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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120분을 채우고서야 일장 연설을 끝낸 학장이었고, 교원들은 드디어 회의란 이름에 연설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음에 진심 어린 박수 소리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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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심 만족하는 학장의 얼굴을 뒤로하고 해산하는 교원들이었으나, 반대로 몇몇 인원이 뭉쳐 함께 대화를 나누는 무리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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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가 다른 만큼 쉽게 마주하기 힘든 얼굴들이었으니, 이러한 기회를 활용하여 서로 얼굴을 익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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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심 왕따 생활이 확정됐으리라 여겼던 이한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우연치 않게 안면을 튼 한스는 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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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 놈에게 지인을 소개해 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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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에요. 미술학부 강사고, 종교화 전공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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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이라고 부르시오. 몰락귀족에 불과한 통계학부 강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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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부의 덴이요. 과분하게 교수를 맡고 있지,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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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렝 드 바그너요. 고리타분한 역사학부 교수지. 편하게 알렝이라 부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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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한스의 지인이었으며, 자신들을 별거 아닌 사람이라 말하고 있으나 그는 이들이 거물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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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거리가 먼 이한이었으나, 기사단의 유일한 친구 녀석이 가끔 그에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해주었고, 그때마다 단골처럼 나오던 이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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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신예화가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중에 실패작이어도 좋으니 그림 한 장 구매할 수 있게 해주시죠, 도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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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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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류 화가 중 가장 미래가 기대된다는 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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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부름마저 거절한 이를 마냥 몰락귀족이라고 무시할 순 없지 않을까 싶구려, 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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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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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마저 탐내는 젊고 유능한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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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를 재건축할 때 전두지휘 했던 거장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소, 덴. 그리고 목숨 걸고 브리튼 유물발굴을 하러 간 전설적인 고고학자가 고리타분하다고 무시하는 건 미친놈일 뿐이지 않겠습니까, 알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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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이거 참 쑥스럽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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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거랑 다르게 제법 견식이 좋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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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름을 날리던 거물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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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귀족조차 쉽게 인맥을 쌓을 수 없는 자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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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분야에서 이름을 날린다는 건 그만큼 명성 높고, 고고하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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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에서도 상시로 보호하는 중요 인사들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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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입니다, 소개해준 보람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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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모든 이들을 소개해준 거물급 장인 한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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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끼리 논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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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 틀린 거 없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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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드림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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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줄 아는 거라곤 검 휘두르는 것밖에 없는 군인이 상대하기엔 다들 너무 거물이군,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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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누가 누구 보고 겸손하다는 건지, 백은사자 소속 기사를 한낱 공무원이라고 하는 이들은 미친놈들일 거요, 안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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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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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대로, 그림 한 장 드릴게요. 호의의 표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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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런 그들에게조차 기사란 인종도 만만치 않은 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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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백은사자 소속 기사란 것이 더욱 그를 거물로 보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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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좌천되어 교관이 되었다지만, 그렇다 하여 무시하는 이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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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봤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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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로 유명한 폴렛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을 압도하던 실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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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런 걸 제외하고도 그들 자체가 제법 선하고 마음이 넉넉한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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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이나 권력을 탐하지 않고, 그냥 제 분야에서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 유명해진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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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그들은 지인인 한스가 소개해줬다는 이유만으로도 그에게 과한 선의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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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먼저 그들의 뒤통수를 때리지 않는 이상, 그에게 색안경을 끼진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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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빚을 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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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거물이란 사실보다, 성실한 호인이란 사실에 호감이 더 생겼고, 이들을 소개해준 한스에게 큰 빚을 졌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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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은 돈만 있다면 살 수 있지만, 타인의 친분과 선의란 건 돈이 있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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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갚긴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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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보다 못한 것들에겐 한없이 인성 파탄이 의심되는 군상처럼 굴어도, 인격자들에겐 그 또한 호인으로 다가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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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한과 교원들은 간단히 제 소개와 함께 간단히 티타임이나 가질 겸 카페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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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왕국 카페에 아이스 커피를 파는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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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에스프레소 아니면 허브 또는 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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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얼음 넣어 달라 요구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랬다간 경멸 어린 시선이 사방에서 쏟아질 터이니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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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심 아쉬움을 느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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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실례해도 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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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오드왈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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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한 것으로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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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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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적이면서도, 이미 답이 정해졌다는 듯 말하는 무뢰한의 등장에 부드러웠던 분위기가 묘하게 경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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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것부터가 괴팍했으며, 남 의견 따윈 전혀 들을 것 같지 않은 꼬장꼬장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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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들이 뭔가 잘못 밟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으나, 그는 남들의 표정 변화 따위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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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감이라곤 전무해 보이는 인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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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가 이한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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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윈들러, 그 순수한 천재에게 괜한 헛짓거리하지 마라. 이는 부탁이나 조언이 아닌 ‘경고’다. 만약 그녀의 재능에 조금이라도 불순물을 더한다면…, 그땐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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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한 ‘협박’을 건넸고, 흉흉한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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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대화하는 것조차 혐오스럽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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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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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봐 주문쟁이 노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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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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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개소리를 하는 건지 못 알아먹어서 그런데 한 번 더 지껄여줄래? 앞뒤 다 잘라먹고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먹어? 지 혼자 결론내고 자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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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가 보이는 적의 못지않은 ‘경멸’을 숨기지 않으며 막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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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좀 떨어져서 말해, 이를 얼마나 안 닦은 거야? 