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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연회란 거의 일주일에서 보름의 준비기를 거친 후 열리는 게 상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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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귀족들이 벌이는 연회는 그 액수가 남다르기에 더욱 웅장하고 찬란하게 벌어져야 하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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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하루 만에 열리는 건 실상 불가능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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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오늘 연회가 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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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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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반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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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가 원한다고 하는데, 열어야지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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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불가능한 일도 사람을 갈아 넣으면 가능으로 바뀌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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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명, 아니 천 명의 정예가 동원되며 연회 준비는 반나절 만에 완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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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생도들은 감탄을 마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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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정원이 화려하기 그지없는 연회장으로 변모, 아니 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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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만들어낸 성과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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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언제 여기 분수대가 생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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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꽃밭 아니었는데? 그냥 모래사장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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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저거 다 보석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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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하나만 팔아도 5년 치 생활비가 생기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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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를 비롯하여 장식, 그리고 악단과 이동식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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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하늘을 실시간으로 빛내는 마법 도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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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지랄도 이만한 돈지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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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아닌가? 돈이 있다고 해서 이런 걸 할 수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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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가 역시 대단한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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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왕녀가 아니지. 무려 왕세녀 전하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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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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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우리는 왜 이렇게 몰려 있냐? 다른 곳에 있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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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기 귀족들 있는 곳에서 놀래? 놀고 싶으면 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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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절대 못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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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권력에 대한 아찔함이 드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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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에게 18-웅(熊)‧나한이란 괴상한 이름을 받은 검술학부 새싹 생도들은 한 자리 한곳에 뭉쳐 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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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들을 위해 열린 연회지만 부담스럽기 그지없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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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살아야 한다고 했던가, 이처럼 한 평생 서민으로 살아온 그들에게 있어 귀족들이 모인 자리는 어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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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익숙해지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불편하고 또 불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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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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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쿤타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쿤타나 곰돌이들 구경거리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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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이 아니라 진짜 구경거리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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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신기한 조합이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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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거지, 부랑아, 용병 그리고 야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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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주목 받고 싶지 않아도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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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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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저들 중에는 호기심만이 아니라 질투의 시선도 가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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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의 호의를 산 그들이 아니꼬울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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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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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층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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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최하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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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금이야 아카데미 생도지만 그들의 신분이 어디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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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선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이 아무리 실력이 좋다 한들 평생 신분의 차별은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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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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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왜 미어캣 무리처럼 뭉쳐 있냐? 뭐 죄라도 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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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마이웨이와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신분이건 뭐건 상관하지 않을 터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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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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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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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그들의 교관이 남들이 보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서서히 그들에게 다가왔고, 서커스단 신비 동물을 구경하는 것처럼 그들을 보던 귀족과 생도들은 시선을 바로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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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과 생도들 모두가 이미 입학식 사건을 들은 바가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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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들은 바가 없을지라도 그가 무의적으로 내뿜는 위압감은 길거리에서 주먹 좀 쓴다는 놈들조차 깨갱거리게 만들 압박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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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불칸에서 성난 멧돼지 한 마리를 손으로 찢어버리는 광경을 보았던 그들로선 마냥 저것이 위압감에 불과한 게 아님을 알고 있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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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러한 위압적인 사내가 나름 상냥한 시선을 던지며 그들을 슥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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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것도 아닌데, 검술학부 전원이 모여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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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 공자님이랑 데미안 조교는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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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 생도는 무슨 볼일이 있다며 사라지더군. 뭐 원래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녀석이니 놔두면 된다. 그리고 조교? 그 녀석은 연회 즐길 시간이 어디 있어. 