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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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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유독 서늘한 새벽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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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슬금슬금 떠오르며 점차 하늘을 밝히니 어두웠던 산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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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라면 장관이요, 이른 아침 일어나 보는 보물과 같은 풍경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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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안타깝게도 멋진 보물과 같은 풍경을 볼 정도로 부지런한 이들은 얼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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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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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아! 좀 일어나, 지금 준비 안 하면 이러다 지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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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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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그렇게 말하면서 50분을 더 자잖아, 그만 좀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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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잠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더더욱 그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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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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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유령 소녀의 잔소리에도 그다지 큰 감흥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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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칭얼거리며 잠에서 깨기 싫은지 투정을 부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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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보며 유령 소녀는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비장의 수를 쓰기로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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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아, 너 이러다 ‘재수’할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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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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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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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기운이 언제 있었냐는 듯 그녀는 벌떡 일어나며 기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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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워낙 저혈압이라 어딘지 좀 창백한 그녀인데, 재수란 단어 한 마디에 낯빛이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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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할 정도로 그녀에겐 재수란 단어가 큰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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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바보 아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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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너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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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잠기운에서 벗어난 그녀가 현실을 인지하며 유령 소녀에게 삿대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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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짓이 있고, 못할 짓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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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에게 재수를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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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악독한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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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들려 아린아. 그보다 대체 재수가 뭐라고 그렇게 무서워 해? 난 이해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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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뭘 알겠니, 이 재수 없는 계집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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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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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 수험생의 공포를 어찌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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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아이린 윈들러가 한숨과 함께 손가락을 튕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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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하며 움직이는 푸른 물결의 기운이 퍼졌고, 순간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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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을 막는 커튼이 물러나고, 창문이 열리며 밤 새 쌓인 탁한 공기와 먼지 등이 단번에 밖으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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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맑은 공기와 더불어 아침햇살이 들어오는 그녀의 방이었고, 그녀는 맑은 산소를 들이마시며 스트레칭 하듯 몸을 쭉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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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역시 마법은 편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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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보면 마법을 쓸데없이 쓴다고 말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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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보수적인 꼰대만 그런 거고, 또 생각하니 열 받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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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그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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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교류하기 시작한 마법사들과 마법학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듣자면 숨이 탁탁 막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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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의 재능을 선택받은 무언가로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마법이란 건 무지몽매한 인간들은 결코 이해 못할 상위의 지혜라든가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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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듣고 있자면 속이 그토록 매스꺼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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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마법사가 이 세상에서 멸시당하는 게 아니야. 하나같이 정신병자들밖에 없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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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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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아.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건 좋은데, 이제 그만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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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가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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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이나 학교를 다녔으면 됐지, 또 3년 동안 아침 일찍 일어나 수업 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우울증이 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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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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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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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교관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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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하시네. …스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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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호강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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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고 있는 교관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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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일어나기 한참 전부터 뛰었는지 교관은 땀이 흥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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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을 맞으며 이슬처럼 맺힌 땀방울이 반사되는데, 저토록 부지런히 뛰는 것도 대단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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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람이 매일 저렇게 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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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한 이후 매일 아침 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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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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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존경심을 느끼기도 잠시, 부지런한 교관의 생활패턴보다 더욱 눈이 가는 건, 웃통을 벗은 그의 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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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샅샅이 훑는지 누가 보면 수상하단 시선부터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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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고 있는 거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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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를 거야. 그보다 아린아, 저거 사진부터 찍어,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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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도촬은 범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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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키지만 않으면 범죄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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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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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득이 가는 명언이었고, 아이린은 어쩔 수 없는 척을 하며 ‘그걸’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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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마법사가 만들어낸 희귀한 마법 물품으로, 건물 값에 맞먹는다는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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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복사 촬영기]란 거창한 명칭을 가졌으나, 아이린에게 사진기에 불과했고, 느끼한 공작이 선물해준 께름칙한 물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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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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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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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촬에 성공한 그녀는 처음으로 공작의 선물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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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저씨,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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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언제 생겼지? 