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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하게 사고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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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밖으로 나오며 문득 덮쳐오는 현실의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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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전까진 머리에 피가 쏠려서 그냥 무작정 다 때려 부수긴 했는데, 막상 때려 부순 현장을 관찰하니 과하게 날뛰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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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백 평은 거뜬히 넘을 건물을 이토록 아작 내놨으며, 죽은 놈들은 없지만 당분간 침대 생활이 확정된 놈들이 한 트럭, …아니, 세 트럭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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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들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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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봉이나 시말서로 끝날 게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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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녀님에게 말해 누님에게 수습을 부탁하긴 했지만, 누님이라도 수습은 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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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사람 힘이면 이 정도 사건이야 얼마든지 무마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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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 제대로 잡혔구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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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목줄이 채워지고 있던 상태였는데, 이제는 더 심한 것이 목을 죄일 수도 있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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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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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가볍게 제 상황을 표현하며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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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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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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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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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기 있어. 안전한 곳에 숨어 있으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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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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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일까, 후회는 전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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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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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애라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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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한 명을 편애해선 안 될 노릇이지만, 이한은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님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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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한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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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칠 보람이 있으며, 자신이 아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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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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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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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는 그냥 ‘착한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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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선행을 베푼 만큼 돌려받길 원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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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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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나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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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처리는 골치 아플지언정, 속은 한없이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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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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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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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스승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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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동부 거리에서 스무 번째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길드 조합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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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건물이 통째로 붕괴되기 직전이었고, 그 파괴 행위를 벌인 사람이 소녀의 스승이란 사실이 마냥 믿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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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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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저로선 이기기 힘든 강자들조차 모조리 손쉽게 때려눕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생각나는 단어였고, 레비는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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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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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퇴했다고 교관이 아니라 사부라고 부르기로 확정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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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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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다,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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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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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했다. 앞으로 농담 안 할 테니, 그런 표정 좀 짓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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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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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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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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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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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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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고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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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눈물이 이제 떨어지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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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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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해요…. 죄, 죄송,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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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신이 울고 있는지, 그 이유조차 모르는 레비는 눈물을 자꾸만 글썽이며 닦아냈고, 사과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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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는 곤혹스러워하거나 꾸짖는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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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긴장이 풀리거나, 안도감이 들면 그럴 수도 있지. 무서운 놈들 다 치웠으니까 이제 안심해라. …그러니 울지 말아줄래? 나 달랠 자신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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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격려와 걱정 어린 눈길을 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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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만 해도 길드 조합을 박살 내던 사람과 동일인물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절부절못하며 저를 걱정해주는 그였고, 레비는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그를 올려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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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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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 흐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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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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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품에 안기며 조용히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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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거면 크게 울 것이지. 왜 이리 조용하게 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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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중얼거림이었고, 소녀의 들썩거림은 더욱 커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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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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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신이 갑자기 눈물이 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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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길드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에 놀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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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하여서, 그리고 ‘기뻐서’ 눈물이 나는 경우도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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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자길 위해 이토록 싸워주고, 무조건적인 제 편이 있다는 사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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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실에 소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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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는 한참 동안 그의 품에 안겨 어깨를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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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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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뒤늦게야 도착하여 무대에 서려고 했던 배우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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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올 필요는 없던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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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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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쿤타도 싸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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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인생은 타이밍이 맞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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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동문. 모처럼 멋진 모습을 보이나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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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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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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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역조차 되지 못한 배우처럼 멋쩍은 표정을 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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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망설일 시간에 뛰어야지 기회를 잡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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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일곱 명의 생도들의 입가에는 안도 어린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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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무엇보다 자신들의 동기가 무사해서 다행이란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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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그들만이 아니라, 80명 전원이 움직일 예정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다 싶어 대표자격으로 그들 일곱 만이 움직였는데, 아무래도 가만히 있어도 됐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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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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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잭. 알아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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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님이 반파시키는 동안 알아본 결과, 역시 트리스탄이 끼어 있습니다. 