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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주한 두 남녀였으나, 이한은 용기를 발휘하여 다가온 여성을 배려하지 못할 정도로 못 배워먹은 놈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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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연히 만난 것도 인연이니, 같이 돌아다니도록 하지, 2번 병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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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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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뭐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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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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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다, 아이린 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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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교관님은 진심으로 까먹으셨을 것 같아서 농담으로 안 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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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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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저도 농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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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 먹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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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처음엔 어색했으나, 기사와 소녀의 대화는 끊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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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옆집이웃 사이인 두 남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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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얼굴 보는 일도 많다 보니 서로 낯설어하는 것도 우스운 일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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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만약 그들에게 일말의 어색함이 느껴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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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이렇게 대화하는 게 좀 생경하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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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선 이웃사이일지언정, 이곳에선 교관과 생도 관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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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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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과 생도 사이에서 오는 긴장감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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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윈들러는 이한의 말에 동의한다며 고개를 주억거렸으나, 오늘만큼은 사제관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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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지금은 시험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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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부가 교육을 쉬고 있으며, 교관과 강사, 교수까지 모두가 생도에게 관여하지 않는 시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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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렇게 아이린이 용기를 내어 그에게 먼저 접근한 것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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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그, 그래도 남녀사이로 보이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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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초보자는 남들의 시선이 유난히 신경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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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연인관계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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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말 제 생각처럼 비쳐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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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조금은 쑥스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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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윈들러의 볼은 봉숭아물이 물든 것처럼 발갛게 변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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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녀에겐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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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아이린 영애님이다. 옆에는 누구지? 호위 기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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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단 용병 아니야? 하긴 갈라하드가 어떤 곳인데, 호위는 따라붙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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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저분 검술학부 교관 아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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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러네, 갈라하드 가문이 저분한테 호위라도 부탁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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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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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눈엔 전혀 연인사이처럼 보이지 않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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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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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저렇게 둘이 같이 있으니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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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풍(畫風)이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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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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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은 순정만화고, 또 한쪽은 세기말 느낌이 물씬 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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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들은 저토록 어울리지 않는 조합도 없을 것이라며 묘한 시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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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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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한은 오늘 아카데미에 오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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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의 평가 기간 동안 교원들은 대부분 집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남은 업무를 처리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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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휴식기보단 준비기에 가까워 교원들도 나름 바빠야 하는 게 정상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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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내가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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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의 경우는 비명을 지르는 조교가 모든 걸 정리해주고 있으니, 여유가 철철 넘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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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노예, 아니 조교를 잘 건졌다 싶을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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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한은 이 소중한 휴식기에 훈련에 몰두하는 한편, 제자 녀석들이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하여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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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감? 아니면 이것도 미운 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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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됐건 3개월이나 어울리다 보니 정이란 게 들 수밖에 없었고, 검술학부 인원이 과연 어떤 활약을 할는지 보고 싶은 게 심리란 것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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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도 이에 동의하며 그들이 처음으로 향한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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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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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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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병아리 녀석, 제법 잘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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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영애님 운동 신경이 엄청 좋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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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전쟁터와 같은 테니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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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병아리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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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꽃밭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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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냄새 때문에 코가 아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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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남녀가 할 말이 바뀐 것 같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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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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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상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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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영애들은 대부분 스포츠 과목으로 테니스를 선택해서인지, 압도적으로 여성 비율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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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험장에서 유난히 활약하는 건 검술학부의 병아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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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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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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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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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교관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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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님, 제가 이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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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이한에게 단련 받고 특별강의마저 들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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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은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승리를 거머쥐었고, 평가원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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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내 회원, 아니 병아리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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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노란털이 빠질 시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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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그래도 여기선 쌈닭이라고 불러도 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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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귀족 영애란 것들이 걷는 운동도 안 하는 주제에 굶어서 살을 빼고, 빼빼마른 걸 다이어트 했다고 자랑하는 인종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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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매일 티타임을 갖는다며 케이크와 홍차, 과자 따위를 줄기차게 먹는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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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지들은 승마와 굶는 것으로 몸을 관리한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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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저러니까 망가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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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병아리들에게 패배하고 분해하는 저 영애들은 지금 분해할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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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해하기 전에 당장 시급한 게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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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불균형과 극도의 운동 부족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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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지금이야 모르겠지만, 나이 들면 평생 골골거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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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들에 비하면 우리 병아리들은 봉황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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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환자들과 달리, 건강미가 넘쳐나는 병아리들이 웃으며 양팔을 힘차게 휘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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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앞서 언급한 환자들과 다를 것 없었는데, 지금은 많이 성장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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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식들, 사람 감동받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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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뭐에 감동하시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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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건강하게 일어서는 걸 봤을 때 기쁨이랄까? 