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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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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먹구름이 자욱하게 깔린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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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먹구름이 생기고 비가 쏟아질지언정 콜로세움에 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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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행하여도 문제는 없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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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인 돈이 얼마인데, 빗방울 따위론 끄떡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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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법이 펼쳐져 있는 한, 그 영역 안으로 이물질이 들어올 수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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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번개가 작정하고 콜로세움을 때린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게 아닌 이상 문제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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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불온한 날씨 속에서도 바위 트롤과의 전투는 계속됐고, 앞서 북부의 어린 사자가 보인 만큼의 거대한 이적을 보이는 이들은 없었으나, 군중은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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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제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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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해는 인재들이 많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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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 중엔 은퇴한 노기사도 제법 많았는데, 1학년의 분전을 확인하며 만족한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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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역량은 아직 부족할지언정, 그 가능성만큼은 틀림없이 우수한 황금의 알과 같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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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저게 그 소문의 투기법과 다른 특이한 기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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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적인 수법이군, 그래도 확실히 위력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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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들은 대체로 모두 신선하단 평가가 주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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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게임에서 마법사를 이긴 게 요행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괜찮은 역량을 보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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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배리 콥스보다 잘 싸우거나 못 싸우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래도 분전은 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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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이지 않는 자세가 훌륭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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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곰돌이들 다음 나온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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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에게 도련님 조란 이름을 하사받은 생도들이었고, 그들에 대한 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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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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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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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 섞인 호응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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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투기법을 익힌 이들이니 당연히 강할 테지만, 저 나이대치고 상당히 훌륭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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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상당한 걸 넘어 우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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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중소 규모 영지 기사단은 들어갈 정도고, 단번에 중상급 기사로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은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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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군, 요즘 녀석들치고 기본을 제대로 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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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게 하는 거다. 투기법만 단련하는 게 지름길이 아니지. 성실하게, 하나하나 모든 걸 최선을 다해 익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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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곰돌이는 아직 여러모로 부족하고, 아직 배울 게 많은 괜찮은 중상급 용병 수준이라면, 저들은 요즘 귀족 영식답지 않은 순수함이 있는 기사 수련생 정도는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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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에 의지하지 않고, 올곧이 노력할 줄 아는 순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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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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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왕의 시대를 살았던 노기사들은 흐뭇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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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이들은 얼마 가지 않아 이름을 떨치리라 확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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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토록 올곧게 노력하다 보면 본인이 싫더라도 이름을 알리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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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올곧은 기량을 선보이는 기사 수련생을 보며 흐뭇함을 느끼던 노기사들은 이제 놀라울 일은 끝났다 여겼지만, 이후 모습을 드러낸 이들에 의해 노기사들은 경악을 머금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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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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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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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저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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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수준이 아니군, 아니 이미 저들은 당장 아무 기사단이나 선택하여 입단도 가능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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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오넬 공자만이 돌연변이가 아니었음인가?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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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트롤을 압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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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정확히는 가지고 노는 3인을 확인한 노기사들은 자신들이 전성기였어도 승부를 장담하기 힘들었을 3인방에게 감탄과 침음을 동시에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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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타라 하였나? 야만 전사들의 강함이 한때 대륙을 질타했다더니, 왜 그런 줄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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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 공의 손주이신가? 허허, 역시 검공가야. 그 핏줄이 어디 가질 않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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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왕, 그 괴물이 기어이 자기 젊을 적과 똑 닮은 것을 키워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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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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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가르침을 받을 수준이 아니라, 당장 기사가 돼야 할 인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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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저들의 원석과 같은 번쩍임을 질시하고 우울해 한다면, 노인들은 젊음의 생기를 목도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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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왕도의 젊은 기사들의 수준이 한없이 추락하고 있음을 알고 있던 노기사들이었지만, 다음 세대를 책임질 이들 중 이토록 훌륭한 씨앗이 많은 걸 확인하니 흐뭇함이 다 들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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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해가 가르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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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도 그들은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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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젊은 놈들 중 저토록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귀족답지 않은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가 있었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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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검술학부 교관이 저리 만들었다는 생각은 미처 못 하는 건 그들이 편협하기 때문이 아니라, 전임 교관들이 모인 태만함 때문에 생긴 마음 한구석 의심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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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노기사들이 생각이 깊어지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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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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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아이가 나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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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설마 지금 저 아이가 싸우려고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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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학년들 모두가 나왔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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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생도가 있긴 하지만, 토론이나 나머지 과목으로 성적을 채우는 영애들은 마지막 과목에선 대부분 기권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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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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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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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그 옛날 오펜 공의 모습이 새록새록 나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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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차게 무대에 선 여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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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폴트가 