저건 처음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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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행동이나 목소리가 들킬 리 없다고 여긴 그녀였겠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귀와 청각은 아이러니할 정도로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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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거리가 좀 있어 그녀의 목소리를 전부 들은 건 아니기에 이한은 마냥 그녀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만 인식했고, 딱히 그녀의 행위에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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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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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찍혔는지 보여 달라고 해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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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어찌 찍혔을지는 흥미로웠고, 그녀에게 언제 한 번 구경시켜달라 부탁이나 해볼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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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수치사가 예정된 도촬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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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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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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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에게 천사이니 망나니 왕자이니 하는 걸 들었으나, 이한이 하는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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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나서서 무언가를 찾으려 노력하지도 않았으며, 조언을 구할 마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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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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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출몰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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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말하자면 이한에게 망나니 왕자의 존재는 희귀 동물과 동일선상에 있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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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알비노라 불리는 희귀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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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사슴이나 흰색 청설모 등이 그러했고, 막상 보면 신기하지만 보지 않는다고 해도 굳이 문제는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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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도 좋고, 안 봐도 상관없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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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본다고 죽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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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하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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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한은 그가 자연스럽게 출몰하길 기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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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나타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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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벌써 ‘희귀동물’ 두 마리가 모여 있는데, 동료의 인기척 정도는 느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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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개연성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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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지금 그가 할 일은 보이지 않는 마지막 희귀동물을 찾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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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더블 언더(Double under)를 시작하겠다. 모두 교관이 준비한 줄을 가지고 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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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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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의 의무를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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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한 투기법을 익힌 녀석들은 붉은 표시가 있는 줄을 가져가야 하며, 투기법을 익히지 않았더라도 어느 정도 검술을 배웠다면 녹색 표시가 된 줄을 가지고 가라. 그리고 투기법이든 검술이든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사람은 노란색 표시를 가져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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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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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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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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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렇게 각자에게 맞는 줄을 가지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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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언더, 말은 거창하지만 단순하게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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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줄넘기’를 시작하도록 하지. 빨간색은 1만, 초록색은 5천, 노란색은 2천 번만 각자 채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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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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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거 더럽게 말 안 듣는 것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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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슬쩍 웃으며 쇠몽둥이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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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 하고 허공에서 살벌한 파공음을 내는 쇠몽둥이를 가볍게 휘두르며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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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교관의 명령에 불이행하는 자는 교관과 수업이 끝날 때 동안 ‘면담’이 있을 거다. 아마 영양가 가득한 면담일 테니, 아무쪼록 기대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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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라고 하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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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저 쇠몽둥이와 ‘면담’하고 싶은 마음이 일말도 없었고, 그의 명령을 이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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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장에서 줄이 넘어가는 소리가 차례대로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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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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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한의 수업을 포기한 이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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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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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 출신 인원은 그렇다 치고, 귀족 녀석들이 남아 있는 건 뜻밖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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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속셈이 있는 건지, 아니면 얄팍한 계략이라도 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어찌 됐건 수업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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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사정이 뭐건 그의 관심사가 될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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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정한 수업의 첫 내용은 다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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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 보이네요, 줄넘기. 저도 어릴 때 많이 했었는데,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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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보이는 만큼 쉽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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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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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시녀님이라면 쉬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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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저 줄넘기 전부를 운반해준 괴력의 도우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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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조교 놈은 저 줄넘기 운반하다가 허리가 다쳐서 회복실로 실려 간 상태인 것에 반해 매우 정정한 것이, 기사 가문 후예라고 나대는 녀석들보다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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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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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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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님한테 말하는 거 아닙니다. 그보다 시녀님은 지루하시면 쉬고 계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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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울게요! 전 임시지만 기사님의 시녀니까요, 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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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말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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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문득 드는 생각인데, 머리 쓰는 게 부족해서 그렇지 참하고 착한 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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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야비한 귀족과 왕족만 상대하다가 이토록 순수한 영혼과 마주하고 있자니, 더러워진 마음이 씻겨 지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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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잠깐. 씻겨 질 게 있다는 건 나도 그 야비한 것들이랑 같은 놈이란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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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 그러한 생각마저 들었으나, 이한은 애써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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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그런 부류와 같은 꼴로 엮이고 싶진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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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때 아닌 자아성철이 이어지는 그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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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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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슬슬 신호가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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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마침 시녀님이 해주셔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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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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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널브러진 것들한테 물만 좀 뿌리고 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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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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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성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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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10kg’짜리 줄에 맞아 기절한 생도를 보며 이한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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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요즘 애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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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집이 뭐 저렇게 약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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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허약해서 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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