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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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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사는 대체 무얼 보고 자신의 말을 믿어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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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설령 믿었다고 한들, 어찌 저토록 전심전력으로 싸워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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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면 편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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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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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거인을 마주한다면 두려움에 떨며 도망부터 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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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당연한 순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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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그는 포기는커녕 지금 가장 위험한 최전선에 자리하여 검을 휘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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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엇이 그를 저토록 필사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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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하게 해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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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그 쉬운 해답을 모르는 거니? 하여튼 너도 어지간히 헛똑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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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에 대한 답변을 준 것은 자수정색 눈동자가 잘 어울리는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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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맹해서 싸우는 게 아니야. 사람은 지킬 것이 있고, 도망갈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둘 중 하나로 나뉘거든, 포기하며 생을 마감하거나, 그도 아니면 발버둥치거나. 그리고 아마 네가 말한 사람은 후자일 거야, 다만 그 사람은 평범하게 발버둥치는 사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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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해 저항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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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은 저가 아는 한 가장 지혜롭고 믿음직한 소녀의 말을 되새기며 인간과 괴물의 전투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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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하고도 필사적인 그 전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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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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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 아무래도 발버둥치는 사람은 저뿐이고, 저분은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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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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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그대로 체력이 다하며 쓰러졌고, 그는 쓰러지면서도 눈만은 부릅뜨며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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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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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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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간, 이한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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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꽃잎의 기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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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며 또다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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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뒤에서 열망을 쏟아낸, 필사적으로 용기를 낸 회색머리 소년의 각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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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또렷하게 느끼며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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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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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 기합, 사자후와 함께 더욱 악기바리로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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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 이한의 우렁찬 사자후와 큰 일격 앞에 당황하는 귀왕이었고, 귀왕은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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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지금 거인과 같은 귀왕을 오롯이 기백 섞인 휘두름으로 물러서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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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가 인간을 물러서게 만든 것과 같은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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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업적 따위를 위해 놈을 일부러 물러서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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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줄만 알았던 겁쟁이가 처음으로 용기를 내었으니, 그 용기가 보답 받을 수 있도록 숟가락을 얹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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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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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두두두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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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과 닮은 무수한 니들(Needle)이 지상으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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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바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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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형태의 암기들이 공중을 빽빽하게 채우며 터져나가며 대바늘이 비처럼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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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으로 일만 개, 아니면 더욱 많을지도 모를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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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바늘은 사람을 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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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혹 사람을 노린다고 하여도 사람의 몸을 다치게 하지 않는 상냥함이 묻어난 바늘은 오로지 사악한 마성을 품은 괴물들만을 노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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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천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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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진강호 사천의 패자, 독과 암기의 명가 사청당가의 비전절기가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멋진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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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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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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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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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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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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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력 또한 장관이 아닐 수 없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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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니들은 오로지 마물만을 향했고, 그들을 고통스럽게 죽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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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들과 싸우는 놀들을 노리는 것은 물론이요, 귀왕에게도 쏟아지며 두개골을 으깨고, 목을 꿰뚫으며, 심장과 등을 난도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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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하늘에서 터지는 크레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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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크레모아보다 나은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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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엄청난 사기 스킬을 숨기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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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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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니들을 맞는 순간 몸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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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지만 체력과 부상이 회복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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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버프 효과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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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에겐 죽음을, 아군에겐 버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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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한 사기 스킬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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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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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이 없지는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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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태창이 녀석의 기척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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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천화우를 펼치고 곧장 모든 힘을 다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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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쓰고 끝, 가성비가 극악한 스킬이 아닐 수 없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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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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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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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준 건 호흡을 머금을 시간과 잠시간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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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호흡의 난전 속에서 가까스로 찾아온 가뭄의 단비와 같은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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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할 나위 없게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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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욱 마음에 