검을 뽑아 들며 그 가냘픈 몸으로 당당히 바위의 마물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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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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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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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폴트는 가슴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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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칸에서 사형들은 멧돼지를 잡고, 행군 도중 변이 곰을 잡는 등 경험을 쌓았지만, 당시 미숙하고 볼품없던 레비로선 그러한 사냥에 참가하는 게 불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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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워 게임에서도 소녀는 지시만 했을 뿐, 사실상 다 차려진 밥상에 포크를 얻는 일밖에 하지 않았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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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도 묘한 기대감을 품고 자신을 보는 이들이 많으니, 레비로선 마냥 당혹스럽고 부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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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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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온 건 저의 선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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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무섭더라도 도망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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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저의 선택을 뜯어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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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은 이미 다른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느냐?’ 등, ‘다음에 기회가 있을 테니 하지 말라’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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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하는 이들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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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레비 폴트는 모든 부족함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 자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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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증명해야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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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는 떨림을 다잡으며 레이피어의 차가운 그립에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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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가죽 갑옷을 입은 소녀는 점차 한 손은 뒤로 가져가며, 앞발을 천천히 내밀고 몸은 옆으로 돌린 채 시선만은 앞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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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자제라면 기본적으로 익히는 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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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점 혹은 펜싱의 기본 검세로 잘 알려진 자세를 취하며 소녀는 레이피어를 단단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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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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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마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연약한 상대가 나온 것에 자세를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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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가 너무 하찮아 토끼 같은 소동물로 오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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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레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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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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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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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세 그대로 발을 박찼고, 레이피어가 바람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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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을 이용한 순간적인 무게 중심 이동과 검의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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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레이피어가 정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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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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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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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마물의 눈을 푹 하고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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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세한 눈동자를 정확히 찔러 넣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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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물은 고통스러워하며 곧장 버둥거리며 난폭하게 몸부림치기 직전, 레비는 레이피어를 재빨리 회수하며 그대로 마물의 왼쪽 측면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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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이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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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기초 스텝을 발 가죽이 터지도록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알 만한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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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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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몰아쉴 시간을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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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눈을 찌른 쪽으로 이동했기에 저를 발견하기 어려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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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마물의 유일한 약점은 시야가 좁고, 감각조차 희미하단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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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마물이 가진 어설픈 점을 정확히 찌르는 레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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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방심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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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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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재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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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 재생하며 눈이 원상 복구된 마물이 소녀를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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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방심과 달리 분노가 만연한 기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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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소녀는 영민했고, 냉정함을 유지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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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아르노의 훈수를 기억해 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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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 경이 그랬죠, 저희 백팔 나한들은 냉정한 시야를 유지하고, 기회를 노린다면 훌륭한 시합을 벌일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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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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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함을 유지하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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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물은 역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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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짐승에 비하면 모형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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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저의 약한 근력과 어설픈 칼질로 과연 저 마물을 정녕 이길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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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불안감이 치솟으며 재차 가슴을 떨리게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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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 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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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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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리에서 울려 퍼지는 교관의, 스승의 호통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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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고, 최선의 공격은 상대보다 한 수 앞을 바라보며 칼을 휘두르는 거다. 애초에 귀족들이 기본예절처럼 익히는 그 펜싱 같은 검술도 원래 전쟁터에서 만들어진 검술이야. 그러니 검사의 역량만 받쳐준다면 얼마든지 위력적인 검술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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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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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리에서 울리는 일갈에 불과하지만 레비는 충실히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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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님의 말씀대로 어설플지언정, 자신이 익힌 검술이 마냥 약한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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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의 원류가 되는 격검의 원래 이름은 에스크림(escr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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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와 공격의 뜻을 동시에 담은 검술이었고, 지금도 에스크림만 익혀 검의 달인으로 칭송받는 자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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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모든 검술의 기본은 찌르고, 베고, 튕겨 내고, 때리는 데 있다. 그러니 한 가지만 기억해. 