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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심장과 곰의 올곧음, 독수리의 기개를 가진 사내가, …아니, ‘기사’가 아닐 수 없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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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 제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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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일대일로 붙도록 하지. 지금은, 사람이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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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때까지 창을 좀 더 날카롭게 만들라고. 지금은 너무 올곧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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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하! 그래, 더욱 매서운 놈을 보여주도록 하지, 아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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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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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온은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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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는 기절하기까지 시원스럽게 웃었으며, 여전히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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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가진 전력을 모두 펼쳐냈고,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싸움을 벌인 시원한 웃음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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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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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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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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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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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먼지가 자욱하게 퍼졌을 때와 다른 양상의 침묵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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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까,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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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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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온과 그의 대화를 들은 이들의 심장박동수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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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어오르는 심장의 박동과 함께 손에 움켜쥔 병기에 더욱 힘이 들어가며 쇠가 굽어지려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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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였을까? 이토록 강한 적을 만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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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이리라. 이토록 용맹하며 물러서지 않은 기백을 마주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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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학. 혹은 무훈시가 현실이 된 것만 같은 동화와 같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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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안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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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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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가슴이 벅차지 않는다면 그건 기사라, 사내대장부라 말할 자격이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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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분노해 마지않을 적을 눈앞에 두었음에도, 적혈의 수리들은 저 당당한 사내를 차마 미워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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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조차 퇴색시키는 가슴 벅참을, 그들이 ‘기사’임을 떠올리게 하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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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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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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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가 급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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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마른 입술을 적시며 눈을 반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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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 갑자기 ‘방심’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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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 갑자기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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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돌했을 당시 이놈들은 그에게 분노할지언정, 만만하게 여기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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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백 명이 한 사람에게 겁을 먹는 게 말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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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한은 그 방심의 틈을 노리며 놈들을 차근차근 제압할 속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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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지금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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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들 이유는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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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기름이 부어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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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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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만 보아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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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더는 그를 상대로 방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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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으로, 아니 전력을 넘어 모든 것을 걸고 날붙이를 휘두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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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이기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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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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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가 당해서 열이 받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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