보고서 작성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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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보고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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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장한테 건네야 하는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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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거 원래 교관님이 적으셔야 하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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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조교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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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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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보면 그들 중 가장 고생하고 불쌍한 사람은 데미안 폴렛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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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시답지 않은 생각을 공통적으로 떠올리려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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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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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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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그리고 생뚱맞은 발언에 검술학부 모두가 눈을 끔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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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생했다고 하는 건 마냥 곰돌이들만 말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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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나한이라고 안 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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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베어라 부르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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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냥 곰돌이가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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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머리만 굵어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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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답지 않은 농담과 함께 풀어진 분위기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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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생도들 전원과 정성스레 눈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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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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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병아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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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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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고생이 많았다. 항상 줄넘기 열심히 하는 것도 좋고, 꾀부리지 않았던 면도 좋았다. 뭣보다 너희가 곰돌이들 교양 과제나 다른 강의 과제를 정리해서 준 것을 안다. 너희의 꼼꼼함과 섬세함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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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게, 그건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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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도 아니었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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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해본 것이라며 횡설수설하는 그녀들이었으나, 이한은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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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들, 당장 대가리 90도로 숙이면서 인사해라. 너희 성적 챙겨주신 기특한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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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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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으로 명령에 따르며 그들은 즉각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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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명령을 받아서만이 아니라, 진심 어린 감사함이 있기에 그들의 감사에는 장난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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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있던 승리의 핵심은 마냥 그들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었음을 깨달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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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응원과 도움이 있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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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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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부끄러워 하는 소녀들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쑥스러움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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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도도한 귀족 영애들인 줄로만 알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애들은 역시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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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련님 녀석들아. 너희도 잘했다. 듣자 하니, 곰돌이들 비아냥거리는 놈들 손봐줬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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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검술학부가 모욕당하는 게 불쾌해서 그랬습니다. 저들 또한 검술학부 소속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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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잘했다는 거다. 처음 만났을 땐, 마냥 재수 없는 도련님들이었는데, 이제 보니 착한 도련님들이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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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하실 거면 제발 그놈의 도련님 소리부터 없애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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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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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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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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앓는 그들이었으나, 반대로 곰돌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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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자신들을 위해 화를 내줬을지 몰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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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감동마저 받은 그들이었고, 시선을 받은 이들은 쑥스러운지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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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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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란 험난한 절벽을 두고 같이 고생하는 그들이기에 느끼는 신뢰 어린 끈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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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며 친해진다는 게 딱 이런 말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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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대놓고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지만, 분명히 그들에겐 신분을 초월한 우정 비스름한 게 생긴 것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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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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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곰돌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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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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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호명하는 이한이었고, 그들은 이미 눈물을 흘릴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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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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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다는 말은 안 하마. 솔직히 운이 좋아 이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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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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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느새 눈물이 쏙 들어갔고, 다른 의미로 가슴이 출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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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함이란 종류의 출렁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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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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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해 하지 마. 칭찬은 이미 다른 사람들한테 많이 들었을 거 아니야? 그럼 한 명은 쓴 소리를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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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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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항상 예측을 벗어나는 사람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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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다 박수갈채를 줄 때, 꾸중을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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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한은 어디까지나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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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을 대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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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이긴 이유는 오직 주문쟁이들이 방심했기 때문이다. 주문쟁이가 차근차근 조심스레 싸웠으면 너희가 무조건 졌겠지. 3분만 넘겼어도 너희 체력이 다 해서 자멸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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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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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할 사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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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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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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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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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말대로 그들이 실전에서 전력으로 싸울 수 있는 시간은 3분이 한계, …아니다. 