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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러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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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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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추기경이라니…! 그분과 대화하고 싶은 신도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분과 식사권을 가질 수만 있다면 돈을 쏟아부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종교에는 관심도 없는 녀석이 그런 귀한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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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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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의 소식을 전하러 방문한 제이크가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얘기를 해주니, 갑작스럽게 격한 반응이 나왔고, 이한은 마냥 눈을 끔뻑거릴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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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영감이 대단하다는 건 이미 듣긴 했지만, 그렇다 한들 그 권위가 얼마나 높은지는 몰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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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한으로선 그가 과한 호들갑을 떤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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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추기경이라고 불러? 물러난 지 오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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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은퇴 직전인 양반인데 이토록 난리를 부릴 일인가 하는 순수한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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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신도들이 들으면 뒤집어질 발언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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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제이크로선 이 발언이 미치고 환장할 발언인지 미간을 꾹꾹 누르길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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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거절해서 추기경직에 물러난 것뿐이지, 여전히 그분의 잠재적 지위는 추기경 이상이야. 원래 교왕이 되도 이상하지 않을 분이라고, 그리고 그분이 마음만 먹고 교왕이 되고자 한다면 신전의 사제들 중 4할 이상이 그분을 지지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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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양반이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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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사람이면서 그분을 모른다는 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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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의 황당하다는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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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 나라의 위인을 모른다는 발언을 들은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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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 같은 신전 덕후인 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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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는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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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놈을 말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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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욕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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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은 아니니까 빨리 땅이나 파. 날 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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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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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당 주변에 밭을 만드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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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잡초를 모조리 뽑고, 돌멩이와 자갈을 다 없애고, 흙을 뒤집으며 비료 등을 섞은 후 물을 주며 밭이 밭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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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며칠은 걸리는 과정이었지만, 이한은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홀로 80평이 좀 넘는 땅을 개간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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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드디어 끝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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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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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자족인 셈이지. 저긴 무 심고, 저기는 감자랑 고구마, 양파랑 땅콩 심고, 저긴 상추랑 배추 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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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이네. 응? 그럼 저긴 뭘 심으려고 저렇게 많이 비워 놓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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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심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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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혹시 서부에서 최근 들여 온 그 맵고 특이한 식물을 말하는 거야? 고문할 때나 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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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매운 건 맞는데, 고문은 또 무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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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듣는 소리, 그냥 동네 씨를 팔기에 가져온 것뿐인데 이건 또 무슨 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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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미 오해는 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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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놈, 누굴 고문하려고 그런 걸 키우려고 그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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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으려고 키우는 거야, 이 중세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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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억울한 누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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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좀 매운 것 가지고 호들갑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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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이 캡사이신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나라의 사람들을 봐야 저런 말을 안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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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매운 걸 먹으면 그대로 죽는 줄 아는 중세 기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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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먹는다고? …고통 내성이라도 키우려고 그러는 거야? 흠, 확실히 괜찮은 수련법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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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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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이상한 착각을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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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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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차라리 이렇게 오해를 당하는 편이 낫겠다며 이한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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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드는 제 입만 아프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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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동안 두 사람은 밭을 개간하고, 작물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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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과 명예로운 일 외엔 여타의 직업에 귀천이 있다 여기는 기사가 농부의 일을 하다니, 이토록 진귀한 광경도 또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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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몇몇 기사는 이런 광경을 보고 실신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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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두 기사 중 한 명은 천민 출신이요, 또 한 명은 가난한 몰락 귀족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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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보니 딱히 두 사람은 이런 일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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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묵묵히 열심히 흙을 파며 하루를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는 행위에 기분이 상쾌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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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일이 끝나고 슬슬 샌드위치를 새참으로 가지고 오는 조교가 다가올 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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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법을 상대하는 건 까다로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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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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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심문소 소속 심문관들은 전부 [성법]을 사용할 줄 안다고 보면 돼. 너는 신전과 연이 없으니 잘 모를 테지만, 성법은 투기법과 완전히 다른 힘이야. 광명의 빛께서 내려주신 신성력을 통해 [신비]를 일으키는 거니까. 마치 마법과 투기법을 섞어 놓은 것 같지. 하지만 이러한 강력함이 있는 만큼 성법에 익숙해지는 건 엄청나게 까다로운 과정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그런 까다로운 과정을 모두 이겨내고, 기어이 성법을 실전 단계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는 인간 병기들이 다름 아닌 이단 심문관인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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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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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일이면서 왜 이렇게 태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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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너는 꼭 내가 싸울 것처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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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처럼이 아니라, 넌 반드시 싸울 테니까, 그러니까 주의하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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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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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으로선 억울한 오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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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같은 평화주의자가 어디 있다고 저런 음해를 다 한단 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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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양심이 없으면 모르겠는데, 전적이 상당해서 뭐라고 반박은 못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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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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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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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순간 기분이 좀 더럽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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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최근 광신도 무리와 엮이면서 불쾌감이 절정으로 달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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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뜬금 이단심문소와도 엮이게 되니 이한은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쌓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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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억울한 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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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그놈들이 날 감시하는 이유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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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유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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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라파엘 영감은 인자하여 그를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고, 그저 대화만 하고 가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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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신을 해할 생각도 보이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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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그냥 놔두었으나, 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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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본 녀석 같은 놈이 다시 나오면 그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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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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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해, 신전과 척을 지면 사는 게 힘들어져. 