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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 안에 지어진 마을의 중앙 광장으로 사제복을 입은 사제 한 명이 나타나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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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제는 ‘귀족으로 태어난 놈들은 다 죄인들이고. 우리는 힘이 없어서 당하고 사는 거다, 그러니 힘을 얻고 귀족이란 자들은 전부 다 때려 죽여야 한다!’란 기적의 논리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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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이란 말로도 부족한 현장에 두 사람이 아찔해 하는 것도 잠시, 이한은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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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암살조직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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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무래도 내가 아는 애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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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태창이 녀석에게 자신의 과거 일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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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도 아니고, 같은 동향 사람이자 비슷한 비밀을 품고 있는 그라면 상담하기 적합하기 그지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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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다른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진 상태이니 지금이 대화를 나눌 적절한 타이밍이기도 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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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이한의 전직 사이비(일지도 모를) 커밍아웃을 듣고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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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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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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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요. 그냥 교관님 인생이 순탄하지 않았다는 걸 새삼스럽게 인식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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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나름 납득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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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니 특성이 그렇게 많지’ 라고 중얼거리는 태창이었고, 이한은 피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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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다운 반응이다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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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돌연 태창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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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일단 제가 봤을 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납치당해서 어쩔 수 없이 암살조직원이 됐던 사람한테 ‘너도 죄인’이라고 단정하는 사람이 오히려 비정상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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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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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왕도에는 그런 비정상적인 발언을 하는 정신 나간 인간들이 많을 테지만, 그래도 교관님은 그런 건 그다지 걱정하지 않으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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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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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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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말대로 이한은 솔직히 자신이 속한 조직이 사이비건 뭐건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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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느 정도 충격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처음뿐이지 조금 냉정해지니 그다지 큰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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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이비 포교 활동을 한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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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검은 달에 납치당하고 몇 년은 훈련과 세뇌 교육만 받다가, 첫 임무를 수행하기도 전에 조직이 망해버리고 만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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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찔리는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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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약 태창이의 말대로 그의 전직이 밝혀진다면 트집 잡는 인간들이 없지는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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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약점을 이용하려는 이들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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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만약 그런 이들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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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때려 부순 다음 튀어야지. 동부 대륙이나 북부 대륙으로 건너가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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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 루트 타시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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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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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가실 때 저한테 귀띔 좀 해주세요. 같이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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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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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님 없으면 어차피 왕국은 망할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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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라, 넌 나를 너무 높게 평가해. 나 같은 놈이 없어도 왕국은 잘 돌아가, 이 녀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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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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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닐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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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눈으로 그리 말했고, 이한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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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무서울 것 없는 그였지만, 때론 이러한 고평가가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그도 어쩔 수 없는 소시민이긴 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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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쨌든,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설사 밝혀진다 한들, 교관님을 지지해 줄 사람이 제법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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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지지해 줄 사람들이라…. 하나같이 다 미덥지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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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도와줄 이들이 몇몇 떠오르긴 하지만 그다지 영 신뢰는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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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자신을 이용해먹을 인간들이 더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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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그, 그래도 제이크 경이나 요르드 경 같은 사람도 있잖아요. 그분들은 끝까지 교관님을 믿어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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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들? 음, 의리 있는 녀석들이긴 한데, 걔들한테 뭘 기대할 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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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죠. 요르드 경은 훗날 기사단장까지 오를 사람이고, 제이크 경은 군부의 장군까지 될 인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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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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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무조건 출세할 사람들이란 거예요. 교관님 인맥은 가끔 보면 미래의 거물이 많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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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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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진심으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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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와 후배가 그 정도로 거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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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선 잘 상상이 안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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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람 앞날이란 건 모르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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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그렇게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으나, 태창이의 다음 발언에는 더욱 충격적인 정보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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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말이죠, 교관님이 받은 실험 내용이 밝혀진다고 해도 딱히 문제는 없을 거예요. 교관님은 마인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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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스킬로 확인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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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마인이나 반마인이면 종족명에 뜨는데, 교관님은 ‘물음표’로 뜨거든요. 그러니 적어도 마인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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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더 불안한 정보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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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종족이 사람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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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최고의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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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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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녀석은 그를 안심시키려는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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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마인이 아니란 게 중요한 거죠. 어, 어쩌면 신비종족의 핏줄이 섞였을지도 모르니까요! 그, 그러니 안심, 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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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더 불안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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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영 못미덥다는 눈빛을 주기 무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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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리고! 귀, 귀족들도 양심이 있으면 교관님이 마물의 유전자를 이식받은 것 가지고 트집 잡으면 안 되죠! 오히려 그 사람들이 가장 질타 받아야 옳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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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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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세요? …아, 맞다. 투기법을 익히신 적이 없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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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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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정보가 나왔고, 이한은 눈을 끔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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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뭔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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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말에서 이한은 왜 귀족의 양심 운운하였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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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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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이 익히는, 소위 명문가의 투기법이 [고위 투기법]으로 분류되는 이유는요, 마물의 마석을 섭취하는 덕분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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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물을 덕지덕지 바른 개들 주제에 겨 묻은 개를 모욕할 자격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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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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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벌집, 아니 역린 아니야,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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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왜 고위 투기법이 비밀에 부쳐지며 평민 중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지 이유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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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놈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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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몰라도 되는 비밀이란 것이 있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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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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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잡담이 길어졌지만. 이한과 데릭이 맡은 바 일도 하지 않으며 농이나 주고받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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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수고하셨습니다, 형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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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요. 