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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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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게 학기 평가 마지막 날, 첫 번째로 무대에 오르게 된 그는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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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시험대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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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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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최면을 걸듯 그는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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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며 품속에 넣어둔 은화 두 개를 매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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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분이 그에게 건네준 은혜이자 최근 그에게 부적처럼 여겨지는 두 개의 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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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 곰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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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검술학부 소속 1학년 배리 콥스는 은화의 존재감과 함께 공포를 떨쳐내며 창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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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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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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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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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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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바위 괴물에겐 그다지 먹히지 않았고, 배리 콥스는 다급히 몸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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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다 덩치가 거대한 놈을 상대하는 법은 이미 불칸에서 질리도록 배웠던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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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을 위해선 회피기동이 중요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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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잡은 멧돼지가 몇 마린데!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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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생각해 보니 몇 마리 안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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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다 합동으로 잡거나 교관님이 잡으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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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는 너무 자신만만하면 안 되겠다고 반성하고 있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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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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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바위 괴물이 그를 거슬려 하며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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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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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콥스는 다리의 ‘경’을 집중하며 땅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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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괴물의 일격을 피해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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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하면 될 것을, 왜 피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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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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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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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피하고 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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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괴물, 아니 바위 트롤이 지나간 자리가 모조리 파헤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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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몸에서 나오는 육중함과 제 몸이 부서지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달려드는 막무가내 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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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지 않고 맞상대하려고 했으면 그대로 자신은 비틀어진 육포가 되고 말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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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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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배리는 절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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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었다면 다리가 벌벌 떨려 상대도 못 했을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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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트롤이 아닐지언정, 보통 인간은 대항도 못 할 괴물이 다름 아닌 바위 트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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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지금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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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피할 수 있어, 대항하는 게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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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게도 싸우고 있는 자신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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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배리는 실망하지 않았고, 자세를 잡으며 다시금 피할 준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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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절망하진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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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말도 안 되는 괴물이네, 트롤이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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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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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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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하는 놈을 보며 아연실색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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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돌진 탓에 벽에 부딪쳤던 바위 트롤이었으나, 바위 트롤의 부서진 몸은 점차 다시 뭉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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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의 피를 뿌려 만들어진 인공 마물답게, 어느 정도 재생력이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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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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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통과하라고 만든 시험이냐? 아카데미 양심이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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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는 말도 안 되는 시험 난이도가 기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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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잘 좀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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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라고, 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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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성을 발휘해, 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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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은 불칸으로 다시 보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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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차라리 부모님 욕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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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좀 심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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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 들려오는 17명의 응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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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동기는 동기라고, 악담이 섞이긴 했지만 응원을 해주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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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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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곰돌이들을 상징하는 승리의 여신께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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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긴다, 무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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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콥스는 동기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다시금 바위 트롤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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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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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배리 콥스가 보인 용맹함을 보며 세 사람은 진솔히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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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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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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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이겨 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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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학부 삼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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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그렇게 불리는 세 사람이 배리 콥스가 달려드는 것을 보며 승리의 행방을 확신하듯 점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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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사형이 진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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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폴트의 물음이었고, 아르노는 당연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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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기회를 노려 적절한 타이밍에 ‘창경’을 던져 승부를 보려고 했으면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싸웠다간 체력만 바닥날 겁니다. 배리 동기는 지금 냉정함이 없고, 감정적으로 싸우기에 전략적으로 못 움직이는 게 아쉬운 일이군요. 