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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들은 당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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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혹스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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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뭐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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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기세가 느껴지는군. 부디, 요정들마저 감탄을 마지않을 멋진 전투를 기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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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가, 왕실계승서열 순위 1위에 빛나시는 고귀한 왕세녀가 그들을 ‘격려’하고 있었으니 냉정을 유지하는 게 도리어 이상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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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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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마냥 멋진 전투를 벌이고 싶어 다치는 것은 안 될 말일 테지. 부디 몸을 챙기거라. 그대들은 모두 훗날 나라를 이롭게 할 인재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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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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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당혹스러움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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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올려다보던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조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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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본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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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런 분이 존재하실 수 있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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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니 아름답다는 표현조차 왠지 저분에겐 불경스러운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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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강림하신 것 같은 인세를 초월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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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더럽혀선 안 될 고귀함이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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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출신들이 감히 눈을 마주하는 것도 불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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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들은 고개를 감히 들지 못하며 눈을 깔길 망설이지 않았으며, 마냥 얼굴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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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들은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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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오늘 반드시 승리하여 저분에게 영광을 바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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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감히 결심하며 가슴이 들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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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전사든 마법사든 상관없이 동일하게 떠올린 결심이었으며, 두 집단은 오늘 반드시 승리해야 할 이유를 한 가지 더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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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와 전사의 자존심뿐만이 아니라, 감히 천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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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를 배알할 영광을 얻기 위한 투쟁을 각오하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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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들의 눈이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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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병, 놀 옆구리 차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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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모든 광경을 보던 교관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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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도산검림과 같은 무림, 아니 왕도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세 가지가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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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아이, 그리고 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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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방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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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중 미녀의 존재만큼 위험천만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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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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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한테 홀리면 답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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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슬쩍 VIP 관람석과 같은 상석 위에서 오연히 앉아 그를 내려다보는 왕녀에게 시선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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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보는 건데도 여전히 소름이 돋는 불길함이 풀풀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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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의 직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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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이면 뭐 된다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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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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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고, 반대로 그와 시선이 마주친 왕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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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한 녀석, 곁에 있었다면 엄벌을 내렸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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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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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안에 부채를 만지작거리며 아이시스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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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건방진 벗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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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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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게임이 진행되는 콜로세움은 마치 축소된 전장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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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두 개를 이어 붙여 만든 것 같은 거대한 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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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된 숲과 바위들도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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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적인 자연환경이 조성된 것이 마치 테라리움(Terrarium)을 연상케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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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의 유희라고 하지만, 얼마나 진심으로 유희에 임하는지 알만한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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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돈 많은 인간들의 심리란 건 잘 이해가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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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러한 거대 테라리움에서 벌어지는 시합은 단순히 귀족들만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매력적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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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만이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개방된 콜로세움이었고, 그들은 관람석에서 소리를 힘껏 높이며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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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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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열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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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엔터테인먼트가 압도적으로 부족한 중세 시대에 있어 이러한 시합은 귀중한 자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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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로 따지면 미국의 미식축구 못지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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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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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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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떨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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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미친 듯이 떨고 있네. ……나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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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들은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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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수천 명은 가뿐히 넘길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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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과 기대, 흥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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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감정의 열화가 그들을 덮치니 어깨와 목이 다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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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이러한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불칸에서 겪은 가혹하고도 불합리한 환경 덕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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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그 지옥 같은 시간이 이럴 때 도움이 다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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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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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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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렇다고 한들, 첫 전장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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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왕녀의 행차 때문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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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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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훗날 기사가 된다면 충의로 모셔야 할 위대한 여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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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왕국제일의 미색을 뽐내며, 왕국의 귀족만이 아니라 백성들마저 동경하게 만든 그녀가 있기에 더욱 열광하고 그들을 주목하는 것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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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무슨 가치가 있기에 차세대 국왕이 일부러 행차했는지 낱낱이 파헤칠 셈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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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왕녀의 행차가 영광스러운 건 그들도 마찬가지지만, 이 때문에 도리어 더 긴장감이 높아지는 게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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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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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 계실 때가 아니에요, 사형들. 이제 전술을 짜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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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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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놈들 모두가 떨고 있을 때, 유일하게 강심장을 유지하는 강직한 소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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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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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트 영애님도 정말 참여하실 생각입니까? 지금이라도 올라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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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편하게 하세요, 사형. 그리고 전날에도 말했다시피 저는 포기할 마음이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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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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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귀족이 어려운 그들로선 아무리 유약해 보이는 여성일지언정 불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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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한 달 동안 같이 동고동락하며 전우 비스름한 감정을 느끼게 된 레비 폴트이니 이렇게 의견을 내기라도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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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뜻에서 그들은 레비 폴트가 워 게임에 참전한 것에 여전히 자그마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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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이기 전에, 저들보다 한참은 작은 소녀가 자칫 다치기라도 한다면 죄책감을 느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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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소녀의 눈은 강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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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들, 비록 제가 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 또한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어요. 그러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도, ─마냥 평범한 각오로 이 자리에 선 것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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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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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저 말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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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폴트와 어울리고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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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겪은 소녀는 강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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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정신이 강인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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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말하건대, 지금 당장은 그들이 레비 폴트보단 강할 수 있어도 훗날은 모를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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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가진 정신의 강직함은 가히 로엔 공자조차 감탄한 바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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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요, 우리. 