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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윤지랑 사귄 거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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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가 호텔 방에 묵직하게 떨어진다. 이것의 대답 여하에 따라 앞으로 내 대응이 달라진다는 걸 큰형은 잘 알고 있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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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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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큰형의 표정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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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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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지의 이름이 입에 익은 듯한 말투가 미묘하게 거슬렸으나 일단은 큰형의 말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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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정말로 그런 애랑 사귀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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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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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몰라서 조사를 좀 해봤다. 그 애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알고는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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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열이 확 치솟은 적은 처음이었다. 심장이 격할 정도로 빠르게 두근거림과 동시에 당장이라도 저 입을 막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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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조사까지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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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여자였다. 당연히 필요한 수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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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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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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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게 식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큰형. 시선에는 미약한 혐오감이 차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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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너는 다른 여자를 잘 사귀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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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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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아, 정말로 오윤지가 너한테 그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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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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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턱 하고 막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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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지 모르지 않았고, 내가 오윤지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해도 결국에는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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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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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 이후, 방학 동안 살아있는 송장처럼 지내기만 했던 내 시간에 대해서 장황하게 말해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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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결국 과거로 치부되며 끝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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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다니는 동안은 최대한 너를 건드리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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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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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말했지? 지원도 이제부터는 끊을 거다. 기숙사에 원서를 넣었다는데 잘했구나, 밖에서 얼어 죽을 일은 없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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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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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말문이 막히는 건 여전했다. 큰형의 무덤덤하고 기계적인 말들은 업무라도 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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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경험할 수 있는 건 다 경험해 봐라. 그다음에 네가 정말 우리 가족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럼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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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쥐고 있는 주먹은 갈 곳을 잃은 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결국 큰형이 하는 말들에 제대로 반박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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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내 말과 다르게, 행동은 그야말로 헤프기 그지없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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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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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지막 발악을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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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큰형을 쳐다보며 호소하듯 한마디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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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는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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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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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사라진 그녀가 혹시라도 뭔가 잘못되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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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가족들 때문에 어디서 몹쓸 짓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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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히 나를 쳐다보던 큰형은 작게 숨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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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놀란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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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마디는 아까처럼 사무적인 보고의 느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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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동생을 걱정하는 형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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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이랑 같이 사업을 한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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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이랑 사업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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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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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혹스런 눈으로 큰형을 쳐다봤으나 더 이상 해줄 말은 없다면서 몸을 틀어, 창밖의 풍경을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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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너 이거 안 먹으면 내가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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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꾸도 안 하는 모습이 짜증 나서 베개를 하나 챙겨 큰형 뒤통수에 던지자 퍽 하고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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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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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 잡지 마! 잣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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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언제 철이 들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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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잘해! 나이가 몇인데 주변에 여자가 하나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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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나간 여자가 네 형수 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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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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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도 알고 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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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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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이 진짜 형수님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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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가. 괜히 너랑 있으면 말이 많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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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내며 손짓하는 큰형에게 나는 씩씩거리면서 카트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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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는 기다리고 있던 여비서과 눈이 딱 맞았기에 어색하게 뺨을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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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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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인사를 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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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저 형이 여자를 사귈 줄이야. 미모의 여성이긴 했으나 그래도 형을 함락시키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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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옷 좀 잘 추스르세요. 괜히 편하게 입고 다니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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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일들이 떠올라서 걱정되는 마음에 한마디 하자 비서는 방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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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하는 말이 회장 아들이자 부회장 동생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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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형수한테 충고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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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께서 어떤 반응일까 궁금했거든요. 정말로 아무 여자한테나 지조 없이 구는 건가 싶어서요. 그래도 그건 아니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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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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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저분께서 말을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도련님을 지지해요. 대학생인데 여러 여자랑 해보고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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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형수님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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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휘둥그레 뜨며 묻자 형수님은 키득거리면서 대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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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이 그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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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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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나한테 뭐라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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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은 여자한테 별로 관심 없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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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저분한테 관심이 많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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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쟤 때리고 싶으면 저한테 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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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형수님은 웃으면서 말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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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런 식으로 여러 경험을 해보면서 좋은 여자를 찾는 것도 나름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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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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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이 마지막에는 저를 선택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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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좋은 여자라는 걸 어필하고 있는 형수를 보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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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여자는 잘 만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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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다고 끄덕이며 가기 전, 나는 형수를 보며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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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 좀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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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멍하니 쳐다보던 형수는 방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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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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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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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 나한테 삐진 게 분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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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호에서 돌아오고 얼마나 됐다고 다시 불린 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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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술안주를 가져가면서 씩씩거리는 뒷모습을 보니 유아린은 뭔가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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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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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호에 끌려갔다 온 김우진은 평소랑 다른 느낌이었다. 