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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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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감, -은 어쩐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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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다는 기쁨도, 승리의 희열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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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억지로 해야만 했던 어려운 업무 하나가 드디어 끝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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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마물을 물리친 것치곤 삭막한 감상이 아닐 수 없으나, 어쩔 도리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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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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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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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손으로 이겼다면 성취감이라도 느꼈을 테지만, 결국 타인의 손을 빌리고 말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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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최선을, 아니 전력을 다했음에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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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거리도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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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입안에 감도는 것은 개운함보다 약초를 왕창 씹은 뒤 남는 씁쓸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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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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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 애들이 살았으면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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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이나 자기혐오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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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제자들이, 아이들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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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 하나만이 유일하게 그가 자랑할 수 있는 점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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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드래건을 위하여! 라이오넬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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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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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 들려오는 승리의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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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안에 있던 놀 무리를 모조리 격멸하는 데 성공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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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히게도 무수한 군중의 함성이 섞였음에도 제자들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구분되었고, 모두가 무사한 것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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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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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한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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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아무래도 선생 일이 적성에 맞았나 보구나. 아니면 내가 몰랐을 뿐이고 네 녀석이 의외로 정이 많은 성격이었을지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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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여운을 즐기는 중이니까 그냥 놔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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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건방진 주둥이도 여전하군…. 어른 공경만 할 줄 알면 딱 좋을 것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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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할 만한 어른한텐 저도 나름 공경 잘 합니다. 아재는 아닐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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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 그냥 죽게 놔뒀어야 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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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르 그레이스는 뭐 이런 놈이 있냐며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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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삶은 시금치마냥 축 늘어진 주제에 입 놀리는 게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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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에 빠져도 입만은 둥둥 떠다닐 놈이 아닐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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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누가 늦게 오래요? 오라고 할 때 좀 와줬으면 얼마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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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한도 마냥 아무 이유 없이 투덜거리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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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도와줘요, 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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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마물이 나타나는 걸 알았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저 양반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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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저 양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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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정보로 움직일 수 없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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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고 터지고 옵니까? 사람 다 뒤졌어도 그렇게 변명하는지 보고 싶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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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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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선 할 말이 궁한지 발타르도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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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믿지 못한 건 확실히 본인의 판단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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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도 불온함이 느껴지자마자 달려왔지 않느냐, 그러니 이제 좀 넘어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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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원과 왕성까지 거리는 대략 3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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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리를 단숨에 주파하여 와준 것이니 물론 그 또한 나름 노력을 기울인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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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반대로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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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저 녀석들이 못 버텼으면 다 죽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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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 할 말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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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아니 이한이 버텼기에 저 노력도 의미가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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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번 일은 왕도의 모두가 이한에게 빚을 진 것이 맞음을 인정하며 발타르는 수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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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움직이지 않을 때 홀로 준비하여 ‘대참사’를 막은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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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개 무리는 모르겠으나, 저놈이 만약 왕도에서 날뛰었다면 분명 큰일이 났을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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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물…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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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르는 퍼즐마냥 완전히 해체된 귀왕에게 시선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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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죽었을 게 분명한데도 재생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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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신이란 이명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끔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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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저놈이 음식물을 섭취했다면 나조차 쉽지 않았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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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해서 다행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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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도 저의 공을 부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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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괴물이 만약 자신에게 연연하지 않고 다른 음식물을 섭취했다면 그 자리에서 상황은 종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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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섭취하는 순간 전성기의 힘을 어느 정도 되찾았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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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오러 유저도 쉽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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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좀 아쉽구나, 전성기의 놈과 싸웠다면 재밌었을 것을, 흘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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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망난 영감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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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문득 드는 생각이지만, 설령 귀왕이 30% 상태가 아니라, 100% 온전한 상태였다고 해도 발타르와 싸웠다면 발타르의 승률이 더 높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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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아는 한 발타르 그레이스란 기사는 그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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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트롤 놈이 마왕이면, 저 아재는 ‘투신(鬪神)’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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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걸 상상할 수 없는 시대의 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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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선보였던 매화검을 완성시킨다고 해서 제대로 된 타격이 가능은 할까 의구심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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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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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린다, 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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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오르고자 하는 산은 아직 그 능선조차 보이지 않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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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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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왕실 병사들을 비롯하여 지원군이 뒤늦게 도착하며 상황은 빠르게 정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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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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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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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라, 나머진 내가 처리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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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양반이 드물게 배려를 보였으니, 믿고 맡겨도 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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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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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가지고 개수작 부리려는 인간 있을 수도 있으니까 빨리 없애기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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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 잔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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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없애라는 것이 뭔지 가장 잘 아는 발타르는 순순히 귀왕의 사체를 태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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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귀족이나 마법사, 혹은 여러 녀석들이 저 사체에 대한 소유권을 얻기 위해 수작을 