이야기가 복잡해지겠습니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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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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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현장에 오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게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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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사내는 수하가 가지고 온 정보를 들으며 복잡한 기색이 역력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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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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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애증과 증오가 섞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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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 가문을 이끄는 남자는 기사로선 대단함이 분명한데, 하필 그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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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편력만 고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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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미아 후작과 연이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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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검을 든 소년의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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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는 티를 지나치게 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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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잠시 무어라 대답할까 고민했으나, 곧 고개를 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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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없다 할 수도 없고, 있다고 하는 것도 이상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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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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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한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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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그는 인연을 나눈 적이 없는 게 맞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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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혹시 귀족 언어란 거요? 뭐 그리 복잡하게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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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타 공용어 다시 배워야 할 것 같다. 검둥이 말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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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과 바바리안의 투덜거림이었고, 그는 이걸 어떻게 설명할 방도가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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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동시에 이 삼인방과 이토록 격 없이 대화하는 날이 올 줄 몰랐다며 새삼스러운 감정도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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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온다는 건, 정녕 큰 축복이 맞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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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적’이었던 사람과 친분을 나누며, 설마 동문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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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학연과 지연이 최고라고 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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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아니 미래의 어느 부하가 했던 말을 떠올리는 그는 시선을 돌려 정말 새삼스럽게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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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기 이제 우린 빠져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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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하기 이를 데 없는, 현재와 미래를 통틀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비범한 회색머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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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안다고. 나도 지금은 참아야 한다는 건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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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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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친해질 리 없다고 생각한 미친 악녀…였으나, 지금은 어딘지 질투에 불탈 뿐인, 그 나이대와 잘 어울리는 순진한 금발머리 마법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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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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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하나는 내가 정말 잘 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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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어린 두 번째 삶 속에서 얻은 인연과, 스승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로엔이었고, 로엔은 스승의 품에 안긴 아직 어리기 그지없는 소녀를 향해 고요한 시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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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너였구나. 모습과 성이 달라 몰랐거늘, 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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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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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와 트리스탄 때문에 알게 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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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게 우는 등을 보고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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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울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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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혹은 그녀일지도 몰랐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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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성녀’는 서글플 때 항상 저리 울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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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동료의 죽음이 있었을 때조차 처연히 몸을 들썩일 뿐, 소리를 높일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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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소리 높여 우는 방법을 모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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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버릇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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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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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은 자칫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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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장 신뢰했던 동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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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전체에 화상이 가득하여 항상 가면을 쓰고 다녔으며, 항상 주눅 든 것 같으나, 전장의 선봉에선 그 누구보다 용맹하며 위대했던 지휘관이자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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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왕이 죽은 후, 해체 직전이었던 용병 총합을 다시 규합하여 용병들의 새로운 리더가 되었던 용병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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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의 공포이자, 타락한 왕국을 구하려 항상 선두주자에 섰던 고결한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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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 모든 영광을 거머쥐고도 단 한 번도 행복해진 적이 없는 비극적인 삶만 살았던 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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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은 죄책감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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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이토록 죄스러울 수가 없다, 잔. 내가 널 가장 먼저 알아봤어야 했는데, 조금도 알아보지 못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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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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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줬던 동료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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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거리가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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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그녀가 무슨 삶을 살았었는지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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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칼조차 본래의 색을 잃고 백발로 모두 바뀔 정도로 고단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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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조차 같이 다닌 지 3년이 지난 후에야 가까스로 알려줬으며, 본명조차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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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전장의 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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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크(Ark) 잔.] …힘없는 백성들의 ‘방주’라 불렸던 군주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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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녀의 인생과 삶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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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등을 맞대었던 자신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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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에 와서 이 모든 변명이 무슨 소용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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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결국 알아보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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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사람의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라고 하는 건가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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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은 저가 얼마나 이기적이었고, 남에게 얼마나 관심이 없었는지 새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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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돌아오기 전에도 그는 칼을 잘 쓰고, 훌륭한 영웅으로 불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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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백성들에게 인정받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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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가 남을 돌볼지 모르며, 이기적이게 살아서 그런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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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도 그를 영웅으로 생각해도, 본능적으로 자신이 왕이 된다면 삶이 고달파질 것을 알았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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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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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전쟁터에서 그가 죽었어야 했고, 그녀가, 아니 다른 이들을 살렸다면 어땠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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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면, 좀 더 앞날이 밝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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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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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실패자인 자신 따위가 예측할 없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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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실패자일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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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삶이 다시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나도 내 전부를 걸고 노력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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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는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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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그녀가 자신을 모르더라도, 자신이 기억하고 있다면 이미 남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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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결심하다. 반드시 그녀의 삶이 전처럼 비극으로 끝나지 않게 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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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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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보조역할로만 만족해야 할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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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대의 주역은 자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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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항상 뜻밖이고도 가공할 만한 모습만 보여주는 스승이야말로 이 무대의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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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떻게 꼬인 실타래를 풀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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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이자 특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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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항상 제 예측과 미래를 뛰어넘는 결과와 행동을 보여주었고, 그가 이해하지 못할 ‘길’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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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과연 그가 이번에는 어떠한 선택지를 내릴지 사뭇 기대하며 안광을 빛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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