그런 게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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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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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윈들러가 이해하기엔 아직 먼 감성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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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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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이한과 아이린 윈들러는 다양한 것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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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타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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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도망가! 부딪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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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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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 경기장에서 들소마냥 종횡무진 하며 생도들을 자꾸 날려버리는 바바리안이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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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기 싫으면 비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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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저 말도 안 되는 마상곡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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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 주제에…! 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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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 출신이 아니라 초원 출신이 아닐까 의심이 가는 미쳐버린 기마술을 자랑하며 폴로의 지배자가 된 용병왕의 제자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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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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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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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검공가의 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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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 잘 치는 것과 검공의 후계자가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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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가 비등비등한 상황에서 기어이 역전 끝내기 홈런을 내버리며 크리켓의 영웅이 되어 버린 검공가의 후손이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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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말고도 검술학부 인원들은 전원 우수한 성적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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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압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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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심 가르친 장본인으로선 어깨가 으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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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성들여 키운 분재를 남에게 자랑하는 기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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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심 뿌듯함을 즐기던 이한과 달리, 아이린 윈들러는 의문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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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저분들 2,3학년 선배들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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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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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얘기지만, 이 시험에 나오는 이들 중엔 그동안 검술학부 수업에 불참하던 2,3학년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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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나 아이린이나 처음 보는 얼굴이 가득했고, 아이린은 그들을 향해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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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들, 분명 교관님 수업에 불참하면서 가정교사한테 개인 교습 받는 사람들이라고 했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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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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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저렇게 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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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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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너무 약하잖아요. 동기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것 같은데요? 심지어 곰돌이 애들도 이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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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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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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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귀여워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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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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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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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심장을 덜컹거리게 만들었다는 것도 모른 채, 이한은 새삼스럽단 시선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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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라 그런가, 아니면 그동안 제 본직을 때려치우고 검술학부에서 살다시피 해서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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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전사의 격차를 관찰하는 눈썰미가 생긴 마법사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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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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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핏줄이 깡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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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있던 재능인지도 모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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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그 마검으로 무쌍 찍는다는 공작이니, 마법사가 아니라 전사로 키워졌어도 제법 괜찮았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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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노력을 중시하지만, 역시 이런 세상에서 혈통도 무시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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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이한이 감탄을 마지않을 정도로 아이린의 눈은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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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말대로 2,3학년 녀석들은 1학년들에게 압도당했으며, 얼핏 보아도 실력의 높낮이가 상당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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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으로 따지면 1차 전직도 못 끝낸 뉴비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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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에 비해 1학년들이 이제 2차 혹은 3차 전직까지 아슬아슬하게 앞두고 있단 걸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격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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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마다 신입 기사들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더니, 이유가 저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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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을 보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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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기 전 그에게 당당히 덤빈 요르드란 후배 기사를 제외하곤 겁먹은 양처럼 패기란 것이 느껴지지 않던 신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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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양들과 저들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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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기량이 제대로 올라오지도 않았어. 거기다 살기나 기세를 내뿜는 것도 어색하고. 기껏해야 짐승 사냥으로 경험을 쌓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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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마물이 아니라, 토끼나 여우 정도만 사냥해본 느낌이 팍팍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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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세는 그 정도로 얌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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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그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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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말하지만, 그는 교관 일을 대충 임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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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진심으로 다가갔고, 훈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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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가 유난히 강조했던 한 가지가 다름 아닌 ‘기본’이란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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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본이란 놈을 몸과 정신에 때려 박아 넣기 위해 정신개조를 하듯 새겨 넣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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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과 덕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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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지 3개월도 안 된 1학년들이지만, 3개월 전 본인들과 싸우게 한다면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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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반대로, 1학년들보다 2년이나 더 배운 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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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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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2,3학년 놈들을 이렇게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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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빵이야, 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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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비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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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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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로 따지면 염동력으로 실뜨기도 못 하는 주제에 마법사라고 하는 거랑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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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그건 심각하네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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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은 마법으로 예시를 드니 즉각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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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주체인 염동력으로 실뜨기도 못 한다는 건 망치를 든 어린애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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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힘을 컨트롤 할 수 없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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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이 왜 저렇게 낮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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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여러모로 