드는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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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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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냐, 근데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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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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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더 남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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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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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수의 물들이 용솟음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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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무기가 수행을 끝내고 승천이라도 하려는 듯 높게 치솟는 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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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저조차 저 물살에 휘말린다면 감당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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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로 물살은 위협적이고도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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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관님, 괴롭히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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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윈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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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대 최고의 티어이자, 실상 로엔보다도 몸값이 더 높을 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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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대마법사가 될 재능을 가진 소녀가 마법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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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여 분노하라, 물이여 회전하라, 물살이여 나의 적을 꿰뚫어라, 창살이 되어 심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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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마력을 퍼부은 물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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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아이린 윈들러의 곁을 맴도는 유령 소녀는 이러한 위력적인 마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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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불어라, 물과 하나가 되어라, 적을 꿰뚫는 단두대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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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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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대형 바람의 마법을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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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중 영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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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속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녀의 뒤를 지켜주는 어느 유령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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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동시에 두 개의 속성을 사용하는 기적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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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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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왈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아이린의 마법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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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마법사의 눈에는 인지를 초월한 재능이자 신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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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재앙과 같은 마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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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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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소중한 사람을 괴롭힌 괴물에게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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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된 것은 작은 [용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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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작다 해도 용오름은 용오름이었고, 그 용오름이 귀왕을 덮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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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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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왕이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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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병아리 녀석, 이제 보니 병아리가 아니라 봉황 새끼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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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감탄 섞인 넋두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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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주문쟁이에게 이토록 큰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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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적인 주문쟁이 혐오 발언이 나왔으나, 이한은 지금만큼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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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해주는 소녀 덕분에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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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천금 같은 이 시간을 활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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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힘내는데, 모양 빠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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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준비한 ‘비장의 수’를 꺼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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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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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용오름이 귀왕을 옭아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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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으로 인해 압축된 막대한 물의 질량과 흐름은 어느 생물이라도 거스를 수 없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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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귀왕은 마법에 의해 옴짝달싹 못하며 좁은 창살에 가둬진 채 물고문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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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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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하는 물의 창살은 마냥 귀왕을 붙잡아둘 뿐만 아니라, 강력한 회력으로 상처를 내었고, 놈의 몸을 완전히 갈아버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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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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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물로 이루어진 믹서기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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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붙잡힌 순간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으며, 그대로 온몸이 갈려나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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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가 아닐 수 없으며 개인이 펼쳤다고 여길 수 없는 강력한 압도적인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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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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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아, 좀만 더 힘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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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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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이만한 마법을 지속하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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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은 온몸이 벌써부터 후들거렸고,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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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한을 만난 후 강제로 체력증진 훈련을 해놓지 않았더라면 조금도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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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체력은 국력이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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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상황에서 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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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은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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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교관님은 대체 어떻게 이 괴물이랑 싸우고 있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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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이건 진짜 괴물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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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력이 심상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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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항력도 저항력이지만 저 괴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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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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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오름을 거스르려고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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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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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갈려나가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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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분쇄될지언정 재생하면 그만이었고, 물이 무겁다고 해도 힘으로 돌파하면 그만이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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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은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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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불가능한 문제 대부분을 머리가 아니라 지나칠 정도로 강력한 몸으로 모두 해결하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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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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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와 같이 놈은 용오름에서 벗어나 그녀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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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 