상대를 무조건 묵사발 내고 말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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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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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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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는 우등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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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며 실천할 줄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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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동일한 전법을 구사하며 계속해서 마물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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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눈을 찌르고, 틈을 보며 검날로 턱과 목, 발목 등을 때리고 다시 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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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할 것 같으면 회피 후, 방어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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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건 공격을 구사할 때만 적절히 경을 섞어 위력을 증폭시킬 뿐, 절대 회피하거나 다른 동작에 경을 쓰면 안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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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을 보전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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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는 체력 분배와 마물의 상태를 전체적으로 관찰하며 대응하길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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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놈은 본능밖에 없는 인공 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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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농락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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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필요한 건 마물 앞에 설 수 있을 담대함과 우직함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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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레비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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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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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담대함과 우직함, 배짱이란 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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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 주입식 방식으로 때려 박아 넣은 것에 불과했지만, 주입식일지언정 이를 실천하는 건 제자의 의무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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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폴트는 그렇게 쓰러지고, 지치더라도 꾸준히 달려들었고, 기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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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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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악, 하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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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분 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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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최초로, 그리고 홀로 마물을 쓰러트리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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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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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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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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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레비의 승리를 예측하지 못했기에 벌어진 놀라움이 서서히 주변을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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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동기들만 그런 게 아니라, 무대를 보던 모두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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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저 승리가 마물을 이루는 피가 가진 힘이 다하여 멋대로 쓰러진 것에 불과했지만, 누구도 편협한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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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토록 최선을 다하고 만신창이가 된 검사를 평가절하 하는 것은 웬만한 머저리도 하지 않을 짓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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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애, 끝내주는군. 안 그래, 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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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용맹합니다. 확실히 재능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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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순이, 몸은 약해도 머리 좋다. 그리고 전사의 심장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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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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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족, 재능은 부족해도 전사의 심장을 갖춘 사람은 항상 존중했다. 전사의 심장 가진 사람, 항상 대전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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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골, 재능, 능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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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배움은 빠를 터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진정한 의미로 전사가 되는 이들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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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이란 무대에서 실제로 훌륭한 칼질을 해낼 이들은 얼마 되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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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뜻에서 레비 폴트는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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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의 심장을, 용맹한 의지를 가진 자가 아닐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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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쿤타가 지금 내뱉은 찬사는 바바리안이 타인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극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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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순이는 강해질 거다. 어쩌면 쿤타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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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그녀보다 강하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는 뜻이군요. 잘 알아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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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보인 용맹함은 앞서 로엔이 보인 검기보다 값진 것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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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진지한 낯빛으로 소녀를 주목했고, 서서히 그녀에게 환호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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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 누구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명예롭고도 훌륭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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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용맹한 기사의 결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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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환호를 받을 자격이 있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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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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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숨을 헐떡이며 몸 전신이 축 늘어진 레비였으나, 저를 향해 쏟아지는 열광적인 환호 앞에 저도 모르게 고개가 들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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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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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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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지경 상태로 레이피어를 휘두르며, 겁쟁이처럼 찌르고 빠지길 반복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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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어느 순간 마물이 움직이지 않았고, 저 또한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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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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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따위가 정녕 저 마물을 이긴 것이 맞는지, 저보다 열 배는 더 큰 괴물을 향해 어찌 대항했는지조차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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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안이 백지장이 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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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수 소리가, 자신을 위한 열렬한 환호성이 강제로 현실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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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긴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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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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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혼자서 해낸, 말 그대로 인생 첫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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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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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폴트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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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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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감과 전율, 이 두 가지 단어마저도 차마 지금 자신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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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며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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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자리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감싼 알을 깼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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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에서 검객이 되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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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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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그것이 못내 기뻐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하늘 높이 치켜들었고, 마냥 울부짖듯 함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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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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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보던 관중은 그녀가 승리의 퍼포먼스를 취한다 여기며 