더러워서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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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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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해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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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다시금 도발하며 내심 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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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이 지팡이를 꺼내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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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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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손맛 좀 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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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를 팰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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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해도 좋다며 이한은 더할 나위 없는 해맑은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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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전혀 해맑게 느끼지 않을 터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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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마법사는 그냥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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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도발하면 넘어올 것 같긴 했으나, 주위에 새로 사귄 지인이 있으니 이한은 눈물을 머금고 도발을 참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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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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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왈 공을 그리 무시하면 안 됐는데,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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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를 비롯한 이들이 걱정 어린 기색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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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도착한 뒤 꾸준히 이한을 향해 던져지는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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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이한을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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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만난 타인을 위해 걱정의 눈빛을 보내는 정상적인 지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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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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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디저트를 쏜 게 안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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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든 걸 사과하는 김에 산 것이었고, 이한은 제 몫으로 산 핫초코를 마시며 오늘 치 당분을 보충하곤 확언하듯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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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제가 다 질 겁니다. 그와 다툼이 생기든, 갈등이 더 커지든. 여러분에게 절대 피해가 갈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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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우리가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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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니다, 걱정해주는 거. 그런데 진짜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저 이래 봬도 튼튼한 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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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인은 겨우 튼튼한 거로 넘어갈 수 없는 무서운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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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한스가 생각하는 튼튼함과 이한이 말하는 튼튼함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을 듯하지만, 이를 모르는 한스로선 무거운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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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왈 공은 대체 또 무슨 짓을 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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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왈 버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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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이한에게 시비를 걸듯 다가왔던 마법사의 이름이었으며, 모든 교원들이 껄끄러워하는 교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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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껄끄러워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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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마법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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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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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선천적으로 타고나야만 하는 축복 등으로 일컬어지는 마력의 선택을 받은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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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마력을 통해 ‘주문세계’란 것을 형성하여 자연의 법칙마저 조작하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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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상식이 통하지 않기에, 마법사는 마법사란 이유만으로도 공포의 대상으로 불리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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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엮였다가 어떠한 화를 입을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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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도 아까 교관님의 발언이 시원하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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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마법사에 대한 감정이 긍정적인 이들은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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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란 인종은 기본적으로 안하무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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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팍한 노인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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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험담을 뒤에서 하면 안 되긴 하지만, 부정하기가 힘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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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팍한 걸 넘어 불같은 인간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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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마법을 쓸 수 없는 자들을 무시하고 경멸하며, 자신들의 특별함을 상시 드러내며 대접받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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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과 왕족마저 무시하며, 설상가상으로 신에게마저 불경한 어투를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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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 정도로 막돼먹은 이들은 대부분 밉보여 소리 소문 없이 실종되기 마련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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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앞서 언급한 마법사처럼 오드왈이 막 나가는 부류가 아닐지라도, 마법사 특유의 안하무인 태도가 여실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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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를 들자면, 유명한 사건 중 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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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입학식 당시, 불꽃을 쏘아대며 날뛰는 사건을 일으켰지요. 본인 소개 순서에 일반 생도가 겨우 기침을 하였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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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이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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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틀 경과는 경우가 다릅니다. 그자가 한 것은 그저 폭력에 불과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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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저지른 사건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폭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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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도 없고, 그저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인 무자비한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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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사고로 생도 몇 명이 다치고, 강당도 반쯤 소각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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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법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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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런 말하긴 뭐한데, 그런 양반이 여전히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 이유는 뭡니까? 보아하니 아카데미가 아니라 감금되어 있어야 할 양반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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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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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서 교원들은 잠시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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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내심 그리 여기고 있던 사실을 콕 짚어 말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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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마법사는 귀한 재원이니 말입니다. 일명 대체 불가한 인력이지요. 인성은 모났지만, 살인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일단 감싸주는 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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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으나 이한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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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표면적인 이유일 테고, 실상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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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생긴 거랑 다르게 눈치가 좋다는 소리 자주 듣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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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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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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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는 진솔 담백한 기사의 발언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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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출신 기사가 아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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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에 가시가 없고, 마냥 직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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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길드의 장인들을 대하고 있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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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트길 잘한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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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또한 난폭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으나, 그는 어디까지나 선을 지킬 줄 아는 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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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왈 공을 후원하는 귀족들이 많습니다. 또한 그를 후원하는 귀족들 중에는 매년 막대한 아카데미 지원비를 내는 이들이 수두룩하지요. 하니 그를 함부로 내치지 못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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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 노인네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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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을 못 쓰는 자들을 모두 경멸하는 주제에, 후원자는 필요한가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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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웃긴 건 그런 인간에게 후원하는 귀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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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생각들인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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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터틀 경. 조심하십시오. 경이 강한 것은 알고 있으나, 그자는 위험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터틀 경을 위협할 우려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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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향한 진심 어린 충고였고. 이한은 내심 걱정할 거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진지한 충고를 건네는 이들의 말에 설렁설렁 대응하는 모지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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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 감사합니다. 필히 기억해두도록 하죠.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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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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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이건 제 숨겨진 재주 같은 건데, 여러분만 알고 계시죠. 이 재주를 아는 사람은 정말 얼마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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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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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숨겨진 재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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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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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주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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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를 착하게 만드는 재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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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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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그렇게만 알아두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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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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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미치광이라 할지언정 ‘착하게’ 만드는 요령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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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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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쉬지 않으면 착해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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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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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까지 안 뛰면 더 베스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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