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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은 대부분 귀족 집안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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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서임을 받고, 집에서 독립하는 이들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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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집안의 원조를 받는 편이 더 좋은 건 당연한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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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귀족 자제들이란 놈들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산 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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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경우에는 제 손으로 몸도 못 씻고, 옷도 갈아입지 못하는 괴상망측한 응석받이 놈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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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기숙사 생활이 당연한 아카데미를 다니거나, 기사 생활에 익숙해지면 차츰 그런 경향도 사라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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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차츰 나아진다 해도, 응석받이로 평생 살았는데 그게 금방 고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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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된 상황에서도 시종을 달고 사는 이들도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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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모나 집사가 항시 대기하며 그들이 무언가 불편한 게 있으면 당장이라도 달려오는 모습이 연출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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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모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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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한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고, 솔직히 좀 쪽팔리지도 않느냐며 혀를 차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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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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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리한이 시녀를 데리고 오다니, 처음 있는 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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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을 보니 왕실 시녀 같은데? 누군가 하사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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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가 대단한 숙녀 분이군, 차라도 한 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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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뒤에 리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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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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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쪽팔린 상황이 자신에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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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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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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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욕지기를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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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 아름다운 숙녀 분은 누구시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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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 맹해 보이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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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노곤해 보이시긴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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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는 친구가 처음으로 데리고 온 숙녀를 마주하며 이한의 등을 찰싹 때리며 장난스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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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녀석들과 달리 애인이나 부인도 만들지 않고, 홀로 독신을 고집하는 이한이 얼마나 안쓰러워 보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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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몸에 문제가 있거나,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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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왠지 기분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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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 내가 뭐라고 했다고. 생사람 잡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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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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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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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에도 경지가 있다면 오러 유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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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는 슬쩍 눈치를 본 뒤, 기사단 훈련장 끝자락에 위치한 잔디밭에 앉아, 노곤한 얼굴로 잠이 들려는 여성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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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도 흐르려는 것이 아주 숙면을 취할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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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피곤해 보이시긴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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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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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무슨 사이냐? 네가 고용했을 리는 없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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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여러 사정이 있다는 것만 알아둬. 본의는 아니고. 그리고 쟤는 금방 돌려보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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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혹 왕실에서 지명 의뢰가 온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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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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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을 아끼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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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는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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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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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시녀가 있는 대목에서 어느 정도 짐작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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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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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에서 기사를 지목하여 명령을 내릴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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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며, 무조건적인 비밀로 지켜져야 할 의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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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왕실에서 지목된 것이 부럽고 질투가 들긴 하나, 왕족의 결정에 토를 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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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에 대한, 팬드래건 왕가에 대한 존경과 충성심은 신분관계 없이 모두가 간직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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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보도록 해라.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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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가 뭔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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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 말고, 저 아가씨와 말이야. 조금 맹해 보이긴 해도 아름다운 아가씨지 않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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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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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왜 갑자기 한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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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이놈을 패버릴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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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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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애인 갖고 싶다, 이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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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럽지만 어딜 가서 절대 말할 수 없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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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속으로 인견 마냥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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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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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라 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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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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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며 겨자 먹기인 상황이지만, 이 상황을 만든 못된 아줌마가 미운 거지, 저 맹한 시녀가 미운 건 아니니, 이름 정도는 기억해둬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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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님, 앞으로 여기서 이러지 말고 그냥 집에서 쉬십죠. 그것도 아니면 궁으로 가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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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기사님. 그래도 맡은 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해요. 돈 받고 일하는 거잖아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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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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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머리가 맹할 뿐이지, 착한 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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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이제 스물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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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안경을 안 끼고 보면 아주 착실하고 열심히 하려는 기특한 여성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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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일할 때마다 물건이 하나둘씩 파괴된다는 게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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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줌마, 혹시 내 살림 다 작살내게 하려고 얘 보낸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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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과 확신, 그 어딘가에 머문 미묘함을 느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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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아이군. 너한텐 아깝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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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인기척 좀 내고 다니쇼. 가끔 보면 아재가 더 암살자 출신 같은 거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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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 친구 중에 암살자 놈이 있긴 했지. 내 손으로 죽이긴 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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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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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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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영감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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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한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는데도 도저히 허풍으로 들리지 않는 게 이 영감의 단점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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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저 단점조차 누군가는 찬사하며 아첨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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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로 여기 있대, 오늘은 회의 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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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곳을 왜 나 같은 늙은이가 갈까. 