만큼 반드시 되갚아주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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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죽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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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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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은 한계에 다다르며 그렇게 눈이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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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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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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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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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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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웠고, 나중에 이 빚은 갚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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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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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은 피로함도 잊고 그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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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격려와 함께 감사를 전하는 순간 안도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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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기절해도 되리란 안도감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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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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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중에 비싼 밥 한 끼 사주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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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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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진짜 비싼 거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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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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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헤픈 웃음을 흘리며 그렇게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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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자신만만한 눈을 직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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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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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처럼 가볍진 않지만, 그래도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소녀를 받아들며 이한은 천천히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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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신사적인 자세가 아닐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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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형형한 두 눈은 여전히 귀왕에게 고정되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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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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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 긁어지는 소리와 함께 기세가 약해진 용오름을 뚫고 오는 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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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있는 천재지변 취급받는지 알 수 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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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한다. 넌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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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오늘이 오기까지 무수한 수단을 강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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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약을 품은 관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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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작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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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도움을 얻은 스킬의 조력과 마법사의 도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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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수단을 쓰고도 놈은 여전히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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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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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은 강했으며 자신처럼 허약한 놈이 이길 만한 괴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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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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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제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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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진 못할지언정 제압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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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선언인가 싶으나, 그는 결코 허언을 내뱉지는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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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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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의 몸이 느릿하게 회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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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적거리는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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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얼굴과 온몸에는 힘조차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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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패기 넘치는 모습과 전혀 다른 탈력(脫力)적인 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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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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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 어느 순간보다 눈은 또렷했으며 집중력은 곤두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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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이한이 채석장에서 쉴 틈 없이 무작정 곡괭이를 휘두르며 얻은 깨달음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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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이란 게 꼭 힘을 줘야지만 나오는 게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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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설적인 말이며, 무슨 헛소린가 싶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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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가 깨달은 바론 힘(力)은 반드시 육체가 가진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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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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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전하는 기류나 부는 바람에도 힘이 있고, 노래와 악기의 소리에도 힘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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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괭이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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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휘둘렀던 곡괭이질은 이한의 생애에서 가장 연약한 곡괭이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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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 곡괭이는 기어이 시퍼렇게 날이 선 칼처럼 암석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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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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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순 것이 아니라 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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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괭이 자체가 가진, 철이란 놈이 가진 힘을 일시에 모두 소비했기에 해낼 수 있던 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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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검일합과 같은 거창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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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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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무기란 놈은 사실 더 날카롭고 위력적인 무기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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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 깨달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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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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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기(劍氣)를 형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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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기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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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로엔이 보였던 투기법의 새로운 신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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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허나 로엔이 보였던 검기는 강압적이고, 여러 가지 요소와 천부적인 재능을 합치해 강제로 일으킨 검기였다면 이한의 검기는 그런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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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검이, 철로 이루어진 무쇠덩어리가 가진 잠재력을 발산했을 뿐이다.
|
||
|
||
경과 비슷한 원리지만, 보다 더 깊게 검을 이해하게 됐기에 검은 주인의 의지에 응하며 검기는 빛살을 흐느적거렸고, 마침내-.
|
||
|
||
화악!
|
||
|
||
─꽃을 활짝 피웠다.
|
||
|
||
[[???]]
|
||
|
||
가까스로 용오름에서 빠져나온 귀왕의 눈에 다시금 착시현상이 일어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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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뭐지?
|
||
|
||
[[…꽃?]]
|
||
|
||
그래, 그건 꽃이었다.
|
||
|
||
방금 꽃 모양의 바늘과는 아예 별개인….
|
||
|
||
진정한 의미의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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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허나, 이 계절에 피기엔 적당한 꽃이 아니다.
|
||
|
||
마치 봄날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사라지는 과실의 꽃잎과 닮았으니 말이다.
|
||
|
||
…혹, 요술쟁이가 또다시 요술을 부렸나 싶은 계절을 거스르는 개화(開花)의 순간.
|
||
|
||
그리고 개화한 꽃잎은 마치.
|
||
|
||
“-육합검법은 못 하겠던데, 매화는 피울 수 있겠더라. 신기하게 말이야.”
|
||
|
||
그래.
|
||
|
||
그 꽃은 봄날의 매화와 닮아 있었다.
|
||
|
||
* * *
|
||
|
||
[[…….]]
|
||
|
||
귀왕은 꽃잎을 닮은 검기를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
||
|
||
너무 아름답게 핀 검기는 마물의 왕조차 시선을 빼앗기게 하는 현혹스러움이 있었으니.
|
||
|
||
아름답다.
|
||
|
||
그저 검기가 피어낸 꽃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이들로선 생경함과 신비로움을 느낄 따름.
|
||
|
||
천 년 전 저에게 덤빈 어떠한 놈들도 저런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
||
|
||
하여 귀왕은 여름날이 다가오는 계절과 맞지 않게 핀 매화에 현혹됐고, 그대로.
