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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장 탈의실 앞에 있는 테이블. 몇 개 없긴 했으나 일행이 나오길 기다리기 위해 마련된 장소에서 서예린이 다리를 꼰 채로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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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뒤에서 핸드폰 화면을 훔쳐보면서 서예린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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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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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좋으려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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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드라마 속 영감처럼 뒷말을 길게 늘이면서 핸드폰을 빠르게 두들기는 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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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을 사는 사람이 내가 되었기에 가게를 정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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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장은 어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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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만 살짝 돌려 나를 올려다보며 묻는 서예린. 너무 눈에 뻔한 함정이었음에도 나는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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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우리 서회장님께서 드시고 싶은 거면 저는 뭐든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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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참, 그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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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돈은 내가 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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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서예린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면 지갑이 거덜 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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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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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헤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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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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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놈들 거 먹을 바에는 우리 고유의 파전을 먹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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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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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국수는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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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오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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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먹을 바에 고등어조림 그냥 뜨끈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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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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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심을 듬뿍 담게 되었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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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야 너는 뭐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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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다리를 꼰 채로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최이서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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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했으니까 너무 살찌는 거 먹는 건 안 좋을 것 같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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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라면 아마 풀떼기나 먹으러 가자고 하겠지. 최근 풀떼기도 비싸지긴 했으나 그래도 스테이크 같은 육류에 비해서는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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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 보충하러 스테이크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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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인백 있어! 거기서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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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아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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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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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잠깐! 고작 달리기 한 번 졌다고 스테이크를 사는 건 아니잖아! 단백질 보충을 누가 스테이크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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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억지를 부리며 외치자 서예린이 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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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속이지 말았어야지. 만약 정정당당히 해서 내가 이겼으면 나도 그냥 싼 거 아무거나 먹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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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좀팽이처럼 이기겠다고 연기를 하니까 벌 받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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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으쓱거리며 덧붙이는 최이서. 할 말이 없었기에 결국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스테이크 집에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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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 바는 내가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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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서예린이 샐러드 바를 사겠다고 나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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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건 내가 알아서 사 먹을 거니까 걱정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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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도 옆에서 등을 두드려 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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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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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카드를 뽑았으면 남자답게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호기롭게 앞으로 나서면서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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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지출은 감수해도 괜찮아. 그렇게까지 궁핍한 삶을 사는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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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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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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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나를 보면서 조용하게 박수를 쳐주었다. 어쨌든 테이블에 앉아서 다들 음식을 고르고 주문하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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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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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얼굴이 우리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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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2학년의 한강 선배가 알바 복장을 한 채로 우리의 주문을 받으러 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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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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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하게 서예린이 인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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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일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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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는 나름 능숙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한강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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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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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만 나는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이전에 같이 술을 마시긴 했지만 아직 어색함은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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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응. 중간고사도 끝났겠다 최근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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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셨구나. 주문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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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서예린이 불편해하니 주도적으로 말을 걸면서 주문까지 끝내 깔끔하게 선배를 보내버린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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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눈치도 빠르고 일도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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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불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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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나와 서예린에게 묻는 모습을 보니 꽤나 걱정한 모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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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 상관없어. 애초에 누구 눈치 보는 성격도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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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조금 당황했을 뿐이지 선배 눈치나 보면서 밥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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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서예린은 좀 다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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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부, 불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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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같이 술 마실 때 무슨 일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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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보다 더 불편해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 서예린. 표정이 어두워진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때 뭔 대화가 오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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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화장실 가는데 선배가 따라와서는 좋아한다고 고백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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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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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물론, 최이서가 노려봐서 바로 입을 다물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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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게 노려볼 일인가. 고백받았으면 축하해 주면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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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다고 분명히 거절했어! 하, 하지만 그래도 계속 생각해달라고 하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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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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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기다릴 테니까 마음 변하면 말해달라고 그러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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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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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금 고백을 거절했는데도 저쪽에서는 계속 기다리고 있는 나름 애달픈 상황이라는 뜻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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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서예린 정도가 되니까 한강 선배 같은 사람도 번호표 뽑고 기다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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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더럽게 잘생겼네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정찬우 수준은 아니지만, 한강 선배도 나름 과에서는 남신이라면서 여자애들이 추앙하는 분위기였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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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자 새삼 내가 참 대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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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뿐만 아니라 최이서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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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에서도 그렇고, 헬스장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지금 여기도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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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두 여인을 쳐다보는 시선들이 쏟아지고 있었고, 나를 향한 시기와 질투 혹은 품평과 비교 등이 적나라하게 쏟아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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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놈이 왜 이런 두 사람이랑 있냐면서 꿍얼거리는 사람을 실제로 보기도 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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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이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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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가 옆에서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걱정해 주자 서예린도 나름 마음이 편해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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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너무 거절하지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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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한마디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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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내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는지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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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름대로 서예린을 위해서 해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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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따졌을 때, 한강 선배 정도면 나쁘지 않은 남자라고 생각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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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매너 있다고 소문도 자자하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어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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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많다는 소문이 있으며 더불어서 잘생기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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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조건의 상대는 솔직히 보기 꽤나 드물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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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이라고 하면 여자를 좀 밝힌다는 건데…… 그건 뭐, 너한테 문제는 없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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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이랑 사귀는데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아마 서예린 눈 밖에 나기 싫어서 알아서 쳐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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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지금까지 연애 경험이 한 번도 없잖아. 