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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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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이 건네고 간 것은 글라디우스의 형태를 취한 명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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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난 건지 모르겠으나, 명장이 두들긴 검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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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손에 움켜쥐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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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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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주고 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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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울림’부터 일어날 리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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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투지와 마음을 읽는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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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명장이란 이가 직접 두들김으로 영성이 깃든 검을 명검이라 칭하며, 이러한 명검은 왕국 보물고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희소하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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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그 보물고에 있을 법한 검이 그의 손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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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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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한은 흥분하지 않고 덤덤한 자세로 검과 친숙해지는 시간을 가지듯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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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웅, 후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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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두를 때마다 검은 빨라지며 점차 그 속도가 급격하게 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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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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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잔상만이 남으며 칼날 대신 희미한 빛살만이 보일 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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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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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변에 퍼진 흙먼지가 자욱하게 물러가며 이한은 검과 친해지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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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구경한 막시무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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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군. 검명을 억제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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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지가 아니라, 지 멋대로 우는 걸 검명이라고 하는 건 꼴사나운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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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무기가 좋다 하여 그것에 끌려가선 안 될 노릇이지!! 북부나 중앙이나 그걸 모르는 천치들이 수두룩한데, 역시 너는 그걸 아는구나, 리한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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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라니까…. 됐고, 나 이제부터 날붙이 쓸 건데 불만이면 빨리 말해. 검 없이 해도 상관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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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그럴 리가. 오히려 날붙이를 들었으니 재밌는 것인데. 무엇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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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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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하게 나 또한 날붙이를 쓰면 되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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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가 오른쪽 팔을 들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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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무언가가 오길 기다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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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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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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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시만 기다리게. 요놈이 길을 좀 헤매고 있나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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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 모르겠는데, 빨리 해. 땅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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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아니 2분만…. 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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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없는 코미디가 끝나고 나서야 이한은 막시무스가 무엇을 기다렸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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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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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월. 혹은 배틀액스로도 잘 알려진 창이 허공을 유영하며 막시무스의 손안에 안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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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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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배틀액스와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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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더 크며 길었고, 창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창으로도 쓸 수 있는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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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영롱한 빛을 발했으며, 그가 가진 명검 못지않은 훌륭한 무구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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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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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토록 격렬한 울림은 또 처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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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북부의 무기는 하늘도 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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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의 한 종류지. 주인과 몸이 이어졌다고 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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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탐나는 기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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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환수 기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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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무척 편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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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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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네, 그 편리한 무기 오늘 부숴질 예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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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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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력난신들이 무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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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맹수에게 총을 들게 한 것이었고, 하필 그 맹수들은 사격의 명수인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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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알다시피 사람보다 영민한 맹수가 총을 드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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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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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이미 이기라고 만든 생물이 아닐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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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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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과 부월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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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란 부월의 무게를 견뎌 내지 못하고 부러져야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그 상식이 무너지고 검은 부월의 무게를 거뜬히 이겨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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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월은 그 무게로 인해 움직임이 느릿해야 하거늘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아니 대나무로 만들어진 봉을 휘두르는 것보다 빠르고 가벼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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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근력과 기예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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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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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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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날붙이가 부딪친다고 생각할 수 없는 떨림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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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부월을 베려고 하고, 부월은 검을 부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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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서로의 목과 가슴, 어깨 등을 교묘하게 찌르거나 쪼개려고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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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고 베고, 부수고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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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심플한 공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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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연 저 공방전에 누가 끼어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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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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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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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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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것들은 어디에나 있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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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웜의 죽음을 직감한 미니 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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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웜들은 부모를 죽인 원수를 향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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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수백, 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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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숨어 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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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숫자를 자랑하는 웜들의 숫자는 대략 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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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웜들이 어미의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들었고, 마더 웜의 복수를 위해 달려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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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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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은 끼어들 타이밍을 잘못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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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싸움이 끝나고 끼어들었어야 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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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화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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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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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들은 죽어, 아니 몰살당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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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기사가 의도하여 죽인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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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두 사람은 웜들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고, 그저 서로를 향해 칼날을 교차할 뿐인데, 마물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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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 자신들의 몸이 난도질당할 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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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그들은 일부러 굳이 웜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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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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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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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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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을 덮치려 했다가 싸움에 여파에 휘말려 몸이 양단되거나 터져나갔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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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화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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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격돌이 격렬해질 때마다 웜들은 더욱 빠르게 죽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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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에서 뿜어지는 검파가 웜들을 휨쓸었고, 검압은 웜들을 짓눌러지며 터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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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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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들 중 유난히 큰 개체가 분노를 토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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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하등한 먹이 따위가 그들의 형제와 어미를 죽인 것에 대한 강렬한 분기를 토해낸 것이었고, 큰 개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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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그작, 와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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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형제들과 죽은 어미의 사체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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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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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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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물은 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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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형제를 