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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기사는 악명 높은 관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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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이 높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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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다. 불합리함이 아득한 관습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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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자유기사들이 거둬들인 제자에게 붙이는 명칭 따위였으나, 요즘 시대에 누가 자유기사의 제자가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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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자유기사지 양아치나 다름없는 범죄자가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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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를 모르는 어리숙한 농촌 마을의 소년들은 자신을 제자로 삼아주겠다는 자유기사의 말에 홀딱 속아 넘어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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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만 종자인 노예생활이 시작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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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와 빨래, 밥 짓기는 물론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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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여흥을 위해 돈도 벌어야 하며, 품위유지비를 위해 사채도 써야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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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아닌 종기사의 명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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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보니 종기사가 된 이들은 대부분 빚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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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빚쟁이가 되기 전 도망치는 이들이 대부분이나, 도망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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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사라 한들 기사임은 맞고, 양아치인 만큼 사람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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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자유기사 제도는 폐지(廢止)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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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도 이런 악인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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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도 이상하게 종기사 제도는 여전히 폐지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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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 말로는 자유기사가 잘못한 거지, 다른 명문가의 기사들은 그러하지 않는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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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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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본 명문가의 기사들, 그리고 그 기사들이 거느린 종기사가 하인보다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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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노예 취급당하는 광경을 얼마나 수없이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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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그는 만약 종기사가 되고 싶다고 희망하는 무지한 어린 양이 있으면 기꺼이 가르침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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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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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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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거 다 아는 녀석이 종기사가 되겠다는 건 과연 무슨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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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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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고통과 고난을 즐기는 변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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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혹은 둘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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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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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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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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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때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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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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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때려야 네가 나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말해라. 내가 고장 낸 것 같으니 기꺼이 고쳐주도록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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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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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둑,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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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주먹을 가볍게 풀며 놈의 뒤통수든 앞통수든 때릴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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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교탁으로 때린 게 문제라면 다르게 때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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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탁 날릴 때 커브로 던졌으니, 이번엔 슬라이더로 던지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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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이긴 하지만, 이놈도 검술학부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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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교관일지언정 생도의 정신머리를 차리게 해줄 의무가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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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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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그렇게 적당한 짱돌을 찾아 주변을 슬쩍 훑고 있으니 여전히 무릎 꿇던 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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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런 게 아닙니다, 경. 아,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전 미친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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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게 아닌데 이런다고? …그럼 더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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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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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가 생각해도 좀 구차한 변명인 건 맞다 싶은지, 데미안은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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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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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가 말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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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마음에 뒷사정 설명도 안 하고 종기사가 된다고 했으니, 이런 취급받아도 할 말이 없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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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히 이를 인정하며 데미안은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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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 아니 가주님께서 명하셨습니다. 리한 경을 보필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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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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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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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눈으로 물음을 표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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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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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백작이 달라졌다는 얘기부터, 백작에게 언성을 높이던 기사단과 백작의 장남 등이 살얼음판 속에서 산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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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도 원로들이 직접 나서 가문의 기강을 새롭게 다잡고 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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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가의 위신을 떨어트린 막내 공자는 기어이 호적, 아니 가적(家籍)에서 파였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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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가문으로 복귀하고 싶으면 어느 기사에게 용서부터 받고 오라는 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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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많은 얘기를 들었지만 결론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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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받고 싶으면 시건방지기 그지없는 네 혀를 자르던가, 그것도 아니면 나한테 덤볐던 기사의 머리를 가지고 와라. 그 정도면 용서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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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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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아무거나 선택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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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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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싫으면 마. 그냥 꺼져.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역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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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가차 없는 경멸과 함께 조소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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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못할 줄 알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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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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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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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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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 혀를 자르겠습니다. 그, 그거면 종자로 삼아주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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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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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하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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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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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데미안은 언제부터 챙기고 있던 건지 제 품 안에서 가위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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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날이 바싹 선 가위였고, 그것으로 곧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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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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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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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작정 자르면 출혈로 죽는 수가 있다. 누굴 살인마로 만들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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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헥! 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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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걷어차인 데미안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가까스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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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한은 미안한 기색 없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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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가문에서 이런 당연한 것도 안 배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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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걸 누가 가르쳐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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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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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는 피가 고여 있었는데, 혀가 조금 잘린 상태여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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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데미안에게 이한은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저급 포션 하나를 던져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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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마셔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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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병을 잡은 데미안이었고, 이한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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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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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급 포션인지라 혀가 단번에 낫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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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응급처치는 될 터였고, 투기법을 익힌 녀석이니 일주일만 놔둬도 알아서 회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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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놈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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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심 자극하려고 그랬으면 백작이랑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네 몸이랑 머리부터 분리시켰을 거다. 