|
||
|
||
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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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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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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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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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잎이 제 살을 뚫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멍하니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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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약하지는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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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췌해진 낯으로 그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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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야말로 모든 걸 다 썼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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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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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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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검기를 피워낸 검은 그 생명을 다하고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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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이든 대가가 필요하며, 검은 주인을 위해 그 역할을 다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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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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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찬가지로 꽃을 피움으로 그 또한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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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런 기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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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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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괜찮은 작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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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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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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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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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피어낸 작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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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귀왕의 몸속으로 파고드는 걸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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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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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왕의 몸이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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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토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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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어떠한 공격을 맞더라도 저토록 극적인 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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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의 꽃잎은 미세하게 살결을 파고들어 온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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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곳곳을 돌아다니며 찌르고 베고, 파고들길 반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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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각이 있는 생명체라면 저것을 견뎌내는 게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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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 지금쯤 지옥을 보고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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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잖아, 제압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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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저걸로 죽이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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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재생력은 반칙을 넘어 신비와 다름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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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재생력이 있는 만큼 아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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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를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칼날의 고통이 어떠한지를 어린 날 마법사에게 고문당하며 배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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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당하고 나면 체력이 다하여 일어설 생각조차 들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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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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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너…요…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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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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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에겐 상식이 통하지 않는 듯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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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어 일어서는 귀왕이었고, 이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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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신이라더니, 체력조차 무한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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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하고 나서 체력도 바닥이던데, 하여튼 괴물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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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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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게 바퀴벌레 저리가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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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 이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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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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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은 마물이기 이전에 현재의 자신으로선 이기지 못하는 생물이 맞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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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인 생명체,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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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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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합당한 괴물이 아닐 수 없고, 저러니 고대의 왕국도 멸망하고 만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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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쿠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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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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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한 감정과 함께 자신을 먹으러 오는 귀왕이었고,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이한은 덤덤히 나무에 몸을 기댄 채 놈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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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근처에 있던 아이린이나 데릭, 혹은 호수 안 물고기 등에는 손도 대지 않고 오로지 그에게만 집중하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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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를 먹고 싶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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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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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뭐하겠냐며 핏빛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였고, 이한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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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자신은 이상한 것들에게 인기가 많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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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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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거 먹어봤자 배도 안 찰 텐데 말이야,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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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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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 계속 죽인다는 말만 하는 거 보니까, 죽인다는 말을 학습할 정도로 많이 들었나 봐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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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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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 이상함을 깨달은 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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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미물은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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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의문이 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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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괴한 기술을 만들었더구나. 한데 제법 괜찮았다. 완성만 되면 나도 상대하기 쉽지 않겠어,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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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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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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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구나, 하지만 성을 함부로 비울 수도 없는 노릇이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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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 사람은 다 죽어가게 생겼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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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믿었던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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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질! 말은 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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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진심을 말했는데도 믿어주질 않으니, 원. 억울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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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하게 대화하는 두 사람이었고, 귀왕은 어느새 뒷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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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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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왕은 분노하며 포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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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 자신을 무시하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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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귀왕의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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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놈 참 둔하구나, 이미 생을 마감했음에도 뭘 그리 미련이 많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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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려 했지만, 귀왕은 다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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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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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잘려나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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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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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분리된 것은 마냥 다리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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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 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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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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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또한 같이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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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여전히 이해 못 하며 귀왕은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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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여 눈조차 감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아직 베인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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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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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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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마를 내뱉을 시간도 없이 안광의 생기가 사그라질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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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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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들 나보고 괴물이라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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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저 양반이야말로 진정으로 괴물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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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언제 칼을 휘둘렀는지 보지도 못한 그의 솜씨에 질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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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조각 나뉘고 있는 귀왕이었고, 고개를 젓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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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저 인간을 이기리란 요원하다 못해 한참 먼 훗날에야 가능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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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르 그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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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최강의 기사이자 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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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 고대의 왕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오러 유저가 있는 시대에 나타난 것이 귀왕의 유일한 패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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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하지만 압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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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레이드의 결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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