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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이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숲길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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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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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그냥 행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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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수천 미터 거리를 뛰듯이 주파해야 했으며, 1초라도 뒤처져선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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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터져도 이렇게 무식한 행군은 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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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기도 전에 체력을 다 소비할 판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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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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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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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좀 더 빨리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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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지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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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모두 충격에 대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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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이나 불평 따위를 내뱉지 않고 안간힘을 쓰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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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란, 자연이 내뱉는 분노에 대적할 인간은 감히 없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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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저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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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웜들이 땅을 헤집어대는 탓에 약했던 지반은 지진으로 인해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일쑤였고, 주변 수백 미터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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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휘말렸다간 생매장이 아니라 푹 꺼진 절벽으로 떨어지듯, 터진 토마토 같은 몰골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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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결말을 맞이하고 싶지 않은 병사들은 마냥 최선을 다하여 지진이 일어나는 지대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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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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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불과 수십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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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은 기적적으로 지진이 발생하는 지역에서 벗어나는 것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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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생물은 하고자 하면 뭐든 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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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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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더 이상은 못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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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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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거리며 주저앉거나 쓰러지는 이들이 속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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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들이 나서 뭐라고 하며 질서라도 맞춰야 한다고 일갈을 내뱉을 타이밍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간부들 또한 상황은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숨을 헐떡이며 쓰러지는 이들이 속출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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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하며 그렇게 안도하기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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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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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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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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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대륙 최대의 비료생산지이자 백 년을 훌쩍 뛰어넘는 역사를 가진 죄인들의 지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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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드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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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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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으로 일어나는 파괴의 현장을 목도하며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건 살았다는 안도감이 아닌 경외감과 아연함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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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미터 반경의 땅이 모조리 움푹 꺼지며 무너지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직관하는 인간이 얼마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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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마 있을지라도 그날이 대부분 생애 마지막일지도 모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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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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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왕자님, 아, 아니 아렌 경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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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아렌 경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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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하고도 현명한 팬드래건의 백사자여! 당신이야말로 우리들의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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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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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은 그들을 구한 왕족 출신 기사에게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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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재빠른 판단력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살아남은 이들이 많지 않았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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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퍼진다면 모든 백성이 감탄을 마지않을 업적인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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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명성과 명예가 약속된 순간이었고, 아렌이란 남자의 성격상 한없이 만족감을 느끼며 오만해 할 타이밍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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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그만둬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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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수치스럽다며 얼굴을 감쌀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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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공적을 훔친 주제에 뻔뻔스레 제 것인 것처럼 웃는 이들이 있노라면, 반대로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도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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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렌은 명백히 후자 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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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성격은 오만했었지만, 최근 본의 아니게 정신 교육을 강하게 받다 보니 조금은 철이 든 것이었고, 철이 든 금쪽이 왕자는 그렇게 자신을 향한 찬양에 몸서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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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수치스럽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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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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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도 하시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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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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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기사왕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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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좋게 보이면 뭐든 다 좋게 보인다 했던가, 병사들의 콩깍지는 쉽게 떨어져날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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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닥치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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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쑥스러우신가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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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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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도 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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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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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든 금쪽이는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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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찬양 받을 만한데, 왜 저러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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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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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기사, 제이크와 요르드는 아렌이 몸서리치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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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병사 대부분을 구해낸 건 아렌이 맞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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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이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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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이 이토록 순수하게 협조하며 대피 명령을 따르고, 죄수들마저 챙긴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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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아닌 ‘왕족’이 직접 나서 일을 해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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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령 백은사자 소속 기사라 할지언정 저들이 그들의 명령을 쉽게 따라줄 리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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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그적거리는 수준이면 다행이고, 명령 불복종이 난무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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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이는 다름 아닌 고귀한 백은의 용에게 축복을 받은 기사왕의 후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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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상징하는 백은발의 머리칼과 팬드래건의 이름은 불합리한 명령조차 따르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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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는 오늘만큼은 칭송 받아 마땅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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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나이에 철이 들어서 그런가? 자기 객관화를 잘 못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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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평생을 거짓된 칭찬만 듣다가 지금처럼 진심 어린 찬양이 처음인지라 낯설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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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들은 저러한 반응도 나쁘지 않다 싶었고, 자신들의 입으로 칭찬을 건네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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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금쪽이가 철이 들었는데, 괜히 칭찬해줬다가 다시 못난 놈으로 변한다면 기껏 개과천선한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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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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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큼 철이 안 듣는 동물도 없으며, 아무리 개과천선시켜봤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길 마련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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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수시로 몽둥이를 들어 두들겨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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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몽둥이를 들어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라도 빨리 찾아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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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걱정된다고 솔직히 말씀하시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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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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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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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와 요르드는 무너진 땅굴로 빠르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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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지하에서 올라오지 않은 그를 찾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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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하리라 믿고는 있지만 혹시나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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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괴물 같은 녀석이라도 진짜 괴물인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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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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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돌아가신 건 아니겠지? …진짜 싸우다 죽으신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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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보다 먼저 그를 열심히 찾는 선객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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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머리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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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이 있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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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자님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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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에서 그들을 도와준 조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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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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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공. 선배를 찾고 계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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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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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역시 선배는 안 빠져 나온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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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일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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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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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제 입으로 무언가를 말하기 힘든 표정을 지은 데릭이었고, 그들은 무언가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하며 침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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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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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선배님이라도 지하에 깔리셨다면….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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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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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누군가의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임무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가 희생자가 되리라곤 생각지도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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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낯빛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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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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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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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뭐지? 