흐뭇하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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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쇼맨십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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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이었고, 나중에 정신을 차린 레비가 잠들려 할 때마다 부끄럽다 못해 수치스러워 이불을 걷어찰 흑역사 하나가 생성되는 순간이었으나, 지금은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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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기쁨의 포효를 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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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쁨을 토해내던 레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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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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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안색이 창백하게 물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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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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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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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저것을 올려다보며 레비 폴트는 잠시 멍하였으나, 얼이 나가는 것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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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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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한기가 치밀어 오르며 소녀에게 공포가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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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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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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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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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을 내려다보던 먹구름이 갑작스럽게 역동적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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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회오리와 같은 서클 형태를 이룬 먹구름은 점차 중앙 부분이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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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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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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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의 반응을 시작으로 서서히 먹구름의 불온한 움직임을 읽어낸 이들이 늘어났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하늘을 올려다본 모두가 같은 광경을 보았으며, 같은 서늘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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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과 닮은, 깊은 공포를 안겨주는 먹구름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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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어두운 공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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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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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손]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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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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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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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출몰한 정체불명의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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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지나치게 컸고, 지나치게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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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두려웠고, 도망칠 의지마저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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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 불가한, 도망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단 것을 알려주는 존재의 등장은 때론 사람의 위기본능마저 마비시킬 따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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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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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히 일어난 레비 폴트는 도망가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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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체력이 모두 소진된 상태였는데, 저만한 괴물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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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나오고 있지만, 괴물의 팔에서 뿜어지는 불길함이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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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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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맹수와 마물 등이 선천적으로 내뿜는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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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에게 자연스럽게 공포를 심으며 몸을 마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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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한 인간으로선 도무지 저것에게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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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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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지금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었고, 주마등조차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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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 가까워질수록 진해지는 깜깜한 그림자만이 그들을 덮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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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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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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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는 어느 순간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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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조차 불가한 죽음의 공포 앞에서 사람은 처연히 눈물밖에 나지 않는 것이었고, 레비는 머리를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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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고의 순간이라 여긴 승리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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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승리이 날이 절망으로 물드는 것도 한순간이었음에 허망함과 서글픔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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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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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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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왜 검을 들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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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는 생애 마지막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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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검을 뽑는 자신을 발견하며 의문과 함께 답을 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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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는 검을 뽑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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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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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발버둥이란 거다, 그리고 사람이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데 이유 따윈 없는 거다, 곰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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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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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의문을 풀어주는 답변이 들려왔고, 레비는 일순 눈을 부릅뜨며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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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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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지막까지 검을 잡은 건 칭찬해주지, 상점을 주마, 레비 폴트 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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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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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아는 한 대륙에서 가장 믿음직한 스승이 있었고, 레비 폴트는 저도 모르게 안도하며 또다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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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절망 어린 눈물과 다른 안도의 눈물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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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처자가 울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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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울고 있는 소녀를 타박하면서도 따스하게 웃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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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소녀에게 기특함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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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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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하늘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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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곰순이 네가 울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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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그는 으르렁거리며 염동력 노예가 공중에 띄운 600kg 통나무 창을 강하게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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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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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심전력의 힘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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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일창(貫日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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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꿰뚫지는 못할 터이나, 성벽 정도는 거뜬히 꿰뚫을 발리스타가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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