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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드래건 왕립 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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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아카데미라고 불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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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전당이자, 왕국의 미래를 이끌 젊은 동량들을 가르치는 학술의 전당으로 아카데미는 무수한 것을 다양하게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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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이나 마법은 물론이고, 의학이나 통계학, 천문학, 야장술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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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면 이런 것도 있나 싶나 싶은 괴상한 것도 가르쳤으며, 이렇다 보니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과목만 해도 약 30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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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것보다 많을지도 몰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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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렇듯 과목이 많다고 해도 그들을 가르치는 교관 혹은 교수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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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왕립 학술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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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이름이 붙은 이상 여타의 아카데미와 비견한다는 건 모욕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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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왕립 아카데미에 교수진은 하나같이 상당히 우수한 면면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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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 만큼 실력과 경력이 그 누구보다 대단해야 함은 물론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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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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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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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진짜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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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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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분이라도 다져놔야 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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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둬. 지금은 기분도 나쁘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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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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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교관 등의 인원이 아카데미 입학식 전 치러지는 간단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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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강사진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이라 할 수 있었고, 간단한 설명을 비롯하여 서로의 안면도 트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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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교과목을 맡은 이들은 안면을 틀며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 중에도 신기하단 낯빛으로 한 남자를 힐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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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무리를 지은 이들과 달리, 고고한 늑대마냥 홀로 자리 잡은 채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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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의 이름과 정체가 무엇인지 이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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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한이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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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사자라, 허허,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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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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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이 긴 교수 몇몇이 그의 이름을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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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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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교관으로 파견을 온 현역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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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사를 보는 건 처음은 아니지만, 은퇴 기사가 아닌 현역, 그것도 젊은 기사가 아카데미에 있는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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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다는 게 무슨 뜻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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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법이 가장 강성하고도 왕성한, 전성기란 뜻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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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이 가장 역동적일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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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그러한 시기에 교관이 된다는 건 가장 역동적인 시기를 놓친다는 뜻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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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선지 사람들은 그를 피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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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심 이 자리를 불쾌해하고 있다 여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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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좌천, 아니 파견당한 형태라 할지언정 그가 약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며, 교수들은 그를 위험분자로 보곤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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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그대로 회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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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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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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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면 내가 독극물인 줄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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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이 몰래 행했다고 한들 그의 눈을 피하진 못했고, 이한은 피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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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인간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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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게 노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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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당하는 것보단 무서운 놈이 되는 것이 낫기에 썩 기분이 불쾌하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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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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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 한 덩이가 다시금 그의 입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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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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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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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이한에게 내려진 갑작스러운 파견 소식은 기사단 내에서도 큰 이슈로 떠올랐고, 드물게도 기사단원들은 이한을 ‘동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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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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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동량을 가르치기 위한 임무가 어찌 처벌이 될 수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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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말 그대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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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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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사자 기사단이 무엇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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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왕실 기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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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럽고도 위대한 왕가를 지킨다는 자부심은 이 나라에서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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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그 영광된 임무를 저버리고 파견 교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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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지위란 건 아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은퇴 기사에게 나쁘지 않은 수준이지, 한창 전성기인 젊은 기사에게 청천벽력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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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는 큰 처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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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을 갈고 닦아 위로 올라가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은 시기에, 애송이들이나 가르쳐야 한다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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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한 손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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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단원들은 드물게도 그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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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정작 당사자에게 있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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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런 설정으로 가겠다? 확실히 앞뒤를 맞추려면 이런 트릭도 있긴 해야겠네, 하여튼 그 아줌마, 영악하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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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한 놈, 왕녀님에게 그 무슨 말버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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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도 어느 정도 사정은 아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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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흘 대충 짐작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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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월급은 정상적으로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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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예상한 반응이긴 하다만, 좀 아쉬워하는 티라도 내줬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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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기사란 직종에 그다지 미련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긴 해도, 너무 무감각하니 도리어 아쉽다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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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기사단에 대한 열정만 가득했어도 이미 한 자리 차지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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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열심히 해볼 마음은 없더냐? 