자세히 떠올리니, 전투 당시 2분을 넘어가던 순간 미치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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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을, 기술을 실전에서 펼친다는 건 생각보다 더욱 험난하고 지독한 경험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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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마법사들이 조금만 더 냉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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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막바지에 보인 자잘한 주문들이 처음부터 그들의 기동력을 묶거나, 그도 아니면 화력을 분산시키는 영리한 전법을 선보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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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면 그들은 처참하게 패배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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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쓸 틈도 없이 볼품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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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점을 이한은 정확히 짚어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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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방심이 있었고, 너희가 상대방보다 두 명이 더 많았기에 생긴 의외성이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운이 따랐다. 그러니 난 너희를 칭찬해줄 수 없다. 못한 건 못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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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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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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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만 해도 무수한 군중에게 꽃다발을 받으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지만, 그들을 가르친 사람이 저토록 엄격히 말하니 허파에 들어간 바람이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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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을 하나씩 짚어주자 보이는 오늘의 실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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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찔했던 순간들이 뇌리를 스쳐가니 그제야 안색이 창백해지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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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웃음이 나올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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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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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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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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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앞에서 도망가지 않았고, 불덩어리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았고, 마지막에 졌다 싶을 때도 포기하는 녀석은 없었다. 난 설사 오늘 너희가 졌더라도 만족했을 거다. 적어도 내 ‘제자’가 동료를 버리고 가는 겁쟁이는 아니었다는 건 기쁜 일이니까. 그러니 잘했다. 시합은 형편없었어도 너희의 기백은 분명 칭찬 받아 마땅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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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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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오늘 시합에 나갔던 이들의 왼쪽 가슴에 주먹을 툭툭 치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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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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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폴트는 가슴이 아닌 머리만 살짝 터치해주는 세심함을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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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했다. 이것만은 인정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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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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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눈을 둥그렇게 뜨며 저들의 교관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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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가슴과 머리를 매만지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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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교관은 그들을 처음으로 ‘인정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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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과 머리를 두들긴다. 용병식 격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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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격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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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와 심장을 전쟁터에서 무사히 지키고 돌아온 용병에게 해주는 격려지. 초보 용병들에게 자주 해주는 칭찬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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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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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 과거 경력이 의심되는 교관다운 격려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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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녀석들도 들어라, 내가 말한 것처럼 경은 만능 같은 게 아니야. 그러니 내가 가르친 걸 부러워하지 말고, 너희가 가진 걸 아껴라. 너희가 익힌 게 저 녀석들이 익힌 것보다 더 안정적이고 우수한 것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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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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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생도들은 축하는 해주지만, 어딘지 씁쓸함이 남아 있던 그들은 이한의 말에 움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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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불칸에 가지 못한 후회를 가슴에 두고 있던 그들이었으며, 오늘의 전투를 보고 가슴이 쓰라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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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교관은 이미 그들의 이러한 쓰라림을 알아채고 있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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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워하지 마라. 너흰 아직 젊고, 나랑 함께할 시간이 길어. 그동안 제대로 단련시켜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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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무서운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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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는 않아, 죽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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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웃어야 하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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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인 것 같은데 전혀 농담 같지 않은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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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듣고 있자면 위로가 되는 게 미성숙한 젊음의 심리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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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셋도 마찬가지다. 투기법이랑 경을 동시에 익혔다고 해서 무조건 강해지는 건 아니야. 하나가 더해져서 강해지긴커녕, 이도저도 안 돼서 마이너스가 되는 수가 있다. 그러니 너희는 경을 그냥 보조 바퀴 같은 수단으로 생각해라. 큰 의미를 두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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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도 잔소리 받는 대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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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내 제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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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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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이제 악담은 끝이다. 모두 연회를 재밌게 즐겨라. 그리고 쉬어라. 3일 동안 휴일을 줄 테니. 당분간 출석을 안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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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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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농담 아니니까 좀 믿어,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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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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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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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기쁨 어린 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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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이것이 휴가를 받은 것에 대한 기쁨인지, 아니면 그가 그들에게 건넨 인정에 대한 기쁨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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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그들만이 알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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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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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의 말이 기폭제라도 된 듯, 단숨에 긴장감을 털어낸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연회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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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또한 미어캣처럼 뭉쳐 있던 그들이 흩어지자, 타 학부의 사람들이 서서히 접근하며 제자 놈들에게 말을 걸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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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예상이지만, 고슴도치의 가시마냥 뭉쳐 있던 것들이 개개인으로 흩어지자 이제야 좀 편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됐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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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하긴,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어울릴까.’
|
||
|
||
저 심정이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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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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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회란 원래는 잘 어울리기 힘든 타 학부간의 소통구가 되기도 하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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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검술학부 녀석들과 연을 트고 싶은 이들에게도 기회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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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곰순이 녀석, 고생하겠구먼.’
|
||
|
||
병아리 1호에서 곰순이가 된 레비 폴트는 뭇 남성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
||
|
||
하긴, 제법 귀여운 녀석이니, 인기가 많을 법도 하다.
|
||
|
||
수작 부리는 녀석들이 많은 것도 이상할 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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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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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건드렸다간 전치 3개월일 텐데….’
|
||
|
||
곰은 수컷이건 암컷이건 상관없이 건드려선 안 된다.
|
||
|
||
특히 저가 키운 곰들은 사람을 반으로 찢을 수는 없어도 허리는 반으로 접을 수 있으니.