저는 저라는 사람의 가치를 증명하고, 사형들도 사형들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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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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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사내란 놈들은 지극히 순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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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의 손길 한 번에 목숨을 바치기도 하며, 어떨 때는 타인의 응원에 열을 올리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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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예의 바르게 ‘사형’이라 불러주는 소녀가 격려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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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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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도 꼬리가 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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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정도는 아니지만, 아홉 개까진 아니고, 두 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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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놈들의 피를 들끓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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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제 더는 병아리라 부르지 못할 소녀의 성장이 만족스러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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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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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국왕이 행차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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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다행을 넘어 십년을 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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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이지만, 아이시스가 손을 썼을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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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갈라하드와 라이오넬이 움직이는데, 국왕마저 움직인다면 그건 그것대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큰일로 번질 우려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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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이 움직이면 군이 움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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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 규모의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더 나아가 대귀족들마저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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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왕이 행차하는데 어찌 그들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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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됐다간 이 학예회(워 게임)는 더는 생도들의 것이 아닌, 권력의 장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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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항상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학술원의 존재의의를 크게 벗어나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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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아이시스가 왕의 대리자로 마냥 가볍게 참석한 것이 그나마 아카데미가 받아들일 한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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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나 대공도 안 보여서 다행이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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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관님. 그분들을 함부로 언급하시는 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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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양반들 신하가 아니잖아? 그리고 잠행(潛行) 중인 양반들이잖아? 그러니 내가 뭐라 한다고 해서 나오면 안 되지. 잠행 중이면 잠행 중답게 얌전히 관람이나 하고 가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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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하는 거지만, 교관님은 목숨이 여러 개가 아닌지 의심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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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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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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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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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과 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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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이 지금 어디 있는지는 이한도 그렇고 생도나 교원들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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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예 왔다는 사실 자체를 극소수만 안다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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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만이 공식적인 발표와 함께 방문했을 뿐, 두 군주는 현재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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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정도면 안 왔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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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라의 정보가 잘못됐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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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네, 이 인간들 진짜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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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한은 레이라 윈터가 가지고 온 정보가 정확하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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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녀에게 듣지 못했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겠으나, 알고 나니 보이는 게, 아니 느껴지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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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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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관람석에서 생도들과 일반 구경꾼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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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겼다고 숨겼지만, 이한의 감각을 피할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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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세를 느낀 순간 직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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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내 아래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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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이란 영역 안으로 들어온 이들이 가진 힘의 크기는 하나같이 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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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두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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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유독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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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어떤 놈은 마치 자신은 여기 있다고 대놓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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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을 찌르듯이 저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것이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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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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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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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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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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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그와 무차별 주먹다짐을 했던 시건방진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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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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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그를 도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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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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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찾아가 그날 끝내지 못한 승패를 가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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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동안 발전한 건 생도들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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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가르치며, 그들보다 더욱 험난하게 몸을 굴리며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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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처럼 기술로 지지 않을 자신도 있으니, 당장 시험하고 싶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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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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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들끓는 피를 억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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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늘은’ 참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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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역은 그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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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키운 새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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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盆栽)들이 어느 정도로 컸는지 확인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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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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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지게 제 존재감을 드러내며 도발하는 놈이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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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다음에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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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오늘처럼 끝나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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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다음을 기약하며 자신이 키워낸 제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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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한은 알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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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른 이들을 느끼고 관찰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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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재밌는 자가 있군요,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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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군가도 저를 관측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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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발의 사내가 그에게 관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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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뜻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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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롭니다, 저놈 저거 물건입니다. 싸우면 승패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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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렇게 평가할 정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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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그거 말고도, 저기 저놈 있지 않습니까, 저쪽도 만만치 않습니다. 공작가가 괴물을 키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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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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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그 ‘세 마리 괴물’ 말고는 상대가 없다고 여겼는데, 좀 반성해야겠습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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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완전히 부패했다고 여겼거늘, 아직 이 정도 저력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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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발의 사내들이 이토록 먼 왕도까지 온 저의는 이 웃기지도 않은 촌극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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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왕가를 견제하려는 얄팍한 생각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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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다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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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 네가 보고 싶은 게 저런 것이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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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한 건방진 ‘핏줄’을 보기 위해 왕도까지 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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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러한 재롱잔치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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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북부의 삶에 비하면 이곳에 투쟁은 그저 재롱에 불과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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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이러한 곳에 북부의 챔피언이 감히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이들이 무려 둘이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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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중 한 명이 키운 어린 전사들이 무대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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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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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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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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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핏줄 중 유일하게 사자라 불릴만한 자격을 갖춘 저 아이가, 내 아들 놈이 중앙까지 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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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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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지금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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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참, 재밌을 것 같군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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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본의 아니게 기대 어린 관심을 끌게 되었다는 것도 모르는 채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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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이들의 기대감을 품게 한 워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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