먹어서라도 강해지면 그만이고, 강해져서 복수하면 그만이란 종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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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그들은 인류의 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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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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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은 그렇게 급속하게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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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적인 성장이었고, 3미터 남짓에 불과했던 웜은 점차 풍선처럼 부풀어지며 더욱 흉포하게, 더욱 혐오스럽게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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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재앙이자 공포, 샌드 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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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위용에 걸맞은, 아니 도리어 사막에서도 볼 수 없는 100미터를 훌쩍 넘는 샌드 웜은 순간 성장과 함께 어미를 뛰어넘는 힘을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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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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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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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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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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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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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자리를 박차며 순식간에 거대한 샌드 웜의 몸을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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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신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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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처럼 쏘아진 그는 다시금 가속하며 발놀림에 변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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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신탄영의 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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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팔괘보. 전날 귀왕전에서 썼던 이동기술이 이한의 몸을 가속시키며, 샌드 웜의 8개의 눈으로도 움직임을 쫓을 수도 없는 변화무쌍의 신속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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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눈을 어지럽게 할 뿐만 아니라, 거대한 마물을 농락하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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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푸욱, 푸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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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백 미터를 주파하며 일어나는 난도질은 기어이 샌드 웜의 거대한 전신을 난도질했고, 샌드 웜은 급격히 생기를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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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성체가 되며 질기고도 단단한 외피를 가지게 됐음에도 외피는 조금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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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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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알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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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무려 마물의 왕이라 불렸던 천년 묵은 트롤마저 거침없이 난도질했던 인간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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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더욱 ‘우월한 짐승’을 알아보지 못한 샌드 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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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기사의 결투에 끼어들다니, 주제를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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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가 몸을 허공에 띄우며 그대로 샌드 웜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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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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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금은 것은 번쩍이는 번갯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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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서리 거인을 일격에 죽인 막시무스의 일격이 이 순간 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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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락 떨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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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벌처럼 벼락을 담은 일격이 작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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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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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도망이나 갈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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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정도는 지능이 생긴 성체 샌드 웜은 그런 후회와 함께 깜깜한 어둠이 덮쳐오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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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드드드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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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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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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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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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그런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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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는 않았으나 두 기사는 땅굴에 살았던 샌드 웜을 모조리 다 격멸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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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작고 약하다 하지만 1만의 마물이 단 10분 만에 세상에서 지워버린 사태, 아니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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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엔 특대형 마물이란 샌드 웜의 성체도 있었음에도 둘은 큰 감흥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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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겐 지금 마물은 큰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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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189수라…. 거인조차 백수(百手)를 안 넘겼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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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다 세면서 싸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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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자연스럽게 알겠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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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천재란 것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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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 관두게, 이 나이에 천재란 말을 듣는 것도 부끄러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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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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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기사가 날붙이를 부딪친 횟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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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토록 부딪쳤음에도 결판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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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적으로 기사들의 대결이 50수 범위에서 승부가 나는 것을 고려했을 때, 그들의 결투는 상당히 오래 지속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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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들이 대충 싸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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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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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상대를 죽일 각오로 검을 휘둘렀고, 단 한 번의 휘두름에도 대충이란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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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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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과 기술, 의지 이 모든 것이 깃든 일격의 교차임을 그들은 맹세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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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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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과 회복력이 비슷한 상대란 게 이런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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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그들은 지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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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결임에도 불구하고 체력은 떨어지지 않았고, 상처조차 금세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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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은 너무 비슷했고, 힘과 지구력, 내구력 면에서도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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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지세의 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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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타입이라도 다르면 모르겠는데, 서로가 너무 비슷하여 승리를 가르는 것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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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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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격으로 끝을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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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목숨을 가져갈 일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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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승부를 끝맺자는 제의에 막시무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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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난 계속해도 좋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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앓는 소리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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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잃는 게 두려운 게 아닌, 이 승부가 끝나는 게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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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한은 위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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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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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보다 더욱 빠르게 무너지는 지저세계를 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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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더미에 깔려 죽는 엔딩은 싫을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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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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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는 이한의 말에 아쉬움을 있는 힘껏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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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부를 끝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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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계속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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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토록 하고 싶은 미치도록 유혹적인 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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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값지고 전율 어린 시간이 끝날 때가 다가왔음에도 막시무스는 그저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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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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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적한 날이군, 기껏 마음에 드는 기사의 목숨을 가져가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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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죽으리란 생각은 전혀 안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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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누가 죽을 생각으로 싸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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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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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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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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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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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은 검 끝을 세웠고, 막시무스는 부월의 달린 창촉을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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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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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드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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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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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의(殺意)를 머금은 순간부터 이제 돌이킬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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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한 명은 무조건 생애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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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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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검과 창에는 살의를 머금을지라도 그들의 얼굴은 평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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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를 증오하거나 미워하지도 않기에 칼에는 살의를 담을지언정 눈빛만은 그저 고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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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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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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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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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도 안 내고 훔쳐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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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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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 미안하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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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박을 아끼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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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은 보았다.
