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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타, 궁금한 거 있다. 답변 좀 해줘라, 아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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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질문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음식은 다 드시고 말씀하시죠. 그리고 식당에서 크게 떠들면 안 됩니다, 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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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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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루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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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는 마시는 게 아니라, 씹어서 먹어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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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안심 스테이크 다섯 덩이를 쿤타는 스프를 먹듯 마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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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부드럽게 익혀졌어도 저렇게 먹으면 탈이 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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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에겐 별다른 문제가 아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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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신비종족 바바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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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쾌한 스테이크 마시기를 성공하며 그는 환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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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맛있다. 물 많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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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아니라 육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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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어, 무척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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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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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는 쿤타가 공용어가 어눌해서 약간 모자라 보이지, 실상은 전혀 모자란 인간이 아님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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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그는 누구보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배움이 빠르면 빨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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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바바리안을 보고 야만전사라고 하지만, 내가 봤을 땐 그건 틀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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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안을 폄훼하려 지어낸 질 나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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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자연과 어우러지며 살기 위해 쓸데없는 정보를 다 배제한 느낌이 들면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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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쿤타를 겪지 않았다면 언제까지고 편견 속에 갇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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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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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안은 용맹한 전사이자, 타고난 책략가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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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자상함과 성실함도 갖춘 존경할 만한 이들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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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타 말고 다른 바바리안을 만나진 못했으나, 쿤타가 가문에서 하숙한 지난날 동안 하는 말만 들어도 바바리안이 얼마나 대단한 종족인지 알 수 있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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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같이 기사가 됐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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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든든한 동료도 드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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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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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드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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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부족하다. 그래도 참는다. 쿤타 소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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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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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혼자서 거대한 스테이크 열 덩어리를 먹어 치운 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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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7kg을 먹어 치운 것인데도 소식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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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동료긴 한데, 같이 다니다 식량을 다 거덜 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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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질문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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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질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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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신전은, 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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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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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나오는 물음에 아르노는 잠시 눈을 끔뻑거렸으나, 이어지는 그의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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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쿤타 부족에서 가장 유명한, 지혜 많은 노인이 그랬다. 유학 가면 ‘신전’을,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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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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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는 왜 궁금증을 표했는지 납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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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신비종족 등이 가장 주의해야 할 세력이긴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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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가 본 신전 사람들 다 착하고 좋았다. 회복실 사제 누나 예쁘고 착하다. 색시로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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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신전의 사제들은 50대까지 신앙생활 후에야 혼인이 허락되는 것으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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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실연인가? 쿤타, 마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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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50대가 넘은 순간 10대로 회춘한다고 하더군요. 마치 그동안 고생한 것을 신이 보답해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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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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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포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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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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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는 친우의 어처구니없는 행각에 잠시 할 말을 잃었으나,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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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은 기본적으로 선한 세력이 맞습니다. 아무렴, 왕국에 모든 병자들을 무료를 치유해 줄 뿐만 아니라 열성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조직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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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주의, 해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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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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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아르노는 주의를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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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 가의 사람밖에 없는 시설이긴 하지만, 신전의 눈은 어디에나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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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를 기울여야 했고, 그는 주변에 인기척이 없는 것을 꼼꼼히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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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악질적이기로 유명한 그 세력의 이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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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에는 ‘이단심문소(異端審問所)’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마 쿤타가 말한 지혜 많은 노인이 주의하란 것도 신전 자체가 아닌 그들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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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사람조차 그들과 척을 지면 간담이 서늘한 곳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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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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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왜 위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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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심문소 소속 심문관 중엔 신비종족 등을 ‘혐오’하고 모조리 다 격멸해야 한다 주장하는 자들이 제법 많아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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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타, 갑자기 입맛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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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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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스테이크 말고도 디저트로 나온 치즈 케이크마저 한 판을 먹어 치운 사람이 할 발언은 아니었지만, 아르노는 그의 심경을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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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불쾌한 얘기임은 맞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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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쿤타는 정식으로 학술원에 유학을 온 생도이고, 이단심문소 또한 과거처럼 무차별적으로 미친 짓을 저지르진 않습니다. ……다만, 조심은 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 그러니 필히 왕도를 돌아다닐 땐 혼자 다니지 않는 걸 추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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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 말 들을수록, 쿤타 조심해란 건지, 안심해도 된다는 건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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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능하면 신전과 엮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이해하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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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조언이었고, 쿤타는 여전히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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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실수로라도 엮이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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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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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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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한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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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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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말 엮일 일은 잘 없습니다. 