시야가 넓었으면 그래도 좋은 승부를 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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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아직 곰돌이들의 실력으론 바위 트롤은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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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과 같은 파괴력 높은 수단이 있을지언정, 저런 우월한 재생력이 있는 상대와는 상성이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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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적인 수단이 아닌, 연발적인 수단이 필요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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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단발적인 수법밖에 없는 곰돌이들로선 패배가 예정된 게 당연하단 뜻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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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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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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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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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콥스는 전력으로 창경을 발휘해 바위 트롤의 어깨를 뚫었으나, 안타깝게도 바위 트롤은 어깨가 망가지건 말건 신경 쓰지 않으며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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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차 검이라도 휘두르려 한 배리였지만, 이미 체력이 다한 그였고, 바위 트롤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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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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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억, 하고 배리 콥스를 들이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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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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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창백해진 시선으로 배리 콥스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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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압도적으로 끝난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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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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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녀석, 토론 공부 같은 거 하지 말고 검이나 더 휘두를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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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토론 점수가 괜찮으니 퇴학당할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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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건 그렇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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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패배에 야멸찬 평가를 내리는 동기들이었으나, 그들도 입맛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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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의 노력을 알고, 자신들이 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으로 패배할 수 있음에 입안이 쓰라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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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리 형편없이 패배하면 어찌 될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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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런 냉혹한 평가를 내리는 그들과 달리 관중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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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어떻게 저런 괴물한테 달려들 수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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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하군! 역시 검술학부! 기사 지망생들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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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평민이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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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이 바위 트롤한테 상처를 냈다고? 뭐지? 저 트롤 부식된 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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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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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감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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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들 눈엔 참담한 패배에 불과하나, 일반 관중들 눈엔 그가 용맹하기 그지없는 전사로 비추어질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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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을 상대로 달려드는, 그야말로 몽둥이 하나만 든 채 거인에게 달려드는 행위와 다를 바 없는 강맹함에 감탄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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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처참한 패배치곤 배리 콥스의 경기 내용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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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사(鬪牛士)처럼 과격한 바위 트롤의 공격을 피해내며, 적절히 일격을 날려대고, 거기다 상처마저 내며 아슬아슬(일반인 눈엔 그랬다)한 승부를 보인 배리 콥스의 실력과 열정에 그들은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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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드래건은 전투와 용맹함을 숭상하는 기사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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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보인 투지에 인색한 평가를 내릴 만큼 모나진 않단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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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의 결과보다 내용을 중시한다는 건가? 하여튼 왕국은 이해할 수 없는 문화가 많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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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왕 폐하께서 만드신 문화시죠. 훌륭한 전투를 벌인 전사에겐 아낌없는 예우가 필요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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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있는 양반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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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꽃잎이 날아드는 콜로세움이었고, 모두가 손뼉을 칠 때 레비 폴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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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아무도 사형 걱정은 안 해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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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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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정상적인 소녀는 바위 트롤에게 날아간 배리의 생사를 왜 아무도 걱정하지 않느냐는 당연한 의견을 제시했고, 그제야 동기들은 배리를 챙기려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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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동기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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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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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다행이게도 배리 콥스는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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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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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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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다리 부러진 게 엄살로 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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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죽지 않았을 뿐, 어마어마한 부상을 입은 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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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이상하게도 그는 아픔만 느낄 뿐, 어딘가 크게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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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진탕이 걸려도 될 법한 상처였으나 이 콜로세움에는 다행스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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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법(聖法) 만만세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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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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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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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력을 지닌, 유일신 을 따르는 사제만이 펼칠 수 있는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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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신비한 힘이 이 콜로세움 전체에 퍼져 있었고, 덕분에 큰 부상을 입는 자조차 사망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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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콥스의 부상 또한 성법의 영역 안에서 발생한 상처이기에 얼마 가지 않아 회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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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죽을 일도, 다칠 일도 없는 안전한 전투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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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를 알려주는 기적이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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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에 크게 감명 받은 건 어느 신비종족의 전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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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타, 성법이란 거 가지고 싶다! 이거 있으면 우리 부족, 다치는 사람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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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마물에 의한 피해를 입는 바바리안 부족의 전사는 성법의 신비를 겪으며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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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가지고 싶은 장난감이 생긴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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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아르노는 그 순수한 기대감을 깰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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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추천은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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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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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마물한테는 효력이 없습니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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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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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통제가 가능한 인공 마물의 경우는 괜찮지만, 진짜 마물이 날뛰면 성법은 쉽게 찢겨지고 맙니다. 지금이야 이렇게 안전한 상황에서 실시간 관리가 들어가니 나름 괜찮은 겁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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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쓸모도 없는 주제에 들어가는 제물도 상당히 많다지? 