날 다시 조롱하려고 그랬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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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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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가 진심으로 혀를 자르려고 했기에 구해줬다는 뜻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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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는 왜 가지고 다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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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께서 어떤 식으로든 저에게 대가를 요구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손가락이나 귀 중 하나는 각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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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 하고 싶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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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에 복귀할 수만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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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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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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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운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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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만 해도 그냥 입만 놀릴 줄 아는 양아치인 줄 알았는데, 제법 배짱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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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타입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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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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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가 마음에 든다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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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싫어진 인간을 긍정적으로 다시 보게 되는 건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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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결국 이놈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생각이 없고, 그저 귀족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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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전히 좋게 볼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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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경멸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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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어느 아무것도 없는 시골만 해도, 별것도 아닌 촌장 자리를 얻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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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촌장 자리를 빼앗기자 목을 매는 노인도 있는 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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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많고 부족할 거 없는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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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빼앗기는 게 무엇보다 괴로웠다는 뜻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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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권력이란 건 무서운 것이고, 동시에 자신 같은 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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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가선 안 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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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물끄러미 놈을 내려다보았고, 데미안의 동공은 쉼 없이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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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긴장이 풀리지 않은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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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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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도 좋다. 종자든 보필이든 안 해도 좋으니 용서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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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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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다. 내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난 백작을 찾아갔을 거다. 널 절대 용서해주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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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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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의 안색이 유독 창백해진 걸 보니 마음이 동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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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유혹을 억누른 게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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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싶은 생각이 가까스로 놈을 살린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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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데미안에게 우스움을 느끼면서도 이한은 입 꼬리를 올리지 않았고, 대신 손가락 세 개를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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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3년만 나를 보필해라. 아카데미 안이든 밖이든 내가 필요할 때가 있으면 부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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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종기사로 받아들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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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자를 받을 처지는 아니라서. 대신 ‘조교’로 받지. 그 정도면 만족하겠지? 어차피 너도 내 종자가 된다는 건 마음에 안 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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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하진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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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건 마음에 드네. -따라와라, 조교. 오늘부터 당장 수업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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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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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 아니라 교관님이라고 불러, 난 널 3년 동안 이름이 아니라 조교로만 부를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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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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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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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교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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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잘 알아들어서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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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뒤돌아섰고, 기어이 생명줄을 잡는 데 성공한 데미안은 울상과 함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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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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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입학식 때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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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나를 흠씬 두들겨 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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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폴렛, 아니 이제 이한의 조교가 된 남자의 눈가는 갈수록 촉촉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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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앞날이 캄캄한 것 같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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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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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명 인원이 넉넉하게 마실 물과 수건을 챙겨 와라. 그밖에 눈치껏 필요한 물품도 챙겨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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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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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대고 아카데미에서 지원받던가. 아니면 네 돈으로 해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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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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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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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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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가 많다, 조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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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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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결국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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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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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을 보고 잠시 당황한 생도들이 있었으나, 관심은 금세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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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 중 반은 대충 어떻게 상황이 굴러가는지를 판별했고, 또 반은 그냥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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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일만 해도 바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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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도 이기적인 생도들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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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좋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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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슬쩍 생도들의 면면을 확인한 이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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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말 더럽게 안 들을 관상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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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랬던가, 관상은 과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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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한도 수긍하는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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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들 얼굴 좀 봐라, 군대에서 봤던 폐급의 향기가 풀풀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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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절대 순순히 듣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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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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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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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아도 기사단에서 좌천되고, 입학식에서 사고 친 교관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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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안 드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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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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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본 교관의 소개와 인사에 앞서 생도들에게 제안할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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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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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의 실력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생도들은 지금 이 순간 무기를 뽑아라. 얼마든지 상대해줄 테니, 아, 그리고 참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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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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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본 교관을 이기는 생도가 있다면, 발타르 그레이스의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주도록 하마. 이는 백은사자의 이름을 걸고 공증하는 맹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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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애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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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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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순간 생도 중 반이 망설임 없이 각자의 병장기를 뽑았고, 이한을 향해 기세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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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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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하지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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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이 그를 마음에 안 들어 하듯, 그를 싫어하는 놈들을 자신이라고 마음에 들어 할 리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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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그가 이놈들이랑 시간 진득하게 두며 친해질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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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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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들이 많아서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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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해먹을 마음만이 가득하면 가득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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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안타깝게도 운명을 마감한 대련용 인형을 대신할 ‘인형들’이 참으로 많은 것을 확인하는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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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자신이 만든 누더기 인형보단 더 튼튼해 보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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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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