요즘엔 심문관들도 그다지 한가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불운을 타고나지 않은 이상 아마 괜찮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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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진 거로 다치는 경우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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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보면 바바리안이 왜 소수 종족인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진작 왕국 하나 세워도 되는 튼튼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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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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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타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아르노는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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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생도의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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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반대로, 누군가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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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님, 오늘도 안녕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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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오기 전까진 안녕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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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농담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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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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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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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재수가 없다 못해 뒤로 넘어지면 불바다가 있을 것만 같은 사내는 그렇게 침음을 흘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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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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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마시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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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잠시 신세를 지고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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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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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도덕심이 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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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난 쓰레기처럼 굴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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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차마 선량한 노인에게 나쁘게 굴 수 없는 자신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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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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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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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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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그러니까 라파엘 신부와의 만남은 정말 생뚱맞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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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처럼 훈련에 열의를 쏟던 중, 지팡이를 든 노신부가 천천히 이한의 집 앞으로 걸어오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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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 코스치곤 험한 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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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으로선 황당할 만도 한 것이, 이한의 집은 험지도 이런 험지일 수가 없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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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자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길도 관리한 적이 전혀 없어 엉망진창이었으며 오는 길에 야생 짐승을 만나 위협을 당할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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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밤만 오면 그토록 어두울 수가 없어 횃불이 있을지라도 앞이 제대로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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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가능하면 안 찾아오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곳이 이한의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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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덕분에 싸게 구매한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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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렇다 보니 이한으로선 걷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노인이 처음 그의 집까지 찾아왔을 때 당혹스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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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려 입은 것만 봐도 성식자인 건 알겠고, 아무런 무력도 없는 마냥 무해한 노인으로만 보이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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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처음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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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길을 잘못 드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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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름 친절하게 성직자를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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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잘못 들었으면 되돌아갈 수 있도록 길 안내나 해 줄 셈이었고, 아니면 원하는 곳까지 업어 줄 마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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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상과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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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 아닙니다, 똑바로 찾아온 게 맞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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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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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파엘이라고 합니다. 광명의 빛에게 삶을 구원받은 종자 한 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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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길드를 통해 알게 된 거지만, 라파엘이란 이름을 가진 저 노신부는 무려 광명의 빛에서도 단 다섯 명밖에 없는 추기경 중 한 명이었으며, 비록 추기경직을 사임했지만, 여전히 그 영향력이 엄청난 노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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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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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추기경께선 올해 116세시며, 당대 교왕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입니다. 성법으로 회춘도 하지 않으며 오로지 광명의 빛의 말씀만을 따르는 신실함과 자기희생적인 모습 때문에 ‘성인(聖人)’ 후보까지 오르셨지만, 이 또한 자신에겐 과분하다면 사임하셨고, 이런 모범적인 모습 때문인지 신전의 사제들 중 따르는 이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합니다. 한데 또 충격적이게도 현재는 이단심문소를 직접 관리하는 총책임자 역할에 있으신데, 왜 그런 역할을 자처해서 맡았는지는 신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합니다. 뭐, 어쨌든 대단한 분인 건 분명하고, 혹시라도 다치게 하면 신전에서 어떻게 나올지 감히 예상이 안 갑니다.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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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왕국 길드조합장 사이먼에게 받은 편지의 내용 중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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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한으로선 환장할 사실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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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대단한 양반이 이 험한 길을 홀로 걸어왔고, 왜 굳이 자신을 만나러 왔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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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처음엔 경계하며 어떻게 할까 싶었으나 라파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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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얼굴이나 보고 싶었습니다. 다음에 또 오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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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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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에는 진짜 그냥 얼굴만 보고 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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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후에도 라파엘은 계속 그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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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강한 날에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도, 비가 내리는 날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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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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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교야, 삽 들고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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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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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 정비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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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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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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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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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정비되지 않은 엉망진창인 길부터 정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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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 한 자루만 가지고 인부 스무 명은 달라붙어야 정비할 수 있을 길을 쓸모없는 조교 하나를 데리고 무려 반나절 만에 뚝딱 정상적인 길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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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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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 오는 길이 정말 아늑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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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장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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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으로선 이만한 강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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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적의를 내비치는 인간이 편하지, 적의 한 점 안 보이며 그저 찾아와 인사를 하고 가는 라파엘에게 뭐라고 할 명분이 없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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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또 그가 마냥 그를 훔쳐보고 가는 이상한 노인은 아닌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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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오는 건 실례인 것 같아 부족하지만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혹시 우유를 드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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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짠 염소 우유나 버터 등을 선물로 가지고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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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개념도 있는 신부임을 증명하는 행위였고, 이렇다 보니 차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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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괴롭히려고 계속 찾아오는 게 아니라면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말이나 좀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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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 그저 형제님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왕도를 구한 영웅의 풍모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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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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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보니 기대 이상이군요. 젊을 적 만난 영웅들의 기백을 뛰어넘는 것이, 소문 이상입니다. …혹시 광명의 빛을 따르고 싶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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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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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턴 스카우트도 같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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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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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적이야, 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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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인생 최대의 천적을 만나게 된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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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가 없는 상냥한 시선만을 던지며, 묘하게 그를 좋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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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집에 올 때마다 빈손으로 오지 않는 개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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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으로선 지금껏 왕국에서 본 그 어떤 노인들보다 ‘정상적인 어른’인지라 대하기가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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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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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양반이 어떻게 이단 심문 같은 과격한 일을 하는가부터 시작하여, 왜 자신을 찾아와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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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둥이 말로는 내가 신전에게 위험 대상으로 찍혔다고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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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말대로라면 그는 너무 설친 나머지 신전에서도 요주의 인물로 찍힌 상태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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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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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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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 가는 게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명확한 것이 생각나는 것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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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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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라 이한은 골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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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속 시원하게 뭔가를 말해주면 좋겠는데, 이토록 자꾸만 간만 보는 느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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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현재에 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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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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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맛이 좋군요. 