사람들을 망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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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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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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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모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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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튼 전쟁의 주역은 현 세대의 기사들이 아니라, 선왕 시대의 기사들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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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선왕 시대의 기사들은 모두 은퇴했고, 남은 거라곤 전쟁 때 파티만 해대던 놈들이 군부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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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軍神)의 부재가 크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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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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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팬드래건의 전대 왕으로, 120년 간 왕국을 통치하며 왕국의 수준을 대국(大國)까지 이끌어냈다는 전설적인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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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어찌 신이란 오만한 칭호가 붙을 수 있겠냐 싶지만, 그가 남긴 업적만 보아도 사람이 해낼 수준이 아닌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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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혼자서 나라를 세웠어도 될 사람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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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만 접한 이한마저 감탄하게 한 선왕의 특기는 다름 아닌 ‘인재선별의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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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았다 하면 명장이나 명재상이니 말 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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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한때 군신이 직접 뽑은 인재들로 가득했던 팬드래건은 제국마저 두려워했을 정도였고, 군신의 눈을 대표하는 인재 중엔 젊은 날의 발타르 그레이스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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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제 군신이라 불린 왕이 아발론으로 떠난 지 17년이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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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군왕과 같은 세대의 인물들도 세상을 떠났고, 그나마 버텨주던 원로들도 지난 전쟁 때 활약한 이후 모두 선왕의 곁으로 떠날 날만 기다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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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젊은 세대가 왕국을 이끌어야 할 판인데, 그 젊은 세대란 것들이,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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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나중에 전쟁 날 것 같으면 진짜 이 나라 떠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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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나라를 이끌 귀족들이란 놈들을 보고 있자니, 이 왕국에 ‘다음’이란 놈이 없으리란 묘한 확신이 들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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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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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러니 망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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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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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다.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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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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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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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로엔은 할 말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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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그 누구에게도 언급할 내용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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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속으로만 삼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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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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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이것이었나, 건방진 애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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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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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군, 확실히 보고 있노라면 화가 치밀어 오르긴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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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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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은 저를 향해 차가운 기세를 내뿜는 사내를 뒤에 두며 간담이 서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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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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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팬드래건과 라이오넬과 함께, 왕국을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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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는 기둥의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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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긴장감을 줄 이들은 없을 것이라 여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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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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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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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엔은 그가, 블레이크 비비안 드 갈라하드가 무서웠다.
|
||
|
||
그라는 사람이 무서운 걸까, 그도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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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내 안에 잠든 사자의 피가 그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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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어가 됐건, 긴장을 놓아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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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벱니까, 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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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되었다, 오늘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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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방지게 주군을 오라 가라 한 자입니다. 살려둬선 안 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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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기사를 키운 게 아니라, 백정을 키운 느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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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부만 내리시면 백정이라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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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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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저자도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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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 드 듀론. 갈라하드의 최후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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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얘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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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그가 얻게 될 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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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모든 왕국민을 공포에 떨게 할 ‘학살자’가 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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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몰랐겠지, 저자의 안에 그토록 포악하고도 끔찍한 흉성(凶星)이 잠들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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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그 흉성에 목줄을 채워놓았던 것은 마검의 소유자인 공작이 유일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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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작이 사라진 왕국에 저 흉악한 ‘마인’을 잡아놓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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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아무리 흉악한 흉견일지언정 주인에게 순종적이라면, 그렇다면 아직은 찾아오지 않을 미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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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도박을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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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멀쩡히 살아있고, 왕국 최악의 학살자가 ‘충견’인 시절인 지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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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전 당신에게 제안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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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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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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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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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라, 애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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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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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지게 공작의 앞에서 제안을 꺼냈다는 건 목숨을 내놓은 행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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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굴러갔고, 로엔은 거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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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전하, 아니 선왕의 피를 가장 진하게 이어받은 사내여. ─왕위(王位)를 이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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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오오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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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는 칼을 빼들었고, 로엔은 이미 예측했다는 듯 잭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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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은 다음에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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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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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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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기사의 감각마저 피하는, 거의 [신비]에 가까운 놀라운 기척 감추기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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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라크는 설사 상대가 신비 각성자라 한들 끝까지 쫓아가 죽일 자신이 있었고, 당장 움직이려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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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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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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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쥐새끼 같은 것들. 전에도 저러더니 숨는 실력만 좋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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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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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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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크 공작의 입가가 점차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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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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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제안임은 사실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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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도록 차가운 눈이, 그의 기분이 썩 유쾌한 게 아님을 알려주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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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4일차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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