왜 여기서 [감지]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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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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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의미 불명에 말을 내뱉는 데릭이었고, 이에 그들은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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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감지한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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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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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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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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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들썩임을 보인 흙더미를 보며 곧장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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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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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단 파!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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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기사는 빠르게 흙더미를 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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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이 없어 검으로 땅을 파야 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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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기사로서 해선 안 될 짓을 저질렀지만, 동료를 구하는 데 검이 문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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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의 짓도 감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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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만큼은 기사의 동반자인 검은 훌륭한 삽이 되어주었고, 그들은 최선을 다하여 땅을 파고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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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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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은 더욱 빠르게 들썩이기 시작했고, 기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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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화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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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 뻗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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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진짜 어떻게 사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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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팔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는 데릭이었고, 저러한 말에 역성을 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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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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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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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헉어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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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자마자 흙을 한 움큼 크게 뱉어내며 연달아 기침을 토하는 그는 엉망진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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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흙먼지로 뒤덮였고, 상처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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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같았으면 진작 세상을 하직하고도 남았을 상태지만, 생명력이 어찌나 강한지 그는 지상의 신선한 산소를 들이마시며 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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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아아! 주, 죽다 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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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회복하는 기색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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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세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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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 지금 설마 땅 파서 지상까지 올라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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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도 지진인데, 그 엄청난 흙더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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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웜도 아니고, 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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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진짜 샌드 웜도 이만한 질량의 토사에선 못 살아남는 게 상식이란 것인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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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아는 상식은 틀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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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은 살아남은 것도 살아남은 거지만, 기어이 한 명의 거한도 같이 데리고 흙더미에서 탈출을 성공한 그를 보며 마냥 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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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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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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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은 안도감이 번지며 실없는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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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 자체가 유쾌한 것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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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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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 자체가 재밌는 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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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릴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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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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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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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나 어떻게 살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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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여전히 흙을 토해내며 기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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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가 너무 달았고, 햇볕이 너무 소중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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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인간이 느끼는 감동을 모두 만끽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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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러면서도 자신이 생환한 것이 본인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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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살다 마물 새끼가 도움이 다 될 때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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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난도질하고 막시무스가 막타를 날려 죽인 거대 샌드 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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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그 샌드 웜의 사체를 셸터 삼아 가까스로 살아남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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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가 깡패라고, 아니면 흙에서 사는 놈인 덕분인지 샌드 웜의 외피는 토사의 압력을 어느 정도 버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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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후 일어난 과정은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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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지진이 진정된 후 그저 맨손으로 땅을 팠고, 온몸으로 토사 속을 헤엄치듯 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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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두더지나 지렁이처럼 얼마나 흙속을 유영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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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토사에 깔려 죽을지도 모르고, 괜히 빠져나오다 죽을 상황일 수도 있었지만, 이한은 결국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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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인간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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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에게 칭찬을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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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혼자 나왔으면 됐을 것을. 왜 나까지 데리고 나와서 위험을 자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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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정신이 들었네, 이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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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이렇게 달달한 것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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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으면 감사나 해. 놀 같은 소리나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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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생명을 구원해 준 것에 감사를 표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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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절 받기도 아니고, 됐어. 그럴 바엔 감사를 안 하느니만도 못하다, 이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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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억울하군, 정말 감사함을 느끼는 중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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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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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누군가의 목숨을 구해주면 구해줬지, 남에게 도움을 받거나 목숨을 빚지는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지라 인사가 어설픈 것뿐, 그가 고마움을 모를 정도로 막돼먹은 놈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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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억울함을 풀고자 몸이라도 일으키고 싶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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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큼은 당장 절이라도 하고 싶으나, 몸이 움직이질 않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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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을 그따위로 쓰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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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한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몸이 엉망이 될 줄이야. …이게 근육통이란 것인가?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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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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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가 경을 쓴 방식은 무식하다 못해 자살행위와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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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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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부수기]를 쓸 때는 그조차 내심 기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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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본인도 중첩경을 쓸 때 다섯 번 이상 중첩시키지 않건만, 저 인간은 무려 열두 번 이상을 중첩시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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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였다면 진작 몸이 터져나갔을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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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특성-천무지체]를 가진 막시무스이기에 버텨낸 것이긴 했지만, 아마 한동안 정양의 시간이 필요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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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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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까운 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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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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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판을 냈어야 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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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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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는 더할 나위 없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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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통 때문에 승부를 뒤로 미루어야 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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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아닌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결국 내가 패배한 것 같군. 끝내 마지막까지 서 있던 것은 자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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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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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네, 자네가 승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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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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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에는 내가 다시금 도전자가 되어 와야겠군,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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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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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무어라 더 쏘아붙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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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할 거리가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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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눈치도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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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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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경. 부단장님을 구해주신 은혜는 나중에 갚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리가 영 아닌 것 같군요. 부디 무례를 용서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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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어느 여성이 그에게 고갤 숙이며 다급히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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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출신으로 보이는 피부가 새하얀 180의 장신을 자랑하는 여성은 자신보다 훨씬 더 큰 2미터 30의 거한을 짊어지며 빠르게 사라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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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일순간에 발생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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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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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힘도 좋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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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데려가는 것을 말릴 생각도 없었기에 마냥 떨떠름하게 볼을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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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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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인간, 기만질 하고 튀어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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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저 인간이 적선하듯 준 ‘승리’가 여간 불쾌한 게 아니라며 미간을 찌푸리곤 제 허리춤에 있는 검의 손잡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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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이 모두 사라져버린 글라디우스였던 검의 유해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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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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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떻게 승리한 사람 몰골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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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보다 짜증스러운 승리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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