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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까지 싸우게 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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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 만나자마자 그냥 이유 없이 그냥 죽자고 싸우게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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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기세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다가 벌어진 사태였고, 또 어찌 보면 사나이의 자존심 때문에 벌어진 사고에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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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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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저 자식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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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놈을 향해 눈을 사납게 부라렸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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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의를 벗은 놈의 얼굴은 어딘지 귀공자가 떠오르는 외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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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 한쪽에 새겨진 흉터가 거친 인생을 살았단 걸 알려주며 어딘지 여성들이 여러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그러며 여성 쪽에서 먼저 다가갈 것 같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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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니 더 마음에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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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으르렁거렸고, 상대는 더 으르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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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아니고 왜 이러나 싶지만, 이미 서로를 싫어하게 됐기에 지지 않으려 눈을 부라리는 건 당연한 원리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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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과 라크는 다시금 서로를 노려보며 투지를 높였고, 언제라도 손을 뻗을 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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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주먹다짐 정도가 아니라 날붙이를 들고 본격적으로 갈 다짐을 다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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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대체 얼마나 말해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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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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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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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이래서 기사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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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권력자의 일갈은 그들의 투지를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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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크 공작 전하를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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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인사를 받아보는군. 백은사자의 고개가 이토록 뻣뻣해졌을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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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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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하지, 네놈만 뻣뻣한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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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요? 고개 유연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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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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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민 놈! 감히, 전하에게 무슨 말버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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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말했구먼,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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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오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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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싸움이 벌어질 분위기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흑의인들이 먼저 라크를 붙잡으며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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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쌀달작 못 하는 라크를 향해 이한은 피식 비웃었고, 라크는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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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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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은 미간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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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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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내가 거울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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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비추는 용도가 아닌, 멀리 떨어진 타인의 얼굴을 비춰주는 신비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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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들 중 극히 소수만이 만들 수 있다는, 기적적인 확률로 탄생하다는 신비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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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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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저것은 아티팩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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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만 따지면 성 하나와 맞먹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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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한 아티팩트를 소유 가능한 재력과 권력이 있는 자는 왕국에서도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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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이한은 그 얼마 되지 않는 극소수의 재력가이자 권력자를 눈앞에서 마주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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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분명 60대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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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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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어리다고 해도 믿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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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다른 의미로 공포를 느끼며 상대를 보았고, 이러한 공포심을 모르며 상대가 서서히 입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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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대화에 앞서 사죄하지. 그대의 평온함을 방해한 것은 우리가 먼저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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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전하…! 어찌 그런 황송한 말씀을 천민에게 하십니까! 그러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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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해야 할 것은 인정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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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드래건 왕국 권력의 정점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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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뿐인 공작 작위를 가진 게 아닌, 공왕의 칭호를 당당히 선언해도 부족하지 않을 위세를 가진 당대 갈라하드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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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가 기꺼이 천민 출신 기사에게 ‘미안함’을 보이는 건 안 될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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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이전에, 권위와 신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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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의 고귀함은 언제나 고고하고도 절대적이어야 하는 법이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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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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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이 어찌 흠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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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크 공작은 이 정도 발언은 별것도 아니란 듯 손을 내저었고, 오히려 그들을 나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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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한 짓 좀 그만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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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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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어찌 이리도 관대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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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흐으윽! 역시 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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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요, 권위란 것은 전하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세워지는 것이지요, 위대하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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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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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하게, 아니 무슨 신흥종교를 숭배하는 집단 같은 그들이었고. 공작의 한숨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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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심이 과한 것도 그다지 좋을 일은 아니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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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보며 이한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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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그 살인귀 정신병자]라고? …아닌데, 되게 정상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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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말투에서 대놓고 사람을 깔보는 어투가 묻어나긴 하지만. 그건 명문 귀족들의 패시브 같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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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거슬려 할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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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저토록 ‘상식적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딘지 위화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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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뭐 광증 도진 환자가 아니라, 그냥 무난한 귀족 정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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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의 감각에는 저자가 정녕 그 블레이크 공작이 맞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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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할 거 없다. 본인은 그대가 아는 ‘그’ 블레이크 공작이 맞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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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는 아무런 발언도 안 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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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끔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내뱉었지만, 평생 정치만 한 인간의 눈을 어찌 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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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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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한 눈빛을 숨길 수는 없는 법. 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터이니, 아마 알 테지. 