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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가벼운 탐색전을 하듯이 날리는 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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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가벼운 주먹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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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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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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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가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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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과연 가벼운 잽이 맞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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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쾅!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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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을 연상케 하는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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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이런 위력적인 일격들이 부딪치고 서로의 가드를 때릴 때마다 연신 미친 듯한 파공성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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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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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포탄의 힘이 서린 일격들이 상대를 맞추더라도 그들에겐 조금의 데미지도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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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둘 모두 맨몸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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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주먹이 닿을 때마다 타이어와 같이 탄력적인 무언가를 때리는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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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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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탐색전은 이제 질린 것인가, 먼저 공세에 나선 건 막시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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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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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동작과 움직임이 변한 것만으로도 위압적인 권압이 뿜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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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저 주먹에 스치는 것만으로 목숨을 내놔야 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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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피하거나 도망가야 하는 것이 이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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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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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그는 조금도 피할 마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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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그는 가공할 만한 권압을 그대로 받아내며 똑같이 일장을 뻗었고, 권압을 그대로 받아내며 진각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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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움푹 파이며 몸 전체를 꼿꼿하게 고정한 그였고, 그는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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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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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가드 상태로 주먹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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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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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는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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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일격을 피하거나 막지도 않은 이를 살면서 처음 본 까닭도 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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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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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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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으로 맞는 동시에 막시무스의 옆구리를 정확히 강타한 그의 주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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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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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해머가 그대로 옆구리를 가격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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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 맞았다면 그대로 내장 전체가 파열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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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안 아파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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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진심으로 아프다네. 이거 부끄럽구먼. 자네는 내 일격을 버텨냈는데, 난 이렇게 엄살이나 피우고 있으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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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텨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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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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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으로 버텨내긴 했으나, 맞은 부위가 저릿저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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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의 돌진을 가슴 정중앙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러한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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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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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든 창이든, 혹은 활조차 가뿐히 막아내는 금강으로조차 해소하지 못하는 충격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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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한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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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간은 기술도 안 쓰고 버텨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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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방어 기술을 펼쳐 견뎌낸 것에 반해, 막시무스는 몸뚱어리의 성능만으로 일격을 견뎌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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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가벼운 잽 수준이 아니라 녹다운을 시킬 생각으로 날린 일격인데, 이 인간은 엄살을 부리듯이 조금 아파할 뿐 여전히 굳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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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미친 몸뚱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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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강이란 건 이런 인간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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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누가 그랬던가? 세계 챔피언의 주먹도 곰 같은 맹수들에겐 마사지에 불과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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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생각나는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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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한은 자신의 예시가 적절하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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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나 곰에게 있어 인간의 주먹이나 발길질이 고양이나 강아지의 몸부림처럼 느껴지듯 이놈에게 통상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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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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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지를 수 있는 전심전력의 일격이 유일하게 저자를 녹다운 시킬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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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잽 수준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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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한 방이 중요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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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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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떻게 반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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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재차 일장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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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미치도록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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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는 거대한 흥분과 전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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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격이 주는 무게감도 무게감이지만, 자신이 내지른 일격을 아무렇지 않게 견뎌 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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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간 판금 갑옷을 때리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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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쩌면 더 단단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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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린 손이 더 아프다면 믿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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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수단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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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 모르겠으나 상대는 신묘한 기예를 익힌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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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순식간에 판금갑옷처럼 단단하게 하는 기예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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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소문에 의하면 검으로 꽃을 피워 낸다고도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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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신묘한 기예는 이제부터 시작이란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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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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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는 기대가 되어 흥분과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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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강함을 확인했고, 그 신묘함은 생소하면서도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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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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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렇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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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값어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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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란 자고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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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과 같은, 승리조차 불확실한 상대와의 격렬한 부딪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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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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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 다오, 넌 뭘 더 숨기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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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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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는 다시금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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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전력을 받아줄, 아니 어쩌면 패배를 선물해줄지도 모르는 그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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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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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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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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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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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대에 보답하듯, 아니 기대 이상을 보여주듯 더욱 신묘한 수단을 그에게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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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의 머리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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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주먹이 그에게 닿지도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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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산타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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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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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정신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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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예고와 함께 상대는 방금 전과 똑같이 가벼운 원투 동작으로 주먹을 날렸고, 그 또한 똑같이 막아내면 그만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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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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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는 이번에도 막아내지 못하며 그대로 일격을 허용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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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일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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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손길이 아닐까 싶은 어지러움과 당혹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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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어지럽히는 상대의 권격과 귀수(鬼手)가 그를 사정없이 농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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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는 귀신에게 홀린 감각을 느끼며 자신의 감각에 혼선이 생겼음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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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압을 날리는 건가? 