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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이대로 가셔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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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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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의 곁에 이상한 자가 있는 것이 맞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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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면 자네가 그 아이의 아비인 줄 알겠군. 나보다 더 걱정이 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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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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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는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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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강한 사내지만, 경외하는 공작을 향해 언제든 목숨도 내놓을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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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라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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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그에게 있어 아이린 윈들러는 단순히 천재 마법사가 아니라 ‘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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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온 이후 전하께서 달라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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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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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님을 잃으신 이후 광증에 시달리시던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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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하셨던 과거는 어디로 가고, 마검의 광기에 전염되어 점차 잔혹하게 변하시던 것이 얼마나 가슴 아팠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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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 아무런 죄 없는 이들에게 잔혹함을 드러내지 않고, 범죄자에게만 그러한 경향을 드러내셨으나, 저러한 잔혹함 때문에 공작가에는 피 내음이 사라지는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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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그러던 중 그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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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과 같은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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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마님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포근한 햇살과 같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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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나타난 이후 전하께선 언제 광증을 앓았느냐는 듯 따스한 미소를 짓게 되었고, 과거 총명하던 그들의 주군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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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홍복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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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 자체가 선물이자 은혜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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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라크는 그녀를 위협하는 자가 있다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물리칠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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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더 그녀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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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생각한 것보다 더 괜찮은 자더군. 그 아이를 위협할 리는 없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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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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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불만스러워 보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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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의, 마님의 딸일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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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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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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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야 할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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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녀 아이린 윈들러는 공작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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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크의 ‘친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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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블레이크 공작 본인이 가장 크게 느끼고 있었으며, 공작가의 몇몇 이들도 말은 안 할 뿐이지, 이미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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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드래건 왕실 쪽에서 이를 눈치 챈 것처럼, 갈라하드 또한 이미 알고 있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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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도 이를 공표하지 않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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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러니 자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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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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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건방진 놈 같으니. 이제 보니 ‘그자’보다 네가 더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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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선 너무 철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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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난 ‘전하’지. 하니, 난 냉정해야 하고, 내 친자일지 모르는 아이를 두고도 안아줄 수 없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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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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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크 공작의 발언은 정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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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이 친자일 거란 가능성은 있으나, 그렇다고 하여 이를 마냥 확신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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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닮았으나, 친자일 거란 증거가 어디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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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닮은 사람일 뿐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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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블레이크 공작은 이를 뒷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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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도, ……심적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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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블레이크 공작은 모든 걸 숨겼고, 그저 수양녀로 그녈 받아들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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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증에 시달리며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공작가를 원상태로 돌려놓을 시간도 필요하였으니, 아마 당분간 그녀에 대해 알아볼 시간은 부족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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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그자가 필요하다. 아이시스, 그 아이와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으나, 분명 그자는 내 조카에게 아이린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터. 내 조카답게 참으로 적절한 인선이 아닐 수 없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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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하면서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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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 인재가 기사단에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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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르 경 이후 망가지기 시작한 백은사자였거늘, 왕실에 있어 놀라운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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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는 갈라하드의 행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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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를 한다는 것은 곧, 그자는 아이린의 안전을 책임질 수도 있단 의미지. 그자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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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시스가, 조카가 그의 수양녀를 감시하는 것에는 아무런 불쾌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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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도 그랬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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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오히려 더욱 심하게 손속을 두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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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보면 여전히 ‘무른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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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봤자 저보다 약합니다. 차라리 저를 보내주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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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라크는 여전히 인정하지 못 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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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불만이 가득한 기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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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라크를, 그의 제자를 보며 공작은 피식거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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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놈이, 입만 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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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 쓰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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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쓰러지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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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을 비롯한 기사단원들은 못 말린다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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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 드 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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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하드의 기대주이자, 차세대 오러 유저가 되리라 확신되는 젊은 기사의 팔다리가 얼마나 떨리는지 그들은 보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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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나무처럼 떨리는 것이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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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세운다고 괜찮은 척하지만, 속이 진탕 됐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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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포션이나 마시거라, 한심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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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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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피 흐른다, 멍청한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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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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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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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진 라크였고, 이를 보며 공작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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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놈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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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기사란 것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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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도 그렇고, 이놈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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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어른스럽지 못한 것들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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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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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흉한 ‘그놈들’보단 나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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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크의 눈에 서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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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을 향한 서늘함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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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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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가 쥐새끼를 키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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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있던 현장에서 은밀히 숨었다 착각하는 ‘쥐새끼들’을 향한 서늘함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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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쥐새끼라 불린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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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께선 말을 험하게 하는군. 