|
||
|
||
상대가, 막시무스가 자신에게 ‘훔쳐간 것’을.
|
||
|
||
‘저걸 그냥 감각으로 배워가는 놈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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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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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 머슬 아츠라 불리는 이한의 기예를 어느 순간부터 막시무스는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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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격돌을 통해, 처음엔 어설펐던 경은 좀 더 날카로워지고 순식간에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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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가 천재라 부르는 삼인방이나 검은 머리 회귀자조차 저런 건 불가능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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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놈은 그냥 맞아가며, …겪으며 깨우치더라.
|
||
|
||
아마 조금만 더 능숙해지면 더욱 자연스러워지리라.
|
||
|
||
백보신권을 흉내, 아니 제 것으로 만들 때부터 혹시나 싶긴 했는데.
|
||
|
||
‘이게 무협지 악당 시점이려나? ……상당히 기분 더러운 일이구나.’
|
||
|
||
무협지 속 주인공 중 그런 놈이 있다.
|
||
|
||
무공을 보고 곧장 습득하는 놈이.
|
||
|
||
그리고 이에 격분하며 적들이 당황하다가 죽는 장면이 클리셰처럼 나오더니, 다 그럴 이유가 있는 거였다.
|
||
|
||
‘화병으로 죽은 거였어, 그거.’
|
||
|
||
본인이 평생에 걸려 배우고 수련한 기술을 남이 순식간에 이해하고 더 잘 쓰면 자신 같아도 환장할 맛일 거다.
|
||
|
||
그야말로 불합리.
|
||
|
||
이래서 재능이란 건 불합리하고도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거겠지.
|
||
|
||
“어휴, 범부인 게 죄지….”
|
||
|
||
“…….”
|
||
|
||
“뭐야, 왜 그렇게 봐?”
|
||
|
||
“아니, 물론 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네도 상당히 양심이 없다 싶어서 말일세.”
|
||
|
||
“내가?”
|
||
|
||
“그러네, 이런 걸 보면 마치 나만 훔쳐간 것 같지 않은가?”
|
||
|
||
“뭔 소리래.”
|
||
|
||
“뭔 소리긴. 자네가 지금 준비하는 기술, ─그거 ‘내 기술’이지 않나?”
|
||
|
||
“아…….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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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파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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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한의 검에서 번갯불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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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마치 막시무스의 [벼락 떨구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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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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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에 막시무스의 입에서 저런 어이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리라.