그것도 방향에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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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좌우를 상관하지 않고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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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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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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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군. 그런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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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와 위마저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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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전방향에서 날아오는 물리법칙을 거뜬히 뛰어넘은 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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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는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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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가르쳐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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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치사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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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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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의 몸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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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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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산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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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백보신권의 원형이 되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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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보신권이 그저 일직선으로 힘을 뻗는 요령이라면 격산타우는 힘의 미세한 컨트롤이 지극히 중요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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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하고 이한의 권경(拳勁)이 주변의 장애물에 반사되며 상대가 미처 반응하거나 보지 못하는 사각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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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같으면 이런 기술을 펼치기 위해선 수학적 계산 능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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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의 각도와 방향을 실시간을 가늠해야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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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잘못 휘두르면 나 자신이나 아군을 공격할 수도 있는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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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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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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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백중이 따로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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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좀 아파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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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의 감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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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직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감각은 그 모든 계산을 감으로 해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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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 수준의 감각 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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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기술의 정교함과 적절한 힘 배분을 통하여 이한은 그야말로 알고도 막지 못하는 일격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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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하고 뻗는 일권과 함께 뻗어나가는 격신타우의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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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공기가 압축된 탄환이 터지는 격이었고, 이러한 일격이 쉼 없이 상대를 두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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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 두 개가 아니라 여덟 개로 늘어난 것 같은 착각을 주는 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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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리치를 무시하는 격산타우의 한 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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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대형 마물조차 진작 다져진 햄버거 패티처럼 되도 이상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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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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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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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그렇군. 이런 식으로 막으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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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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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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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제는 반응마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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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산타우를 꺼낸 지 겨우 3분도 채 되지 않았거늘, 벌써 반격마저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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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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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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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착각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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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모두 막아낼 수는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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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한은 자신이 우위인 상황임에도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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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초인적인 반응 속도는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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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한번 더럽게 튼튼하네, 이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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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할 정도로 단단한 몸을 겪고 있자니 헛웃음이 다 나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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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따위로 단단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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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는 내 손이 다 아픈 게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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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또한 몸이 탄탄하다 자부하지만, 이 녀석은 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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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경우 끝없는 단련도 단련이지만, 성격 나쁜 오러 유저에게 두들겨 맞으며 맷집을 늘리고, 더는 두들겨 맞지 않기 위해 금강이란 산물을 만들어낸 것이라면, 이자는 그저 선천적으로 몸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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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과 근육,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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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몸을 이루는 모든 것이 질기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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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의 몸이 마치 쇠사슬을 한데 뭉쳐 만든 듯한 비상식적인 형태의 근육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다면, 막시무스의 몸은 금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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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적부터 다이아 원석이었던 놈이 세공을 통해 더욱 이상적인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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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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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자잘한 공격 정도로는 절대 그냥 뚫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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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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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거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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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하고 이한의 몸속 내부에서 작은 폭발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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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을 중첩하여 힘을 실시간으로 끌어 모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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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첩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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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실시간으로 전투 중인 상황에서 써선 안 될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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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술에 들어가는 막대한 집중력 때문에 자칫 그가 당할 우려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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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한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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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무식한 승부사라 그런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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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인간은 안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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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도 이 순간 이한은 상대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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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무지막지한 인간은 절대 자신의 기술을 방해하지 않으리란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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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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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인간을 자신은 왜 신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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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북부인들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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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그와 결투를 벌인 경쟁자들은 이한의 심정에 공감하며 이렇게 말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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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막시무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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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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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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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기세가 사뭇 위협적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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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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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기세 속에서도 막시무스는 호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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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즐겁다며, 생경한 기술에 대한 흥분감이 가슴을 자극하여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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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를 곁눈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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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인간이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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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중첩경을 담은 백보신권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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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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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보신권과 중첩경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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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단순히 더한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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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직선적으로 주먹을 뻗는 백보신권의 권경은 위력적인데, 여기서 추가적으로 중첩경이란 폭탄을 같이 날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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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와 강한 폭발력 등이 겹쳐진 순간 이를 제대로 맞았다간 아무리 몸이 튼튼할지언정 막아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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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결국 피륙으로 이루어진 영장류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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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드디어 저 당당한 얼굴이 구겨지는 것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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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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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군. 