부릴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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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예측이 아니라 확신이었고, 저 불길한 것으로 무슨 수작을 벌일지 벌써부터 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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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힘들게 잡았는데 개수작 부리는 꼴 못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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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한이 그 꼴을 보게 된다면 미쳐 날뛰며 사체를 탐낸 이들의 목을 모조리 분질러버리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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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아는 발타르는 순순히 말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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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뭐라 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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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누가 그에게 뭐라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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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 이상 발타르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자는 없는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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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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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가 불처럼 귀왕의 사체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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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 오로지 초인만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기사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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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사가 닿고자 하는 목표이며, 그 힘의 신비로움은 마법조차 이해 못 할 미지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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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미지의 힘이 닿는 순간 귀왕의 시체는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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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마물을 태우면 사기(死氣)가 나오는 법이고, 귀왕 정도 되는 것을 태우면 왕도 전체를 뒤덮을 매연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오러는 모든 탁기를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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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도 위력적인 정화(淨化)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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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 앞에서 탁기니 저주, 원념 따위조차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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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만 있으면 환경 문제도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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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현대에도 오러 유저가 있었다면 떼돈을 벌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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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생태계에는 어떠한 악영향도 미치지 않은 채 저러한 것들을 다 치워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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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긴 한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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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 떠오르는 잡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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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쓰게 웃으며 확실히 컨디션이 정상은 아니라며 자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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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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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진 아재가 알아서 처리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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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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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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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얀 녀석, 이 늙은이에게 일을 다 떠맡길 생각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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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는 해야죠. 아님 고생한 놈이 뒤처리까지 신경 써야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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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장 부리다 이제 온 놈들이 뭐가 예뻐서 자기가 다 설명해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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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녀석. 말도 참 예쁘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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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꼬는 내용이지만, 말투는 시원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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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는 걸 딱히 막을 생각 따윈 없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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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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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바빠질 것이다. 네 녀석은 이번 일로 존재감을 너무 알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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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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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네 모든 공적을 어떻게든 숨겼겠지만, 이번에는 힘들다. 아마 며칠 내로 왕성에서 부름이 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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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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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싫은 티를 내지 말거라, 누군가는 평생을 바라던 영광이 아닐 수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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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지금은 다 모르겠고, 일단 나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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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손을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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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골이 아프니 더 이상은 말하지 말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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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르도 그의 성향을 알기에 피식거릴 뿐,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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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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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 이거나 가지고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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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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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만한 연금술사나 마법사에게 가져가 봐라, 아마 그럴듯한 걸 건질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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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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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하나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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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로 모두 태웠을 귀왕의 사체에서 나온 유일한 부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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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처럼 생겼으나 유난히 징그럽게 생긴 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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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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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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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다. 그건 타지 않고 용케 남아 있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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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물의 심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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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다른 마물도 아닌 귀왕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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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트롤의 심장만 해도 성 하나의 가격과 거래되는 것을 생각했을 때, 귀왕의 심장은 그 값어치를 측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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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지보(無價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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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을 측정하는 게 불가능한 보물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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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형용하기 힘든 눈으로 발타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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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보물을 환수해 가지 않고, 그에게 주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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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한 놈에게 성과를 줘야지, 아무것도 안 한 버러지들에게 줄 선물은 없다. 그냥 가져가라. 어차피 너와 나만의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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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깽값이라고 생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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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아, 말 좀 예쁘게 해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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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교라도 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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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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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다 저랬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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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그렇게 제 손안에 쥐어진 귀왕의 심장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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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받을 자격이 되는가 하는 배부른 고민 따윈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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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긴하게 써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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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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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을 느끼는 건 한 번으로도 족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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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쓰러질 정도로 피곤함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그의 눈은 형형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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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을 향한 발판이 생겼음을 확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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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없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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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사라지는 녀석을 보며 투덜거림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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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인정머리란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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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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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챙기는 걸 보면, 참 많이 변했어,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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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소녀와 남아 한 놈을 챙기다니, 과거 고독하게 살아가려는 녀석에겐 생각도 못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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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르는 새삼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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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만족스러운 건 마냥 성격이 둥글게 변한 것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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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본 새 등이 좀 넓어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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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력 또한 몰라보게 달라졌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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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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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에 있을 때보다 