|
||
|
||
그도 훔쳤지만, 너 또한 훔쳤지 않냐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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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나 이한은 이를 부정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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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히 자신은 그의 기술을 훔친 게 아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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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막시무스의 기술을 보고 새로운 발상이 떠오른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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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당신의 기술 원리가 이거잖아? 무기의 손잡이 부분에 강한 압력을 줘서 인위적인 마찰을 일으키고, 검명으로 번갯불을 불러일으키는 거.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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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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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럴 줄 알았어. 원리 자체가 직관적이네. 다만 미치도록 강한 악력과 요령이 필요하긴 해서 약간 까다로울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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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여기서 힘과 광포함을 좀 더 집어넣으면 벼락 떨구기는 완전히 재현 가능하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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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흔해빠졌는데, 못 따라하면 그것도 웃긴 거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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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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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대놓고 어떻게 하는지 보여준 거랑, 원리 자체도 모르는데 그걸 훔쳐간 거랑 같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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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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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뻔뻔스럽고도 당당한 발언에 막시무스는 헛웃음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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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호탕함이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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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로 황당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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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흔해빠진 원리를 몰라서 아무도 못 따라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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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의 기사들에게 아무리 가르쳐줘도 흉내 내지 못할뿐더러, 원리를 말해도 ‘놀리지 마라!’거나, ‘나를 농락하는 것이냐!!’며 화를 내기 일쑤였는데, 지금 저자는 쉽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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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욱 황당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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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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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고맙다. 덕분에 가능할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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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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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기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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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건 이제 더 이상 그의 기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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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한에게 딱 맞춰진 옷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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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에겐 없고 이한에게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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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고의 자유로움이며 발상의 유연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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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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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갯불이 넓게 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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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퍼져가는 검의 기운이 어두운 지저세계를 밝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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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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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왕과 싸우며 매화를 깨우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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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에서 기사 베일에게 검사(劍絲)로 베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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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과의 싸움에서 아라한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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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검으로 새로운 기운을 퍼트리는 새로운 발상을 얻는 것으로 그 모든 깨달음을 한데 뭉쳐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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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선보이는 것은 안휘의 패자이자 협의지검으로 유명한 남궁가의 검술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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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오만하게 제왕이니 천뢰니 하는 두루뭉술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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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그가 선택한 검법과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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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애검(無涯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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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궁무애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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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을 머금은 검력(劍力)은 말 그대로 푸른 하늘을 닮았으며, 그 기운이 점차 검 전체를 뒤덮는 차크람(Chakram)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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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크람은, 검원(劍圓)은 점점 빠르게 회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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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적으로, 이한의 기운이 강렬해질수록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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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도 안 되는 이적을 해낸 이한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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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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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 누가 누구보고 천재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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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는 철의 심장을 지녔다는 막시무스였으나, 지금만큼은 말조차 더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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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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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형님이 아닌 타인에게 경악을 넘어 ‘경외감’을 느낀 것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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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그를 볼 때 이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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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크아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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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곧 막시무스의 입에서 우렁찬 광소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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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는 공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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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일격을 받아낸다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몸을 엄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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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로 저건 상상을 뛰어넘는 광경이자 힘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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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막시무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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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행복하다! 난 정말 행복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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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는 공포심마저 집어삼키는 감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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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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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과분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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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저런 자와 싸울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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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자가 제 앞에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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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모든 걸 걸고 싸울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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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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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의 창촉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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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막시무스의 기술에서 힌트를 얻어 새로운 기술을 지금 이 자리에서 창시했다면, 막시무스는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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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란 기술을 훔치며 몸을 더욱 튼튼하게, 온몸의 힘을 전심전력으로 발휘하는 법을 드디어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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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육체와 재능을 가지고, 끝도 없는 투쟁을 통해 대전사의 이름을 거머쥔 사내가 드디어 온몸의 힘을 쥐어짤 수단을 얻어낸 바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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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몸이 힘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될 우려도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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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딴 게 지금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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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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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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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촉이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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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할 만한 막시무스란 남자의 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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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첩경이 연달아 발생하며 힘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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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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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거인을 죽였던 벼락 떨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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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술이 더욱 파괴적으로 변화하여 일종의 뿔처럼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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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붙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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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부수기]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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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역시 이름 짓는 센스는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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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이고 단순해서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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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파천(破天)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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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더 이상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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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마교도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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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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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각자의 기술이 초석이 된 서로의 기술을 조금만 더 관찰하며 탐구하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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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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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날뛴 게 원인인지 앞으로 십 초만 지나도 지저세계는 무너질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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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두 사람은 대화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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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대화가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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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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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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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과 창촉의 부딪침으로 마지막 대화를 나누면 그만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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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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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도 영광도, 찬사도 없을 결투에 왜 목숨까지 거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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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들은 아마 비슷하게 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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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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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딴 건 타인의 소문 따위에 언제든 흩어질 허상에 불과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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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그들에게 필요한 건 ‘지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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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있음을 느끼는 보람차고도 값진 지금이 더욱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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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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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두 남자는 찰나와 같은 현재를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여 살아갈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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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 어떠한 미련도 남기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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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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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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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어떤 순간에도 웃을 수 있는 이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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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흙더미와 바위의 폭포수 속에서 칼날과 창촉은 부딪쳤고, 지저세계에 있을 수 없는 맑게 갠 창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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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蒼天)’은 지저세계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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