신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어찌 수고란 표현을 쓰겠습니까,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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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그렇군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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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몰래 사제의 뒤를 쫓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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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 진짜 제집처럼 구조를 파악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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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인지 선동가인지, 아니면 세뇌 전문가인지 모를 놈은 마을을 벗어나 미로와 다름없는 땅굴을 거침없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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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길조차 그에겐 별문제가 아니었고,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이상하게 웜이 출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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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십자가가 마물을 쫓는 효능이 있다는 게 사실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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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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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반트가 지니고 있던 물품은 크게 다섯 가였는데, 비약 3개와 역십자가, 그리고 찢어진 종이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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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약 3개는 각각 마물의 살점으로 만들어진 것과 마약 등이 들어 있는 것으로 구분되었고, 찢어진 종이는 용도를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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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역십자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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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물이 싫어하는 파장을 내뿜는다. 정확한 정보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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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마물은 모르겠지만, 하급 마물까진 쫓아낼 수 있다는 역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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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이 마냥 죽고 싶어서 땅굴을 아지트로 삼은 게 아님을 알 수 있는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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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최종적으로 도착한 사제의 목적지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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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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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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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세상에…. 흐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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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건 이한만이 아니었고, 데릭은 실수로 육성으로 경악성을 내뱉다가 제 실수를 깨닫고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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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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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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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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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 샌드 웜의 울음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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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미터’ 크기를 자랑하는 샌드 웜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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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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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믿지 못할 것을 보면 뇌가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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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이나 큰 건물이나 생물을 보면 발이 굳는 생물의 본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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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그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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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남부의 샌드 웜은 30미터가 한계인 거로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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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막에 서식하는 샌드 웜은 성체가 되면 80~100미터까지 크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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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건 사막에서도 드문 경우이며, 100미터를 넘는 샌드 웜이 나오는 건 백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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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남부의 샌드 웜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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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대륙에서 비료를 키워내기 위해 가져온 만큼 개량을 거쳤고, 몸집을 키우기에 적절한 환경도 아닌지라 아무리 커봤자 30미터를 넘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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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30미터조차 대경실색할 크기임은 맞지만, 그래도 여기까진 마법사와 기사들이 활약하면 잡을 수 있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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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비하면 한없이 느리고 약한 수준에 불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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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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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약할지라도 ‘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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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하다는 말조차 그다지 저놈을 표현하는 데 부족한 거대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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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저놈이 지하에서 날뛰었다간 지반이 붕괴되고 그들은 손 쓸 틈도 없이 그대로 토사에 묻혀 세상을 하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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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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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싸늘해지는 상상이 아닐 수 없었고, 데릭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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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였구나! 저들이 노리는 수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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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은 이제야 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왕도를 혼란에 밀어 넣을 것인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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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수단을 썼는지 모르겠으나, 거대한 샌드 웜을 키워내는 데 저들은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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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샌드 웜이 날뛰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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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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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아니 남부 대륙 최대의 비료생산지대가 무너진다는 것은 ‘식량’에 영향을 끼칠 일이란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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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야 괜찮겠지만, 그동안 비료를 쓰던 것에 비하면 농작물에 크나큰 손실이 닥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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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그 피해는 커질 것이고, 식량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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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식량의 문제에 가장 고통 받는 건 이 나라를 지탱하는 국민들인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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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당연하게도 일어날 사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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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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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한 예측일 수도 있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왕국은 안팎으로 무너져 내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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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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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은 저들이 정녕 왕국을 무너트리기 위해 모두를 굶겨 죽일 계략을 짰음을 인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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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데릭은 언제까지고 당황할 수 없다는 듯 스킬-[위기감지]를 펼쳤고, 샌드 웜이 가진 위험도를 측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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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왕에 비하면 두 단계 낮은 레벨이에요. 덩치는 크지만 교관님이라면 충분히 잡으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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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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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만 단번에 죽여야 해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저놈이 날뛸 테고, 그렇게 되면 땅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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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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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면 지금이라도 지원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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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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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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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군을 부르고 싶긴 한데, 아무래도 늦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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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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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도 먼저 빠져나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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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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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은 뒤늦게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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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쥐새끼들 같으니, 드디어 걸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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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저들을 쫓고 있었듯, 저들 또한 그들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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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흑의인들이 어느새 그들을 포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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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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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의인들이 내뿜는 기세는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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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한 인원이, 그것도 저만한 실력자들이 기세를 감추고 지금껏 숨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실력을 알려주는 지표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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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합 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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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개개인의 실력이 백은사자에 있던 어중이떠중이들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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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추가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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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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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천벌 받을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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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스러운 팬드래건의 기사다…!!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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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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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모여드는 죄수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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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해전술이라 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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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도 이런 장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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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단 두 명을 붙잡기 위해서 이만한 인원이 몰려온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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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대량으로 모여드는 인원들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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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어떻게 알았지? 나름 은밀하게 미행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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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나 또한 등골이 서늘했다네. 정녕 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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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물음을 던지자 뜻밖이게도 사제는 친절한 답변을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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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철철 넘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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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 한 가지 실수를 했더군. 자네, 이런 종이를 보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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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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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가 꺼낸 것은 한 장의 백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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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반트의 찢어진 종이와 아주 흡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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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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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쪽 사람의 신변의 문제가 생기는 순간 찢어지는 원리라네. 아마 자네는 우리 쪽 사람 한 명을 잡아서 성과를 내었다 여겼을 테지만, …어리석기 짝이 없군. ‘우리’가 그토록 허술하여 보이는가?