현저히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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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백사자들 중 단장급을 제외하곤 그를 상대할 이가 없었는데 지금은 논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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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를 제외하고 백사자들 중 저 녀석을 이길 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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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지금에 와서 왕도 기사단에서 그와 대적이 가능한 것은, 군신이 직접 뽑은 강자들만이 모여 있었다는 팬드래건의 전설적인 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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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단원이 아니면 그를 상대하기란 요원할 일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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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백룡기사단의 단장 발타르 그레이스는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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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성실하면 맡겨볼 만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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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맡긴다는 건지 모를 의미심장한 발언이었지만, 발타르는 딱히 그를 묶어두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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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놔두니 멋대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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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매일 대련할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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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놔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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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은 자유로움 속에서 길을 찾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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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이 기대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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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만날 날. 그는 어디까지 성장해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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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성장을 기대하며 노인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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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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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왜 이 노인은 안 챙겨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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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녀석들을 다 챙겨갔으면서, 이상하게 마법사 노인을 챙기지 않는 이한이었고, 이를 보며 발타르는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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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튼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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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노인공경을 모르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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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진하여 기절한 마법사, 오드왈 버나드(28세)를 저보다 연배가 높은 이로 오해하며 발타르는 타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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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인성은 불합격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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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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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의 등은 금세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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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창이의 경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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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해요, 무사히 데리고 와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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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날 토론회에서 보았던 보라돌이 소녀가 다급히 다가와 챙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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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이 넘치는 손길로 소년을 챙기는 소녀였고, 갑작스레 배가 좀 아프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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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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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녀석 그렇게 부정하더니, 역시 심상치 않은 사이가 맞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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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아이린 윈들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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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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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가의 여기사로 보이는 이가 나타났고, 이한은 아이린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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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할 만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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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녀석 동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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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에서 전날 만났던 재수 없는 라크란 놈의 얼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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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여동생이 아닐까 싶었고, 기꺼이 맡길 만하다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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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보다 피로 범벅된 몸만 보아도 놀 수십 마리는 홀로 썰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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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것만 해도 믿을 이유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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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가씨를 챙겨주셔서 감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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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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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됐고, 네 오빠한테 전해. 다음엔 네 얼굴을 누더기로 만들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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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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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환영할 만한 얘기군요.
|
||
|
||
…인성도 제법 좋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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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어쩌다 보니 빈손이 되어 가벼운 몸으로 쉴 곳을 찾아다녔고, 어느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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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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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선 곳이 제 집 앞마당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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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곳이나 누우면 그만이었거늘, 어느새 집으로 돌아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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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새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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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가 생각해도 참 바보 같다 싶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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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어요, 기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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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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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헤, 고생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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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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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그냥 계속 기다렸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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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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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따스하게 마중해주는 여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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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기다리고 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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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레아라 윈터의 모습에 잠시 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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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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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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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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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부르는 순간 레이라는 그의 앞까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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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코앞까지 다가오나 싶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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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쓰러지고 있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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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다가온 게 아닌, 자기가 쓰러지고 있음을 인지하며 이한은 다시 일어서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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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레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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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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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안심하고 쉬셔도 돼요. 편하게 그냥 기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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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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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무세요, 잠은 만병통치약이라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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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녀님치고 유식한 발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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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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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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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기지 못한 채 안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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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편한, 자극적인 향수 내음은 조금도 나지 않는 향긋한 비누 냄새와 따스한 햇살의 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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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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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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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같은 다정한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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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불가한 포근함에 빠지며 그는 금세 수마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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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무방비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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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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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레이라는 무방비한 그를 지키듯 다정하게 무릎을 베개처럼 빌려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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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근심걱정도 필요 없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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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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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지고 저녁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서 선선한 바람이 다정하게 마당을 훑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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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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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는 기사가 감기가 들지 않을까 싶어 따스하게 안아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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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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