이건 뭐라고 하는 차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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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산에서 나는 허브를 말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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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자연의 은혜를 마신다는 뜻이군요. 귀한 대접을 받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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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어디에나 있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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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님께서 이 허브를 따서 말리고 차로 우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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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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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성실함, 그야말로 신실한 교인의 자질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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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 그쪽으로 연결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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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열성적인 스카우트도 새삼스럽게 받아들이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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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 백 살은 거뜬히 넘은 양반이 아직 정정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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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30년은 더 사시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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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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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한은 차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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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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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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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형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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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내일은 오지 마, 제발.”
|
||
|
||
“허허, 모처럼 형제님과 가까워지고 있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다음에 또 뵙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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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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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가는 노신부의 발걸음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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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팡이도 허약해 보이고, 다리는 지팡이보다 더 허약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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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교야.”
|
||
|
||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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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업어드리고 와. 그리고 적당한 마차 하나 빌려서 집까지 모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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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제, 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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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럼 내가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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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니요, 제가 해야죠.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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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마디가 많다, 조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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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미안은 투덜거리며 라파엘에게 다가갔고, 라파엘은 거절을 표시하려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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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난 이 한여름 더위에 초상 치르고 싶지 않고, 괜한 죄책감 가지고 싶지 않거든? 그러니까 순순히 호의를 받아들여. 당신에게 선택지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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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적 호의라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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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지, 필요한 호의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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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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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렇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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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긴 것과 달리 형제님께선 상냥하신 분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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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긴 게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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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 형제님을 신전으로 데리고 오고 싶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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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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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의는 받아들이지요. 감사합니다, 부디 광명의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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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지? 나 지금 나무랑 대화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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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라파엘은 데미안에게 업혔고, 데미안은 조심스럽게 그를 업은 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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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지는 노신부의 등이었고, 이한은 이를 보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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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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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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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감님이 생각나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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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은 그를 키워주었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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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시긴 했지만, 그분이 있었기에 그는 10대 시절에 삐뚤어지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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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다고 하여 라파엘과 그의 할아버지가 닮았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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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도 말투도, 생김새조차 모두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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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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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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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품(人品). 고집스럽지 않고 세상을 유연하게 대하며 올곧게 살아가는 저 인품만큼은 참 닮았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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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만나지 않았지만, 라파엘이란 양반이 그를 우롱하려고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그의 감각이 알려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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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락하는 거였으면 진작 하늘나라로 보내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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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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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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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이 나쁘지 않은 인간에게 모나게 굴 정도로 그는 못돼먹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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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어둑해지는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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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려앉은 그림자들과 멀어지는 두 개의 인영을 바라보다 어느 순간 그림자조차 완전히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음을 확인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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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가까이 왔냐? 이 음흉한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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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입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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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는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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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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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나와도 상관은 없는데, 다음에 올 때는 목숨 걸어라. 불쾌해지기 직전 단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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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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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 마치 커튼콜을 하듯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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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장막, 신비롭기까지 한 광경이었고 눈을 의심할 법한 상황 속에서 ‘그’는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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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했소. 감히 기사를 시험한 것 같은 행위가 됐구려. 그저 추기경을 호위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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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봐준 거야. 아니었으면 진작 죽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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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 진작 알고 있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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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으로 일관한 채 묵묵히 고개를 주억거렸고, 이한은 뒤돌아서며 그를 마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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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것부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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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단 심문 잘 할 것처럼 생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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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는 성경을, 또 한 손에는 종을 든 신부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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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가의 음영이 짙고, 머리칼에는 새치가 가득한 것이 인상적인 칙칙한 낡은 신부복을 입은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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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나이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동태같이 죽은 눈과 낡은 신부복보다 더욱 어두컴컴한 분위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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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노라면 사람을 위축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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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한에게 있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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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안 꺼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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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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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리를 깰까 말까 고민하게 만드는 놈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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