특히 왕국에서 신전과 척을 진다는 건 팬드래건에서 살 수 없다는 뜻이니까. 여러모로 주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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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망명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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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는 뜻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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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개를 저었고, 이한은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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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러한 생각이 불필요했음을 알려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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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짹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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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돌아간 이후 그 아이가 실례를 범했다고 들었습니다. 형제님에게 사과를 건네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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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하는 건 좋은데 그걸 꼭 해도 안 뜬 꼭두새벽부터 와서 말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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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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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들이 한참 시끄러울 새벽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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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의 방문이었고, 이한은 까치집이 생긴 머리를 헤집으며 노신부에게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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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이 시간에 오는 건 좀 아니지 않으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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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흘간 기도회가 예정되어 있는지라 지금밖에 시간이 없겠더군요. 형제님을 만나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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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성실히도 사십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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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소양일 뿐입니다. 아, 혹시라도 기도회에 참석하고 싶으시다면 언제든 오시지요. 저희 신전은 새로운 형제님을 언제든 환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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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히, 진심으로 사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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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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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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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더 자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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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침부터 열성적인 신앙 전파에 열을 내는 노신부를 빠르게 돌려보내려는 이한이었고, 라파엘은 여전히 웃는 낯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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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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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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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돌연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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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도회로 인해 잠시 자리를 비우는 동안 그 아이를 비롯해 다른 형제들이 형제님을 귀찮게 할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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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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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한 예언을 내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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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하지만 조금 과한 형제들인지라 귀찮을 우려가 걱정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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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당신이 좀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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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싶으나 다 늙은 노인의 말 따윈 흘려듣는 이들도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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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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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전능하신 광명의 빛을 제외하고 신전에 어찌 계급이란 게 있겠습니까? 다들 같은 위치에 있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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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린다는 말을 되게 길게도 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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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죄송합니다. 그러니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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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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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 형제들이 너무 귀찮게 하신다면 형제님께서 타이르셔도 괜찮습니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괜찮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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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마음에 드는 허락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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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이 건네주는 최상급 성수와 의미심장한 발언에 일순 눈웃음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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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영감은 참된 어른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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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기쁜 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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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식적 신전 최고의 어른에게서 혼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진 것이었고, 이한은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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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며 새삼스럽게 느끼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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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감님, 참 호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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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인 어른이란 건 참 좋은 것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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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형제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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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은 자신을 데려다 주겠다는 호의를 끝끝내 거절하며 흙길을 제 스스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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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걷는 것조차 힘겹기 그지없었으나, 그는 아직 광명의 부름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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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때까지 제힘으로 걸음을 옮겨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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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어제만 해도 없던 것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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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사귄 형제님의 배려는 유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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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닦인 길은 걷기가 무척이나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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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걸릴 돌 따위도 없었고, 걷는 곳곳마다 우거진 나무의 그늘 밑으로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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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힘들면 쉬고 가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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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은 그 기사가 생각보다 더욱 배려심이 있는 사람임을 깨달으며 한껏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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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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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말씀대로, 훌륭한 자극제 같은 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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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에게 새로운 형제님을 소개시켜준 어느 선배 사제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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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그 못지않은 신실한 분이셨으나, 이제는 은퇴하신 선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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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주책인 분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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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법을 통해 젊어지신 이후로 [집사]란 새로운 직업을 얻은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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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빈말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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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형제님들도 조금 매를 맞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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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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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엎드려, 이 싸가지 없는 어린놈의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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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그가 선배에게 그토록 폭행, 아니 야단맞으며 잘못된 신앙심을 고쳤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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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지금 생각하면 그리운 추억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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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다른 형제들에게도 훗날 그리운 추억이 되길 원하며 라파엘은 열심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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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노래를 흥얼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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