|
||
|
||
부디 개수작 부리다가, 허리가 접히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길 바라며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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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응? 교관님 어디 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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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잠시 볼일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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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있으면 왕녀님도 오시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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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더더욱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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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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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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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껏 즐겨라 아이린 생도. 너한테 관심 있는 놈들도 많은 듯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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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 관심 없어요. 저런 애들이랑 어떻게 어울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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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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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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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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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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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설픈 빙의자 녀석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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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이한은 자리를 벗어났고, 아이린은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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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아, 뭘 그렇게 봐? 상완이두근을 보는 거야? 아니면 등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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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너 같은 변태인 줄 알아? …크흠, 조, 조금 보긴 했어도 의도한 건 아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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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리 아린이! 뭘 좀 알아,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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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 진짜! 그런 거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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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윈들러는 얼굴을 붉히며 유령에게 일갈했고, 이를 보며 그녀에게 다가오던 남성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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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아름다움에 꼬이려다, 마법사의 광증이 독이 든 장미보다 위험함을 떠올리며 목숨이 아까운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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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다가오는 수컷 무리를 물리친 독이 든 장미 아이린 윈들러는 유령 소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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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 착각인지 모르겠는데, 교관님의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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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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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웃고 있는 것 같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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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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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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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아이린 윈들러도 저가 느끼는 이상함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지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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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그녀가 느낀 이상함을 풀이해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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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즐거워 보이셔서, 반대로 무섭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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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생각하고도 참으로 이상한 생각이라며, 그녀는 멋쩍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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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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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그닥! 다그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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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의 어느 텅 빈 거리를 가로지르며 은밀한 곳까지 말을 타고 이동하는 일련의 무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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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리 급한지 이동 속도는 느릿함이 없었고, 어느 순간 그들은 깊숙하기 그지없는 왕도의 치외법권까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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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나락(寄生奈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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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층민 중에서도 막장 인생들이 모여 산다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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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왕도에서 없애려 했지만, 그때마다 바퀴벌레나 기생충처럼 잘 숨어 다니며, 어느 순간 다시금 나타나는지라 나락은 없애고 싶어도 없앨 수 없는 왕도의 숨은 어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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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를 마치 자기 숙주처럼 삼으며 기생하는 모습에서 기생 거리란 이름이 붙었고, 한 번 들어가면 다신 나오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득한 절벽의 나락과도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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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있으나, 위험성만큼은 진짜이기에 일부러 찾아서 들어가는 이들은 분명 어마어마한 범죄자인 경우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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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그러한 거리를 말을 탄 이들이, 그것도 제법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이들이 자의로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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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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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의 그 어떤 범죄자도 그들을 막지 않았으며,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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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오늘만큼은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집밖으로 안 나오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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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후우! 여, 여기까지 왔으면 됐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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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좀 안심해도 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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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야. 굳이 이렇게 다급히 도망갈 필요가 있는 거야? 우리가 괜히 설레발치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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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같은 소리! 왕녀가 있다는 건 그 미친 이단심문관이 근처에 있다는 거다! 그자라면 분명 우리의 수상함을 눈치챌 텐데, 어떻게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도망가는 게 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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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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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심문관 존 레이 알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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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이 나오자 그들은 몸이 오소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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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기록을 보고서로만 접했음에도 이들은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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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록은 읽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두려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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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들의 존재가 들켰다면 바로 십자가를 든 그가 찾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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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스러운 죽음을 두른 초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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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그래도 다행이야. 예정과 달라졌지만, 우리는 이렇게 무사히 도망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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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이 설마 도움이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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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이 도움이 된 게 아니야, [조직]이 있으니 우리에게 힘이 된 것이지, 그러니 절대로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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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이라, 그 조직 이름이 혹시 뭔지 물어봐도 될까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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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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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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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가볍게 걸어오는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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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산책로를 걷는 듯한 사내는 가벼운 눈웃음을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고, 그들은 믿기 힘들다는 눈으로 사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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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그가 여기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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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사내는 도리어 섭섭하다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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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까, 안 그렇습니까, 한스 교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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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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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교관님 웃으시죠. 왜 그렇게 정색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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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터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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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야금학부 교관 한스가 떨리는 음성으로 사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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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의 성을 부르며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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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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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들을 어떻게 찾았는지 이해가 안 가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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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장난스럽게 땅바닥을 툭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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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난스러운 그의 몸짓과 달리 옆구리에 찬 롱소드가 유난히 서늘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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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야. 그냥 내가 냄새를 잘 맡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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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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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내가, 주문쟁이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거든, 그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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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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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같은 ‘악취’ 풍기는 주문쟁이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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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에 들린 손도끼가 불온한 흉포함을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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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길 포기한 ‘짐승’들을 사냥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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