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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아카데미에서 일하는 교원들은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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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준비도 준비지만, 제출해야 할 서류도 상당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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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계획서를 비롯하여 예산 책정과 업무 관련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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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후 원활한 수업을 위한 타 과목 교원들에 대한 양해 편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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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쓸데없다고 할 테지만, 이런 자잘한 예절을 지켜야 원활한 관계가 형성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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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아카데미 교원들은 하루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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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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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젠장!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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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이 아닌 남성이 책상에 앉아 열심히 서류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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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폴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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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의 3년 한정 조교이자, 현재 이한을 대신해 열심히 서류작업을 하는 남자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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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같은 교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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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던 귀족 도련님이었던 데미안이었으나, 일주일 넘게 서류 작업만 하다 보니 욕을 입에 달고 살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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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영이 짙은 그의 눈가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스트레스와 피로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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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는 피로하기도 피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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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주일 넘게 기숙사를 이용한 기억이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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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그게 뭐죠? 아카데미에 그런 게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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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헛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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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기숙사생이었던 데미안이었지만, 현재 그는 교원 휴게실을 더 자주 이용하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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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서류가 많다 해도 기숙사에 갈 시간도 없느냐며 의문을 표할 수도 있다만, 이게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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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검술학부 외 교양 강의와 필수 강의도 들어야 할뿐더러, 이후 강의를 들은 후에는 교관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데, 하등 수발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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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훈련해야지, 어디서 남 일인 척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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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은 안 그래도 그의 밑에서 공처럼 치이고 또 치이는 그를 훈련이란 명목으로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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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에 데미안은 수발도 들고 훈련도 같이 해야 하는 처지에 빠졌고, 그나마 강의가 끝난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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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내가 하랴? 조교 네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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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 다발이 그의 앞에 내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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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이에 반항할까 싶었으나, 교관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깨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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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따르면 물리적으로 죽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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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는 어느새 교관의 서류를 대신 처리하기 시작하는 게 일상이 되어갔고, 이밖에 타 강의의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 중에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시간이 낭비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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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데미안은 교원 휴게실에서 살다시피 했으며, 그는 지박령 비스름한 것이 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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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가 교원 휴게실에 자리 잡은 것에 당황한 이들도 있었으나, 이제 와서 교원 중 그를 신경 쓰는 이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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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검술학부 교관도 대단하구려, 벌써 ‘조교’를 얻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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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매년 보지만 신기한 광경이지요. 과연 저 조교는 언제 자퇴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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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이번 학기 안에 사라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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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교원 일동에겐 익숙한 광경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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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교가 휴게실에서 살림을 차리고 일하는 광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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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오싹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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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 하니 도망(자퇴)치는 데 성공한 선배님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 그에겐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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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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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3년 동안 이 짓을 해야만 하는 종신 노예, 아니 조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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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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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욕지기를 내뱉으며 데미안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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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폴렛이 어째서 저렇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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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한 회색머리칼을 가진 생도가 슬쩍 교원실을 관찰하며 눈을 끔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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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예정된 챕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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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폴렛은 원래 저러고 있으면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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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이린 윈들러의 추종자가 아니라, 조교 일을 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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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머리 생도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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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잘못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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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예정된 스토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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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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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지? 어디서 꼬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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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머리 생도는 계속 고민했고,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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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 거기서 뭐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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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에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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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혼잣말을 하던데,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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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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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아! 혹시 조교 일에 관심이 있으셔서 온 건가요! 그런 거라면 저희 역사학부 조교를 추천합니다! 공부할 거리가 매년 새롭게 생겨나는 보람찬 학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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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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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갑시다! 역사학부의 멋진 점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눠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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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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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머리 생도는 아무래도 의사소통에 대한 장애가 있는 듯했고, 활발하다 못해 어딘지 광기가 느껴지는 역사학부 교수에게 잘못 걸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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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회색머리 생도는 본의 아니게 장장 5시간 동안 붙잡혀 ‘역사학부 조교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들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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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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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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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간이지만, 누군가에겐 농후하기 그지없는 시간이 될 수도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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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뜻에서 이한은 검술학부에서 보낸 일주일이 그 어떤 학부보다 농후하다 자신하는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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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가르치는 일이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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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시절 그를 가르치던 학교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워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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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몇몇 교사들은 예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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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란 이름도 아까운 시부랄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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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났으면 다 죽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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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터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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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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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혼잣말이 너무 큰 게 아닌가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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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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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이한은 자신이 교원 회의에 왔다는 걸 상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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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이들은 그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떨리는 