젊은 놈들이 알아서 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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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마이웨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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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같은 백발이지만, 백발에는 촉촉할 정도로 윤기가 감돌았으며, 피부 또한 70대 나이란 것이 믿기 힘들 정도로 탄력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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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왜소하고 한편으로 별 볼일 없게 보일 수 있으나, 깊은 눈과 몸 주변을 떠다니는 오묘한 기세가 그를 심상치 않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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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세상이 중세 판타지가 아니라, 무협지였다면 딱 어울리는 별명은 ‘검선’ 정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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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르 그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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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로 시작하여, 당시 왕의 눈에 들어 기사가 되고.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오러 유저가 된 입지적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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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발타르를 만나면 도망가라’ -여러 무용담이 어찌나 많은지, 무훈시(武勳詩)마저 있는 전설급 레어 인간이 아닐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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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거물 기사가 다름 아닌 그였고, 군부 총사령관 지위를 거부하고 3기사단의 수장을 맡은 괴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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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의 입장에선 언젠가 넘어야 할 산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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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왜 왔어? 평소 기사단에는 방문도 않던 양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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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흘, 네놈이 여자를 데려왔다기에 궁금해서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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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게 한가한 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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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럼 이 나이에 일하러 다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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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없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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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오러 유저라고 하나, 이미 은퇴하고도 남을 나이임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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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오러로 육체의 전성기를 오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젊어 보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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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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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부럽네, 진짜. 부인 또 들였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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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아니라 애인이다. 어디서 유부남 만들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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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열이나 낳았으면 적당히 인정하지? 그거 주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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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젊으면 마음도 젊은 법. 난 아직 청춘이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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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꼴 잘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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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도 생긴 것만 보면 선풍도골이 절로 떠오르는 이 노인네는 생긴 거랑 달리 아주 정력적인 양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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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임이 분명한데 자칭 애인들이 열은 넘고, 애도 열이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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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증손자가 태어났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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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도 자기가 유부남인 걸 인정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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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를 안 올렸으면 무효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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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상하게도 의리도 있고, 아이를 낳아준 여인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충실한 아버지의 역할도 했기에 충분히 불화가 생길 가정환경임에도 이상하게 화기애애하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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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봤을 때 로판 여주니, 회귀물 남주니 하는 녀석들보다 이 양반이야말로 찐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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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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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 30년 인생 평생 여자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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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전생까지 합치면 도합 몇 년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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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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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속이 복잡해 보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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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일이 좀 있어. 포기하고 있던 무언가를 찾을 기회가 왔는데, 그 과정이 좀 지저분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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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답지 않게 굴긴. 평소처럼 우직하게 가거라, 그게 너다운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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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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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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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너털웃음을 터트렸고, 그제야 그의 존재감을 느낀 단원들이 몸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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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기척을 숨긴 이상 그를 눈치채기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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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단장님을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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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대로 이어지는 진심 어린 경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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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여기선 발타르를 처음 보는 이들도 있을 터이고, 이름만 들어본 이들이 한 가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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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물 같은 양반이니, 보는 것 자체가 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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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그를 보는 이들은 모두 공통적인 감정을 드러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동경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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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전설이었던 양반을 본 것이니 자연스레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일동이었고, 특히 이한과 싸웠던 신입 기사 요르드 데커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타오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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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으로 왕국 기사의 정점이니, 정통 기사들에겐 당연한 반응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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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할 일 하게. 나도 볼일만 보고 갈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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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뜨거운 시선이 쏟아진다 하여 그가 관심을 주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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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표정임에도 왠지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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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뭇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고자 하는 자는 많지만, 그에게 쉽게 다가가는 자는 없게 하는 원흉이었고, 이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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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아껴서 거름 되는 수가 있어. 뭐 그리 대단한 거 가르쳐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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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라, 나 또한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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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르, 그는 특이하게도 오러 유저인 양반이 제자 하나 들이지 않기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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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자식들 중 기사가 된 이들이 있는데도, 가르침 한 번 못 받았다고 하니, 그의 괴짜같은 면목을 알 수 있을 대목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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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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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뒤뜰로 오거라, 임명서 하나 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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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의 귓가를 간질거리는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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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그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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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를 이용한 게 아닌, 투기법을 응용한 방식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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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투기법을 익혔다고 해도 쉽게 따라하진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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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로 고난도의 기술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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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정도의 고난도 기술을 겪은 당사자는 감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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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명기 구경한 건 좋은데, 그냥 입으로 말합시다, 우리. 남정네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게 썩 안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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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르장머리 없는 놈. 눈치껏 맞춰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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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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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전에 일단 검으로 대화나 나누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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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그건 좋네. 옥상으로 따라 올라와,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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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옥상이 어디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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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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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건방진 도발을 받아들이는 발타르였고, 이한은 기껍기 마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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