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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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이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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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알아봤자 늦었겠지만, 그런 거라네. 하여튼 왕국의 기사란 것들은 멍청하기 그지없단 말이지, 아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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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기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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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드래건의 기사로 보이는 자를 포위한 것도 있지만, 본인이 압도적 우위에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만족스러운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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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짓밟는 것으로 충족욕구를 얻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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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투항해라. 그렇다면 고통 없이 보내주기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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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는 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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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줄 리가 있나. 아, 자네는 확실히 실력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옆에 있는 아이를 비롯하여 동료들은 확실히 죽을 걸세. 우리가, 아니 내가 반드시 그렇게 할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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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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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 말고도 다른 세 사람의 존재 또한 이미 알고 있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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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교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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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면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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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은 상황이 그들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함을 깨달으며 침울한 기색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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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내가 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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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놈이 이러한 뻔한 함정에나 걸려들고, 대체 뭐하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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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책감이 밀려오며 데릭은 품속에서 비수를 꺼낼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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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일은 모두 망가졌지만, 살릴 사람은 살려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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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도망치세요, 교관님. 제, 제가 어떻게든 붙잡을게요! 마, 만천화우라면 어떻게든 이들 중 반은 데리고 갈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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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라. 너, 사람 상대로 피 볼 수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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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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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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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은 지금껏 살생을 해도 그 범주는 마물에 국한되어 있지, 사람을 살생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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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각오를 다지지 못한 것이기도 하고, 여전히 현대인이란 증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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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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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지금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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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그래도 좀 성장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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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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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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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하다는 듯 그의 등을 툭툭 치는 이한이었고, 데릭은 이런 상황에서 무슨 칭찬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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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자포자기했나 싶지만, 그가 아는 한 이한이란 사람은 결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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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비켜봐라. 내가 이런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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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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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가르침을 주겠다는 듯이 앞으로 나아가는 이한이었고 사제와 흑의인들이 내뿜는 살기가 짙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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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선택을 내리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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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이한을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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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보 같은 기사는 끝내 그들과 싸울 요량인지 품속에서 무기를 꺼내려는 듯했고, 사제는 손을 들어 공격 명령을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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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땅굴 구역 곳곳에는 화염 스크롤이 약 100장씩 매설되어 있고, 그중 절반만 점화해도 땅굴은 무너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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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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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를 비롯한 흑의인들은 동작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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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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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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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놈이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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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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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믿겠어? 하긴, 말로만 해서 누가 믿겠어. 뭐, 처음은 간단하게 보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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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품속에서 꺼낸 건 무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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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처럼 생긴 구슬들이 담긴 주머니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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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돌연 그는 구슬 한 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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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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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쉽게 터트렸고, 다음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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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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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는 폭발음이 지하를 덮치며 땅굴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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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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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두두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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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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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와 흑의인들은 얼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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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땅굴의 지진을 목도하며 그들은 아연실색함을 제대로 느끼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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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런 그들을 보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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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못 믿겠나? 그럼 이번엔 좀 더 큰 폭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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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마아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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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절규하듯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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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안에서 터져나가려는 알맹이를 보며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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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믿겠다! 믿겠으니 당장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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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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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 죽일 셈이냐! 이 천하의 악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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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반말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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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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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친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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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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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병할 놈이, 어디서 명령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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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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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한의 손에서 다시금 구슬 한 알이 터졌고, 곧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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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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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거대한 폭발음이 지하세계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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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두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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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보다 더욱 커진 지진과 균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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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가 떨어지며 모든 게 산산조각 나려고 했고, 급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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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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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 웜이, 아니 마더 웜이 깨어나려는 듯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사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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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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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뇌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냥 굳어버렸고, 그런 그를 향해 이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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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터트리는 수가 있다. 말조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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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찌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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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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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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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댓말 모르냐 이 못 배워먹은 새끼야, 어디서 어린놈의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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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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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있지 말고, 빨리 무릎부터 꿇어. 다 뒤지고 싶은 거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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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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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을 무너트리려는 테러범이 도리어 협박받는 초유의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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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적이다 못해 어처구니없는 광경이었고, 사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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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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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무릎을 꿇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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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진작 그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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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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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광기 앞에서 가짜 광기 따윈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것이 정해진 순리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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