동공으로 자신을 보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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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확정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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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하게 제 실수를 인정하며 이한은 침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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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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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변명을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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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다는 게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냥 조금 사람 같지 않은 것들이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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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러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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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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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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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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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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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큰 회의실이었고, 거기엔 강사와 교수, 교관 등이 빽빽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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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합 11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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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열정적이게 일장연설을 내뱉으시는 학장님까지 합치면 113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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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교원 여러분. 여러분이 있기에 저는 감사합니다. 여러분 같은 훌륭한 재원이 있기에 훌륭한 생도가 배출되는 것이겠지요, 훌륭한 생도란 무릇 나라의 보탬이 되는 큰 보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 보배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것인데, 제가 재상부에 있던 시절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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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은 어째 딴 세상에 있으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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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만 한다 했으면서 벌써 한 시간 동안 저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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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멘트, 어째 방금 전에도 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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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재생을 듣는 오묘한 기분을 느꼈으나, 애써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이한은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교원에게 시선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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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원래 회의가 이런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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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사실상 학장님 말씀을 듣는 게 다긴 합니다. 건의사항이나 그런 건 부학장님한테 건의 드리는 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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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두려운 기색이 역력한 이름 모를 교원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상대는 그를 상대로도 성실히 답변해주는 좋은 인격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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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냥 가도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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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교수급 정도 되는 분들이면 안 오셔도 됩니다. 워낙 연구거리가 많으시니 학장님도 이해하시는 편이죠. 다만, 그런 분이 아니라면 웬만하면 다 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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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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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장님이 전직 재상이지 않습니까. 아직 정정하신 현역 후각 각하이시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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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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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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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미친놈이 전직일지언정, 왕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권력자의 심기를 거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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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입학식 때 심기를 건드린 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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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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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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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학장님은 사소한 일에는 그다지 신경 안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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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탁 날렸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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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하기 뭐한데, 3년에 한 번 꼴로 사고가 날 때가 있답니다. 즉, 가끔 소소하게 발생하는 사태란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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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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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들이 계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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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를 동질감과 함께 푸근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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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화병 나면 뭘 던져야 하는 건 어느 동네를 가나 비슷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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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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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음에는 조심해 주십시오. 그 교탁 제가 다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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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셨습니까? 고맙군요. 그, …혹시 성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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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슈미트입니다. 야금학부 교관 겸 야금길드 부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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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분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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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별것도 아닌데요,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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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도 아니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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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란 흔한 이름이라고 해서 절대 무시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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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금길드 부장이면 못해도 최상위 장인이란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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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붙이 쓰는 놈들 입장에선 어떻게든 인맥을 터놔야 하는 인간 영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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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이놈의 아카데미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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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 사람이 최상위 블랙스미스라니, 끝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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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가 장영실인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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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이러한 상황에 설핏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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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는 사람 중 유리 장인도 있습니까? 최근 집에 식기가 남아나지 않아서 튼튼한 놈이 필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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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신 분이군요. 기사 분들은 저를 만나면 검부터 만들어 달라 하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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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검이죠, 뭐. 잘 베이고, 튼튼하면 그만입니다. 괜히 비싼 거 쓰다가 잃어버리거나 부러트리면 아까워서 어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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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특이하신 분이군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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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맡겨 놓은 듯 검을 달라 시끄러운 인간들과 다른 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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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는 한스에게 좋은 인상으로 다가왔고, 그는 이한이 생각만큼 난폭한 인간이 아니란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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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유리 장인 소개해줍니까, 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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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밥이나 한 끼 사주시죠. 그러면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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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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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과 한스는 가볍게 주먹을 맞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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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인맥 만들기에 성공한 이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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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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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말입니다, 한스 교관님. 제가 지금 당장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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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 물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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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저를 노려보는 분이 있는데, 저분은 누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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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정중히 물음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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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한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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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리킨 얼굴을 확인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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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혹시 저분한테 무슨 실수라도 하신 건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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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오늘 난생 처음 만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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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피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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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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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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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어지는 한스의 설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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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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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의 입가에 차가운 조소가 머금어졌고, 한 손으로 코를 막는 시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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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근처에서 구역질나는 악취가 계속 난다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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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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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쟁이가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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