이제야 이해가 갔어. 이렇게 하는 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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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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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 이한은 제 머리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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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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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치는 듯한, 아니…. 자신과 똑같은 자세를 취하는 막시무스는 경악스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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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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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보신권]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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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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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비슷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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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더욱 사나운 벼락과 같은 기운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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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럴, 저 새끼 역시 바보인 척 사람 기만하는 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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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돌하는 두 기운을 보며 내뱉은 이한의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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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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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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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지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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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이, 백년의 역사를 가진 지저세계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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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롤의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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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웜의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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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사건이 하루에 연달아 일어난 것만 해도 문제인데, 더 나아가 Lv.8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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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년이 이르길 시대를 대표하는 괴력난신의 영웅들이 충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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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으로 거대한 충격을 입은 지저세계가 무너지는 건 당연한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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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딪칠 때마다 포탄이 터지는데 도리어 버틴다면 땅굴이 대단한 것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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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타깝게도 땅굴은 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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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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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님, 못해도 30분 안에 무너질 것 같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저 먼저 도망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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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 험한 꼴 보느라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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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상 아니라고 말하고 싶긴 한데, …차마 그럴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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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창이의 상태는 엉망진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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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괴력난신이 싸우는 한복판에 있었으니, 꼴이 멀쩡하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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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이 이런 험한 경험을 했다면 대번 욕을 내뱉고 단칼에 연을 끊었을 테지만, 태창이는 요즘 애들답지 않게 착하고 성실한 대인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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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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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창이는 피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않은 표정을 지은 채 벽면에 처박힌 그를 향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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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님, 그냥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는 건데 같이 안 나가실래요? 아무리 봐도 지금 헛짓 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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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요즘 애들답게 말투가 따갑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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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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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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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지금 다 헛짓거리인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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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두 기사는 더는 싸울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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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목적은 이유가 뭐건 간에 땅굴에 있는 불온한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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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광신도 무리를 잡아내고 그들에게서 정보를 뽑아내는 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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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조금 마지막이 허무하긴 했지만, 광신도 조직의 존재를 증명하는 놈들을 찾아냈고, 더 나아가 땅굴에서 키워지던 초대형 마더 웜도 죽이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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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이지만 전 직장 동료 겸 광신도 조직 고위 간부로 보이는 이를 사로잡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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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로의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을 가지거나, 그도 아니면 각자의 윗선에게 말하여 이 상황을 종료하는 게 이로운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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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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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지저 공간에선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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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에 파묻혀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빠져나가는 게 합리적이며 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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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기사는 그 정도도 모르는 바보이거나 어리석은 이들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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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남들보다 영민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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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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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좀 바보처럼 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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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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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커밍아웃에 데릭은 눈을 끔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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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으나, 데릭은 이어지는 이한의 진심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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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망가는 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 목숨 걸고 싸우는 취향도 아니고. …근데, 이상하게 저 양반 앞에선 도망가기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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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욕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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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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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이 그게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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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이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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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한 본인조차 자신에게 이런 승부욕이 있다는 것이 어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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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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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의 챔피언 앞에서 도망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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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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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승부욕은 투쟁심이 되었고, 그 투쟁심은 그를 바보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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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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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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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일으키자 다시금 벽면이 무너졌고, 이한은 볼에서 통증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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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좀 세게 맞은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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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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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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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멀리까지도 날아갔군. 이거야, 원. 내가 허릿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꼴사납게 됐군, 크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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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저 멀리서 자신처럼 벽면을 부수고 나오는 막시무스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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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하게 단단한 놈! 저게 인간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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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님이 하실 말은 아닌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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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에 비하면 난 양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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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닮은꼴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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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잔소리를 무시하며 다시 몸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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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신거리는 몸도 서서히 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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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타박상은 저놈이나 자신이나 상처 축에도 끼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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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이한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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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쁘지 않다고 봐요. 지고 싶지 않은 상대가 있다는 게. 교관님도 저랑 똑같은 사람이란 게 느껴져서 친근감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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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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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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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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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이기세요. 기왕 바보짓을 하더라도 이기면 멋이라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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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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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은 그에게 검 한 자루를 쥐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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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챙겨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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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물을 새도 없이 녀석은 4호를 짊어진 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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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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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멀어지는 녀석에게 뒤늦게 답변하며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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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기왕 바보짓을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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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바보가 멋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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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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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보다 더욱 시원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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