내가 광증을 앓는 정신-병자(病者)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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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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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대놓고 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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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지금에서 완전히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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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크 공작은 정신병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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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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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어 저자는 생각보다 상식적인 [공작 전하]에 불과했고, 어딘지 대인배의 면모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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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런 상황에서 이루어진 만남만 아니었다면 이한은 보다 상대를 존중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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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로 제법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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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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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에서 전형적으로 나오는 클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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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소리 듣던 공작 or 대공과 황제 등은 여주만 찾았다 하면 급 정상인이 된다,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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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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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일순 그런 생각을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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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불경한 생각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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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그냥 역시 소문을 믿을 게 못 된다는 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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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대놓고 말하는 그대를 보자니 공작가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는 생각이 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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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대하게 봐주십시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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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또 간신배 같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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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푹 숙이는 이한이었고, 블레이크 공작 또한 더는 화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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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화낼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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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저 양반 입장에서 자신의 목숨 따위 초개와 같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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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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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려만 보는 인간을 상대하는 건 의외로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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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은 더럽히지 않으려는 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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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관심만 줄어들면 얼마든지 시야에서 벗어나는 건 어렵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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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난 그대를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 백은사자의 잠룡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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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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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중한 수양녀를 가르치는 이들 중 좌천된 기사가 있다기에 조사해보았지. 처음엔 그대에 관한 정보가 너무 적었으나, 왕실에 심어놓은 이들을 통해 대충 알게 되었지. 그대가 어떤 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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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걸 대놓고 말해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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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간자(間者)를 심어놨다는 걸 이토록 쉽게 밝혀도 되는 사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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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처구니없어 하건 말건 블레이크 공작은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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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말할 사안이 심어놓은 간자보다 더욱 중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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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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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튼과의 전쟁 중 유난히 험악했고, 팬드래건이 결정적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백일(百日) 공방전’에서 병사들 전원의 목숨이 위태로웠던 상황이 있었다지? 한데 그러한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무려 1,257명이 넘는 병사를 살린 이름 없는 병사가 있었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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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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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아이시스 그 아이를 죽이기 위해 브리튼의 암살부대가 움직였을 때 그 아이를 지켜준 병사가 있었다고 하던데, 무수한 병사들을 살린 영웅과 그 아이를 구해준 은인이 동일인물이란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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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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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가 그 병사는 ‘그’ 발타르 경의 눈에 들어 수련기사도 거치지 않고 바로 정식기사가 되었다더군. 게다가 제자가 없기로 유명한 발타르 경에게 유일하게 지도를 받는다는 얘기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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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 양반한테 지도를 받았습니까! 맨날 두들겨 맞기 바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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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선 도저히 발끈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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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指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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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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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양반한테 배운 거라곤 더 아프게 맞는 법이라든지, 맷집을 어떻게 늘리는지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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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자기를 억지로 기사단에 박아놓은 원한을 잊지 않고 이를 갈았으나, 공작의 반응은 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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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왜 그리 과민반응 하지? 난 ‘어느 이름 모를 병사’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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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은 그만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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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직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남았다. 거기다 이름 모를 병사는 기사가 된 이후 ‘거물급 노예상단’ 15개와 악명 높은 ‘위법(違法) 마법사’ 29명을 없애버렸다고 하지. 왕실의 병력이 움직여도 가능할지 모를 일들을 홀로 해내다니, 참으로 대단한 자가 아닐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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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그 이름 모를 병사가 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헛소문일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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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문이 아니다. 노예상단에 구원 받은 이들을 찾아내고, 위법 마법사에게 실험체로 고문 받던 이들을 통해 알아낸 정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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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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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돈, 그리고 유능한 인재들이 있다면 정보의 사실여부 정도는 얼마든지 확인 가능한 것이지, 기억해라, ─저가 영웅임을 숨기고 사는 기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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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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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손바닥 위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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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리에서 문득 떠오르는 자신의 처지였고, 이한은 기어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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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권력자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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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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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은, 갈라하드의 병력 전원은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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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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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더 대화할 거리가 있었음이 분명했지만, 블레이크 공작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곤 그대로 유유히 병력을 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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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와 대화한 것만으로도 대충 가늠이 끝났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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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궁금한 건 다 풀렸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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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직도 궁금한 것이 넘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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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 양반에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란 의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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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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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더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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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압도적인 강자가 돌아간 것에 대해 기뻐해야 할 상황이 분명한데 전혀 기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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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어 누군가의 손에 생명줄이 왔다 갔다 했다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게 불쾌하면 불쾌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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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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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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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하네, 더럽게 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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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보다 나아졌다 여겼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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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휘둘리는 삶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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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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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몸을 휘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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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티를 내지 않았지만, 그의 몸도 정상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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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게 아프고, 추잡하도록 낫지 않는 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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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끼 주먹 한 번 더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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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에겐 최고의 찬사요, 당한 이로선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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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픈 것보다 더욱 그를 아릿하게 만드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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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주고 약주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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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제 손에 쥐어진 약병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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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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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연금술사들이 흔히 만드는 저급 포션이 아니라 트롤의 생혈로 만들어진 최상위 포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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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순도 50%짜리라고 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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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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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였다면 기분 좋게 받았을 테지만. 이한은 도저히 미간이 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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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농락당하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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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낱낱이 파악한 이가 있다는 사실이 불쾌할 따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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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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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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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불쾌감을 언제까지고 안고 갈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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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포션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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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며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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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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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놈이 이기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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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놈이, ‘행복’한 놈이 이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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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다시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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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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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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