그렇다면 왕녀님에게 말해 임무를 취소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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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르에겐 그 정도 권한은 있으니, 제안을 던지긴 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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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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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라도 좀 고민을 하고 말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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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이한은 이미 거절할 마음을 없앴고, 발타르는 기어이 혀를 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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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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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수업 과정이나 여러 기타 과정을 이수하는 과정을 거치기 위해 팔자에도 안 맞는 공부마저 하는 상태였고, 머리도 꽤나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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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주기만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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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기색을 유지하고 있지만, 아이시스에게 끌려가는 상황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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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거절할 리 없다는 확신이 있던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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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는 각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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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약이 있다고 했는데, 수작을 부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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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의남매고 뭐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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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자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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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뒤통수를 친 한 명쯤은 반드시 조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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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설사 나라의 후계자라 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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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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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커리큘럼이 끝나고, 집으로 오니 편지 세 장이 놓인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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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은 제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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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좋은 놈답게 안부 걱정보단, 비밀 임무가 아카데미와 관련되어 있을 거라 여겼는지 간단하게 [잘해봐라] 라는 인사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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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다음 편지를 보낸 이는 요르드에게서 온 것인데,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녀석이 [제가 단장님에게 청원을 해보겠습니다, 그러니….] 등등, 뭔가 오해가 쌓인 걱정 어린 내용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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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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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잘못 때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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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안 때렸는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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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함을 느끼며 마지막 편지를 확인하니, 편지에는 수신자가 적혀 있지 않았고, 편지지는 새하얀 백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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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얼핏 감도는 향수 향을 맡으며 누가 보낸 건지 알 것 같았고, 이한은 적당히 큰 대접에 물을 담아 백지를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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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글씨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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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믿음직한 여의 의동생이여, 이 편지를 받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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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시작하여 여타의 고상한 글씨와 시적 표현이 가득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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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왕족 아니랄까봐, 참 지루한 내용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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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짧게 요약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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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지킬 테니까, 너도 잘해봐라, 라는 내용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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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간지럽게도 [여는 그대를 믿는다], [그대의 자율성과 판단력을 신뢰하겠다]는 등에 내용이 있긴 했으나, 큰 감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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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아이시스에게 이토록 과분한 평가를 받는다면 3대의 영광이라 하겠으나, 이한에겐 마냥 귀찮은 관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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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편지의 내용을 대충 다 읽고 나니 편지지는 물에서 녹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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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인멸마저 확실히 되는 것이 참으로 철저하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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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님이 연금술이나 마법에 관심이 많다더니, 이런 걸 잘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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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편지 봉투를 지포라이터로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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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탄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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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부터 시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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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은 나흘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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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요주의 인물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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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누님은 딱히 그에게 그들을 어찌 간 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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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의 적힌 내용대로 그의 주관적 평가에 모든 걸 맡긴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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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명령을 싫어하는 그의 성격을 감안한 것일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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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렇게 된다면 자율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니, 이한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칠판에다 글자를 적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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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생각의 줄기를 적는 셈이었고, 이는 하사관이었던 전생부터 이한이 자주 하던 습관과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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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에게서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명령이 수없이 떨어지면 이를 절차대로 해결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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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아이러니하게 익힌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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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지금만큼은 나름 괜찮은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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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된 덕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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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대강 자신이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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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걔들이 먼저 나에게 가까이 오게 만들어야겠네. 그리고 로판 속 주인공이든 회귀물 주인공이든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면 호기심이 많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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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은 고양이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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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말을 실천하듯 로판 주인공과 회귀물 주인공은 그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일부러 위험한 곳에 쳐들어가는 미친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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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납치당하고, 칼 맞고, 위험한 상황에 쳐한다 한들 놈들은 호기심을 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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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들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질병에 걸린 것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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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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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굴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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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슬그머니 두 사람의 이름이 적힌 부분 밑에 슬그머니 그것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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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생각했을 때 가장 본성이 잘 드러나고, 가장 빌어먹을 상황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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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나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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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기까지 한 미소가 자동적으로 그려지는 이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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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고통을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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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사뭇 보람찬 일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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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에는 유독 [유격]이란 글자가 선명히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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