안 그런가 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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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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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런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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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보면 이상한 거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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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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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발 머리가 잘 어울리는 대공가의 젊은 사자는 초연하게 고개를 주억거렸고, 그의 심복은 ‘또 왜 저러실까?’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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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모시는 분이지만, 한 번씩 이해하기가 힘들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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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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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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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한이 집을 들어갔을 때, 다행스럽게도 두 여자는 밖에 무슨 큰일이 있었다는 낌새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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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을 팬다고 미리 말한 것도 있어,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도 이해한 것도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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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떨어진 거리에 있었으니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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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 덕분에 그가 상처 없이 멀쩡한 까닭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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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다행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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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선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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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집으로 들어온 이한은 두 여인이 하는 행동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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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행동을 들킨 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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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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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당혹스러워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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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아이마냥 화들짝 놀라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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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생도. 뭐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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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게 시녀님이랑 대화하다가 어쩌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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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드레스를 입게 되는 건가? 아니 그보다 우리 집에 드레스가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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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이건 제 거예요! 어때요, 기사님? 아름다우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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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화려하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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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저도 너무 화려해서 잘 안 입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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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걸 저한테 입히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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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아가씨라면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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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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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패션쇼를 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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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한창 심각한 일을 벌이다가 이토록 다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한은 방금 전 결심이 무색하게 마음이 흐트러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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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아이린을 쫓았는데, 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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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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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나이에 맞는 청순함과 싱그러움이 느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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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금발머리칼과 푸른색 눈동자가 어딘지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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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드레스는 지나치게 화려했으나, 아이린 윈들러란 훌륭한 옷걸이는 지나친 드레스조차 충분히 소화해내기에 충분한 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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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것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아름답냐고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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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저런 여동생 있었으면 좋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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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이한은 연애 세포가 서서히 사멸할 나이였고, 한참 어린애한테 매력을 느끼는 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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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팬이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돌을 보고 기특해하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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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그 정도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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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를 모르는 아이린으로선 이한의 시선에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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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오해의 냄새가 짙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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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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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그러지 말고 그거 보여주세요. 열심히 연습하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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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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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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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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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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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일까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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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순간 우물쭈물 거리던 소녀는 드레스의 밑단을 살짝 올리며 무릎을 살짝 굽히고 고개를 까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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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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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 저게 커트시(Curtsey)예요. 귀족들의 인사법 같은 거죠, 어때요, 아름다운 자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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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 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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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보았을 때 어딘지 인형이 삐걱거리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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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직 익숙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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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 귀족의 인사법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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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게 뭐라고 밥도 안 먹고 저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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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귀족들의 문화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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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신 거예요. 익숙해지면 이렇게, 이렇게 자연스러워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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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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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라는 방금 전 아이린이 그랬던 것처럼 슬쩍 발목이 조금 보일 정도로 치마를 잡아 올리며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까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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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그 자세는 무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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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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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했으며, 올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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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깔끔하고도 물 흐르듯 진행되는지 일순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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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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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놀랍게도 그녀를 보며 오늘 쌓인 불쾌감이 단번에 날아가는 듯한 상쾌함마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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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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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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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 예쁘다는 생각은 방금 전 아이린을 향한 감정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감정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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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한은 난생처음으로 높으신 분들의 문화란 게 마냥 헛짓이 아님을 깨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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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안 먹고 연습할 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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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한 말을 본인이 내뱉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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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맹한 줄로만 알았던 시녀 아가씨가 만개한 장미와 비견될 숙녀임을 인식하는 이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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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굴욕적인 패배를 겪은 여주인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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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아, 오늘부터 커트시 연습 좀 많이 하자,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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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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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과 함께 눈물을 삼켰고, 리벤지를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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