거리를 두는 느낌이 강해졌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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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에서 또 룸서비스를 시킨 건 의외였으나 이번에는 따라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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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짱을 낀 채로 김우진에 대해서 이것저것 고민하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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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리 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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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부르는 이찬송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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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는 말투에서 벌써 기분 더럽다고 투덜거리며 유아린이 부장에게 다가가자 거기엔 기묘한 각서 같은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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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사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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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예요? 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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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냥 해. 틀린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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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유아린이 읽다가 순간 인상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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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부장님이랑 어떠한 접촉도 없었다? 성적 발언 같은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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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서라고! 너희가 괜히 알바 끝나고 개짓거리할 수 있으니까 미리 받아놓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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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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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다 못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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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정말로 법적으로 효력이 있으니까 시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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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 같은 거 안 할 거니까 걱정 마세요. 괜히 부장님한테 시간 쓸 일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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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사인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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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당당하시면 이런 거 받을 필요도 없는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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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요즘 애들이 왜 이렇게 답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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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송 부장이 짜증 내는 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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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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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들려오는 구둣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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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이 돌아왔구나 싶어서 유아린은 냉큼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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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저쪽에서 사무실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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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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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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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뒤로 전부 넘기고 있으나, 촌스럽다기보다는 나이에 맞지 않은 묵직함과 중후함을 풍기고 있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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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깔리는 저음은 전신을 긴장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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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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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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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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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른 건 유아린이지만 반응은 옆에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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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부, 부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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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의자에서 일어나 90도로 인사하는 이찬송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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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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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호텔 전체가 비상에 걸리게 만든 원흉이지 않은가. 아직 이런 경험이 익숙하지 않은 유아린은 멍하니 부회장을 쳐다봤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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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부회장의 눈길은 책상에 있는 기괴한 각서 쪽으로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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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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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전부 읽고는 아무 말 없이 챙겨 든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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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송 부장은 아찔함을 느끼며 입술을 꾹 깨물었으나, 부회장은 그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유아린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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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얘기 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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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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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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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고 밖으로 나가는 부회장. 표정이 아예 퍼렇게 질려버린 부장을 내버려둔 채로 유아린은 그대로 그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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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호텔 건물 밖으로 나갔는데 걸음이 좀 빠른 걸 보면 누구한테 걸릴까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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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밖에 있는 벤치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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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새벽이라 사람이 거의 없기도 했고, 어두웠기에 부회장을 알아보기도 힘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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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도 금발 끝날 화제인지 따로 앉거나 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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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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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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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귀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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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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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무슨 말인가 싶어서 격하게 부정해 버렸는데 오히려 부회장 김재운이 더 곤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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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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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죠,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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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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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간을 찌푸린 김재운은 묘한 눈으로 유아린을 쳐다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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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김우진이랑 관계를 맺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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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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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계를 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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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뇨……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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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말해놓고 뺨이 살짝 달아올랐으나 김재운은 무뚝뚝하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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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회장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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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해보겠니? 아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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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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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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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이 다소 특이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보니 김재운은 확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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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김우진이랑 통화할 때 옆에서 신음 흘렸던 게 너 아니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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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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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부회장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고민하던 유아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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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악?! 큰형이랑 통화한다고 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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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PC방에서 김우진이 큰형이랑 통화할 때 신음을 내면서 장난쳤던 걸 기억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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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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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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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우진이 큰형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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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하면서 묻는 유아린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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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당황스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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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긁적인 유아린은 멍하니 김재운을 보다 꾸벅 숙여서 다시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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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입니다. 김우진 친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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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운. 김우진 큰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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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김우진 다이어 수저였어요? 미친놈이네. 그걸 숨겨? 그러면서 아까 편의점에서 초코몽 사주는 걸로 생색 오지게 냈네. 심지어 어제는 내가 사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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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웃음을 흘리는 유아린의 모습에서 김재운은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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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다가왔던 여성들의 대부분은 기업과 재산에 관심이 있던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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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탐욕이 그득한 눈에 대해서 김재운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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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은 그런 부분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니면 아직 대학생이라 체감이 잘 안되는 걸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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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우진이 따로 물려받을 건 없다. 전부 포기하기도 했으니까. 생활비도 이제 본인이 낼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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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몰라 김재운이 대놓고 말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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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헠! 그걸 포기하네 김우진 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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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좋다면서 박수 치고 웃어대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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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지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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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여자들을 만났구나 싶어 김재운은 옅은 미소를 흘리면서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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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찾아온 건 별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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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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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관계가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우진이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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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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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유아린은 방긋 웃으면서 자신감 넘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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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세요. 그 자식이 주변에 여자가 많아서 좀 고민이긴 한데, 잘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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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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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고민한 김재운은 이미 한 발 먼저 움직이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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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미리 알아두는 게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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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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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지라고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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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지에 대한 이야기를 유아린에게 풀어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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