아마 너희 부족 이거 설치하면 평생 죽만 먹고 살아야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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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타, 성법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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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타는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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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좋은 수단을 발견했다 여겼는데 전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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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축 늘어지려는 상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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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하지 말고, 고개 좀 들어. 우리 학부 최대 기대주님이 제대로 칼 좀 휘두르려는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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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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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안은 언제 실망했냐는 듯 고개를 번쩍 들며 눈을 빛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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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성법은 실망스러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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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 드리미트 드 라이오넬이다. 부끄럽지 않은 결투를 벌일 것을 용과 사자, 그리고 요정에게 맹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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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그를 실망하지 않게 할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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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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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사자가 검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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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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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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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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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이어지는 마차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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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그냥 마차들이 아닌 고급스러운 마차들이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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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심 넘치는 귀족과 부귀를 자랑하는 상인연합의 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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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럽진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길드총합의 마크가 그려진 마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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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 워 게임에서도 왕녀에게 잘 보이려 몰려든 인원이 있긴 했었지만, 그때처럼 어중이떠중이들이 급박하게 모인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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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무거운 이들이 모인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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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평가가 끝나면 아카데미 생도들은 일주일간 휴식기를 가지게 되는데, 그 때문인지 자식을 데리고 가기 위해 직접 행차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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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엉덩이 무거운 고위 귀족이나 대상단의 주인이라 한들, 부모는 부모란 의미이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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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들이 이토록 움직인 데에는 마냥 자식을 위하는 마음만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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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백작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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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솔 상단주? 호, 자네 자식도 여기 다니는 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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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이번 해에 입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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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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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가 다망하신 분에게 사소한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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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공사다망한 것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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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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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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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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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기 힘들거나, 껄끄러운 관계에 위치한 거물끼리 ‘우연’을 가장하여 만나기 좋은 명분이 되어주기에 일부러 아카데미까지 행차할 가치가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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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런 저러한 이권다툼을 이유로 아카데미 정문에는 마차가 점점 모여들었고, 학기평가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콜로세움을 향해 대량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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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목표와 음흉함, 그리고 속내를 감춘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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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편에서, 그런 이들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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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돼지들만이 잔뜩 모여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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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멸 어린 평가를 내리는 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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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의 행력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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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복을 입은 어느 사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가차 없는 경멸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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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간을 찌푸리는 게 습관인지, 미간 주름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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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내의 경멸 어린 시선이 향한 곳에는 권세가라 할 만한 이들이 모여 있었고, 당장이라도 일을 저지를 듯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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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치면 우리도 돼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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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하진 않겠지만, 일부러 되새기게 하지 말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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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미안합니다,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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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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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의 옆에 있던 동료의 반박에 사내는 진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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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지금은 참아야 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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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렸고, 그런 사내를 향해 동료는 장난스레 입 꼬리를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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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대장이 나서지 않아도 도축될 놈들은 다 도축될 겁니다. 준비는 철저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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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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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 유저나 실력자들이 움직이면 모르겠는데, 그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 명단 보니까 실력자는 없는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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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렇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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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우린 구경이나 합시다. 모처럼 재밌는 축제이지 않겠습니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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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아니라 학기평가 기간이다. 말을 똑바로 하도록. 생도들은 제 인생을 걸며 열심히 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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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별 이상한 소리도 다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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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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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내가 하는 말은 무척이나 이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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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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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열심히 하는 생도 전원을 죽이시려는 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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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을 아무도 살려둘 생각이 없는 주제에, 저리 정상인처럼 말하니 미묘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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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사내는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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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다니, 그런 말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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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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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아닌 영광스러운 축복이지, 이만한 영예가 어디 있다고. 저들도 분명 만족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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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십자가를 든 채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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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기 그지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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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제물이 될 어린양들이 부럽기 짝이 없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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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진심으로 부러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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