남의 감정 가지고 실험하는 느낌이긴 해도 한 번 정도는 경험해 보는 거 나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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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웃어른들께서도 이 나이에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경험하라고 하시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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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딱 책임과 쾌락의 경계선에 있는 지점이었다. 사귄다고 무작정 결혼으로 가지도 않고, 학생 때의 풋풋함을 유지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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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만 할 수 있는 연애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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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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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서예린의 표정이 좀 더 어두워졌다. 나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는데 말을 잘못했나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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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전부 들은 최이서는 나의 의견에 좀 많이 놀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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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객관적으로 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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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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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선배랑 직접적으로 마찰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과에서 저격까지 당했던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신기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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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을 괸 최이서가 살짝 미소를 흘리며 추가로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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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만약에 반대로 주관적이면서도 사심이 듬뿍 들어간 시선으로 말해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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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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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인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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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서예린은 조마조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게 뭔가 묘하게 느껴지긴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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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솔직하게 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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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라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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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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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웃는 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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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쭙잖게 깝치지 말고 군대나 가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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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진이도 군대 가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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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언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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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나를 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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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한강 선배 뒷담화 신나게 하는 거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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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내가 아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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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편지 써줄게 우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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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핸드폰도 쓸 수 있다는데? 톡하면 답장할 수 있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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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속이 쓰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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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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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얘기가 이렇게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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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모! 나 베레모 써보고 싶어! 나중에 휴가 나오면 빌려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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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같은 거 보내줄 수도 있나?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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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직 민간인이야 이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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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벌써 군대 갈 사람처럼 나를 대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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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장난이었다고 웃으면서 시시덕거렸고 그 와중에 우리가 시킨 메뉴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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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 바에 가야 했는데 얘기에 열중하느라 가질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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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선배가 굳이 서빙하러 와주셨는데 우리는 다시 군대 얘기로 꽃피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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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년이면 통일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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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통일돼도 넌 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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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이병 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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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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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한강 선배가 끼어들었으나 우리는 우리끼리의 대화에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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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선배에게 보란 듯이 구는 느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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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아 내가 친구들이랑 다 같이 면회 가줄게. 내 친구들 중에 예쁜 애들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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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유아린이 포함되어 있으면 사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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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이도 예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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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좀 특이한 편에다가 과일 향이 나는 게 통통 튀는 매력이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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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호크 스테이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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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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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스테이크를 받아 들면서 우리는 얘기를 계속한다. 한강 선배가 있으니까 아무 말이나 일단 막 내뱉는 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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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배도 진짜 더럽게 독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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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을 향한 마음이 도대체 얼마나 큰 건지 서빙이 느릿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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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서예린을 또렷이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런 게 바로 훈남의 어프로치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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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얼마나 스스로가 잘났다는 걸 알고 있으면 저렇게 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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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했으면 바로 눈 깔라면서 욕먹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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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린이가! 옛날에 태권도 선수였던 거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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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시선을 받는 서예린은 마치 입에서 풍선 쏟아내는 광대처럼 호들갑스럽게 계속 말을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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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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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처음 듣는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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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태권도 선수! 예전에 유망주라면서 엄청나게 말이 많았거든! 대회 나가서 상도 타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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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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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다리가 예쁘게 쫙 뻗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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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유연해! 나는 못 하는 동작 쉽게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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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유연해 보이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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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애가 유연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몸짓이나 행동들에서도 그랬고, 지난번에 우리 집에 와서 다리로 내 등 두들기는 것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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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몸도 짱 좋아! 근육도 있어! 아, 그래도 전반적으로 몸이 부드러워서 안고 있으면 기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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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부드럽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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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참 말랑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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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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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호크 스테이크를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며 설렁설렁 대답하던 나는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시 곱씹으며 슬쩍 고개를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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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꺼낸 서예린과 옆에서 잠자코 듣던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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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빙하던 한강 선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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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같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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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오해할 수 있게 말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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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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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아닌 척 차분하게 쥐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놓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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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방금 내가 말했던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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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또 나름 임기응변의 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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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여친에게 시달리면서 이것저것 변명을 내뱉던 경험이 있어서 이런 상황에서 말을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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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할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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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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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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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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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울려온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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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화면만 확인하니 거기에는 유아린의 톡이 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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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린: 살려줘! 대나무숲 터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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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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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 개색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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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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